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는 게 좋아 다치기 전에 / 아무리 달려 봐도 결국엔 그 자리에 / 자주 니 옷을 벗겨 미안 / 당연한 것처럼 네 곁에 눕긴 싫어 / 던져봐 질러봐 느껴봐 자신을 즐겨봐 네 멋대로 / 니가 나를 존재하게 만든 신 인 줄 알았어 / 지구가 태양을 네 번 감싸 안는 동안 / 일만 하는 나와 얻지 못한 나의 고단한 지금 / 세상 밖으로 오래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 간장콩장콩장장 equals 간 콩장장 / 난 별 넌 별 먼 별 빛나는 별 / 사랑은 가고 추억은 슬퍼 블루스에 나는 운다 / 시간이 지날수록 통제는 힘들어져 / 이 노래를 듣는다면 나에게로 와주오 / 조그만 가시내들이 모여서 노랠 부르면 / 넌 진정 나를 몰라주고 말았어 / 누군가 바리고 떠나간 언덕에 우린 또 이렇게 바려진 떠돌이 / 살던 대로 하던 대로 지가 하고 싶은 대로

‘텐아시아’에서는 매주 ‘요주의 10음반’을 선정해 기사를 싣고 있다. 매 기사의 제목으로 쓰인 노래 가사를 이어붙이니 위와 같다. 지난 1월 6일부터 6월 29일까지 총 18번의 기사를 통해 상반기에만 180장의 앨범을 소개했다. 그 중 결산과 함께 30장의 국내앨범을 골라봤다.

이소라 ‘8’
이소라의 순도 높은 록 음반. 이소라가 앨범에서 록을 시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며 라디오를 진행할 때 록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곤 했다. 처음 이 앨범을 들었을 때는 ‘이소라가 노래하는 김바다 앨범’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 ‘이소라가 록을 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했냐’라는 것일 진데, 이 앨범에서 이소라는 가수가 아닌 ‘이소라 밴드’의 보컬리스트인 것처럼 뚜렷한 스타일의 록을 들려주고 있다. 이전 곡들이 단순히 록 세션 위로 이소라의 목소리를 얹은 정도였다면 ‘8’은 마치 자기 색이 뚜렷한 록밴드처럼 심지가 단단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이소라 솔로앨범이 아닌 이소라(보컬)-임헌일(기타)-정재일(베이스)-이상민(드럼)-정지찬(건반)의 5인조 록밴드의 앨범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말이다. 가수로써 록을 시도하는 것과, 밴드의 보컬리스트로써 록을 시도하는 것은 천차만별의 결과를 가져온다. 록은 본래 연주자들의 진정한 화학작용을 수반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소라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동료들의 기다림(이한철, 정준일은 2009년에 곡을 주고 오랜 시간 곡의 편곡이 바뀌는 것을 지켜봤다고)과, 믿음, 우정이 가능케 한 이 앨범의 울림은 이소라가 이전에 불러왔던 노래들 이상으로 상당하다. 특히 ‘나 Focus’에서 이소라가 소화해내는 록 특유의 드라마틱한 사운드와 멜로디는 단연 압권.

이규호 ‘Spade One’
이규호가 1999년 1집 ‘얼터에고(Alterego)’ 이후 15년 만에 발표한 2집. 참 많은 이들이 기다렸다. 한때 라디오에 자주 흘렀던 ‘내일도 만날래?’ ‘머리 끝 물기’를 좋아했던 팬들도 이규호를 기다렸겠지만, 참 많은 동료 뮤지션들이 이규호의 ‘재림’을 고대했다. 이승환, 고찬용, 윤영배, 이한철, 정준일 등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가장 컴백을 기대하는 동료로 이규호를 첫 손에 꼽곤 하더라. 1993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규호는 조동진, 조동익의 하나음악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장필순, 한동준, 이승환, 유희열, 윤종신, 이소라, 박정현 등의 앨범에 참여해 수려한 음악성을 뽐냈다. 이규호는 재작년 음악페스티벌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 출연하며 오랜만에 팬들 앞에 나섰다. 이제 경력으로만 보면 중견 측에 속하지만 그의 목소리와 외모는 여전히 소년처럼 순수해보였다. 이번 앨범 ‘스페이드 원(Spade One)’은 음악적 성숙함과 소년의 순수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야누스와 같은 앨범이다. 오랜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는 자신을 자축하는 듯한 첫 곡 ‘세상 밖으로’에서 사운드의 치밀함과 ‘반가워요’라고 말하는 가사(‘신나게 신나게’가 가녀리게 이어져 여운을 남기는) 수줍은 가사가 이규호답다. ‘없었다’에서 베이스와 신디사이저로 만드는 미니멀한 사운드는 그야말로 압권. ‘바이러스’는 이규호 나름의 불만을 드러낸 곡일까? 이규호의 음악동료들이 노래로 참가한 ‘보물섬’을 들으면 그 목소리들이 너무 순수해 미소가 흐르다 감탄사가 이어지고, 결국 감동이 남는다. 이규호는 이제 더 많은 대중 앞에 나설 때다.

할로우 잰 ‘Day Off’
무려 8년 만의 새 앨범이다.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숨은 고수 출신인 할로우 잰은 2006년 첫 정규앨범 ‘러프 드래프트 인 프로그레스(Rough Draft In Progress)’를 발표하고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록 음반’을 수상했다. 이후 반 해체 상태였던 할로우 잰은 2011년 열린 라이브클럽 ‘쌤’의 마지막 공연 ‘20002011’을 위해 일시적으로 재결성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다시 모인 멤버들은 정규 2집 ‘데이 오프(Day Off)’를 내기에 이른다. 지난 3월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에서도 할로우 잰은 출중한 무대를 선보였다. 특히 훌륭한 밴드 사운드를 뽑아내며 현지인들에게 앵콜을 받기도 했다. 할로우 잰은 처음 등장했을 때 ‘하드코어’(미국 뉴 메탈이 잘못 사용된 용어)라는 장르로 이야기되기도 했지만, 사실 이들은 어떤 장르에 넣기 애매한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있다. 헤비한 사운드 위로 처절한 멜로디가 얹어져 있어 ‘울면서 달리는’ 느낌이랄까? 묵직함이 몸을 울리고 멜로디가 가슴을 적신다. 죽음을 소재로 한 8곡이 담겼는데 러닝타임이 무려 70분에 육박할 정도로 긴 곡들이 담겼다. 기타 아르페지오와 샤우팅으로 비장함을 전하는 트랙도 있으며 음향 효과를 통해 앰비언트 적인 느낌을 주는 트랙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각각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하나의 드라마를 지니고 있다는 것. ‘한편의 영화’가 아닌 8개의 단편을 이어 감상하는 느낌이다.

이승환 ‘Fall to Fly 前’
이승환의 음반은 다른 아티스트가 아닌 이승환 본인의 디스코그래피에 비추어 판단해 봐야 할 것이다. 이승환만큼 앨범의 완성도, 특히 사운드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거기에 엄청난 물량을 투자하는 아티스트는 드물기 때문이다. 이승환은 3집까지 가수로써 입지를 다지고, 4집부터 대작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는 10집까지 이어졌다.(물론 이것이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승환 역시 중견가수의 음원차트 열세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니까) 11집 역시 풍성하다. 스타일적인 면으로는 기존 이승환의 음악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고 있다. 일단 전작들에 비해 피처링 아티스트가 많다. 재미있는 것은 ‘내게만 일어나는 일’ 정도를 빼놓고는 피처링 아티스트의 특징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처링은 거들뿐, 이승환은 본인의 노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너에게만 반응해’는 이승환 특유의 달달함이 잘 살아있는 곡이고,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에는 대곡 지향적 면모가 드러난다. 세계적인 연주자가 참여시킨 의욕은 당연히 양질의 사운드로 이어지고 있다. 가령 섹스 전야를 노래한 ‘어른이 아니네’ 또는 ‘스타 워즈(Star Wars)’에서의 사운드 이스케이프, 기타 톤 등만 봐도 여타 가요앨범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물론 이러한 음악적 노력이 음원차트 성적으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잘 만들면 잘 팔리는 시대는 이미 오래 전이다.

김바다 ‘Moonage Dream’
록 보컬리스트 김바다도 이제 어느덧 데뷔 20년을 맞이했다. 그를 세상에 알린 시나위 외에도 나비효과, 아트 오브 파티스, 레이시오스 등 여러 밴드를 했다. 김바다의 자신의 다양한 음악적 취향만큼이나 변화무쌍한 음악을 들려줘왔다. 나비효과 1집에서 모던록 ‘첫사랑’을 히트시키더니, 2집에서는 갑자기 일렉트로니카를 시도해 주위를 당황시켰다. 이후에도 김바다는 아트 오브 파티스, 레이시오스 등을 통해 국내에 생경했던 록, 일렉트로 팝, 트립 합 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얼리아답터, 그리고 잡식 성향은 김바다에게 ‘김바다 식 멜로디, 김바다 식 사운드’라는 선물을 안겨줬다. 단순한 록 보컬리스트를 뛰어넘어 자신의 사운드를 디자인하고, 거기서 김바다의 어법을 뽑아내는 아티스트가 된 것이다. 생애 첫 솔로 정규앨범인 ‘문에이지 드림’(김바다가 존경하는 데이빗 보위의 곡 ‘문에이지 데이드림(Moonage Daydream)’에서 제목을 따옴)에는 김바다가 추구해온 여러 장르의 음악이 총망라돼 있다. 다양한 스타일을 자신의 음악으로 역량은 김바다가 멜로디 메이커를 넘어 사운드 메이커임을 잘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이기적인 너’와 같이 일렉트로니카가 가미된 록 사운드에 몽환적인 멜로디의 반전이 오는 곡이 지금의 김바다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 아닌가 생각된다.

악동뮤지션 ‘PLAY’
‘K팝스타’ 출신인 악동뮤지션이 YG엔터테인먼트로 간다고 했을 때 사실 좀 의아했다. YG는 힙합 계열의 레이블이 아니던가? 악동뮤지션은 기본적으로 어쿠스틱 팝에 기반을 둔 듀오이기에 이들이 YG라는 회사를 통해 어떤 결과물을 낼지 궁금했다. 음반을 들어보면 YG가 이찬혁이 만든 자작곡들의 개성을 잘 살려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악동뮤지션은 투개월과 버스커버스커의 장점을 고루 지니고 있다. 통기타를 기본으로 두고 투개월처럼 어반(urban)한 느낌부터 버스커버스커처럼 풋풋한 감성을 동시에 표현이 가능한 팀이다. 즉, ‘200%’처럼 달콤한 R&B 풍의 곡부터 ‘지하철에서’처럼 차분한 포크풍의 곡까지 자연스럽게 소화한다.(우연히도 이 두 가지 중 하나는 주류 가요계에서, 다른 하나는 인디 계열에서 잘 팔리는 트렌드이기도 하다) ‘플레이(PLAY)’에 담긴 곡들은 악동뮤지션이 통기타 한 대로 만들었을 법한 노래에 적절한 세션이 첨가돼 세련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하지만 YG이기 때문인지 ‘가르마’ ‘안녕’ 등 전반적으로 흑인음악 풍의 편곡이 느껴지기도 한다. ‘길이나’ ‘갤럭시’에서는 악동뮤지션 특유의 톡톡 튀는 센스가 잘 드러난다.


쏜애플 ‘이상기후’

지금 인디 신에서 가장 매혹적인 음악을 들려주는 밴드는 바로 쏜애플이다. 해피로봇레코드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1집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를 통해 실력과 스타성을 인정받았고, Mnet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 ‘밴드의 시대’에서는 방송에서 주눅 들지 않는 강단과 나름 편곡 센스도 발휘해 보였다. 4년 만의 신작이자 정규 2집 ‘이상기후’는 생존을 주제로 한 콘셉트 앨범이라고 한다. 각각의 곡들은 ‘남극’ ‘암실’ ‘피난’ ‘백치’ 등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에서 묘하게 이어진다. 거꾸로 말하면 멜로디의 형상화라고 할까. 타이틀곡 ‘낯선 열대’를 비롯해 ‘살아있는 너의 밤’ ‘아지랑이’와 같은 곡들은 쏜애플에게 마음을 빼앗긴 여성 팬들에게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신인일 당시에도 워낙에 자신들의 색이 뚜렷한 팀이었는데, 이번 앨범을 통해서는 신인의 티를 벗음과 동시에 자신들의 색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윤성현의 보컬도 강점이지만, 밴드의 사운드 메이킹도 뛰어나다. 스타일이 너무 일관적이지 않나 하는 우려도 있지만, 밴드의 선택이라 믿어본다. 이제 스타성 면에서 ‘넬’의 뒤를 이을만한 팀이 바로 쏜애플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신해철 ‘Reboot Myself Part. 1’
많은 이들이 고대해온 신해철의 새 앨범이다. 처음 원맨 아카펠라 곡 ‘아따(A.D.D.a)’를 들었을 때는 신해철의 컴백 곡 치곤 조금 가볍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반복해서 들어보니 곡의 중량감이 단단하게 느껴졌다. 신해철에게 직접 이 곡을 만들기까지의 일련의 과정(기사를 참조하도록)을 들어보니 그 완벽주의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소수의 작곡가가 다수의 히트곡을 찍어내듯 만드는 요즘 세태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곡이더라. 앨범 제목 ‘리부트 마이셀프’는 ‘재즈카페’가 들어있던 솔로 2집 ‘마이셀프’의 연장선이다. 이 말인즉슨 신해철 나름대로는 대중성을 생각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앨범이 대중성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올시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 ‘프린세스 메이커’(Princess maker)’은 신해철 나름대로 펑키한 R&B에 접근한 곡들인데 요새 트렌드와는 별 상관이 없는 복고풍의 곡들이다. 신해철 팬이라면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듣고 ‘도시인’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이처럼 신해철의 색은 새 앨범에서 단단히 박혀있다. (하긴 그처럼 자기 색이 뚜렷한 아티스트도 드물긴 하다) 타이틀곡 ‘단 하나의 약속’은 아내와 연애를 시작할 때 처음 만들어 15년을 다듬은 곡이라고 하는데 드라마틱한 멜로디와 진행이 역시 그답다. 이 곡 말미에는 넥스트의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Here I Stand For You)’의 내레이션이 이어지는데, 이는 ‘어서 나타나줘’의 주인공이 지금의 아내였다는 자기 고백인가?

소녀시대 ‘Mr.Mr.’
이제 사람들은 소녀시대에게서 ‘첨단의 것’을 원한다. SM엔터테인먼트와 소녀시대로써도 이에 대한 강박이 있지 않을까? 신보에서는 그런 강박을 조금 털어버린 듯하다. 타이틀곡 ‘미스터미스터’는 ‘아이 갓 어 보이’처럼 파격적인 구성을 가지지 않는다. 이 곡의 최대 강점은 멜로디다. 최근의 소녀시대 타이틀곡들은 SM의 기조에 따라 무대를 유념하고 꾸려지다보니 귀에 꽂히는 키 멜로디보다는 드라마틱한 구성에 방점을 뒀지만 ‘미스터미스터’는 노래를 쉽게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멜로디가 강하다. 나머지 곡들 역시 수려한 멜로디, 사운드를 지닌 출중한 팝 넘버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SM의 기조에 어울리는 곡들이랄까? 기존의 소녀시대 앨범에서 만날 수 있었던 ‘세련된 사운드+접근하기 쉬운 멜로디+복고풍’의 어법을 따르고 있는데 1990년대 영미 팝을 듣는 느낌이 든다. 이처럼 첨단의 스타일을 쫓기보다 친숙함을 택한 것은 어쩌면 8년차 걸그룹의 미덕이라 할 수 있겠다. 파격이 없다고 해서 놀랍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굿바이’ ‘유로파’와 같은 곡들은 여전히 차별화된 사운드와 멜로디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귀에 단숨에 쏙 들어올 정도로 듣기 좋은 팝 앨범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

2NE1 ‘Crush’
데뷔 6년차에 내놓는 정규 2집. 음악적으로 보자면 힙합, R&B에 기반을 둔 투애니원(2NE1)의 음악적 색이 신보에서 더욱 확장된 모습을 보인다. 세계적인 무대 연출가 트레비스 페인은 “투애니원과 작업을 하면서 엔 보그가 연상됐다. 강렬한 음악 스타일부터 멤버들끼리 의리가 있는 것까지 닮았다. 멤버들이 독특한 재능을 가진 것은 TLC와 같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투애니원은 이들 걸그룹처럼 흑인음악의 트렌드를 발전시킨 음악을 들려줘왔다. 신보에서는 리더 씨엘이 작사 작곡에 참여한 점이 눈에 띄는데, 이는 엄밀히 말해 씨엘이 곡을 만들었다기보다 테디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YG 프로덕션팀에 가담했다고 말하는 것이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씨엘이 참여한 곡들은 투애니원, 그리고 같은 소속사 보이그룹인 빅뱅의 스타일에서 이어지고 있다.(‘멘붕’이 탑의 노래처럼 들리는 것이 재밌다) 씨엘이 작사 작곡에 참여한 ‘크러쉬(Crush)’는 기존의 ‘내가 제일 잘 나가’의 어법을 이어가는 곡. 타이틀곡 ‘컴백홈’은 투애니원이 간간히 선보였던 레게리듬에 훅이 있는 멜로디, 그리고 강렬한 트랩(trap)의 사운드가 적절히 버무려져 있다. 멤버들의 성장이 들리는 부분은 ‘살아봤으면 해’ ‘착한 여자’와 같은 발라드 곡, 그리고 ‘해피(Happy)’ ‘베이비 아이 미스 유(Baby I Miss You)’처럼 멜로디가 뚜렷한 곡들이다. 투애니원은 이제 감칠맛까지는 아니지만, 꽤 곡의 맛을 살리는 보컬을 들려준다.

솔루션스 ‘MOVEMENTS’
박솔(보컬)과 나루(기타, 프로그래밍)의 듀오 솔루션스는 2012년에 데뷔앨범 ‘솔루션스(Solutions)’를 통해 그해 최고의 신인으로 떠올랐다. 신인답지 않은 깔끔하고 스타일리시한 사운드 메이킹에 해외 록 트렌드를 충실히 재현한 솔루션스는 여성 팬들에게도 어필하며 나름 승승장구했다. 대개 트렌드를 쫓다보면 음악이 몰개성적이 되거나 가벼워지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솔루션스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다. 새로운 시대의 ‘록 스타’라고 할까? 정규 2집 ‘무브먼츠(MOVEMENTS)’에서는 기타를 중심으로 한 록과 신디사이저를 통한 일렉트로 팝이 적당히 접붙이기된 음악이 담겼다. 솔루션스 측은 “2집의 모든 핵심은 앨범 제목에 있다. 곡 작업을 하면서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고 듣는 이도 무의식 속에 억눌린 여러 감정들에서 해방되었으면 했다”고 밝혔다. 아마도 솔루션스의 팬들이라면 이 음악을 듣고 몸이 붕붕 떠오르는 느낌을 받을 지도 모르겠다. 완성도도 출중하다. 감각적인 일렉트로 팝 ‘무브먼츠’를 비롯해 ‘캔트 웨이트(Can’t Wait)’는 공연장에서 팬들을 춤추게 할 트랙이라면 ‘마이 워(My War)’는 감성을 자극할 줄 아는 솔루션스가 센스가 잘 나타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들의 지향점이 가요가 아닌 팝임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앨범.

줄리아 하트 ‘인디 달링을 찾아서’
줄리아 하트가 7년 만에 발매하는 새 앨범으로 정규 5집. 앨범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인디의 달링을 찾다니. 실제로 이 앨범을 만든 줄리아 하트의 리더 정바비는 언니네 이발관을 시작으로 가을방학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인디 신에 순정을 바쳐온 남자라 할 수 있겠다. 최근 ‘인디’라는 단어의 정의에 대해 논란도 있지만(그 논란의 이면에는 한국 대중음악 신의 특수성이 자리하고 있다) 정바비의 음악 여정이 이 땅의 인디 신의 한 단면으로 보여준다 해도 과언은 아닐 터. 가을방학이 정바비의 온유한 면, 바비빌이 조금은 질펀한 면을 보여줬다면, 줄리아 하트는 정바비의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바비는 앨범 소개 글을 통해 “인디 달링이 실제로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저 혼자만의 방식으로 좋아했으며 이 역시 인디 달링이란 말이 ‘독립적인 애정의 대상’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어떤 스타일에 국한되기보다는 정바비의 지극히 개인적인 앨범이 아닌가 한다. 이 앨범의 가사들은 어떤 것들은 르포와 같고, 어떤 것들은 수필과 같다. 그리고 기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멜로디들은 그야말로 꿈결 같다. 심연을 둥둥 떠오르게 하는 음악들.

파블로프 ‘26’
‘강북사운드’를 표방한 파블로프의 앨범. 강북사운드가 뭘까? ‘강남스타일’은 유명하지만, 딱히 ‘강남사운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파블로프 측은 보도자료를 무려 네 종류로 보내왔는데(이런 건 처음 봤다), 이를 읽어보면 ‘강북사운드라’는 것은 복잡다단한 상황에 놓은 한국의 록 신(scene)을 지칭하는 것 같다. 암튼 도통 감이 오지 않아 음반을 들어봤다. 파블로프는 87년생 고교 동창들로 이루어진 4인조 밴드로 음악 외에 북한 펑크 리성웅 전시, 마석가구단지 외국인근로자 페스티벌 등 이색적인 기획에도 참여해왔다. 첫 정규앨범인 ‘26’에는 최근 인디 신에서 나오고 있는 다양한 록 스타일이 뒤섞여 있다. 앨범속지에는 각각의 트랙이 임재범 ‘너를 위해’, 샌드페블즈 ‘나 어떡해’, H.O.T ‘캔디’, 신촌 블루스 ‘골목길’, 산울림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등에 영감을 받았다고 표시돼 있는데, 곡들을 들어보면 별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 (한국 고전 록들의 요소가 다분하긴 하지만) ‘재즈의 모든 것’이란 노래가 재즈와 아무 관계가 없듯이 말이다. 파블로프의 음악에 담긴 청춘의 에너지가 담겼다는 것은 진짜.

넬 ‘Newton’s Apple’
록밴드 넬의 정규 6집이자 중력을 주제로 한 3부작인 ‘그래비티 트릴로지(Gravity Trilogy)’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완결 작이다. 넬은 한국에서 ‘록 스타’라는 단어를 써도 민망하지 않은 정말 몇 안 되는 팀 중 하나다. 국내에 넬만큼 강한 팬덤을 가진 록밴드가 또 있을까? 록이 마니아음악 취급을 받는 이 땅에서 넬의 인기는 신기할 정도다. 물론 이러한 인기에는 넬의 음악 스타일이 대중적인 축에 드는 것도 한 몫 할 것이다. 이 대중성에 대해 김종완은 “대중성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마음을 잃다’라는 곡을 만들었을 때 멜로디, 리듬, 코드가 대중성의 끝을 달리는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그 이후로 대중성은 생각 안 한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넬은 새 앨범에서 대중성보다는 밴드 사운드, 그리고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음악에 신경을 쓴 모습이다. 타이틀곡 ‘지구가 태양을 네 번’은 밴드의 사운드가 강조된 대표적인 곡이다. 드럼이 엇박자로 나가고 일정한 피아노 리프가 반복되면서 서서히 멜로디가 귀에 각인이 되는 곡이다. 기존의 타이틀곡들처럼 김종완의 호소력 짙은 보컬이 중심이 아닌 밴드의 전체적인 사운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이밖에 넬은 여백을 살린 미니멀한 사운드부터 일렉트로 팝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최근작들에서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던 넬의 음악이 이번 앨범에서 비로소 하나의 스타일로 수렴된 것으로 보인다.

김추자 ‘It’s Not Too Late’
우리는 김추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김추자의 현역 시절을 실시간으로 보진 않았다손 쳐도 ‘무인도’ ‘거짓말이야’ ‘님은 먼 곳에’ 등의 감동은 지금 들어도 익히 알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 곡들이 지금도 생명력을 지니는 이유는 바로 비교 대상이 없는 김추자의 목소리 때문이 아닐까? 33년만의 컴백 앨범에서 김추자는 공백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왕년의 호쾌한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마치 홀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처럼 말이다. 과연 이것이 예순네 살의 목소리인가? 김추자는 최근의 트렌드를 받아들이기보다 과거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의 전통적인 느낌을 따르고 있으며 녹음에 있어서 원초적인 느낌이 잘 살아있다. 가령 ‘몰라주고 말았어’ ‘고독한 마음’ ‘가버린 사람아’ ‘태양의 빛’ ‘내 곁에 있듯이’(이상 신중현 곡)는 신중현의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연상케 할 만큼 예스러운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와 함께 이봉조의 곡인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소’, 김희갑의 ‘그대는 나를’, 정혜정이 만든 ‘춘천의 하늘’도 완연한 옛 가요의 느낌이다. 김추자의 그루브를 타는 리듬감, 목소리의 아우라는 명불허전. 국내 최고의 연주자들인 송홍섭, 한상원, 정원영, 배수연 등이 만들어낸 밴드 사운드는 한국 고전 록의 미감을 잘 살렸다.

바버렛츠 ‘바버렛츠 소곡집 #1’
작년 여름 바버렛츠(안신애, 김은혜, 박소희)의 공연을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다. 50~60년 미국에서나 볼 수 있었던 3인조 여성 보컬그룹들인 슈프림스, 로넷츠 또는 한국의 김시스터즈와 같은 예스러운 편성을 너무나 맛깔나게 소화해냈기 때문이다. 마이크 한 대를 가운데 놓고 노래하는 편성 외에 의상, 헤어스타일까지 옛 스타일을 표방한 제대로 된 두왑 그룹이었다. 세 명의 목소리가 한 대의 마이크를 통해 흐르는 하모니도 좋았지만, 익살스런 표정도 일품이더라. 그날 공연에 이효리도 나왔는데, 공연장을 나설 때는 바버렛츠만 가슴에 남았다. 이후 약 1년 사이에 바버렛츠는 입소문만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실력 때문이다. 첫 정규앨범에서는 바버렛츠가 라이브에서 보여줬던 고전적인 두왑 풍의 곡들이 그대로 담겼다. 팀의 주제가라 할 수 있는 ‘가시내들’부터 ‘미세스 론니(Mrs. Lonely)’까지 마치 50년대에 모타운에서 나온 앨범을 듣는 기분이다. 김시스터즈의 커버한 ‘봄맞이’는 녹음 스타일까지도 옛 가요의 정취를 자아낸다. 세 명의 화음이 출중하지만 거의 전곡을 만들고 편곡까지 해낸 팀의 안신애의 센스도 눈여겨볼만하다. 특히 ‘사랑의 마음’과 같은 곡에서 말이다.

크러쉬 ‘Crush on You’
최근 가요계 주요 움직임 중 하나는 R&B 싱어송라이터들의 급부상이다. 정기고, 크러쉬, 자이언티, 진보, 범키, 계범주 등 소울(R&B) 음악 계열의 뮤지션들이 그들. 크러쉬는 크러쉬는 개리의 ‘조금 이따 샤워해’를 비롯해 박재범, 자이언티, 다이나믹듀오, 리듬파워, 로꼬, 사이먼디, 양동근 등과 함께 작업을 해오며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첫 정규앨범 ‘크러쉬 온 유(Crush on You)’에서는 노래부터 작사, 작곡, 프로듀서까지 맡으며 자신의 작업을 온전히 제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이나믹듀오의 개코와 최자부터 자이언티, 그레이, 박재범, 사이먼디, 리디아 백, 쿠마파크, 진보에 이르기까지 참여한 아티스트들은 최근 그 어떤 피처링진보다도 더 화려하다. 이처럼 피처링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 앨범은 그렇지 않다. 크러쉬는 각 곡에서 함께 한 뮤지션들과 적절한 앙상블을 이루며 트렌디한 R&B의 성찬을 선사하고 있다. 흑인음악 마니아부터 파티를 좋아하는 여성들까지 만족시킬만한 앨범.

태양 ‘RISE’
태양의 4년 만의 정규 2집. 태양은 기존 솔로앨범들을 통해 R&B 장르에 특화된 음악을 들려준 바 있다. 전작들에서 노래와 댄스를 한껏 살린 댄서블하고 화려한 곡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라이즈(RISE)’에서는 보컬을 살린 슬로우템포의 곡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타이틀곡 ‘눈 코 입’은 R&B 발라드 곡으로 미니멀한 연주를 통해 목소리를 부각시키고 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태양이 홀로 슬로우 비트를 타며 춤을 추는 모습이 보이는데 웃통을 벗은 초반은 미국의 R&B 뮤지션 디안젤로를 연상케 한다. 이외에도 ‘스테이 위드 미(Stay With Me)’ ‘이게 아닌데’ ‘버리고’ ‘러브 유 투 데스(Love You To Death)’등 넉넉한 비트의 곡들이 대부분이다. ‘이게 아닌데’는 의외로 브릿팝의 느낌이 나기도 한다. 태양의 목소리는 예전에 비해 보다 담백해졌다. 기존의 앨범에서 R&B의 창법을 구사했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특정 스타일을 보여주기보다 곡의 분위기에 맞게 노래하는 편이다. 이제는 보컬리스트답게 슬슬 태양 본인의 음색으로 어필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15& ‘Sugar’
열다섯 살에 만난 피프틴앤드(15&)의 박지민과 백예린은 이제 열일곱 살이 됐다. 에릭 베네가 한국에 왔을 때 박지민과 듀엣을 한 공연을 실제로 봤다. 당시까지만 해도 어린 아이가 소울 풍의 노래를 잘 소화한다는 정도의 감흥을 받았다. 가창력이야 흠잡을 곳이 없었지만 ‘아이 드림(I Dream)’까지도 앳된 감성이 남아있었고, 큰 사랑을 받은 곡 ‘티가 나나봐’는 무난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정규 1집 ‘슈가(Sugar)’에서는 음악적으로 상당히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대 R&B 트렌드를 파고드는 JYP의 방식은 여전한데, 피프틴앤드는 의외로 더 깊이 있는 접근을 취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타이틀곡 ‘슈가’. 이 곡은 최근 미국 R&B 계열의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자넬 모네 특유의 전통적인 소울에 현대적인 어법을 얹은 악곡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진취적인 성향을 보인다. 지금 한국 가요계에서 이 정도로 세련된 스타일을 시도한다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다. 국내용 히트 어법을 따르지 않고 좋은 곡을 만들려 한 것에 박수를 보낸다. 싱글로 발매된 바 있는 ‘티가 나나봐’ 외에 박진영의 곡이 하나도 없는 것이 눈길을 끈다.

인피니트 ‘Season 2’
인피니트의 정규 2집. 인피니트에게 영광을 가져다준 곡은 정규 1집의 ‘내꺼 하자’다. 하지만 이후의 앨범에서 ‘내꺼 하자’ 이상의 인기를 누리지 못한 인피니트는 다시금 정규 1집의 풍으로 돌아갔다. 스윗튠이 만든 ‘라스트 로미오(Last Romeo)’를 비롯해 수록곡들은 예전의 청량한 댄스음악을 들려주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성숙해진 모습을 보인다. 이번 앨범은 최근 아이돌그룹의 앨범 중 리얼 악기의 비중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라스트 로미오’의 경우 브라스, 기타, 드럼 등 실제 악기의 비중이 큰 파워풀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이외에도 세련된 멜로디의 ‘팔로우 미(Follow Me)’, ‘내꺼 하자’를 떠올리게 하는 복고풍의 사운드 ‘리플렉스(Reflex)’ ‘소나기’ 등이 인피니트의 특유의 매력을 잘 살리고 있으며, 미디에 기대지 진짜 악기의 않은 사운드가 박력을 더하고 있다. 각 멤버들의 솔로 곡, 유닛의 곡들이 각기 다른 매력을 선사해 결과적으로 풍부한 정규앨범이 됐다.

한승석 정재일 ‘바리abandoned’
소리꾼 한승석의 소리와 ‘음악천재’라 불리는 만능재주꾼 정재일의 연주가 만난 이 앨범. 둘은 고수와 창자로써 만나고 있다. 정재일은 북만 들지 않았을 뿐 한승석의 창에 날개를 달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긱스 출신의 천재 소년으로 회자됐던 정재일은 2012년 제대 후 동료 가수들의 세션으로 참여하고, 뮤지컬 음악감독, 연극 스코어 앨범 발매 등 실로 왕성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국악은 정재일의 넓디넓은 음악 배경 중 하나. 한승석과는 2008년 국악그룹 ‘푸리’를 통해 만났다. 당시 작품인 ‘자룡 활 쏘다’는 현대음악과 국악의 밀접한 앙상블을 느껴볼 수 있는 곡. 이번 앨범에서는 바리공주 이야기를 소재로 했으며 극작가 배삼식이 가사를 썼다. 그리고 거스를 것이 없는 정재일의 유연함은 한승석의 소리를 한껏 날아오르게 한다. 사실 현대음악과 국악의 조우는 과하다고 할 정도로 잦은 편. 이 앨범을 단순한 현대음악과 국악의 크로스오버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이 앨범의 방점은 단지 국악의 음악적인 진화를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사람들과 소통을 유도하는데 찍혀 있기 때문이다. 국악을 잘 알지 못해도 충분히 가슴이 요동칠만한 음악이다.

JUUNO ‘Shift’
한국의 일렉트로 팝을 논할 때 캐스커의 준오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준오는 2003년 캐스커 1집 ‘철갑혹성’으로 데뷔한 이래 탱고, 보사노바 등을 일렉트로니카와 결합해 주목을 끌었고, 2005년 ‘고양이와 나’를 히트시키며 대중에게 알려졌다. 캐스커가 그저 이 노래의 히트에 만족했다면 라운지 등 해외의 트렌드를 미리 선보인 얼리 어답터 정도로만 그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타협보다는 진화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한 행보가 이번 데뷔 11년차에 발표한 솔로앨범 ‘쉬프트(Shift)’에 정리돼 담겼다. 기존에 캐스커는 일렉트로니카의 어법에 실제 악기, 그리고 익숙한 장르를 접붙이기해 그래도 ‘사람냄새 나는’ 음악을 주로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철저히 시퀀서와 프로그래밍 테크놀로지에 집중했다고 한다. 그런데 기계음이 중심이 된 5곡의 수록곡들은 이상하게 차갑지만은 않다. 기계음 100%라곤 하지만 사운드의 배열이 치밀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준오의 인간성이 담겼기 때문일까?

트리오 클로저 ‘Coexistence’
트리오 클로저는 비안(피아노), 이원술(베이스), 한웅원(드럼)이 뭉친 피아노 트리오다. 셋은 현재 국내 재즈계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 중인 연주자들로 2010년 12월부터 함께 트리오로 연주를 시작했다. 이들은 단지 임프로비제이션을 주고받는 스타일을 넘어서 세 명이 섬세하게 짜인 앙상블을 들려주고 있다. 흔히 유러피언 스타일, ECM 레이블에서 들어봄직한 피아노 트리오의 사운드라고 할까? 세 명은 거의 균등한 세 개의 꼭지점을 이루고 있다. 멤버들이 각각 3곡씩 자작곡 내지 편곡으로 앨범에 참여해 8곡의 자작곡과 1곡의 편곡(‘Solar’), 2곡의 즉흥곡이 담겼다. 그 어떤 곡에서도 누구 하나 과잉된 연주를 들려주지 않는다. 이는 개개인의 임프로비제이션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전체의 교감에 보다 집중한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킵 인 터치(Keep In Touch)’와 같은 아름다운 멜로디를 들어볼 수 있는 것도 이 앨범의 미덕이다.

송영주 ‘Between’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의 정규 6집. 이미 한국에서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은 송영주가 더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해 고국에서의 안정적인 활동을 뒤로 하고 미국 뉴욕으로 건너 간지도 벌써 4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4년 동안 송영주는 새로 학교에 들어가는 한편 뉴욕의 재즈클럽 블루노트에서 한국인 최초로 단독공연을 가졌고, 해외 여러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섰다. 2011년에 잠시 한국에 들어온 송영주에게 미국에 간 이유를 묻자 “연주가 늘지 않아서”란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러한 도전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비트윈(Between)’은 그러한 도전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새 앨범에서 눈여겨볼만 한 것은 뉴욕에서 주목받는 기타리스트 마이크 모레노의 참여다. 피아노 트리오 편성을 주로 녹음해온 송영주는 이번에는 기타가 전면에 나선 퀄텟을 기본 편성으로 연주를 하고 있다. 마이크 모레노와 송영주는 마치 팻 메시니와 라일 메이스처럼 농밀한 앙상블을 선보이고 있다. 피아노 트리오로 연주된 ‘인 더 디스턴스(In The Distance)’ ‘레이트 폴(Late Fall)’에서는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작곡 의도에 부응하는 섬세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음을 많이 쓰지 않고도 곡을 살리는 대목에서는 한층 노련해진 송영주를 발견할 수 있다. 맨해튼 음대 시절부터 교류해온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 사챌 바산다니가 참여한 보컬 곡 ‘워크 얼론(Walk Alone)’도 매력적이다.

정준일 ‘보고 싶었어요’
정준일이 제대 후 석 달 만에 발표하는 솔로 2집. 여성들이 왜 그리도 정준일을 좋아하는지 잠시 생각해봤다. 그 의문은 정준일을 만나고 곧바로 풀렸다. 사진을 찍는 포즈부터 말투 하나하나가 섬세했다. ‘디테일’이 살아있다고 할까? 이것은 그의 음악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정준일은 메이트 시절부터 출중한 작곡을 선보여 왔다. 이들은 토이, 이적, 김동률과 같은 선배 뮤지션들의 명맥을 잇는 음악 스타일을 들려줬다. 특히 섬세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정준일과 강렬하게 기타를 연주하는 임헌일의 노래가 화음을 이루는 모습은 상당히 멋졌고, 여성 팬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 충분했다. 메이트 시절의 음반, 정준일 1집이 록 성향이 강했다면 이번 2집은 차분한 발라드 곡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타이틀곡 ‘고백’을 들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로 돌아간 느낌을 받는다. 특히 오케스트라 편곡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우아한 느낌도 준다. 이처럼 정준일은 트렌드를 따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던 시기의 음악에 충실하다. 메이트의 음악이 열정과 의욕으로 가득 찼다면, 정준일의 솔로는 성숙함이 돋보인다. 변화의 이유는 뭘까? 30대가 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군대에 다녀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

가인 ‘진실 혹은 대담(Truth or Dare)’
가인의 새 앨범에서 좋은 음악을 기대한다면, 그건 전작들인 ‘스텝 2/4(Step 2/4)’ ‘토크 어바웃 에스(Talk About S)’가 일정 이상의 완성도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가인은 여러 장르에 대한 표현력을 보여주며 퍼포먼스를 강조하는 여타 여가수들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왔다. 가령, 가인이 온몸으로 표현해낸 ‘피어나’의 경우 훈육된 걸그룹이 어엿한 여가수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선언문과도 같았다고 할까? 신보도 음악에 대한 기대에서 어긋나지 않는다. ‘진실 혹은 대담’은 훵크(Funk)의 전통적인 미감을 살리되 일렉트로니카를 적절히 배합한 곡으로 가인이 가진 요염한 소리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실 이런 마니악한 스타일(어디까지나 국내 정서상)의 곡을 메인스트림의 가수가 부른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한편으로는 기존 걸그룹의 관성에서 벗어난 꽤 멋진 곡을 가인에게서 또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가인을 제작하는 프로덕션팀(조영철 프로듀서, 이민수 작곡가, 김이나 작사가 등)은 아이유도 함께 제작하는데, 가인의 음악을 만들 때 더욱 국내 트렌드에서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이것이 음악적인 완성도로 이어지고 있다.

정민아 ‘사람의 순간’
1집 ‘상사몽’을 듣고 눈물을 글썽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집이다. 정민아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는 개량 가야금을 퉁기며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점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정민아가 2집 ‘잔상’에서 베이시스트 서영도와 함께 연주를 추구하고, 3집 ‘오아시스’에서 일렉트로니카를 시도하는 등 꾸준히 자신의 음악을 발전시키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3집 이후 사람의 일상과 삶에 대한 관심이 깊어진 정민아는 1년가량 전주, 원주, 부산 등을 돌며 관찰과 사색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속지에 실린 정민아의 말을 빌리면 안양의 수리산 한증막에는 “몸 파는 여자, 남편에게 쥐어 맞고 온 여자, 신 내린 여자 등등 온갖 종류의 몸이 아플만한 여자들이 모여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새 앨범에는 정민아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수록곡 ‘가난한 아가씨’ ‘서른세 살 엄마에게’ ‘부정한 여인’의 화자는 다 다른 것이다. 이 음반을 듣고 나면, 1집 ‘상사몽’을 들었을 때처럼 가슴이 따뜻해진다. 1집에서 ‘자신을 노래한 정민아’, 그리고 8년 후 4집에서 ‘타인을 노래한 정민아’가 청자에게 똑같이 위로로 다가가는 것이다.

블랙홀 ‘Hope’
올해로 데뷔 25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헤비메탈 밴드 블랙홀의 9년 만의 새 앨범. 유럽풍 멜로딕 스피드 메탈에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낸 것으로 평가받는 블랙홀은 1989년 1집 ‘미라클(Miracle)’ 발매 후 8장의 앨범과 수백회의 공연을 병행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블랙홀의 ‘깊은밤의 서정곡’은 한국 메탈 발라드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블랙홀은 동시대 데뷔한 여타 메탈밴드들이 공백기를 가졌던 것과 달리 쉬지 않고 꾸준히 활동해왔다. 새 앨범에는 과거 싱글로 발표한 4곡과 신곡 5곡을 합쳐 총 9곡이 담겼다. 이번 앨범에서 블랙홀은 메탈에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접목하면서 최근 트렌드를 적극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블랙홀의 매력인 시대의 메시지를 내포하는 가사, 그리고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멜로디와 기타연주는 여전히 절절하게 살아있다. ‘단기 4252년 3월 1일’은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2집의 ‘녹두꽃 필 때에’와 4집의 ‘잊혀진 전쟁’의 연장선상에 놓인 곡으로 3ㆍ1 운동을 재조명하는 가사를 담고 있다.

엑소 ‘중독(Overdose)’
전작 ‘으르렁’으로 최고 아이돌그룹의 자리에 오른 뒤 나온 앨범. 엑소는 퍼포먼스로 가장 주목받았지만 ‘으르렁’ 이후에는 곡의 완성도로도 크게 어필했다. ‘으르렁’이 코어 팬덤 외에 일반인들에게도 어필한 것은 퍼포먼스 이전에 음악이 귀를 잡아끌었기 때문. 신보에 ‘으르렁’과 같은 위력적인 곡은 보이지 않는다. ‘중독’의 경우 ‘으르렁’과 ‘마마’의 중간쯤에 위치한 듯한 곡으로 그다지 새로운 느낌이 들지 않는다. 타이틀곡에 비해 오히려 ‘월광’ ‘썬더’ ‘런’ ‘러브 러브 러브’와 같은 다른 곡들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언더독스가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SM 사운드를 답습한 듯한 ‘중독’보다 차라리 경쾌한 ‘런’을 타이틀곡으로 했으면 더 신선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월광’ ‘러브 러브 러브’와 같이 느린 비트의 곡이 2곡을 차지하는 것도 눈길을 끄는데 퍼포먼스를 어떻게 꾸릴지 궁금하다.

황신혜 밴드 ‘인간이 제일 이상해’
황신혜 밴드 12년 만의 새 앨범. 1996년에 결성된 황신혜 밴드는 인디 1세대 중에서도 독특한 존재였다. 괴이한 의상과 퍼포먼스가 주목을 받았고, 어쩌면 그 때문에 음악이 평가 절하된 면도 있다. 음악 스타일이 키치한 면이 있었지만, 초기에 세션 드러머가 이상민(긱스 출신의 그 이상민이다)이었을 정도로 연주에도 신경을 쓴 팀이었다. 신보는 황신혜 밴드를 여태껏 이끌어온 김형태(노래, 기타)가 사운드 메이커인 허동혁(신디사이저 등)과 조우해 듀오 체제로 만들었다. 김형태가 이제껏 보여줬던 록, 트로트, 사이키델릭 등의 잡다한 이종교배에 허동혁이 컴퓨터 음악 등으로 사운드를 매만졌다. 김형태의 퍼즈톤 기타와 허동혁의 전자음악은 연인처럼 잘 어울린다. 중요한 사실은 인디 신이 대선배인 황신혜 밴드의 음악이 후배들에 비해서도 여전히 신선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이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닐 터) 앨범의 주제는 ‘인간의 죄의식’ 김형태의 설명에 따르면 ‘짬뽕’ ‘문전박대’가 사회에 대한 노래들이었다면 신보는 인간에 대한 것이라 한다. 음악을 듣고 단박에 드는 생각은 음악은 쉽고, 메시지는 심오하다는 것. 즐겁게 들리는 음악인데 다 듣고 나면 머릿속 한 구석이 찜찜하다. 내가 지은 죄 때문인가?

결산! 2014 상반기 가요 ⑥ 김추자부터 god까지 ‘컴백’의 계절

결산! 2014 상반기 가요⑧ ‘한류’ 오리콘 성적 반토막…날개 단 인디뮤지션들

2014 상반기 페스티벌 결산, 위축되는 음악페스티벌

2014 상반기 요주의 10음반, 해외음반 15선

결산! 2014 상반기 가요⑦ 걸그룹의 시대 야했다가, 황당했다가, 다시 귀엽게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나도 한마디!][텐아시아 뉴스스탠드 바로가기]
[EVENT] 뮤지컬, 연극, 영화등 텐아시아 독자를 위해 준비한 다양한 이벤트!! 클릭!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