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일 발매되는 서태지의 9집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의 수록곡 ‘나인티스 아이콘’에 신해철, 이승환, 김종서가 콜라보레이션을 협의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서태지 측은 “3명과 ‘나인티스 아이콘’ 협연을 두고 협의 중”이라며 “만약 협연을 하게 되더라도 이 곡이 앨범에는 실리지 않는다. 다른 방식으로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이들의 콜라보레이션이 성사된다면 1992년에 발표된 환경보호 콘서트 ‘내일은 늦으리’ 기념 앨범 이후 무려 20여년만의 공동 작업이 된다.

서태지, 신해철, 이승환, 김종서의 만남이 요즘 음악팬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궁금하다. 1992년에 열린 ‘내일은 늦으리’는 환경보호를 구호로 내세우고 서태지와 아이들, 넥스트, 신승훈, 이승환, 015B, 윤상, 신성우, 이덕진, 푸른하늘 등 당대의 스타들이 총출동한 전대미문의 대형 콘서트였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가 공동주최한 행사로 ‘드림콘서트’의 전신이기도 하다) 이 공연은 어마어마한 출연진으로 인해 당시 10대 여성 팬들 사이에서 엄청난 화제가 됐다. 성황리에 개최된 이 공연은 공동 주최사인 KBS를 통해 방송됐으며 비디오테이프로 제작돼 전국의 비디오대여점에 깔리기도 했다.

신해철이 작사 작곡 프로듀싱한 메인 테마 곡 ‘더 늦기 전에’는 굉장한 인기를 누렸다. 이 곡은 공연에 참여한 김종진, 신해철, 윤상, 유영석, 신성우, 김종서, 신승훈, 이승환,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 등이 한 소절씩 돌아가면서 노래했다. 이들은 당시 엄청난 팬덤을 거느린 아이돌 스타들이었다. 환경에 대한 심오한 가사와 진중한 멜로디가 어우러진 이 곡은 미국의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와 비교될 만큼 국내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대형 프로젝트였다. 노래 가사와 각 파트를 부른 가수는 다음과 같다.



생각해보면 힘들었던 지난 세월, 앞만을 보며 숨차게 달려 여기에 왔지(김종진)
가야할 길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이제 여기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네(신해철)
어린 시절엔 뛰놀던 정든 냇물은, 회색거품을 가득 싣고서 흘러가고(윤상)
공장 굴뚝에 자욱한 연기 속에서, 내일의 꿈이 흐린 하늘로 흩어지네(유영석)
하늘 끝까지 뻗은 회색 빌딩숲(신성우), 이것이 우리가 원한 전부인가(김태우)
그 누구가 미래를 약속하는가, 이젠 느껴야 하네(김종서)
더 늦기 전에(다같이)
그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서, 밤하늘을 바라볼 때에(신승훈)
하늘가득 반짝이는 별들을, 두 눈 속에 담게 해주오(이승환)

저 하늘에 총총히 박혀있던 우리의 별들을, 하나둘 헤아려 본지가 얼마나 됐는가
그 별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힘없이 꺼져가는 작은 별 하나
자 이제 우리가 할 일이 뭐라고 생각하나, 우리는 저 별마저 외면하고 떠나보내야만 하는가(내레이션 서태지)
– ‘더 늦기 전에’

오랜만에 이 공연 영상을 다시 본다. 낮은 음성으로 노래 첫 소절을 멋지게 부르는 김종진은 지금도 전태관과 함께 봄여름가을겨울로 활동 중이며 강단에 서며 후학을 양성 중이다. 넥스트의 멤버로 건반을 치며 노래하는 신해철, 그는 최근 솔로앨범을 냈으며, 영상 속에도 등장하는 정기송(기타), 이동규(베이스)와 넥스트를 재결성했다. 베이스를 연주하며 분위기 있는 음색을 뽐내는 윤상, 그는 한동안 잠잠했다가 최근 ‘꽃청춘’으로 다시 화제를 모으며 새 앨범 준비에 나섰다.

미성으로 노래하는 유영석은 ‘탑밴드’의 심사위원으로 나서기도 했다. 남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파트를 노래한 신성우는 최근 ‘룸메이트’에서 아이돌가수들의 큰 형님 역할을 했다. 날카로운 고음을 들려주는 김종서는 역시 최근에 신곡을 발표했고, ‘해피투게더’에 나와 서태지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기도 했다. 마이크 하나로 정답게 노래하는 신승훈과 이승환, 정말 친해 보이는 이 둘 역시 최근 새 앨범을 냈다. 이들 뒤에서 건반을 연주하는 정석원은 여전히 작곡가로 맹활약 중이다. 이들 사이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있다. 록밴드, 솔로가수, 싱어송라이터 사이의 유일한 댄스그룹인 것이다. 영상 속에서 서태지, 양현석, 이주노는 참 사이가 좋아 보인다. 이 ‘내일은 늦으리’ 멤버가 1992년 당시 가요차트 상위권을 점령한 이들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이돌그룹이 장악한 지금 가요계와 분위기가 참 많이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 가수들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 대단한 일이다. (지금 가수들 중 20년 뒤에도 활동할 이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이들이 예전에 ‘가요톱텐’ 상위권을 휩쓸었던 것처럼 현재 음원차트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 ‘소격동’ ‘크리스말로윈’을 내놓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던 서태지도 결국 후배들(양현석이 대표로 있는 YG의 악동뮤지션을 포함한)에게 1위를 내주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런 성적에 너무 연연하지 않았으면 한다. 뮤지션도, 팬도 말이다. 순위는 잊혀져도 음악은 남으리.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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