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기존에 밝고 발랄한 역할을 주로 맡아왔던 터라 ‘상속자들’의 은상 역할을 하는 데 갑작스러운 변신이 좀 어렵진 않았나
“아, 마지막 촬영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작품 끝나고 너무 허전하고 맘이 텅 빈 것 같아 일부러 약속 만들고 운동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안 만들려고 노력중이에요.”
SBS 드라마 ‘상속자들’ 얘기를 꺼내자 박신혜의 눈가엔 자동적으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촬영 내내 눈물은 지겹도록 흘렸을 텐데 여배우의 눈물샘은 마르지않는 호수인가보다. 그래도 은상이의 삶의 무게를 내려놓은 듯 마음은 훨씬 가벼워졌다. ‘상속자들’ 종영 후 만난 박신혜는 발랄한 20대의 생기를 가득 품고 있었다. 매 질문마다 천천히 곱씹듯 답변하는 그의 얼굴에는 이제는 더 높이 비상할 수 있는 날개를 단 듯한 자신감이 읽혔다.
박신혜: 드라마에 들어가기 전에 작가님에게 ‘지금까지의 연기는 모두 잊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간 발랄하고 통통 튀는 분위기가 많았다면 은상이는 아르바이트에 찌들어살고, 열 여덟 여고생이 가지고 있기엔 너무 힘든 상황이 많은 아이인데 그런 버거운 마음을 잘 표현해달라고 당부하시더라.
Q. ‘상속자들’은 박신혜에게 눈물 장면이 유독 많았던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박신혜: 사랑 이야기도 많았고 엄마에 대한 아픔도 많아서 늘 연기하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 그 나이 또래 여고생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똑같이 다시 한번 하지 않았나 싶다. 상황은 다르지만 나도 열 여덟살에 엄마랑도 참 많이 다투고 친구관계도 문제가 많았고, 첫 주연 맡고 연기를 하면서 부담감이나 성인에 대한 책임감을 많이 느꼈던 시기다. 그때 그 시간을 다시 한번 겪는 것 같아서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는 심적으로는 좀 힘들었던 것 같다.
Q. 은상이와 같은 열 여덟에 개인적으로 박신혜도 방황을 좀 했었나보다.
박신혜: 그 때 처음 성인 연기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혼자서 조바심도 많이 났고. 아역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고 싫었던 것 같다. 과연 성인 연기자로 가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아역 연기자 선배들을 보면서 ‘어떤 작품을 해야 성인 연기자로 잘 자리잡을 수 있을까’란 생각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실제 내 나이보다 많은 역할을 맡아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었고.(웃음)
Q. 이후 대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고민이 해소된 건가?
박신혜: 그렇진 않다. (웃음) 다만 대학에 들어가면서 ‘내게 주어진 이 시간에 학업에 열중해 보자’는 마음이 들더라. 20대 첫 걸음을 떼면서 그렇게 나름 열심히 학교를 다니며 얻은 게 많다. 하지만 그 시기에 동기였던 고아라 김범 김소은 등이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아, 나도 공부가 아니라 작품을 열심히 찾아야 하나, 나를 다시 찾아주는 사람이 있을까’하는 고민도 많았었다. 그러던 차에 MBC ‘깍두기’를 거쳐 SBS ‘미남이시네요’를 하면서 내게 잘 맞고 잘 할 수 있고 장점을 살린 작품을 만나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
Q. 극중 은상과 김탄(이민호)의 키스신이 적잖이 화제가 됐다.
박신혜: 키스신 촬영중 정말로 놀라서 내가 민호 오빠의 옷을 잡았는데 그게 카메라에 잡혔더라.(웃음) 멀뚱히 있다 감독님 지시에 따라 찍었는데 사실 경험이 부족했던 것 같다. 다시 봐도 당황한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Q. 결말에서는 탄이와 해피엔딩을 맞았는데 실제로 영도와 탄,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누굴 택하겠나
박신혜: 음…. 모든 상황을 포함한다면 잘 모르겠다. 탄이는 시댁이 엄청 드셀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난 탄이?(웃음) 내 이야기를 잘 귀기울여 들어주는 남자면 좋을 것 같다. 실제 촬영장에서는 민호 오빠가 장난을 많이 치는 스타일이라면 우빈이는 힘들 때 조용히 다독여주는 면이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른 매력을 지닌 배우들이다.(웃음)
Q. 얘기를 듣다 보니 촬영장 분위기가 무척 밝고 유쾌했나보다.
박신혜: 보통은 여배우들이 현장에서 말도 많이하고 분위기를 이끌곤 하는데 이번엔 남자배우들이 정말 셌다. 쉬는 시간에도 쉴 새 없이 서로 장난치느라 남자들의 기에 여배우들이 어쩔 줄 몰라했던 현장은 처음이었다.
Q. ‘상속자들’ OST도 부르는 등 노래에도 재능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박신혜: 노래와의 인연은 SBS ‘미남이시네요’에서 함께 연기한 정용화가 있는 FNC엔터테인먼트 한성호 대표님을 만나면서 시작됐다. 이후 MBC ‘넌 내게 반했어’ 때도 OST에 참여 하게 됐고 이번에도 기회가 주어졌다. 물론 가수분들이 훨씬 노래도 잘 부르지만 내 감정을 노래로 표현할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인 것 같다. 이제는 제작진이 굉장히 당연한 듯 ‘부를거지?’라고 물어보셔서 불렀는데 매번 창피한 느낌은 있다.
Q. ‘미남이시네요’ 이후 사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가 많은 여배우로 자리잡은 느낌도 있다.
박신혜: 음… 여배우로 지속적으로 사랑받기란 쉽지 않은 일 같다.(웃음) 새로운 얼굴도 많이 나오고, 재능이 많아 부러운 배우들도 있다. 사실 해외에서의 인기는 ‘박신혜’보다는 작품이 호응을 얻으면서 덕을 본 케이스인 것 같다. 부족한 부분을 계속 채워나가야지.
Q. 배우 박신혜의 매력인 인공미 없는 ‘자연미인’이라는 점도 크다. 성형하지 않은 덕에 자연스러운 표정 연기가 어색하지 않고 잘 와닿게 하는 것 같다.
박신혜: 예전에는 사실 코를 고치고 싶었다. 엄지손톱도 짜리뭉툭해서 ‘손가락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는데 그래도 나만이 가지고 있는 거니까, 어떤 부분은 조금 못생겼어도 나에게만 있는 자랑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Q. 올 한해를 정리해보면 배우 인생에서 가장 성과가 많았던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은데.
박신혜: 후반부터 나름대로는 약간의 모험을 했다. 오랜만에 단막극에도 출연하고, 케이블 드라마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시기에 tvN ‘이웃집 꽃미남’의 고독미라는 캐릭터를 만났다. 또 영화 ’7번방의 선물’은 우연히 만난 작품 속에서 연기할 수 있다는 기쁨도 있었고, 분량보다는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매력을 느꼈던 작품이다. ‘상속자들’을 통해서는 기존에 했던 발랄하고 힘찬 이미지에서 힘을 잠깐 빼고 내려놓고 연기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게 된 것 같다.
Q. ‘상속자들’ 인기로 인해 다양한 작품의 러브콜도 많을 것 같은데 내년 계획은 세웠나
박신혜: 상반기에는 아시아 팬과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볼까 한다. 드라마 시놉시스도 많이 읽어보고 있는데 그동안은 고등학생처럼 어리고 발랄한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직업을 지닌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제공. 솔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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