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 송영주, 블랙홀, 씨엔블루(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지구가 태양을 네 번 감싸 안는 동안 나는 수 백 번도 넘게, 너를 그리워했고 눈물 흘려야 했어넬 ‘Newton’s Apple’
넬 ‘지구가 태양을 네 번’ 中
록밴드 넬의 정규 6집이자 중력을 주제로 한 3부작인 ‘그래비티 트릴로지(Gravity Trilogy)’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완결 작이다. 넬은 한국에서 ‘록 스타’라는 단어를 써도 민망하지 않은 정말 몇 안 되는 팀 중 하나다. 국내에 넬만큼 강한 팬덤을 가진 록밴드가 또 있을까? 록이 마니아음악 취급을 받는 이 땅에서 넬의 인기는 신기할 정도다. 물론 이러한 인기에는 넬의 음악 스타일이 대중적인 축에 드는 것도 한 몫 할 것이다. 이 대중성에 대해 김종완은 “대중성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마음을 잃다’라는 곡을 만들었을 때 멜로디, 리듬, 코드가 대중성의 끝을 달리는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그 이후로 대중성은 생각 안 한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넬은 새 앨범에서 대중성보다는 밴드 사운드, 그리고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음악에 신경을 쓴 모습이다. 타이틀곡 ‘지구가 태양을 네 번’은 밴드의 사운드가 강조된 대표적인 곡이다. 드럼이 엇박자로 나가고 일정한 피아노 리프가 반복되면서 서서히 멜로디가 귀에 각인이 되는 곡이다. 기존의 타이틀곡들처럼 김종완의 호소력 짙은 보컬이 중심이 아닌 밴드의 전체적인 사운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이밖에 넬은 여백을 살린 미니멀한 사운드부터 일렉트로 팝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최근작들에서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던 넬의 음악이 이번 앨범에서 비로소 하나의 스타일로 수렴된 것으로 보인다.
송영주 ‘Between’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의 정규 6집. 이미 한국에서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은 송영주가 더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해 고국에서의 안정적인 활동을 뒤로 하고 미국 뉴욕으로 건너 간지도 벌써 4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4년 동안 송영주는 새로 학교에 들어가는 한편 뉴욕의 재즈클럽 블루노트에서 한국인 최초로 단독공연을 가졌고, 해외 여러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섰다. 2011년에 잠시 한국에 들어온 송영주에게 미국에 간 이유를 묻자 “연주가 늘지 않아서”란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러한 도전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비트윈(Between)’은 그러한 도전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새 앨범에서 눈여겨볼만 한 것은 뉴욕에서 주목받는 기타리스트 마이크 모레노의 참여다. 피아노 트리오 편성을 주로 녹음해온 송영주는 이번에는 기타가 전면에 나선 퀄텟을 기본 편성으로 연주를 하고 있다. 마이크 모레노와 송영주는 마치 팻 메시니와 라일 메이스처럼 농밀한 앙상블을 선보이고 있다. 피아노 트리오로 연주된 ‘인 더 디스턴스(In The Distance)’ ‘레이트 폴(Late Fall)’에서는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작곡 의도에 부응하는 섬세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음을 많이 쓰지 않고도 곡을 살리는 대목에서는 한층 노련해진 송영주를 발견할 수 있다. 맨해튼 음대 시절부터 교류해온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 사챌 바산다니가 참여한 보컬 곡 ‘워크 얼론(Walk Alone)’도 매력적이다.
블랙홀 ‘Hope’
올해로 데뷔 25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헤비메탈 밴드 블랙홀의 9년 만의 새 앨범. 유럽풍 멜로딕 스피드 메탈에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낸 것으로 평가받는 블랙홀은 1989년 1집 ‘미라클(Miracle)’ 발매 후 8장의 앨범과 수백회의 공연을 병행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블랙홀의 ‘깊은밤의 서정곡’은 한국 메탈 발라드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블랙홀은 동시대 데뷔한 여타 메탈밴드들이 공백기를 가졌던 것과 달리 쉬지 않고 꾸준히 활동해왔다. 새 앨범에는 과거 싱글로 발표한 4곡과 신곡 5곡을 합쳐 총 9곡이 담겼다. 이번 앨범에서 블랙홀은 메탈에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접목하면서 최근 트렌드를 적극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블랙홀의 매력인 시대의 메시지를 내포하는 가사, 그리고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멜로디와 기타연주는 여전히 절절하게 살아있다. ‘단기 4252년 3월 1일’은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2집의 ‘녹두꽃 필 때에’와 4집의 ‘잊혀진 전쟁’의 연장선상에 놓인 곡으로 3ㆍ1 운동을 재조명하는 가사를 담고 있다.
씨엔블루 ‘Can’t Stop’
씨엔블루의 5번째 미니앨범으로 전곡을 자작곡으로 채운 야심한 앨범이다. 최근 씨엔블루는기획사가 기획한 아이돌 밴드를 벗어나고자 TV 순위 프로그램에서 라이브(코러스, 오케스트라 등의 MR이 가미된 라이브)를 선보이는 등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다. 이번에 전곡을 자작곡으로 채운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겠다. 타이틀곡 ‘캔트 스톱(Can’t Stop)’은 감성적인 멜로디를 가진 모던록으로 마치 넬을 떠오르게 한다. 이런 안개가 낀 듯한 뿌연 질감의 모던록 스타일은 요 몇 년 사이 인디 신에서 유행한 풍으로 씨엔블루는 보다 가요적인 친숙한 멜로디를 들려준다. 이외의 곡들에서는 각기 다양한 풍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완성도에서 문제는 없지만, 밴드의 특징적인 사운드는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약점. 물론 이러한 약점은 여성 팬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차기작에서는 좀 더 거친 음악을 해보면 어떨까?
꽃잠 프로젝트 ‘Smile, Bump’
임거정과 김이지의 듀오 꽃잠 프로젝트의 첫 EP. 꽃잠 프로젝트는 ‘꽃잠’이라는 이름처럼 꽃이 잠을 자는 듯이 차분하고 예쁜 음악을 들려주는 팀이다. 전곡의 작사 작곡부터 모든 악기 연주는 임거정이 맡았다. 임거정은 프로 세션 드러머 출신이다. 2000년경에 롤러코스터(지누, 조원선, 이상순)의 콘서트에 갔을 때 임거정이 드럼을 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임거정은 호란, 저스틴 김과 함께 이바디로 활동한 바 있다. 꽃잠 프로젝트는 이바디에서 이어지는 어쿠스틱 풍의 음악을 들려준다. 꽃잠 프로젝트는 여백을 잘 살리는 미니멀한 사운드가 특징이다. 가을보다는 봄에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따스한 음악이다. 보컬 김이지의 노래는 표현력이 발군이다. 꽃잠 프로젝트의 음악은 최근 유행하는 어쿠스틱 팝의 모양새와는 상당히 다르다. 귀에 잘 박히는 멜로디나 친숙함을 억지로 해내려 하지 않고, 세련된 어법, 곡의 완성도에 신경을 쓰고 있다.
빡세 ‘Peromonstar’
‘빡세의 무규칙 여행기’로 잘 알려진 만화가 빡세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만든 이 앨범을 건넸다. 앨범을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듯했다. 이후 2차로 간 술집에 가니 주인장이 반갑게 반기며 이 앨범 ‘페로몬스타(Peromonstar)’를 틀어주더라. 그 가게에도 이 앨범이 비치돼 있는 것 같았다. 약간 취한 상태에서 들었던 이 앨범은 꽤 괜찮았다. 빡세는 자신을 만화가가 아닌 뮤지션으로 소개했다. 만화가가 되기 전에 뮤지션을 꿈꿨다고 한다. 집에 와서 앨범을 차근차근 들어봤는데 노래들이 썩 나쁘지 않다. 빡세가 전곡을 작사 작곡했다. 노래 멜로디는 조금 ‘뽕끼’가 느껴지기도 하는데 편곡이 미묘하게 세련된 어번(urban) 소울 풍이다. 앨범 속지를 보니 김마스타가 프로듀서를 맡았다.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결과적으로 앨범은 도시적인 세련된 가요에 빡세의 은근히 호소력 짙은 보컬이 조화를 이룬다. 빡세의 목소리는 상당히 소울풀하다. 앨범재킷에 보면 ‘페로몬스타’라는 제목 밑에 볼륨 1이라고 적혀 있다. 볼륨 2를 기대해본다.
스톰 ‘Before The Storm’
스피드 메탈밴드를 표방하는 스톰의 데뷔 EP로 인트로 연주를 포함해 4개의 트랙이 담겼다. 스톰은 이제 데뷔 9년차를 맞는 밴드다. 흔히 국내 헤비메탈 저변이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는 것일 뿐 많은 밴드들이 최근 활동의 날개를 펴고 있다. 스톰은 헬로윈, 감마레이에 대한 추억을 안겨줄만한 팀이다. ‘스톰(Storm)’은 한글 가사의 메시지 때문인지 이스크라, 메이데이와 같은 운동권 메탈 밴드를 연상케 한다. 빠르게 내달리는 ‘블러디 밸런타인(Bloody Valentine)’에서는 후반부의 샤우팅에서 의욕이 느껴진다. ‘미러 오브 카르마(Mirror of Karma)’에서는 ‘네놈의 죄를 말해 보아라 / 업경에 죄를 비춰보아라 / 규환의 지옥 한가운데서 / 혀끝을 찢어 줄테니’라며 다소 공격적인 가사를 들려주고 있다. 곡들이 뚜렷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데 가사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이 아쉽다. 현재 기타리스트 모집 중.
웨인 쇼터 퀄텟 ‘Without A Net’
살아있는 재즈 색소폰의 전설 웨인 쇼터의 43년 만에 블루노트 복귀작. 웨인 쇼터는 그의 인생이 곧 재즈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재즈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아티스트다. 1959년에 아트 블레이키 재즈 매신저스에 참여해 음악감독까지 지내고 이후 존 콜트레인의 뒤를 이어 마일스 데이비스 황금 퀸텟의 일원이 된 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이후 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 록·퓨전 작업에 참여하는 한편 조 자비눌, 자코 패스토리우스 등과 함께 웨더 리포트를 이끄는 등 재즈의 변곡점에 웨인 쇼터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여든이 넘은 나이로 꾸준히 연주활동을 하며 소니 롤린스와 함께 살아있는 재즈의 신으로 칭송받고 있다. 다닐로 페레즈, 존 패티투치, 브라이언 블레이드라는 최정상급 연주자들로 이루어진 웨인 쇼터 퀄텟(4인조)은 2000년에 결성됐다. 10년을 넘게 이어온 세월만큼 이들은 이번 앨범에서도 응집력 있는 앙상블을 들려준다. 네 명이 하나의 몸처럼 움직이며 때로는 영적인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23분짜리 곡 ‘페가수스(Pegasus)’는 앨범에서 유일하게 다른 년도에 녹음된 곡으로 어미미니 윈즈가 참여해 노넷(9인조)으로 연주가 됐다. 이 곡에서 작은 동기를 눈 뭉치듯이 커다랗게 발전시켜나가는 연주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제목처럼 인터넷에서는 들을 수 없고 음반으로만 감상이 가능하다. 이번에 그래미상을 수상하면서 국내에 정식으로 발매됐다.
러시안 레드 ‘Agent Cooper’
지난 2011년 러시안 레드가 ‘스페인의 아이유’는 수식어를 달고 한국에 왔을 때 그녀를 만난 적이 있다. 그녀의 외모는 아이유처럼 귀여웠지만, 음악은 훨씬 성숙했다. 스페인 마드리드 출신인 러시안 레드는 당시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해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하고 음악 페스티벌 무대에도 섰다. 라이브도 상당히 잘하더라. 작은 체구에서 상당한 에너지가 나왔다. 최근에 그녀는 미국 유력 매체 ‘롤링스톤’의 표지모델을 하는 등 상당히 유명세를 떨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앨범은 흥미롭게도 전곡이 남자 이름으로 돼 있다. 러시안 레드에 따르면 아버지, 친구, 옛 애인 등 삶 속에서 만난 남자들을 모델로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인생의 남자들을 음반 한 장으로 정리해버리다니 멋진 생각이다. 전작을 벨 앤 세바스찬 멤버들과 작업했던 레드는 신보를 U2, 비치보이스, 제이슨 므라즈와 작업했던 프로듀서 조 치카렐리 등고 함께 미국에서 작업했다. 그래서일까? 예전 앨범에서 이국적인 정취를 선보였던 것에 반해 신보에서는 미국적인 색이 강하게 드러난다. 목소리는 여전히 귀여운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고혹적이다.
O.S.T. ‘Forever Love Songs from The Twilight Saga’
영화 ‘트와일라잇’ OST 시리즈를 편집한 베스트 앨범. 트와일라잇’의 사운드트랙은 21세기 OST계의 블록버스터라 할 만큼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10대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에 걸맞게 뮤즈, 린킨 파크부터 킬러스, 뱀파이어 위크엔드 등 스타급 밴드들의 노래가 대거 삽입돼 큰 사랑을 받아왔다. 이외에 플로렌스 더 머신, 그리즐리 비어스, 뮤트메스, 블랙 키즈 등 실력파 뮤지션들이 참여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이번 앨범에는 주인공 벨라, 에드워드, 제이콥의 삼각관계를 대변하는 노래들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34곡의 러브송이 선정돼 2CD로 담겼다. 브루노 마스의 ‘잇 윌 레인(It Will Rain), 그린 데이의 ‘더 포가튼(The Forgotten)’, 크리스티나 페리의 ‘어 사우전드 이어즈(A Thousand Years)’ 등 히트곡들을 비롯해 아이언 앤 와인, 시아, 앵거스 앤 줄리아 스톤, 시 로 그린, 그리즐리 베어, 오케이 고 등 최근 메이저와 인디를 아우르는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해 최근 트렌디한 팝을 느껴보기에 무리가 없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울림엔터테인먼트, FNC엔터테인먼트, 윈엔터, 플러스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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