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 보름 전, 명나라에서 받아온 조선의 국새를 고래가 삼키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난다. 이에 여월(손예진)을 중심으로 한 해적단, 장사정(김남길)의 산적단 그리고 소마(이경영)와 관군들까지 각기 다른 이유로 국새를 삼킨 고래를 잡기 위해 바다로 향한다. 이들의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 좌충우돌 고래잡기가 시작된다. 12세 관람가.

정시우: 아마도 숨은 제목은 ‘산적: 산으로 간 해적, 유해진’ ∥ 관람지수 6


이석훈 감독은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이 뚜껑을 열면 손예진의 액션연기와 김남길의 연기변신에 놀라게 될 거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해적’에서 진짜 눈에 띄는 것은 ‘산으로 간 해적’ 유해진의 코믹연기다. 영화에서 유해진이 선사하는 유머의 양은 압도적이고, 그 웃음타율이 높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해적에서 산적으로 이탈하는 철봉으로 분한 유해진은 그동안 선보였던 코믹연기를 총망라라도 하겠다는 듯 작정하고 웃긴다. 슬랩스틱에 의존하는 유해진의 코믹 연기가 식상하다 여길 관객도 있겠지만, 슬랩스틱만큼 한국 관객들에게 쉽게 소구되는 무기도 사실 드물다.

유해진의 유머는 ‘해적’의 가장 큰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다. 영화는 유머에 지나치게 천착하면서 해양어드벤처영화라는 태생적 장점을 스스로 상쇄시킨다. ‘한국에서도 드디어 본격 어드벤처물을 만들었구나’ 싶어 기대를 품고 갔는데, 막상 나온 것은 익숙한 패턴의 전형적인 한국산 코미디물인 느낌이다. 공중에 설치된 나무 수로를 가로지르는 ‘워터 슬라이딩’과 같은 해양영화 특유의 모험담이 조금 더 나왔다면 보다 신났을 뻔했다. 자그마치 160억~170억원이나 들인 영화에서 가장 튀는 것이 코미디라는 점은 효율성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니까.

‘해적’의 동력 중 하나는 상상력이다. 해적과 산적과 조선수군이 옥새를 삼킨 고래를 찾으러 바다로 간다는 설정이 꽤나 재기발랄하다. 그래서다. 이성계와 실제 역사를 중간 중간 들여놓은 선택에 의문이 남는 것은.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를 끌어와 어떤 카타르시스를 전달하려 한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얄팍한 교훈극에 그치고 말았다. 아무리 12세 관람가 영화라고 해도, 심했다. 정통사극 ‘정도전’이 나온 마당에 관객의 수준을 얕잡아 본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전작 ‘댄싱퀸’에서 대중과의 눈 맞추기에 성공한 이석훈 감독은 관객이 어떠한 영화에 환호하는지를 잘 간파하고 있다. 만듦새에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의 기획력마저 평가 절하할 생각은 없다. 러닝타임 내내 밝고 가볍고, 복잡한 전개 따위 없는 ‘해적’은 가족단위 관객들이 즐기기에 이물감이 없는 영화다. 극장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명량’ 바로 뒤에 출항했다는 점이 우려스럽기는 하나, 완전히 정반대의 색을 지닌 영화라는 점에서 잘만 활용하면 이득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국형 해양어드벤처영화의 가능성은 다시 재도전의 영역으로 남았지만, 오락 영화로서 스스로가 내건 약속은 이행해 낸 작품이 아닐까 싶다.

2eyes① ‘해적’, 웃고 즐기자 한다면 굉장히 만족스럽다, 보러가기

글. 정시우 siwoorain@tenaisa.co.kr
사진. 영화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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