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매우 매력적인 소재다. 분단국가란 특수성은 정치, 사회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또 국내외 정세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마구 만들어 낸다. 무엇보다 김정은의 3대 세습과 권력 재편이 아무래도 많은 영화인들의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킨 모양이다. 올해 그 경향이 두드러졌다.

올해 1월 ‘베를린’을 시작으로 ‘은밀하게 위대하게’(이하 은위), ‘동창생’ 그리고 24일 개봉을 앞둔 ‘용의자’까지 모두 북한 그리고 간첩을 소재로 다뤘다. 특히 배우도, 배경도, 이야기도 다른 4편의 영화가 기묘하게 닮아 있다는 점이 참 흥미롭다. 4편 모두 공통적으로 북한의 권력 재편을 핵심으로 다루고 있다. 이로 인해 오해를 받고, 죽거나 죽을 위기에 놓이게 된다. 한국 요원에게도 쫓기고, 북한 내 세력끼리도 싸우는 모양새다. ‘남한 vs 북한’처럼 1대1 대결보다는 더 흥미로운 구도인 것은 확실하다.

# 북한의 권력 재편과 정세 변화

‘베를린’ 하정우는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고스트’ 요원이지만, 북한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또 다른 북한 세력의 표적이 된다. 남한과 북한, 모두로부터 쫓기게 되면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은위’의 김수현은 동네 바보로 숨어 살면서 북측의 지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지만 정세 변화와 함께 사라져야만 하는 운명에 놓인다. 결국 이들을 처단하기 위해 북한에서 사람이 내려온다. ‘동창생’의 흐름은 ‘은위’와 똑같다. 물론 제대로 된 지령 한 번 없는 원류환(김수현)에 비해 리명훈(최승현)의 임무수행은 잦다. 원류환이 본다면, 참 부러워했을 법하다. 흥미로운 건 최승현에게 내려진 지령은 남한에서 활동 중인 또 다른 간첩 세력을 처리하는 임무다. 북의 권력 재편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용의자’의 공유는 지령을 기다리지 않는다. 공유가 연기한 지동철은 남한에 망명한 인물로 북한 출신 사업가의 운전기사로 일하는 중이다. 처음부터 망명한 게 아니라 북의 권력 변화에 의해 가족을 잃은 뒤 망명하게 됐다. 그러다가 국정원의 음모에 걸려 용의자로 몰린다. ‘용의자’만의 차별점이다.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 출신 요원을 여럿 거느리면서 공작을 꾸미는 자가 바로 국정원 실장(조성하)이다. 이를 통해 같은 듯 다른 이야기의 갈래를 만들어 냈다.

# 초콜릿 복근을 보여줘

영화 ‘용의자’ 스틸

하정우, 김수현, 최승현, 공유. 최정예 훈련을 받은 이들이 맞대결을 펼치면 누가 이길까. 승부를 쉽게 예측할 수 어렵다. 출신 부대와 훈련받은 곳은 다 다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혹독한 훈련을 이겨낸, 살인 병기란 점이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액션 스타일은 대동소이하다. 물론 이는 요즘 액션 영화의 트렌드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요한 건 액션 디자인이 아니라 배우들의 초콜릿 복근. 공유와 김수현은 제대로 된 복근을 선물한다. ‘눈 호강’ 제대로다.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엿보이는 순간이다. 특히 거친 남자의 냄새를 풍긴 공유의 변신이 놀랍다. 동네 바보로 위장한 덕분에 김수현의 반전 매력은 매우 돋보인다. 반면 하정우와 최승현은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꽁꽁 싸맸다.

# 가족을 위해

모두 가족을 향한 마음이 지극하다. 사실 공유의 목표는 단 하나다. 조국에게 버림받고, 남한으로 망명한 이유는 아내와 딸을 죽인 자를 찾는 거다. 그게 삶의 이유였다. 용의자로 몰리기 전까지는. 김수현과 최승현은 각각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동생을 그리워하며, 다시 만날 날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남한에서 또 다른 가족을 만든다. 김수현에겐 동네 주민이 그렇고, 최승현에겐 자신의 동생과 이름이 같은 혜인(한예리)이 존재한다. 진짜 가족 못지않게 뭉클함을 자아내지만, ‘동창생’의 경우 부족한 감정 전달이 아쉬웠다.

# 사느냐 죽느냐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왼쪽), ‘동창생’ 스틸

‘베를린’과 ‘용의자’는 생존한다. 그리고 ‘은위’와 ‘동창생’은 운명을 다한다. 이 차이는 조력자의 여부다. ‘용의자’에선 민대령(박희순)이 ‘베를린’에선 국정원 요원 정진수(한석규)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물론 민대령과 정진수도 처음엔 공유와 하정우를 쫓는 인물이다. 하지만 점차 그들을 이해하고, 도와주게 된다. 결말에서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이유다. 반면 ‘은위’와 ‘동창생’에도 조력자의 존재가 있긴 하지만 큰 영향을 미치진 못한다.

# 북한 소재에 푹 빠진 쇼박스

‘은위’, ‘동창생’ 그리고 ‘용의자’는 모두 국내 메이저 투자 배급사 중 한 곳인 쇼박스 작품이다. 2010년 ‘의형제’ 성공 이후 북한 소재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진 듯하다. ‘베를린’은 CJ E&M이 투자 배급했다. ‘베를린’이 700만을 돌파했고, ‘은위’ 또한 7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다. 하지만 ‘동창생’은 100만을 어렵사리 돌파했다. 비슷한 느낌의 영화에 피로감을 느낄지, 아니면 ‘베를린’과 ‘은위’처럼 흥행 대박 기운을 받을지 주목된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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