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거세당한 가족의 치명적 몸부림, 김기덕 감독의 문제작 ‘뫼비우스’다. 남편(조재현)의 외도에 증오심이 차 있던 아내(이은우)는 남편에 대한 복수로 아들(서영주)에게 ‘성기 절단’이란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집을 나간다. 남편은 자신 때문에 불행해진 아들을 위해 자신의 성기를 절단하고, 이를 아들에게 바친다. 그리고 어느 날 집을 나갔던 아내가 돌아오면서 가족은 더욱 무서운 파멸로 향해 간다. 청소년 관람불가, 5일 개봉.황성운 -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이 짓누르는 분위기, 김기덕답다. ∥ 관람지수 6 / 김기덕지수 8 / 제한상영지수 2
배선영 – 보드라워진 김기덕, 그래도 김기덕은 여전히 흥미로운 문제적 감독 ∥ 관람지수 7 / 김기덕지수 6 / 제한상영지수 0
황성운: ‘뫼비우스’를 보기 전, 몇 가지 주의 사항이 있다. 일단 놀라지 마시라. 대사가 없다. 어느 정도 없는 게 아니라 신음소리나 울음소리(사실 이마저도 많지 않다) 등을 제외하곤 전혀 없다. 온전한 단어 하나 들을 수 없다. 그렇다고 ‘어려운 영화’는 절대 아니다. 단 한 마디의 대사도 없지만 이야기 흐름은 명확하다. 그리고 손쉽게 이해되고, 간간이 웃음도 터져 나온다. 어느 순간엔 굉장히 답답하다. 대사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상황이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속 인물에게 ‘뭐라도 좋으니까 말 좀 해’라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다. 이처럼 김기덕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어려울 수 있어도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는 어렵지 않다. 또 극장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단단한 마음’을 먹어야 할 것 같다. 장면, 장면을 떠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굉장히 강하다. 시작부터 끝까지 불쾌함과 찝찝함이 가득하고, 어깨를 짓누른다. 비위가 약한 사람이거나 심신이 약한 사람 또는 임산부 등은 영화를 보면서 토할지도. 어지간한 사람 아니고는 누구나 속이 울렁거릴 듯싶다. 대사가 전혀 없다는 게 이런 분위기를 더욱 극대화시킨다. 화면만을 보고, 나만의 대사를 상상할 테니 말이다.
두 차례 제한상영가를 받은 것도 관심사다. 보통 제한상영가의 경우 성적인 것에 초점이 맞춰지기 마련이다. 더욱이 ‘뫼비우스’는 근친상간이다. 이 때문에 영화관을 찾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된다. 섹스신, 노출, 성폭행, 성기절단 등 ‘섹스’를 아우르는 요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야하다는 느낌은 그리 크지 않다. 아니 어쩌면 야하다고 느낄 시간도 없다. 가슴을 드러내고, 섹스신이 펼쳐져도 영화의 분위기는 숨 막힐 정도로 답답하다. 또 근친상간이 크게 논란이 됐지만 사실 영화를 보면 스킨 마스터베이션이 더욱 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거세당한 아들과 아빠, 두 사람은 자신의 피부를 피가 날 때까지 긁으면서 쾌락을 느낀다. 실제 그런 행위를 하는지 모르겠으나 구역질 날 정도로 거북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근친상간은 삭제된 영향도 있겠지만 어찌됐던 영화 속에선 모호한 경계선에 놓여 있는 부분이다. 단순히 근친상간 장면이 아닌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영화의 분위기만 놓고 봤을 때, 제한상영가 판정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가족은 무엇인가. 욕망은 무엇인가. 성기는 무엇인가. 가족 욕망 성기는 애초에 하나일 것이다. 내가 아버지고, 어머니가 나고, 어머니가 아버지다. 애초 인간은 욕망으로 태어나고, 욕망으로 나를 복제한다. 그렇게 우린 뫼비우스 띠처럼 하나로 연결된 것이고, 결국 내가 나를 질투하고 증오하며 사랑한다.’ 김기덕 감독이 밝힌 ‘작의’다. 서로 만나고, 인연을 맺고, 다시 환생하는. 얼핏 불교적인 것과 일맥상통한다. 아빠의 업보(성기)를 그대로 이어 받은 아들처럼. 또 불륜 대상과 엄마(또는 아내)를 1인 2역으로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내가 아버지고, 어머니가 나고, 어머니가 아버지인 것처럼. 뜬금없어 보이지만 불상과 승복을 입은 인물을 등장시킨 이유는 하나의 힌트란 생각이다. 직접적으로 들이댄 장면들이 한편으론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은유적 표현인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만 10대인 서영주는 영화를 어느정도 이해했을지 궁금하다. 연기만 봤을 땐 이해폭이 크지 않아 보인다.
배선영: 사실 김기덕의 영화는 지극히 쉽다. 연출자의 목표가 뚜렷하고, 그 뚜렷한 목표를 향해 모든 상황 설정과 쇼트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들이 달려 나간다. 돌아가는 법 없이 직선으로 곧장. 동시에 김기덕의 영화는 불편하다. 여성을 다루는 폭력적인 방식, 핏빛 낭자하는 하드코어적 요소들, 성에 대한 기이한 방식의 접근은 스산한 그의 쇼트들과 함께 불편함을 자아낸다. 김기덕에게 있어 하나의 큰 분기점에 된 ‘피에타’ 이후 선보이는 ‘뫼비우스’는 이런 김기덕적 요소를 모두 갖춘 영화인가. 그렇다. 그러나 분명한 주제를 향해 달려 나가는 김기덕의 열차 안에서 툭툭 불거져 나오던 여러 불편한 요소들이 많이 희석된 느낌이다. 김기덕 특유의 극단으로 향하는 상황에서의 쇼트들은 적절한 수준에서 ‘스톱’을 외친다. 영화 속에서 가장 불편한 지점이라 할 수 있는 스킨마스터베이션은 폭주하는 방식을 택하기는 하지만, 그 사이에도 유머러스한 지점들이 등장해 요즘 유행하는 B급 코미디를 바라보는 느낌마저 든다. 물론 이러한 느낌은 김기덕을 받아들이는 대중의 방식이 보다 친숙해지고 유연해진 덕분일 수도 있다.
‘뫼비우스’가 말하는 주제는 ‘인간을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욕망을 비우자’다. 그러니 ‘뫼비우스’의 세계에도 ‘피에타’의 강도만큼이나 불우한 괴물들이 등장한다. 오프닝에서 남편(조재현)의 불륜을 알게 된 여자(이은우)와 불륜을 들켰음에도 뻔뻔한 남자는 아이(서영주) 앞에서 엉겨 붙어 나뒹구는데, 서로의 얼굴을 발로 짓이기며 싸우는 그 모습은 흡사 풀밭에서 뒹굴며 싸우는 짐승처럼 보인다. 여자는 남편의 성기를 절단하려 칼을 들지만 실패하고, 대신 아이의 성기를 잘라버리며 또 다시 괴물이 된다. 아이를 위해 자신의 성기를 잘라 이식해주려는 아버지는 여전히 욕정을 비우지 못하고 그것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스킨 마스터베이션이라는 괴기스런 행동을 한다. 비뚤어진 방식의 욕망의 충족과 어긋난 사랑의 표현으로 모두가 괴물이 됐다. 영화의 결말은 그런 욕망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괴물은 폭주해 결국은 파멸하고, 그 지긋한 끈을 잘라버린 인간이 구원받는다는 식의 예상 가능한 범주로 흘러간다. 그래도 ‘피에타’에서 자본이 잠식한 사회를 향해 날을 세운 김기덕 감독의 시선이 철저히 개인의 욕망으로 옮겨진 점은 흥미롭다. ‘피에타’는 김기덕에게 확실히 하나의 치유제 역할을 한 듯하다.
또 하나 ‘뫼비우스’의 기록할 만한 것은 배우들의 연기에 있어 대사가 일절 없다는 점이다. 간혹 등장하는 신음소리 외에 단 한 단어도 배우들의 입 밖에서 새어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백이 배우들의 연기와 직접적인 카메라 구도로 빼곡히 채워졌다. 주제에 너무나 종속돼버려 식상한 문어체 대사들로 가득 찼던 ‘피에타’를 생각해보면 ‘뫼비우스’의 이런 선택은 영리했다고 본다. ‘피에타’ 혹은 ‘피에타’가 받은 베니스의 황금사자상(후자 쪽에 더욱 가깝겠지만)은 대중이 김기덕을 보다 친숙하게 생각하고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 전보다 김기덕을 따뜻하게 바라보게 된 대중이 그의 신작 ‘뫼비우스’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무척 궁금하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배선영 sypov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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