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정우성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늘 다양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 물론 대중에게 잘 전달된 것도, 그렇지 못한 것도 있지만, 어쨌든 정우성은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았다. ‘마담 뺑덕’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왜 이제야 새삼스럽게 노출”이냐고 정우성에게 묻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이미 데뷔 초기에 경험했던 것들이다. 단지 변화가 있다면, 오랜 경험이 겹겹이 쌓여 극 중 인물을 잘 표현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마담 뺑덕’은 분명 새롭다. 그 지점은 감정이다. ‘마담 뺑덕’의 심학규는 지금까지 정우성이 해보지 않았던 그런 감정을 품은 인물이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대중의 시선과 반응이 궁금했다. 심학규를 품은 정우성을 살짝 들여다봤다.

Q. ‘마담 뺑덕’은 고전 ‘심청전’을 비튼 치정멜로란 점에서 궁금증을 부른다. 직접 연기한 입장으로서 영화는 어떻게 봤나.
정우성 : 만드는 사람 입장으로선 ‘재밌다, 없다’가 아니라 얼마나 충실하게 전달했느냐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나의 최선이 잘 전달된 것 같아 안도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관객들과 만났을 때 어떤 케미가 일어나는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Q. 이번 작품은 앞서 개봉한 ‘감시자들’ ‘신의 한 수’ 등과는 분명 다른 기분일 것 같다.
정우성 : 어떤 감정적 화학작용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보이는 게 강한 캐릭터다.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그의 자세가 독특한 캐릭터이면서도 현실적이다. 영화를 보고 자극받을 수 있는 여지보다 보고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캐릭터다. 그 때문에 이게 어떻게 파생돼 관객과 소통할지 궁금하다.

Q.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학규는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했다. 그런데 계속 생각나서 결국 선택하게 됐는데, 어떤 점에 끌렸던 건가.
정우성 : 내가 봐도 ‘왜 이래’ 이런 느낌이었다. 여관방에 떡볶이, 순대 놓고 나오는데 ‘병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웃음). 근데 시나리오 자체가 매력 있고, 잘 비틀어 놓았다. 학규의 척추만 잘 세우면 굉장히 재밌는 스토리고, 재밌는 캐릭터들끼리의 충돌이 될 것 같았다. 또 개인으로는 여태껏 해보지 않았던 역할이다. 스스로 새로운 걸 발견하면서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전에 인터뷰할 때 흥행을 생각하고 선택한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이 있다고 했다. 그럼 ‘마담 뺑덕’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정우성 : ‘신의 한 수’ ‘감시자들’은 상업적 코드가 다분하다. ‘마담 뺑덕’은 그와 같은 상업적 코드를 바라고 한 건 아니다. 대신 본질적인 즐거움, 작업 과정 등이 클 것 같았다. 그런데 (흥행은) 모르는 거다. 앞서 말했듯, 케미가 잘 전달돼 터지기 시작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전혀 모른다.


Q. ‘심청전’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이는 곧 잘해도 본전이란 의미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그 어떤 작품보다 욕먹기도 아주 쉽기도 하고.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음에도 선택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어떤 자신감은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정우성 : 그게 장점으로 발동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뺑덕과 심학규의 전 상황을 상상으로 만든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모티브는 누구나 다 알기 때문에 인지도는 유리한 상황이다. 여기에 뺑덕과 학규이 사랑이 그럴싸하게 설정돼 있고, 재밌었다. 두 남녀 배우의 화학작용만 그럴싸하게 전달해주면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Q. 엉뚱한 생각이지만, 제목이 ‘마담 뺑덕’이어서 덕이를 중심으로 흐를 줄 알았다. 그런데 심학규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그럼 제목이 ‘심학규’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웃음)
정우성 : 그렇다고 ‘학규전’ 하면 이상하지 않나. (웃음) 많은 상상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다. 애초 화자는 청이였다.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화자는 좀 더 이 영화를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누군가가 되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결국, 학규의 내레이션으로 옮겨졌다.

Q. 심학규를 표현하는 데 있어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아. 모든 걸 새롭게 설정하고, 만들어야만 했으니까.
정우성 : 다양한 결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게 자기 에고가 강한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 욕구에 충실한 거고, 거기에서 합리화를 펼치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기애에 중점을 뒀다.

Q. 심학규가 시골에서 처음 덕이를 만났을 때, 그때의 감정이 궁금하다. 사랑 또는 호기심이라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선 욕구 욕정이 아닐까도 싶었다.
정우성 : 복합적이지 않을까. 우리의 행동을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본다. 그때 학규는 사랑이었다고 단순히 규정할 순 없을 것 같다. 풋풋한 여자가 다가오는데 귀엽기도 하고, 또 밀어내긴 싫고. 그러면서 호기심도 생기고, 욕정도 발동하고. 좋아하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을 거다. 이런 것들이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는 단초인데, 그 마음이 더 발전하기 전에 아마 학규는 부정했을 거다. 왜냐면 학규는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마침 적당한 타이밍에 복직됐고, 덕이를 멀리할 명확한 이유가 생긴 거다. 그런데 운명적인 사건이 생긴 거지. 아이를 가졌으니까. 그래서 본의 아니게 관계를 정리할 때 상처를 줘야 했던 거다. 그땐 엄청난 미안함, 죄책감 등이 있었을 거다. 어쩌면 그래서 덕이를 향한 그리움을 더 무시했을 수도 있다.

Q. 이렇게도 생각해 봤다. 학규는 대학교수고, 덕이는 시골에서 자란 어린 소녀다. 인적이 드문 놀이동산 매표소에서 일하는 덕이 입장에서 학규는 선망의 대상일 수도 있다. 덕이가 쉽게 학규한테 빠지는 것도 이런 이유이지 않을까.
정우성 :
처음 학규와 덕이가 만나는 장면에서 학규가 눈동자를 덕이에게 줬을 때, 이미 덕이는 학규에게 와 있었던 거다. 누가 누굴 꼬드기느냐에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런 화학작용으로 일어나는 치정이다. 덕이가 순수하다 보니까 겁 없이 다가오는데 그게 학규 입장에서는 도발적으로 느껴졌을 거다. 그리고 덕이는 학규와의 스킨십도 상상해 보지 않나. 그만큼 자기 마음에 충실할 수 있는 나이다. 하지만 학규는 충실하면 안 되는 나이고. 그런 입장의 차이가 있는 거다.


Q. 극 중 8년의 세월이 흐른다. 그런데 외형상 8년 전 심학규와 8년 후 심학규, 너무 똑같다. 자기 몸 관리를 그리 철저하게 하는 사람 같진 않아 보이던데, 조금은 늙게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웃음)
정우성 :
눈이 안 좋아지는 데도 운동하지 않나. 그런 여지를 둔거다. 그리고 기자분들도 나한테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라고 하지 않나. (웃음) 학규를 위해 운동은 하지 않았고, 촬영 내내 운동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운동하지 않으면 오히려 근육양이 줄어들면서 몸이 슬림해진다. 초반의 학규와 후반의 학규는 그런 차이도 있다. 그리고 술만 먹으면 살 안 찐다. 학규는 노상 술이지 않나. (웃음)

Q. ‘마담 뺑덕’에서 가장 큰 관심 중 하나는 베드신이다. 다른 걸 다 떠나 일단 공개되면 ‘노출’에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정우성 :
그런 생각을 개입시키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이 개입되다 보면 샷의 구성이 한정되고, 대역을 쓰게 되고, 타협에 들어가는 거다. 그런 (외부적인) 것을 개입시키고 싶지 않았다. 온전히 두 남녀의 관계 속으로 (대중을) 들어오게 한 다음, 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거다. 그런데 뭔가 개입될 때는 그 신의 본질적인 느낌을 받아서 넘어가는 게 아니라 뭔가 보고 넘어가는 느낌이 든다. 이미 그렇게 보이게끔 찍었으니까 당연한 거다. 그래서 그런 생각과 결부하지 않았고, 감안도 안 했다. 더 치열하게 했고, 대담하게 했다. 어떤 샷의 개입 없이 온전히 행위를 담아내 관객들이 안으로 들어와서 그 행위를 느끼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

Q. 나이도 한참 어리고, 연기 경험도 많지 않은 여배우와 베드신을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만큼 더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을 것 같고.
정우성 :
솜이는 캐릭터를 온전히 표현하기만으로도 어렵고 부담이다. 거기에 베드신까지. 본질적 고민 말고, 다른 외부적 고민을 많이 차단해주려고 노력했다. 본질을 뚫고 나가지 않으면 관객들이 눈치챈다. 그랬을 때 욕을 먹고, 베드신이 보여주기에 그친다. 그렇게 만들어지면 평가받을 수 없는 신이 된다. 노출됐을 때 이미지가 어떻게 돌아올지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많았겠냐. 스트레스도 많았을 거고. 더욱더 현장에서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게끔 해줬다. 베드신 촬영 전에는 안절부절못하더라. 그럴 때는 세트장 밖으로 데려나가서 산책하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든든한 동료 선배, 남자 파트너이고 싶었다.

Q. 결말 부분은 조금 아쉽다. 어차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고, 치정멜로로 변화시켰는데 굳이 ‘심청전’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올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청이와 아버지의 관계도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았는데 말이다.
정우성 :
 ‘우리 아빠, 우리 아빠’ 할 정도도 아니고, 심지어 질투까지 한다. 세정이란 이름으로 옆에 있는 덕이와 약간의 동성애 코드도 있었다. 편집하면서 빠진 부분이다. 고통스러운 부분이었는데 그런 것들을 다 넣으니까 몰입도가 산만해졌다. 지금 청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스 중에서 매력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학규는 눈을 뜨고 나서 굉장히 험한 꼴을 보는 거다. 결코, 행복해진 게 아니다. 진짜 사랑을 다 주지 못했으니까 가뜩이나 미안한데, 나 때문에 험한 꼴을 당했다. 또 복수를 위해 원치도 않는 사람과 잠자리를 하는데, 보는 것 이상으로 괴로움을 주기 위해 그런 행위를 하는 덕이의 모습을 고스란히 알고 있는 학규다. 그녀의 인생 자체가 학규로 인해 그렇게 된 거다. 그런 덕이를 보는 건 엄청난 고통이다.


Q. 다른 작품보다 정신적 피로도는 확실히 더 많았겠다.
정우성 :
촬영을 하고 나서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계속해서 학규의 무드에 있으니까. 아직도 영화 보고, 음악 듣고 그러면 잔향이 남아 있다. 인터뷰할 때도 그 잔향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피로도 보다 그 무드가 남아 있다.

Q. 기존에는 작품이나 캐릭터에서 빨리 나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조금 의외다.
정우성 :
어떻게 보면, 그만큼 심리적으로 학규를 이해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런 잔향,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깊은 감정을 끌어내는 거니까. 덕이가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베드신을 하는데, 그런 복수를 하게끔 한 원죄를 저질렀다. 그런 깊은 괴로움, 그런 것들이 느껴져서 그런 것 같다.

Q. 이런 변화된 모습에 만족도도 높겠다.
정우성 :
변화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어릴 적부터 과감했고, 한 이미지에 고착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전에는 캐릭터를 완성하는 데 있어 미진한 실력, 경험 등의 이유로 잘 전달이 안 된 것 같다. 이번에는 경력을 통해 습득한 노하우나 표현 방식 등이 학규를 통해 잘 표현된 것 같아 그 부분에서는 만족한다. 노출에 대한 겁도 없었다. 영화 속 캐릭터이지, 내가 아니란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다. ‘본투킬’, ‘모텔선인장’ 등에서도 노출이 있었다. 왜 이 나이 때 새삼스럽게 (노출이냐) 말하는데 나한테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맞다. ‘본투킬’ ‘모텔선인장’에서의 장면이 또렷이 기억난다. (웃음))

Q. ‘마담 뺑덕’은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정우성은 한순간에 불타는 사랑을 하는 편인가, 아니면 느긋한 사랑을 하는 편인가.
정우성 :
둘 다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사랑을 시작하면 불타고 갈구하죠. ‘보고 싶다’고 끊임없이 괴롭히고.

Q. 그럼 정우성이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인가.
정우성 :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그리고 나를 온전히 주는 거다. 안 좋은 것을 배제하고, 좋은 것만 받아들이려고 하는 건 온전한 사랑이 아닌 것 같다. 누구나 상대에게 안 좋은 면은 있을 수 있을 테니까.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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