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의 지드래곤은 직접 곡을 만든다. 프로툴(Pro Tools, 음악작업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안다. 주로 YG엔터테인먼트의 대표 프로듀서인 테디를 비롯해 초이스37, 쿠시 등의 작곡가들과 협업을 한다. 작업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진다. 밴드가 앙상블을 하듯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레코딩을 한다. 뮤지션과 프로듀서가 자유롭게 곡을 의논하는 것은 YG의 오랜 방식이다. 때문에 좋은 곡이 나오지 않으면 음반 발매가 늦어지곤 한다. 하지만 결국 이런 방식은 빅뱅이라는 대형 아이돌그룹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이번엔 투애니원(2NE1)이다. 26일 공개되는 정규 2집 ‘크러쉬(Crush)’에는 씨엘(CL)이 작사 작곡으로 이름을 올렸다. 씨엘은 래퍼로써 랩 메이킹을 한 적은 있지만, 투애니원의 앨범에 작곡과 작사로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씨엘은 ‘크러쉬’ ‘살아 봤으면 해’ ‘베이비 아이 미스 유(Baby I Miss You)’ 3곡의 작사 작곡에 참여했다. 이외에도 ‘멘붕’ ‘스크림(Scream)’ 2곡의 작사에 참여했다. 앨범에 수록된 총 10곡 중 5곡에 직접 참여한 것이다.
이번 경우처럼 걸그룹 멤버가 음반의 작사 작곡에 참여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여타 걸그룹의 경우 작사, 또는 공동 작곡을 한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정규앨범의 반수 이상에 참여한 것은 투애니원의 이번 앨범이 처음이다. 보이그룹에서는 지드래곤 외에도 용준형(비스트), 진영(B1A4) 등 작사 작곡을 직접 하는 이들이 있다. 이처럼 그룹 안에 작곡을 하는 멤버가 있는 경우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바로 스타일이다. 전문 프로듀서, 작곡가, 작사가가 작업을 하면 얼마든지 좋은 곡을 만들 수 있지만 고유의 스타일을 갖기는 힘들다. 하지만 팀 내 멤버가 창작을 할 경우 그것이 전문작곡가에 비해 다소 어설프더라도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리고 꾸준히 작곡을 한다면 성장할 수 있다. 즉, 작곡가 멤버의 성장이 곧 팀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빼앗아가지 못하는 무기다.
그런 면에서 씨엘이 과감히 작곡에 참여하는 투애니원의 이번 시도는 눈여겨볼 만하다. 투애니원은 이제 데뷔 6년차로 걸그룹 중에는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국내에 투애니원처럼 자신들의 뚜렷한 색을 가진 걸그룹은 찾아보기 힘들다. 여타 걸그룹들이 섹시함과 귀여움 등의 관성적인 코드를 오갈 때 투애니원은 도저히 예쁘지도, 귀엽지도 않은, 전형성에서 벗어난 독특한 패션과 스타일을 선보여 왔다. 자신들을 하나의 캐릭터로 만들었다. 이러한 고유의 매력은 힙합에 기반을 둔 투애니원의 음악에 날개를 달아줬다. YG와 다년간 작업해온 세계적인 공연 연출가 트레비스 페인은 투애니원을 보면 90년대 미국 최고의 흑인 여성그룹들인 엔 보그(En Vogue)와 TLC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투애니원은 엔 보그의 터프함, TLC의 세련됨 외에도 자신들만의 탱글탱글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투애니원의 음악에 씨엘의 곡이 어떤 상승효과를 가져올지는 주목해볼만한 일이다. 투애니원은 20일 일산 킨텍스에서 가진 공개 리허설에서 신곡 ‘크러쉬’와 예전 곡 ‘파이어’를 선보였다. 테디가 만든 ‘파이어’는 데뷔곡 ‘롤리팝’에 이은 투애니원의 두 번째 싱글로 투애니원의 역사와 함께 해온 곡이다. ‘크러쉬’는 씨엘이 초이스37과 함께 만든 곡으로 투애니원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곡. 강렬한 에너지를 지닌 이 노래는 언뜻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떠올리게 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투애니원을 보여준다. 박봄은 “‘크러쉬’를 처음 들었을 때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들었을 때의 느낌이 들었다. 씨엘은 부담을 갖고 있는데, 우리 생각으로는 씨엘의 곡들이 신선하고 너무 좋다. 이렇게까지 좋을지 몰랐다. 투애니원 멤버의 관점에서 씨엘은 마음에 드는 작곡가”라고 말했다. 산다라는 “데뷔 6년차라서 권태기가 올 법도 한데 씨엘이라는 새로운 작곡가를 만나서 다시 태어날 수 있어서 좋다”라고 말했다.
YG, 그리고 투애니원이 선택이 어떤 음악적 성과를 거둘지, 또 그것이 승리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이다. 출발부터 달랐던 투애니원이 다시 한 번 걸그룹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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