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건을 다루는 MBC 뉴스 방송화면 캡쳐

“연예기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뭘까요?”
막내 기자가 물었다. 왜 아니겠는가. 지금 눈 앞에 목도하고 있는 현실이, 내가 그동안 믿어왔던 ’21세기 대한민국’이 허상이라고 여실히 말하고 있는데. 연예 일정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가 실은 깨어진 세계라는 충격 앞에서, 기자라면 ‘어떤 뉴스를 보도해야 할 때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자문을 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일 터.

요즘 방송 뉴스 모니터를 통해 진도에 대한 이야기에 상당 부분 할애를 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예 뉴스를 다루는 매체이기에, 온갖 행사의 취소 소식이나, 스타의 반응들 밖에 쓸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와 같은 기사들도 중요한 뉴스다. 보다 세월호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간 뉴스들은 사실 정치 사회 뉴스들에 가깝다.

‘텐아시아가 갑자기 그런 뉴스를 쓰는 게 맞나?’ ‘뉴스 외의 방송 프로그램이 결방되고, 콘서트와 앨범 발매가 취소되고, 영화 홍보 일정들이 속속 사라지고 있는데 기사의 분야를 구분하는 게 의미가 있는가?’ ‘정몽준 아들의 발언은 우리가 써도 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팽목항에 직접 가 있는 것이 아닌 만큼, 그 사건을 들여다보는 ‘창’으로서의 ‘방송’ 기사를 다루는 방식을 택했다. 텐아시아가 방송과 관련된 즐거운 뉴스들을 쏟아냈던 만큼, 방송 뉴스에 대한 날선 시선 또한 보도할 수 있기에 말이다. 나는 막내기자의 고민에 그런 답을 줄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사흘간 지상파3사와 JTBC를 촘촘히 다시 보고, 분석한 기사를 내놓으며 연예기자로서 자신의 할 바를 찾아나가는 모습에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세월호 참사는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 면피용 관행, 위기관리 시스템과 도덕적 민감성 결여, 정치인들의 전시 행정, 순종주의 교육관 등이 낳은 참사. 마치 아름다운 정원 구석에 숨겨 놓았던 쓰레기들처럼, 번지르르한 고층 빌딩들과 함께 한없이 상승 중인 줄 알았던 대한민국의 시스템이 실은 빈껍데라는 것을 뼈아프게 느끼게 해 준 사건. 대한민국의 문제들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이번 진도 사태의 충격을 접한 기자라면,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엄청난 사명감을 가진 기자가 아니라도 말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대한민국 각 분야의 문제점들이 용수철처럼 튕겨 나왔지만, 사실은 기자로서 더욱 뼈아픈 부분은 언론의 문제점에 대한 자각이다. 피해자들 앞에서 웃는 영상이 그대로 타전이 된 것은 애교다. 실제 관계자나 전문가가 아닌 이들을 인터뷰해서 무분별하게 내보내거나, 우왕좌왕하며 중언부언하는 모습에 TV를 꺼 버린 이들도 부지기수다.

물론 기자도 사람이다. 방송 뉴스 제작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다. 실수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의 기준만은 준수를 했어야 한다. 바로 ‘팩트’ 확인이다. 과거 연예부로 발령이 난 뒤, 선배들에게 가장 먼저 배운 지침은 ‘기자가 소문을 양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카더라 통신’이 난무하는 연예계, 누구나 쉽게, 연예기자에게 “둘이 사귀는 게 사실이야?” “그 사람 성격이 이상하다면서?”라고 묻는다. 그럴 때 연예기자가 취할 애티튜드는 무엇일까? 친구나 심지어 가족에게조차, 무심히 “그래”라고 말하는 순간, 그 어떤 소문을 기자가 확인해준 셈이 되고 만다. “둘이 사귄다는 소문이 있는 것은 알지만 나는 직접 보거나 확인하지는 못 했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팩트’다. 어떤 사실을 확인했다면, 말로 소문을 내는 것이 아니라, 기사를 쓰는 것이 기자가 할 일이다. 연예인이 사건을 일으킬 경우 기자가 경찰서로 향하는 것은 경찰 브리핑만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확한 ‘팩트’를 확인하기 위한 노력이다.

안타까운 점은 현재 지상파 방송 뉴스들이 새로운 사실을 다각도로 취재해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말로 소문을 내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하루 종일 편성된 특보에 보도할 내용이 부족하고, 정부 브리핑 역시 수시로 바뀌고, 경쟁은 과잉이고… 실제 제작현장 또한 녹록치는 않을 것이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현재 방송 뉴스에 아쉬움이 크다. 그나마 JTBC가 차근차근 팩트에 접근하려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 JTBC 역시 전문가 여부에 논란이 일고 있는 이종인씨와 인터뷰를 하거나, 구조된 학생에게 친구의 사망 사실을 언급해 과잉 취재에 대한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21일 세월호 전 항해사의 인터뷰를 통해 해운업계의 오랜 관행을 확인하는데 이르렀다.

뉴스 보도에 대한 불만은 사람들로 하여금 SNS를 찾게 했다. 전국민이 기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각 개인이 SNS를 통해 쏟아내는 정보의 양은 엄청나다. ‘팩트’가 아닌 것들이 있더라도 그 안에서 ‘팩트’를 골라내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SNS를 통해서 양산되는 소문에 좌우되던 ‘우매한 대중’은 더 이상 없다. 자신의 주체적 판단을 믿고, 소문과 뒤엉킨 팩트들 속에서 팩트를 골라내 진실을 알고자 하는 노력. 과거와 같이 기자가 정제된 팩트만 전달하던 시대는 이미 예전에 지났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기자가 팩트를 전달하지 못하는 시대, 이용자가 팩트를 주체적으로 찾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 부분이 바로 기자로서 인정하기 싫지만,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부분일 터. 때문에 나를 포함한 기자들이 이번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은, 기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팩트’ 확인에 대한 의무감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명함에 ‘기자’라고 인쇄하고 다닌다면 말이다.

텐아시아가 그동안 만들어온 ‘덕후’스럽고 즐거운 기사들도 여전히 생산할 것이다. 그와 같은 ‘깨알재미’의 기사들은 어쩌면 ‘팩트’를 확인하는 스트레이트 기사는 아니다. 기본 텍스트를 2차 가공하면서 전복적인 즐거움을 노리는 차원으로 봐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기사가 아닐 수도 있다. 그와 같은 기사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때로는 한없이 가벼워질 수도 있다. 이용자들은 예능은 예능으로, 다큐는 다큐로 구분할 수 있기에.

글. 이재원 jjstar@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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