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_Glencheck_film_main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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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체크는 새로운 시대의 ‘록’ 스타다. 여기서 록을 장르로 구분하지 말기를. 이것은 자신들의 콘텐츠(음악 및 영상 등)를 나름의 방식으로 전달할 줄 아는 아티스트라는 뜻이다. 비슷한 의미로 스티브 잡스도 록 스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렌체크는 복고적인 신스 팝부터 트렌디한 일렉트로 팝에 이르기까지 청량한 사운드를 특유의 ‘쿨’한 스타일로 버무린다. 지난 EP ‘클리셰(Cliche)’부터는 영상을 만드는 그래픽 디자이너, 스타일을 꾸미는 패션 디자이너 등이 속한 크루 ‘베이스먼트 레지스탕스(Basement Resistance)’와 협업을 통해 콘텐츠를 제작했다. 결과는? 완성도 높은 음악(음반) 기발한 의상과 영상(뮤직비디오)이 ‘고퀄’로 수렴됐다. 게다가 무대에서도 잘 놀아대니, 수많은 여성 팬들이 글렌체크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 최근 정규 2집 ‘유스(Youth)’를 발매하고 파티와 연말공연 준비에 한창인 글렌체크(김준원, 강혁준)를 만났다. 멤버들이 시크(?)하고 말수가 적다는 전언이 있었는데 웬걸? 음악작업에 대해 묻자 상당히 진지한 말투로 논리정연하게 대답을 이어갔다.

Q. 앨범을 제작을 앞두고 올해 1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을 다녀왔다고 들었다.
김준원: 여행에서 아이디어를 얻곤 한다. 1집을 작업할 때에도 프랑스, 벨기에를 다녀왔었다. 이번에는 두 달 정도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 둘뿐 아니라 그래픽, 의상을 담당하는 크루(베이스먼트 레지스탕스)가 다 같이 함께 갔다. 우리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협업을 하는 것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작업을 해왔다. 지난 앨범 작업은 만족스러웠지만 팀워크에서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음악과 영상이 골고루 주목받길 바라는데 지난 앨범에서는 나머지 파트들이 음악을 포장해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협업을 하기 위해 크루를 모두 데리고 스페인으로 떠났다. 함께 여행길에 올라 같은 것에 영감을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항상 작업실에 함께 있긴 하지만, 짐을 싸고 떠나서 같은 것을 보고, 함께 적응하는 것은 또 다른 것이니까. 때문에 앨범 제작비 거의 대부분을 여행에 투자한 것이다.

Q. 글렌체크는 음악과 영상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팬들에게 센세이셔널하게 다가가는 것 같다. 그런 협업에 대한 로망은 왜 가지게 됐나?
김준원: 단순한 이유다. 글렌체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음악만 하는 밴드는 되지 말자고 정했다. 둘 다 영상, 패션 등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음악에 녹여내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크루를 만들게 됐다. 함께 모이니 이런 저런 아이디어들이 나오게 됐다.

Q. 크루 안에서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
강혁준: 이번 작업의 경우 스페인에 도착하자마나 회의를 먼저 했다. ‘유스’라는 앨범의 타이틀을 정하고 그와 관련된 키워드들을 정리했고 동시에 뮤직비디오 콘셉트, 영상 작업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김준원: 앨범의 콘셉트를 정한 다음에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콘셉트를 정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Q. ‘유스’라는 타이틀은 어떻게 정하게 됐나?
김준원: 크루에 속한 멤버들이 젊음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우리 모두가 젊지만, 정작 젊게 살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또래의 친구들과는 좀 다르게 살아온 것 같아서, 일반적인 젊은이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유스’라는 단어는 간단하지만 그 안에 어떠한 철학이 담기길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 ‘유스’를 떠올리게 하는 심볼, 사물, 지역, 키워드 등을 공유하고 그것들이 음악과 그래픽에 녹아들 수 있도록 했다. 앨범의 콘셉트가 되려면 단순히 단어의 뜻이 좋아서만은 안 된다. 단어를 통해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져서, 그것이 시각적으로 느껴져야 하고, 소리도 어느 정도 예상이 돼야 한다. 이미지와 소리가 종합이 돼 제3의 것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오길 바란다. 계획대로만 되면 재미가 없으니까.

Q. 본인들은 젊게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나? 무대 위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젊지 않나?
강혁준: 무대 위에 있는 우리보다 무대 밑에 있는 관객들이 더 젊게 느껴진다. 우리는 무대에서 일하는 거지 뭐(웃음)
김준원: 물론 무대에 있을 때가 가장 즐겁고, 좋은 에너지를 받는다. 하지만 무대 밑에 있을 때에는 꽤 빡빡한 일상을 보내는 편이다. 지금은 이사를 했지만, 최근까지 해가 들어오지 않는 지하 작업실에서 2년 반을 보냈다. 둘 다 밖에 나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지하에만 있다 보니 젊음과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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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유스’는 두 장의 CD에 총 11곡으로 구성됐다. 러닝타임을 따져보면 한 장의 CD에도 담을 수 있을 텐데 굳이 2CD로 앨범을 낸 이유가 있나?
김준원: 글렌체크로 활동해오면서 두 가지 작업 방식이 생겼다. 정규 1집 ‘Haute Couture’에서는 밴드 셋에 기반을 두고 작업을 했다. 이후 EP들을 내면서 컴퓨터 작업 방식을 터득해나갔다. 이번 앨범에서는 그 두 가지 방식을 다 시도해보고 싶었다. CD1은 기타, 건반 등 실제 악기 소리가 많이 들어갔고 CD2는 보컬을 제외한 모든 소리를 컴퓨터 한 대로 작업했다. 레코딩을 한 것(CD1)과 컴퓨터 음원(CD2)으로 작업한 것이 큰 차이라고 할까? 음악 스타일적인 면에서는 CD1이 다양한 스타일이 복합적으로 나타났다면, CD2는 디스코, 훵크 등의 특정 장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원래는 한 장의 CD에 이 곡들을 담아볼까 했는데 그렇게 하면 정리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라면 굳이 CD1을 뺀 후 CD2를 집어넣어 새로운 마음으로 음악을 듣는 행위가 요구될 것 같았다.

Q. 일렉트로 팝도 다양한 스타일이 있다. 방에서 듣는 감상용 음악과 클럽에서 듣는 댄스용 음악으로 나눠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글렌체크는 어느 쪽인가?
강혁준: 집에서 집중해서 들으면서 춤추는 거?(웃음)
김준원: 글쎄, 굳이 나누면 우리는 감상용 쪽인 것 같다. 음반으로 들을 때에는 차분하게 집중해서 들어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음악을 춤추면서 만들지 않으니 말이다.(웃음) 춤추면서 만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가령 여러 명이 모인 밴드는 합주를 하면서 곡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조심스럽게 스케치를 하면서 곡을 만들어나간다. 신나는 음악이긴 하지만 집중해서 들었을 때 우리 의도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Q. 글렌체크의 음악에는 춤을 추면서 즐기는 클럽음악적인 요소가 있지 않나?
김준원: 클럽음악은 아니다. 우리 음악은 DJ들이 틀만한 음악은 아니다. 그보다는 록밴드에 가깝다. 전자음악을 만들더라도 싱어송라이터처럼 자기 이름을 걸고 작업을 한다.

Q. 글렌체크가 다프트 펑크의 ‘Something About Us’, ‘Get Lucky’를 커버하는 영상을 봤다. ‘Get Lucky’가 담긴 다프트 펑크의 새 앨범 ‘Random Access Memories’은 올해 전 세계적으로 꽤 화제가 된 작품이다. 본인들은 어떻게 들었다.
강혁준: 우리 역시 다프트 펑크의 팬이다. 알다시피 이번 다프트 펑크의 앨범이 기존의 음악들과는 꽤 다르다. 어떻게 보면, 다프트 펑크가 기존에 했던 음악들은 우리 앨범 ‘유스’의 CD2에 해당하는 작업 방식이고, 이번 앨범 ‘Random Access Memories’는 CD1의 방식으로 한 셈이다. 난 다프트 펑크가 R&B 음악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다가 이번 앨범에서 그것을 실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Q. ‘유스’에 실린 노래 중 ‘I’ve Got This Feeling’은 글렌체크가 R&B와 훵크에 대한 로망을 담은 곡이라고 돼 있다. 하지만 이 곡은 정통 R&B와는 거리가 있지 않나? 이것은 글렌체크 나름의 표현 방식을 보여주는 것인가?
김준원: 우리는 음악을 정식으로 배운 사람들이 아니다. 때문에 어떤 스타일로 음악을 만들려고 하면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 가령 우리는 프로 연주자들처럼 소울풀한 느낌의 연주를 즉석에서 해내기는 어렵다. 대신 우리가 소울풀하다고 생각하는 소리들을 모아다가 이리저리 자르고 붙이는 작업을 반복했다. 이 곡은 정통 R&B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나름대로 표현해본 곡이다.

Q. 글렌체크에게서는 80년대의 신스팝부터 최근의 트렌디한 일렉트로 팝까지 다양한 요소가 느껴진다고들 한다. 본인들은 어떤 음악을 좋아하나?
김준원: 우리는 음악 취향이 독특한 편이 아니라서 저스티스, 세바스티앙, 제임스 블레이크 등 유행하는 팀들의 음악은 대부분 들어보는 편이다. 제임스 블레이크는 좋아하지만, 스크릴렉스는 우리 취향이 아니다. 덥스텝이라고 해도 다 같은 음악이 아니니까.(웃음) 지난 앨범을 작업할 때에는 뉴 오더, 디페시 모드, 펫 샵 보이스의 80년대 음악들을 많이 들었다.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는 80년대 말 90년대 초의 음악을 주로 들었다. 마이클 잭슨으로 설명하자면 ‘스릴러(Thriller)’보다는 ‘데인져러스(Dangerous)’를 더 많이 들었다고 할까? 프린스, 90년대 뉴 잭 스윙도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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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흔히 글렌체크의 음악은 팝송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에는 음악박람회 ‘뮤콘’을 통해 세계적인 프로듀서 스티브 릴리화이트와 함께 작업하기로 러브콜을 받았다. 해외 진출 가능성이 커진 것이 아닌가?
김준원: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영광이었다. 스티브 릴리화이트와 어떤 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질지 아직은 뚜렷하게 감이 오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 프로듀서의 지도하에 작업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우리 음악이 해외에 알려지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해외에 나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우리 둘 다 외국생활을 오래 해서 만약에 외국에서 음악을 시작하려 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한국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자는 주의다. 주변에서는 외국에 나가 활동하는 것이 더 좋지 않으냐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한국에서 음악 하는 것이 좋다.

Q. 예전엔 직접 팟캐스트 방송도 했었다. 방송 출연 제의도 꽤 들어온다고 하던데?
김준원: 팟캐스트는 우리에게 맞는 포맷을 직접 만들어보자고 시작했었다. 무엇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TV에서 할 수 없는 것들도 시도해볼 수 있고. 방송은 일정한 형식이 갖춰져 있는데 그 중에 우리에게는 맞지 않은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방송에 나가 얼굴을 알리고 유명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시간에 우리에게 맞는 콘텐츠를 하나라도 더 만드는 것이 낫다. 무언가 남길 수 있는 것, ‘알맹이’가 있는 것을 하고 싶다. 파티를 하나 하더라도 이쪽 음악 신(scene)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을 해보고 싶다.

Q. 지금 기획 중인 파티가 있나?
김준원: 오는 토요일(11월 30일)에 홍대 에이에이 디자인 뮤지엄(aA Design Museum)에서 파티를 한다. 유럽 아티스트를 국내에 소개하고자 기획했다. 우리 크루에 속한 니콜라 마손과 함께 기획한 파티다. 니콜라 마손은 어린 나이부터 프랑스에서 ‘샤이니 디스코 클럽’이란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는데 글렌체크의 파티와 프로모션도 도와주고 있다. 이 친구를 통해 그 쪽 신에서 인기 잇는 아티스트들을 데려와서 교류하려 한다.

Q. 둘이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왕성하게 음악 활동을 하게 되리라는 예상을 했나?
김준원: 물론 고등학교 때에는 음악을 업으로 할 생각은 못했다. 그때는 그냥 둘이서 취미로 기타를 치는 정도였다. 그런데 꾸준히 하다 보니 하나둘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 자취방에서 함께 모여 놀다가 데모 녹음도 해보고, 그러다보니 점점 진지해지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Q. 공연 계획은 어떻게 되나?
김준원: 올해에는 연말 단독공연이 있고 내년에는 해외 공연을 많이 할 것 같다. 3월에는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를 끼고 북미투어를 돌 계획이다. 유럽 쪽 프로모션도 기획 중이다. 연말공연에 많이 와주셨으면 좋겠다.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우리 음악이 좋으면 들어주고, 싫으면 안 들어도 된다. 음악은 즐기자고 하는 것이니까.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사운드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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