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길환영 사장 퇴진 요구 공동 기자회견 현장

세월호 사건 이후 한 달 하고도 열흘이 더 지난 지금, 지상파 보도국의 숨어 있었던 고름이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다.

KBS는 총파업이 예고된 상태다. MBC는 KBS에 비해 비교적 조용하지만, 분위기가 더 낙관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표면적으로는 세월호 보도와 관련된 막내 기자들의 반성문이었다.

지난 달 16일 전남 진도에서 발생한 국가적 참사, 세월호 현장에서 취재를 했던 KBS 38~40기 기자들이 사내 게시판에 장문의 반성문 10편을 게재했다. 5월 7일의 일이다. 이들은 “팽목항에선 KBS로고가 박힌 잠바를 입는 것 조차 두렵다. 어떻게 하면 취재를 잘해나갈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과 질타를 피해갈지 부터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가족과 신뢰관계를 구축하지 못했다는 반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자극적인 보도에만 힘썼고, 데스크가 그러길 원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한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다”며 이번 ‘보도참사’에 대해 모두가 반성해야하며 반성 후에 반드시 해결해야할 길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막내 기자들의 반성문 소식이 알려지자 언론, 특히 공영방송의 역할을 묻는 목소리가 더욱 들끓었다.

그렇지만 정작 반성의 주체가 되어야할 KBS의 간부급들은 이들을 비난했다. 성창경 KBS 디지털뉴스국장이 8일 역시 사내게시판에 KBS 막내 기자들이 공개한 반성문과 관련해 ‘선동하지 말라’는 내용의 비판글을 게재했다.

잇따라 김시곤 KBS 보도국장의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4월 말 한 회식자리에서 ‘세월호 사고 사망자는 교통사고 사망자에 비하면 그리 많지 않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다. 유족들이 KBS와 청와대에 항의방문을 하기에 이르렀다. 김 보도국장이 이 발언을 해명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연 것은 9일. 그런데 이날 김 보도국장의 입에서 그야말로 ‘폭탄발언’이 터져나왔다. 그는 자신의 ‘교통사고’ 발언은 왜곡이라고 주장하며 사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언론에 대한 어떠한 가치관과 식견도 없이 권력의 눈치를 보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 온 길환영 KBS 사장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날 오후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JTBC ‘뉴스9′과 인터뷰에서 길환경 사장이 평소에 보도를 통제해왔다고 밝히며 “”길 사장은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이다. 권력은 당연히 (KBS를) 지배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KBS가 들끓기 시작했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모두가 다 알고는 있었지만 확인할 수 없었던 것(보도통제)을 김 보도국장이 확인시켜준 셈”이라며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KBS 안팎에서 비난 여론이 높다. 언론학자 144명이 성명서를 통해 “길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학자들이 특정방송사 사장을 겨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지만 길 사장의 입장은 강경하다. 그는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거듭 밝히고 있다.

급기야 KBS 기자들은 제작거부를 선언했다. 메인 뉴스를 비롯, 오전 오후 뉴스 모두 축소 편성되거나 결방되고 있다. PD협회 역시 23일 제작거부에 들어갔으며, 26일 하루 더 제작을 거부했다. 예능과 드라마의 경우, 사전 제작분이 있어 결방은 피했으나 PD들의 제작거부가 더 길어질 경우, 방송차질도 불가피하다. 또 KBS 노조는 오는 28일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26일 오후 이사회에서 길 사장의 해임제청안 가결되지 못하면 총파업을 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사측은 노조원들 일부를 고소했다. 강경한 입장이다. 27일 오후 KBS의 기자협회, PD협회 등 총 14개 협회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전할 예정이다. 그야말로 예측불가의 걷잡을 수 없는 충돌 양상이다.

MBC 기자들 역시 반성문을 올렸다. 12일 MBC 보도국 30기 이하 기자 121명은 ‘참담하고 부끄럽습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세월호 보도에서 MBC ‘뉴스데스크’가 “실종자 가족을 모욕하고 비난했다. 국가의 무책임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를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그들을 훈계하면서 조급한 비애국적 세력인 것처럼 몰아갔다”고 말했다. 반면, “정몽준 의원 아들의 막말과 공직자들의 부적절한 처신 등 실종자 가족들을 향한 가학 행위도 유독 MBC 뉴스에선 볼 수 없었다”며 “유족과 실종자 가족을 찾아간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는 빠짐없이 충실하게 보도한 반면, 현장 상황은 누락하거나 왜곡했다”고 밝혔다. 연일 노사간 파열음이 새어나오는 것은 MBC도 마찬가지. 하지만 MBC는 파업 등 강경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없는 분위기다. 지난 2012년 이미 170일의 장기파업을 겪었던 MBC. 사측은 시용기자들을 선발해 기존 인력들을 대체했으며, 지속적인 보복성 인사로 일종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내부의 지적이 있다.

이처럼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절름발이 신세가 된 상황에서 종합편성채널 JTBC가 한 조사에서 KBS와 MBC를 제치고 가장 신뢰하는 방송사에 올랐다. JTBC ‘뉴스9′의 얼굴, 손석희가 MBC 출신이라는 점은 더더욱 공영방송의 오늘을 안타깝게 만든다.

긍정적인 면도 있다. 상처가 밖으로 새어나왔다는 점이다. 안으로 곪아있는 것보다는 수술대에 오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해결에 한발짝 더 가까워졌으니 말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 KBS 보도국의 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텐아시아와 통화에서 “우리는 회사원이기 이전, 스스로를 언론인이라고 규정한다”라며 “세월호 이전에도 정권의 보도통제를 인지하고 있었고, 비록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왔던터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세월호 보도와 같은 재난보도에까지 정권의 안위 보존을 위한 기사들 위주로 편성된 것을 보면서 언론인으로서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됐다”고 말했다. 더 이상 행동을 유보할 수 없다는 KBS 보도국의 이 기자는 “이번만큼은 길환영 사장의 입장을 분명히 들으려 한다. 모든 의혹들이 명명백백 밝혀진 다음, 그는 사퇴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의 윤리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이들은 잃어버린 신뢰를 찾을 수 있을까.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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