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일, 김가영, 오!곤, 달샤벳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아무리 달려 봐도 결국엔 그 자리에, 난 너를 그리워하는가봐

정준일 ‘고백’ 中

정준일 ‘보고 싶었어요’
정준일이 제대 후 석 달 만에 발표하는 솔로 2집. 여성들이 왜 그리도 정준일을 좋아하는지 잠시 생각해봤다. 그 의문은 정준일을 만나고 곧바로 풀렸다. 사진을 찍는 포즈부터 말투 하나하나가 섬세했다. ‘디테일’이 살아있다고 할까? 이것은 그의 음악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정준일은 메이트 시절부터 출중한 작곡을 선보여 왔다. 이들은 토이, 이적, 김동률과 같은 선배 뮤지션들의 명맥을 잇는 음악 스타일을 들려줬다. 특히 섬세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정준일과 강렬하게 기타를 연주하는 임헌일의 노래가 화음을 이루는 모습은 상당히 멋졌고, 여성 팬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 충분했다. 메이트 시절의 음반, 정준일 1집이 록 성향이 강했다면 이번 2집은 차분한 발라드 곡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타이틀곡 ‘고백’을 들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로 돌아간 느낌을 받는다. 특히 오케스트라 편곡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우아한 느낌도 준다. 이처럼 정준일은 트렌드를 따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던 시기의 음악에 충실하다. 메이트의 음악이 열정과 의욕으로 가득 찼다면, 정준일의 솔로는 성숙함이 돋보인다. 변화의 이유는 뭘까? 30대가 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군대에 다녀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

김가영 ‘기억이 되기 위해서’
깜짝 놀랄만한 민중가요 앨범이다. 김가영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음반을 틀었을 때 훌륭한 사운드와 노련한 악기 편곡, 그리고 진중한 노래가 귀에 들어와 단번에 숙연해졌다. ‘기억이 되기 위해서’에서 중간에 나오는 음정이 엇나가는 신디사이저 연주! 이것은 과거 프로그레시브 록에서나 들을 수 있는 멋진 장면이 아닌가? 김가영이 누구인지 궁금해 정보를 찾아보니 민중가수라고 프로필이 나온다. 김가영은 1989년 영남대학교 노래패 ‘예사가락’에서 노래를 시작해 1993년 주간노동자신문에서 개최한 노동자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했다고 한다. 이후 노찾사, 천지인 등 유수의 민중가요 집단에서 활동했다. ‘기억이 되기 위해서’는 1집 ‘날치’(2002) 이후 10여년 만에 나온 2집이다. 앨범에 실린 멜로디, 가사 등은 민중가요에 대한 선입견을 멀리 날려버릴 정도로 트렌디하고, 완성도 높은 사운드를 들려준다. 특정 메시지를 강조하기보다는 음악적인 욕심이 발현된 음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곤 ‘Wonderful Car’
싱어송라이터 오!곤의 데뷔EP. 특이한 이름을 가진 이 신인 뮤지션은 기타 팝부터 일렉트로 팝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구사한다. 음악에 일관성이 있다. 전자음악을 쓰든, 기타를 치든 간에 밝은 멜로디와 풋풋한 소년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어떤 곡들은 아이돌 그룹의 댄스음악을 기타로 연주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오!곤은 KBS ‘불후의 명곡’ 편곡 팀으로 활동했으며 드라마 ‘돈의 화신’의 주제곡을 작곡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즉, 프로페셔널한 음악작업 경험이 있는 뮤지션인데 정작 본인의 앨범에서는 순수함이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통기타로 기본 틀을 잡고 전자음악으로 빈 공간을 채우는 작법을 선보이고 있다. 어쿠스틱 사운드의 따스함과 전자음악의 청량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달샤벳 ‘B.B.B’
2014년 새해의 걸그룹 대전은 섹시 콘셉트의 대결이다. 걸스데이, 달샤벳, AOA, 레인보우 블랙 등이 일제히 섹시한 모습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섹시한 무드를 조성하는데 다양한 음악이 쓰일 수 있다. R&B가 가장 많이 쓰이고, 그 외에 신스팝, 최근에는 EDM이 각광받고 있다. 달샤벳의 타이틀곡 ‘B.B.B’는 80년대 복고풍의 신스팝 스타일의 편곡이 쓰였다. 섹시함을 드러내기에 적합한 사운드라 할 수 있는데, 신사동호랭이의 곡답게 ‘뽕끼’도 적절히 느껴진다. 유리스믹스와 트로트가 결합한 느낌이랄까? 전작 ‘내 다리를 봐’에서 선보인 깜찍한 섹시함에서 수위를 조금 높였는데, 기왕 수위를 높인 김에 음악적인 성숙함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는 단지 섹시하다고만 해서 관심을 갖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외에 앨범에는 수빈이 작사 작곡한 모던록 풍의 ‘그냥 지나가’, 미디엄템포의 애절한 곡 ‘너였나봐’, 청량감이 느껴지는 ‘리와인드(REWIND)’ 등이 수록됐다.

탑독 ‘아라리오’
또 하나의 힙합 아이돌그룹 탑독의 두 번째 EP. 힙합의 요소를 지닌 일종의 ‘변종’ 아이돌그룹이 생겨난 지 오래다. 탑독은 무려 13인조로 국내 아이돌그룹 중 가장 많은 인원을 자랑하는 엑소보다 1명이 더 많다. 13명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YG패밀리(YG 소속 뮤지션이 떼로 무대에 올라 랩을 주고받았던), 또는 브로스(이상민 사단 뮤지션들이 역시 떼로 무대에 올라 랩을 했던)와 같은 무대가 되는 게 아닐까 걱정(?)을 했다. 탑독은 13명이 4개의 팀(랩, 보컬, 퍼포먼스, 프로듀서)로 구분된다고 한다. 이번 앨범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실력파 힙합 아티스트 디즈(Deez)가 프로듀서를 맡았다는 점이다. 타이틀곡 ‘들어와’를 비롯해 ‘알어’는 기대했던 것 이상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소속사 스타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인 조PD의 저력을 기대해본다.

미선 레나타 ‘이삿짐 싸다가’
앨범을 플레이하면 국적을 가늠하기 어려운 여성의 노래가 흐른다. 미선 레나타는 프렌치 팝을 노래하는 일명 ‘빠리지엔 싱어송라이터’라고 한다. 우리가 귀로 인지하고 있는 프렌치 팝이라는 음악은 세르쥬 갱스부르, 프랑소아즈 아르디, 파트리샤 카스 등의 로맨틱한 음악이 아닐까 한다.(이것은 외국인들이 ‘케이팝’을 ‘아이돌그룹의 댄스뮤직 내지 틴팝’으로 인지하고 있는 오해와 비슷한 것일 거다) 미선 레나타는 유럽 최초의 재즈학교인 프랑스 파리 CIM에서 재즈를 공부했다고 한다. 현지에서 거리공연 등을 하면서 음악적 내공을 쌓았다고. 앨범에서는 프렌치 팝의 향취가 느껴지는 노래들을 들려주고 있다. ‘콩희 아땅 라무흐 드 영희(Konghee Attend L’amour De Younghee, 영희의 사랑을 기다리는 콩희)’ 등과 같은 프랑스어 노래와 ‘이삿짐 싸다가’ ‘엄마표 깻잎 김치 일곱장’ 등의 한글 가사 노래들이 공존하고 있다. 유승호(피아노), 조영덕(기타) 등 실력파 재즈 연주자들이 세션으로 참여했다. 굳이 장르적 색이 강하지 않아 프렌치 팝이나 재즈로 나눌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것은 미선 레나타의 앙칼진 목소리.

타루 ‘Blind’
‘다크사이드 오브 타루’라고 할 만한 앨범. EP ‘블라인드(Blind)’에 예전의 타루가 보여준 달콤한 음악은 없다. 앨범에 실린 ‘레이니(Rainy)’ ‘모기’ ‘나는 나를 미워해요’ ‘말했잖아요’ 네 곡은 다소 어두운 분위기를 띠고 있다. 불과 7개월 전에 발매한 3집 ‘퍼즐’은 기존 타루의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었다. 타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하긴 뮤지션이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이번 앨범을 통해 타루는 음악의 외연을 확장시켰음은 물론 한결 성숙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이로써 한희정을 시작으로 요조, 그리고 타루까지 원조 홍대 여신들은 모두 성공적인 변태(變態)를 이루게 됐다. 이제 여신은 없다.

알 켈리 ‘Black Panties’
알 켈리는 가장 성공한 흑인 뮤지션 중 한 명이자, 흑인음악 특유의 섹시함을 가장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아티스트다. 그의 자신의 음악을 통해 꾸준히 섹스를 노래해왔다. 데뷔앨범 ‘트웰브 플레이(12 Play)’부터 시작해 지독하리만큼 꾸준히 성애가를 노래해왔다.(아쉽게도 국내에는 감미로운 곡들만 알려졌지만) 검은 팬티만 입은 여성들에게 둘러싸인 알 켈리가 앨범재킷으로 실린 이 앨범은 순도 높은 성애가를 들려주고 있다. 자신을 섹스 천재라고 표현하는 ‘지니어스(Genius)’, 여성을 쿠키에 비유한 ‘쿠키(Cookie)’ 가사 내내 여성의 성기에 집착하는 ‘메리 더 푸시(Marry The Pussy)’ 등 제목부터 음란하다. 중요한 것은 역시 음악이다. 근작들에서 고전적인 소울을 들려줘온 알 켈리는 트렌디한 R&B를 통해 섹스의 농밀한 감성을 출중하게 표현하고 있다. 연인과 사랑의 대화를 나눌 때 틀어놓으면 좋은 음악. 알 켈리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선물.

O.S.T. ‘Jersey Boys’
뮤지컬 ‘저지 보이스’는 한 시대를 풍미한 미국의 보컬그룹 포시즌스의 일대기를 다룬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포시즌스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이들의 히트곡 ‘캔 테이크 마이 아이즈 오프 유(Can’t Take My Eyes Off You)’ ‘빅 걸스 돈 크라이(Big Girls Don’t Cry)’는 누구나 들으면 알 것이다. 포시즌스는 활동 당시 빌보드 싱글차트 톱40에 29곡을 진입시킬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OST 앨범에는 오리지널 곡을 충실히 재현해낸 레퍼토리가 담겼다. 포시즌스의 멤버였던 밥 고디오와 프로듀서 밥 크루가 OST 작업에 직접 참여해 완성도를 더 했다. 이 앨범의 미덕이라면 포시즌스의 주옥과 같은 음악을 다시금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캔 테이크 마이 아이즈 오프 유’를 오랜만에 들으니 새삼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 수 있는지 경외감이 든다. 이 곡 외에도 OST에는 가슴을 울리는 명곡들이 삼태기처럼 많다.

비욘세 ‘Beyonce’
우리는 지금 비욘세의 시대에 살고 있다. 비욘세의 새 앨범은 14개의 곡, 17개의 뮤직비디오로 구성돼있다. 즉, 곡보다 뮤직비디오가 더 많은 것이다. 이는 ‘나는 음악을 본다’는 주제 아래 보는 음악으로 승부를 거는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이다.(수록곡 중 두 곡은 음원으로 발표되지 않고 뮤직비디오로만 감상할 수 있다) 실제로 음반은 오디오 CD와 비주얼 DVD로 이루어져 있다.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Thriller)’와 같이 영화와 같은 뮤직비디오가 만들어진 적은 있지만 수록곡보다 더 많은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것은 이번 사례가 처음이다. 지금으로써는 최고의 팝스타인 비욘세이기 때문에 가능한 프로젝트다. 이런 프로젝트의 위험성은 영상이 음악을 먹어버릴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더라. 17개의 뮤직비디오의 30초짜리 프리뷰 영상을 차례로 보는데 영화와 같은 영상이 눈을 붙잡고, 이어 죽여주는 음악이 귀를 설레게 했다. 비욘세가 이런 초유의 프로젝트를 한 이유는 바로 음악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결과론적으로 말해서, 비욘세의 앨범 ‘비욘세(Beyonce)’는 최근 들었던 음반 중 가장 큰 임팩트를 전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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