한채아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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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황성운 기자] “사실 김기덕 필름 이미지와 맞진 않는다.” 영화 ‘메이드 인 차이나’ 김동후 감독은 최근 진행된 언론시사회에서 주연을 맡은 한채아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고개가 끄덕여진다. ‘각시탈’ ‘내 연애의 모든 것’ ‘당신만이 내사랑’ 등 주로 안방극장에서 활동한 한채아와 강렬한 느낌의 김기덕 필름과는 그리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그게 선입견에서 기인했을지라도.

‘메이드 인 차이나’에서 한채아가 맡은 ‘미’라는 역할도 마찬가지다. 드라마에서 보던 이미지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외롭고 차가운, 신경질적인 느낌을 가득 채워 넣었다. 대사보다는 눈빛과 표정 그리고 몸짓으로만 심리상태를 관객에게 전해야만 했고, ‘첸’ 역의 박기웅과도 대사 없이 감정을 만들어야 했다.

더욱이 ‘메이드 인 차이나’는 한채아의 첫 스크린 주연작이다. 누구보다 많은 고민 끝에 선택했다는 의미다.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김기덕 필름 작품으로 자신을 넣은 건 어떤 이유였을까, 한채아를 만나 물었다.

Q. 영화 촬영을 마친지는 꽤 된 거로 기억하고 있다. 뒤늦게 개봉되는 건데 소감이 어떤지 궁금하다.
한채아 :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그리고 다시 보니까 1년 반 전에 저렇게 했나 싶기도 하고, 뭔가 좀 새로우면서 손발이 오그라들더라. 그리고 뒤늦게 보니까 굉장히 객관적으로 보게 됐다. 더 디테일하게 내 연기를 보게 되니까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다.

Q. 영화는 참 오랜만이다.
한채아 : 두 번째 영화인데 ‘아부의 왕’은 비중이 크지 않아서 기억 못 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처음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많다.

Q. 방금 말한 것처럼, ‘메이드 인 차이나가 첫 스크린 주연 작품이다. 그런데 김기덕 필름 작품이라. 그 선택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한채아 : 처음에 김기덕 감독님 극본이라 뭔가 어렵지 않을까, 그런 선입견을 품고 시나리오를 봤다. 근데 미를 생각하고 봐서 그런지 어떤 메시지보다는 미 캐릭터가 많이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당시 내 감정과 미의 감정이 비슷한 게 있었다. 나도 그때 외로웠던 시기였다. 드라마 작업이 끝날 무렵에 시나리오를 봤는데, 그땐 그냥 접었다. 나와 맞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했고, 일단 드라마를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드라마가 끝나고 다시 봤는데 그때 미가 보이기 시작했고, 공허만 마음이 비슷했다.

Q. 그럼 영화의 메시지 측면은.
한채아 : 사실 처음에는 잘 안 다가왔다. ‘왜 그럴까’는 나중에 왔다. 다른 작품은 보통 시나리오나 시놉을 보면 메시지가 다가오는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촬영하면서 느껴지더라.

Q. 미는 어떤 여자인가.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미를 연기하기 위해 그려봤을 것 같은데.
한채아 : 그려보려고 했고, 시도도 했다. 감독님께 미는 어떤 사람인지 물어봤는데 단호하게 ‘알려 하지 말라’고 하더라. 미를 표현해야 하니까 뭔가 있어야 했는데 알려 하지 말라고 하니까. 근데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미는 부모님 때문에 차가워진 것도 아니고, 살아온 환경이 가난해서 그런 불법을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그런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Q. 흥미로운 지점이다. 배우가 캐릭터를 구축할 때 그 인물의 주변을 만들어보고, 이야기하기 마련인데 알려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게. 아무래도 처음에 인물 잡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한채아 :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힘들었다. 감독님은 미의 캐릭터에 대한 관찰이나 분석보다는 내 심리상태를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한채아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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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미의 감정 흐름도 궁금하다. 처음에는 첸을 거들떠보지 않다가, 어느 날 첸의 장어를 검사해주고. 또 집에 데려가서 베드신까지 이어지는 데 그 과정이 쉽게 이해됐나.
한채아 :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됐다. 감독님께서 한낱 원나잇 욕망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럴법한 것 같다. 영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미가 돈을 두고 먼저 나가지 않나. 딱 그런 느낌인 거다.

Q. 그런데 점차 사랑의 감정이 조금씩 생기는 것 아닌가.
한채아 : 맞다. 외롭게 혼자 있는 적막한 집에 첸이 들어왔고, 말은 안 통하지만, 몸으로든 눈빛으로든 호흡하면서 서로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거다. 이 감정은 이해된다. 안 그래도 외로운 상황이니까. 그리고 미는 항상 어두컴컴한 집을 들어갔을 텐데 불이 밝혀져 있는 것만 봐도 외로움이 확 사라졌을 것 같다.

Q. 그래서 궁금한 게 분명 두 사람의 감정은 쌓이는 것 같은데 베드신의 형태는 매번 같았다. 감정도, 행위도. 사랑하는 감정이 더해지면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한채아 : 미는 표현을 못 하는 여자인 것 같다. 첸이 안 볼 때는 눈길을 주기도 하고, 미소를 지을 수도 있는데 앞에 있으면 표현을 못 하는, 그런 것 같다.

Q. 노출은 없지만 그래도 베드신이 처음이다. 아무래도 부담은 좀 있을 것 같은데.
한채아 : 노출은 없었지만, 베드신에 대한 부담이 현장에선 좀 컸다. 실제 옷은 입고 있지만 벗고 있는 상태를 표현해야 하니까. 또 감정 표현도 어려웠다. 그래서 처음 누워있을 때 안겨서 누워 있어야 하나, 등을 돌려야 하나 고민 많이 했다. 나뿐만 아니라 감독님과 기웅 역시 예민해졌다.

Q. 상대가 박기웅이라서 다행이었겠다. 이미 각시탈에서 호흡을 맞췄으니까.
한채아 : 당연하다. 정말 다행이었던 건 짧은 시간에 해야 했다. 사실 상대 배우 파악하는 것도 시간이 걸리는데 그런 게 아예 없었으니까. 또 연기 호흡은 그 전에 충분히 맞춰봤기 때문에 정말 편하게 했다.

한채아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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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캐스팅은 누가 먼저 된 거였나.
한채아 : 내가 먼저 되고, 기웅이 캐스팅됐다. 기웅은 나 듣기 좋아하라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누나가 미에 캐스팅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정했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힘이 확 생겼다. 기분 좋았다.

Q. 박기웅이 캐스팅돼서 한시름 부담은 놨을 것 같다. 어려운 감정이나 장면도 이야기하기 편하니까.
한채아 : 사실 기웅이는 중국어에 대한 부담이 컸다. 캐스팅이 빨리 된 게 아니었고, 중국어를 숙지할 시간이 채 2주가 안 됐다. 그거 때문에 예민해 있었다. 근데 기웅이가 정말 상대방을 잘 배려해주는 배우다. 나한테 ‘자기는 장어를 살리기 위한, 하나의 목표만 있으면 된다. 근데 누나는 생각해야 할 것도 많고, 감정도 바뀌고, 훨씬 더 어려울 거다. 누나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다 맞춰주겠다’고 하더라.

Q. 동생이 아니라 오빠 같다.
한채아 : 연기로는 데뷔도 먼저 했다. 도움을 많이 받았다.

Q. 미와 회장(기국서)과의 관계도 묘하던데.
한채아 : 그러니까. 그분이랑 어떤 관계일까요, 감독님께 물어봤는데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하더라. (웃음) 돈을 받고 뭔가 이상한 분위기가 있지만, 그걸 떠나 그에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나 내 이익을 위해 감안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중에 미가 첸한테 ‘그때 술집 여자하고 잤는지’ 물어본다. 그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므로 물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첸도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려워했다. 결국, 대답을 안 하는데 그게 맞는다고 본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은 알 거로 생각했다. 그 질문이 미와 회장과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 같다.

Q. 전체적으로 조금은 불친절한 게 아닌가 싶다.
한채아 : 나도 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게 차가운 여자지만 감정 표현을 좀 더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좀 더 도움을 줄 수 있게. 인상만 조금 써도, 눈만 찡긋해도 감정에 동요가 되는 게 있는데 그런 조절을 보여줬으면 했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보면서 그걸 느꼈다. 조금 더 표현해줬으면 쉽게 이해하지 않았을까.

Q. 기존 작품과 연기하는 톤은 많이 달랐을 것 같다.
한채아 : 달랐다. 연기적인 부분에서 드라마 경우는 말을 해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화도 물론 표현하지만, 이번에는 말이 없는 역할을 했으니까. 그래서 연기는 외롭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 처음에 적응이 안 됐던 것 같다. 말을 해야 할 것 같고, 말을 안 하니까 할 게 없더라. 카메라를 돌아가고 있는데. (웃음) 그러다가 나중에는 말없이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게 재밌기도 했다.

Q. 엉뚱한 질문일 수 있는데 말이 없는 것과 말이 많은 것, 어떤 게 더 연기하기 편한가.
한채아 : 뭐든 적당히 있어야 한다. (웃음) 그런 장점은 있다. 대사가 없으면 내 감정에 조금 더 충실해지긴 한다. 대사가 많을 땐 대사 전달에 급급할 때가 있고, 쪽대본이 나오면 그거 외우기 바쁘다.

한채아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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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번 작품을 통해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겠다.
한채아 : 매 작품 하면서 배우면 배웠지 잃는 건 없다. 이번 작품 역시 감정 컨트롤이 가장 많이 도움됐던 부분이다. 1년 반 뒤에 다시 보니까 더 새록새록 하다.

Q. 이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는가.
한채아 : 받아들이기 나름인데, 그것만은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제목에 얽매여 중국산이 나쁘다, 쓰지 마라 등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메시지를 위한 소재일 뿐이다. 뭔가 선입견에 갇혀 사는 게 아닌가, 그걸 생각하시면 잘 전달될 것 같다.

Q. 필모에 영화는 많지 않다. 과거 인터뷰 보니까 유해진과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고 했던데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한채아 : 처음에는 드라마 기회가 많았고,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활동이 많아진 것 같다. 기회가 주어져서 영화도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유해진 선배랑 하면 좋을 것 같다. 미친년 캐릭터로. (웃음) 그동안 노멀한 연기를 많이 했다. 그래서 극단적이거나 강한 캐릭터를 보여줘도 재밌을 것 같다. 지금은 열어두고 있다. 아무래도 많이 열려 있는 부분은 드라마인데 영화도 계속 보고 있다.

황성운 기자 jabongdo@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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