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이야기 하나.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98년에 크라잉넛의 클럽공연을 보기 위해 전주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에 올랐던 기억이 난다. 가까스로 도착한 홍대입구역에서 또 헤매고 헤매 라이브클럽 ‘드럭’을 찾는 데에만 세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의 보람은 있었다. 크라잉넛이 ‘말달리자’를 연주하는 모습을 직접 봤으니까. 그곳은 별천지였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 하나. 그로부터 3년 전인 1995년. 수능을 마친 일곱 명의 청년들은 음악잡지 ‘핫뮤직’에서 본 헤비메탈 클럽 ‘록월드’를 찾아 홍대에 갔다. 아무리 헤매도 록월드는 나오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드럭이란 간판을 발견했다. 드럭에서 ‘토마토’의 공연을 재밌게 본 후 돌아가려는데 한 남자가 “너희는 뭐하는 놈들이냐”고 물어봐 “우리도 밴드 해요”라고 대답했다. 삐삐번호를 알려주자 몇 달 뒤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일곱 명 중 세 명은 일이 있어 빠지고 나머지 네 명만 드럭에 갔다. 노래를 몇 곡 하자 이석문 드럭 대표는 한숨을 쉬더니 담배에 불을 붙였다. 포지션도 딱히 정해지지 않은 ‘초짜’ 밴드였다. 결국 잘 생긴 박윤식은 보컬을, 액션이 좋은 한경록은 베이스를, 기타를 제일 잘 친 이상면은 기타를, 이상혁은 원래대로 드럼을 맡았다. 크라잉넛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2013년, 크라잉넛도 이제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향해 가고 있다. 조선펑크의 발화점, 왕, 대부, 큰형님 등 수식어도 많다. ‘경록절’(한경록 생일)은 홍대의 명절이 됐다. 만약에 크라잉넛이 드럭이 아닌 록월드를 제대로 찾아갔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지금과는 많은 것이 다르리라.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시간에도 크라잉넛이 어디선가 공연하고 있을 거라는 것. ‘불타는 땅콩’이라는 제목의 새 앨범 〈Flaming Nut〉으로 돌아온 크라잉넛을 13일 만났다.

Q. 한경록은 최근 하모니카 배우고 있다고 했는데 좀 진전이 있나? 차기작에서 하모니카를 불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경록: 진도가 잘 안 나간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연주하는 정도다. (김인수를 가리키며) 잘 연주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내가 굳이 할 필요는 없다.(웃음)

Q. 박윤식은 최근 결혼을 했다. 밴드 생활에 변화는 없나? 여성 팬들의 반응이 소원해졌다든지?
박윤식: 축하를 받은 것 말고는 별로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이상혁: 결혼한다고 바로 인기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더라. 그런데 쥐도 새도 모르게 떨어지지. 걷잡을 수 없이.
한경록: 윤식이가 결혼했다고 내 인기가 늘어난 것 같지는 않다.

Q. 한경록은 멤버 중 유일하게 총각인데 결혼 계획 없나?
한경록: ‘결혼 계획’이라는 말이 웃기다.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하는 게 맞지. 먼저 계획한다고 맘대로 되나? 그냥 재밌는 밴드에 충실할 뿐이다. 슬슬 하긴 해야겠지.

Q. 데뷔 18주년에 7집 〈Flaming Nut〉이 나왔다. 그동안의 앨범 발매 주기로 봤을 때 이번 앨범은 30대에 내는 마지막 정규앨범이 될 수도 있다. 30대를 돌아보면 어떤가?
한경록: 나이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없다. 우리는 그냥 처음 만났을 때처럼 같이 놀고 있다. 나이 든다고 술을 줄이는 것도 아니고. 최근에는 술을 계속 마시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무대에서 관객들과 어우러지는 맛은 점점 더 커져가는 것 같다.
이상혁: 30대를 별로 돌아보고 싶지도 않고, 40대가 되는 것에 대해 별 의미를 두고 싶지도 않다. 우리는 여태껏 방향을 정해놓고 간 적이 없다. 이번 앨범의 경우에도 작업을 시작할 때 콘셉트조차 잡지 않았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만들고 녹음했다. 새 앨범을 계기로 더 재밌어 질 것 같다.

Q. 김인수는 멤버 중에 유일하게 40대에 접어들었다. 소감이 어떤가?
김인수: 정차식에게 물어봐라.

Q. 새 앨범 이름이 한국말로 ‘불타는 땅콩’이다. 팀 이름은 ‘우는 땅콩’이다. 호두과자를 사먹고 차비가 없어서 걷다가 울었던 상황에서 팀 이름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누구의 경험담인가?
이상혁: 그 이름을 만든 친구는 지금 크라잉넛 멤버가 아니다. 크라잉넛이 원래는 일곱 명이었다. 그때까지는 밴드라기보다는 맨날 같이 모여 노는 음악 좋아하는 친구들이었다. 지금은 팀에 없지만 당시 베이스를 연주하던 친구가 팀 이름을 만들었다.
박윤식: 1993년 고등학교 때 일이다.
이상면: 재밌는 친구였다. 지금은 강원도에 살고 있다.

Q. 베이스를 연주하던 멤버가 팀 이름을 만들고 밴드를 나가다니. 마치 비틀즈(팀 이름을 만든 베이스 연주자 스튜어트 섯클리프가 탈퇴)의 일화가 떠오른다.
이상혁: 낄낄거리며 같이 걷다가 “호두과자 때문에 망했다. 크라잉 너트다”라고 말해서 이름이 나왔다. 우리가 한창 얼터너티브 록을 좋아하던 시절이었는데 ‘스크리밍 트리스, 스매싱 펌킨스’와 같은 이름이 유행했다. 그래서 크라잉넛의 어감이 맘에 들었다. 그런데 한 외국인이 우리 이름을 듣더니 멋지다고 말하더라. 크라잉(crying)은 ‘우는’ 외에 ‘미친’이란 뜻이 있고, 넛(nut)은 여러 개의 뜻이 있다. 땅콩, 광인, 성기 등등.



Q. 그렇다면 새 앨범 제목은 무슨 뜻인가?
이상면: 불타는 성기!
한경록: 앨범재킷에서 보이듯이 화끈하게 불타고 있다. 여름 느낌도 나는 것 같다. 뜨거운 여름을 땅콩들과 달려보자!

Q. 새 앨범을 내자는 이야기는 언제 나왔나?
이상혁: 작년 공연에서 “올해 안에 앨범을 낸다”고 말했는데 자꾸 늦어졌다.
박윤식: 아무리 늦어도 6월에는 내는 것으로 하고 배수진을 치고 만들었다.

Q. 여태까지 레코딩한 노래가 총 몇 곡인지 아나?
김웅 드럭레코드 대표: 정규앨범에 OST, 월드컵 기념 앨범 등 각종 컴필레이션 앨범을 합치면 100곡이 넘을 것이다.

Q. 그렇게 많은 곡이 쌓였으면 신곡을 작업하는데 있어서 뭔가 다른 것을 해봐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겠다.
한경록: 그런 생각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조금 재미없다고 생각되는 곡들은 시간을 충분히 갖고 다듬는다. 좋은 가사, 멜로디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Q. 새 앨범 타이틀곡 ‘Give Me The Money’는 랩이라면 랩도 들어간다. 도입부에는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가 떠오르기도 하더라.
이상혁: 랩까지는 아니고.(웃음) 장난으로 우쿨렐레를 연주하다가 멜로디가 나왔다. 이 노래 만들 때 정말 보릿고개라 돈이 없었다. 울컥한 마음에 만들었다. 요새 삶이 힘든 젊은이들을 위한 책, 강의가 많은데 정작 돈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나.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을 갖게 해주던지.
박윤식: 돈이 필요하다. 돈을 내놔라!

Q. 이 노래에서 우쿨렐레는 이상면이 아니라 이상혁이 연주했나?
이상혁: 내가 기타리스트는 아니지만, 그 연주의 느낌이 좋았다.
이상면: 내가 연주했으면 그런 느낌이 안 났을 거다.

Q. 새 앨범 첫 곡이 ‘해적의 항로’다. 해적을 동경하나?
한경록: 해적의 이미지를 좋아한다. 우리가 정도(正道)를 걷는 이들은 아니니까. 악당은 아니지만 적당히 비뚤어졌다.

Q. 크라잉넛과 해적의 공통점은 술을 많이 먹는다?
박윤식: 그렇다. 우리는 여기저기 술 우물을 찾아다닌다.

Q. 매 앨범마다 술과 관련된 노래들이 있다. 이번 앨범에는 ‘취생몽사’가 있다.
한경록: 최근 영화 〈동사서독〉을 다시 봤는데 영화 속에 과거를 잊을 수 있는 술이 나온다. 그 술 이름이 취생몽사다. 영화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데, 마실 때마다 생각이 난다. 노래 가사도 잊을 수만 있다면 마셔보자는 진지한 이야기다.

Q. 크라잉넛의 과거 곡에서 술 이야기도 많이 나오지만 ‘취생몽사’와 같은 리듬은 많이 나온다.
이상혁: 크라잉넛이 가장 자신 있는 리듬이 ‘폴카’다. 유럽 쪽의 민족음악을 좋아해서 폴카 리듬이 감초처럼 자연스럽게 나오곤 한다. ‘서커스 매직 유랑단’ ‘가배물어’ ‘만취천국’ 등이 폴카다.

Q. 그런 ‘폴카’ 스타일은 어떻게 차용하게 됐나?
이상면: 처음에는 펑크록을 주로 들었다가 인수 형이 정식 멤버로 들어오면서 다양한 음악을 소개해줬다. 우물 안에 있던 개구리가 갑자기 황소개구리가 된 것이다.

Q. ‘여름’도 이국적인 멜로디가 들린다. 이탈리아 칸초네 같더라.
김인수: 그건 멕시코 음악을 차용한 거다. 작년에 북미투어를 갔을 때 멕시코 사람들을 만나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예전에는 흑인, 아시아인들이 3D 업종에서 일했는데 이번에 가보니 히스패닉들이 그렇더라. 그런데 어렵게 사는 멕시코사람들이 마음에 여유가 있어 보이더라. 그들에게서 느낀 낙천성이 음악에 담겼다.

Q. ‘새 신발’에는 멤버들의 목소리 화음이 멋지다. 이런 화음이 크라잉넛 장점 중 하나가 아닐까?
이상혁: 화음은 녹음할 때 특히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다.

Q. 예전 앨범 중에는 ‘다 죽자’의 화음이 멋졌다. 공연 때 주 레퍼토리 중 하나인데.
이상혁: 그 노래에 화음이 있었나?
박윤식: 화음 엄청났지. 그런데 레코딩하던 엔지니어가 실수로 보컬 화음 반쪽을 날려버렸다.
한경록: 내가 부른 노래이지만 민망해서 다시 안 듣는다. 창피해.(웃음)

Q. 예전 곡 중 ‘룩셈부르크’를 들었을 때 이 노래는 크라잉넛이 아니면 절대로 못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한경록: 후크송 개념도 없었던 시절에 나온 곡이다. 의도된 바 없이 우연히 재미로 나온 곡이다.

Q. 새 앨범에서는 땅콩이 가장 헤비하다. ‘캐슈넛 헤이즐넛 파인넛 크라잉넛 호두 아몬드 잣 같은 땅콩들’이란 가사에 크라잉넛 특유의 유머가 잘 살아있는 곡이다.
이상혁: ‘잣 같은 땅콩’으로 시작해서 가사를 다 썼다. 가사에 대한 밑그림과 드라이브한 노래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따로 놀다가 하나로 합쳐져서 탄생한 곡이다.



Q. 7집에서 새롭게 시도해본 것이 있다면?
한경록: 타이틀곡 ‘Give Me The Money’를 만들 때 정말 즐거웠다. ‘레고’에서는 전자음도 써보고, 그런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시도들이 재밌었다.

Q. 크라잉넛 식의 희망가라 할 수 있는 ‘5분 세탁’의 가사를 보면 누구나 한 번은 바닥을 친다는 가사가 나온다. 크라잉넛이 바닥을 쳤을 때는 언제였나?
이상혁: 시작이 바닥이었다. 관객 두세 명 앉혀놓고 공연할 때 말이다.

Q. 가장 영광의 순간은?
박윤식: 언제나 지금!
이상면: 공연하는 매 순간이다. 크고 작은 공연에서 모두 희열을 느낀다.
한경록: 이번 앨범 발매 기념 공연에서 신곡을 처음 들려드리는데 혹시라도 따라 부르는 관객들이 있으면 그게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이상면: 그런데 우리가 가사를 틀리면 어쩌지?
한경록: 그때 바닥을 치는 거지.

Q. 혹시 공연을 여태껏 몇 번 했는지 헤아릴 수 있나?
일동: 셀 수 없다.
한경록: 작년에는 144번 했다. 내가 세어봤다. 이제까지 1,500번은 너끈히 했을 거다.

Q. 공연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나?
이상혁: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있고 관객들 반응이 저조할 때는 당황스럽기도 한데 지겹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Q. 크라잉넛은 바쁜 일정 가운데 브랜드 공연 ‘크라잉넛쇼’를 홍대 클럽에서 꾸준히 열고 있다. 신인부터 인디 신의 스타들까지 다양한 게스트도 나와서 회자가 된다. 이제는 크라잉넛을 상징하는 공연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한경록: 2005년에 제대 후 연말공연을 기획하다가 ‘크라잉넛쇼’라는 이름을 쓰게 됐다. 벌써 8년이 됐다. 클럽은 우리의 뿌리다. 인디 신에서 시작했다가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면 클럽공연을 안 하는 팀들이 있다. 클럽공연을 많이 하면 콘서트 때 사람이 안 올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클럽 공연이 재밌고 관객들과 가까이 볼 수 있어서 좋다. 크라잉넛쇼를 통해 신인을 소개하는 장을 마련해보고 싶기도 했다.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과 교류도 하고 뒤풀이도 재밌다. 나중에는 록페스티벌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상혁: 관객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 다른 밴드와 함께 공연을 하면 팬들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다. 팬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이다.
이상면: 후배들이 가장 나가고 싶은 공연 중 하나가 ‘크라잉넛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꾸준히 오래 해온 것이 좋은 결과를 나은 것 같다.

Q. 어떤 뮤지션들이 ‘크라잉넛쇼’에 게스트로 나왔나? 즐거운 일들이 많았겠다.
일동: 김창완 밴드, 강산에, 갤럭시 익스프레스, 국카스텐, 칵스,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등등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Q. 인디 신의 최고 고참으로서 요새 눈 여겨 보는 신인이 있다면?
한경록: 갤럭시 익스프레스 다음으로 야성적인 밴드는 아시안 체어샷이다. 날 것 같은 느낌이 좋더라. 최근 블루스 뮤지션들이 많이 나오는데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의 유머가 있는 음악이 좋더라.



Q. 한경록의 생일인 ‘경록절’에도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얼마나 오나?
한경록: 술에 취해서 얼마나 오는지 집계는 못한다. 150석 정도 되는 가게에 사람들이 로테이션으로 도니까 350명은 넘게 오는 것 같다. 제대 후부터 생일잔치를 크게 벌였는데 음악 하는 친구들을 초대하면 밴드들이 다 오다보니 점점 커졌다. 공연도 하고, 즉석 잼세션이 벌어지기도 한다.

Q. 공연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이상혁: 록페스티벌은 다 감동인데 그 중에… 뭐였지? 관객들이 음식을 들고 막 달려온 공연.
한경록: 2007년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었다. 원래는 마지막에 하는 ‘말달리자’를 첫 곡으로 했다. 그랬더니 뒤에서 음식을 먹던 관객들까지 모두가 무대로 뛰어오는 거다. 무대에서 내려다보니 회오리바람이 생길 정도였다.
이상면: 마치 꼬챙이를 든 오랑캐들이 쳐들어오는 것 같았지.
박윤식: 2002년 월드컵 축하무대 때에는 10만 명 관객이 앞에 있는데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마침 이탈리아 전을 이겨서 더 난리가 났었다. 홍대로 돌아가 계속 마셨다!

Q. 크라잉넛은 술에 대한 비화도 많다. 안 쉬고 가장 오랫동안 술을 마신 적은 언제인가?
박윤식: 작년에 ‘서울소닉’으로 북미투어를 갔을 때 40일간 하루도 안 쉬고 술을 마셨다. 첫 날 엄청나게 마시고 점점 페이스가 다운될 줄 알았는데 결국 마지막 날까지 쉬지 않고 마셨다.

Q. 작년에는 ‘서울소닉’을 통해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캐네디언 뮤직 페스티벌’ 등에 참여했다. 현지인들 사이에서 공연을 해보니 어떻던가?
한경록: 실력 있는 팀들은 당연히 많은데, 의외로 못하는 팀도 적지 않더라. 그런데 잘한다고 뽐내지 않고, 못한다고 기죽지 않는 모습, 다같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너무 즐거웠다. 더 넓은 인디가 있다는 것을 보고 왔지.

Q. 작년 홍대에서 열린 ‘잔다리 페스타’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노브레인과 한 무대에서 공연했다.
박윤식: 아마도 제대 후 처음으로 같이 클럽 무대에 선 걸 거다. 랜시드와 NOFX가 노래를 바꿔서 부르는 것처럼 곡을 바꿔서 불렀다. 우리가 ‘넌 내게 반했어’를 노래하니까 다들 좋아하더라.

Q. 홍대 인디 신을 오랫동안 지켜오고 있다. 지겹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이상면: 홍대는 우리가 사는 곳이다.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지겹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최근에는 댄스클럽들이 많이 생기면서 지저분해진 느낌은 있다. 자본이 유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흐른 것 같은데… 언젠간 거품이 걷히리라 믿는다.

Q. 이상혁은 ‘말달리자’를 어떻게 만들었나?
박윤식: 기억나?
이상혁: 사춘기 때에는 뭔가 툭 건드리면 싸울 것 같은 반항심이 있지 않나? 구체적인 이유가 없어도 말이다. 일단은 달리자!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대학교 1~2학년 때에 만들었다.

Q. 크라잉넛은 ‘말달리자’를 시작으로 홍대에 펑크록 붐을 일으켜 한국 인디 신의 꽃을 피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어깨에 큰 짐이 지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이상혁: 대부, 큰형님 이런 거창한 말보다는, 그냥 인디 신을 행복하게 바라보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Q. 내후년에는 20주년을 맞는다. 특별한 계획이 있나?
일동: “우리가 95학번인데, 95년생들이 대학생이 되겠다.” “우리 데뷔할 때 태어난 아이들이 우리 공연을 보러 올 수도 있겠구나.” “2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강산에 형은 안 늙는다.” “20주년에는 기념공연 하지 말고 여행을 가자.” “남극으로 가자. 펭귄이랑 노는 거야!”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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