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뜻밖이다. 187cm에 79kg이라는 생각보다 우람한 체격에, 금방이라도 뉴스 멘트를 던질 것만 같은 외모에, 그리고 무슨 말을 해도 믿음이 갈법한 신뢰감 어린 목소리에, 이런 위트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종합편성채널 JTBC 아나운서이자 최근 ‘시트콩 로얄빌라’로 숨겨왔던 개그 본능을 마음껏 뽐내고 있는 장성규. 2011년 MBC ‘신입사원’에 출연했을 때부터 ‘될성부른 떡잎’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던 그는 ‘미각스캔들’, ‘김국진의 현장박치기’, ‘남자의 그 물건’, ‘시트콩 로얄빌라’ 등의 프로그램에 이름을 올리며 소리 없이 강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개그감만 있는 것도 아니다. 3년 차 아나운서다운 탄탄한 기본기에 겸손함과 적절한 야망도 갖췄다. 아나운서의 이미지로도 감출 수 없는 의외성의 매력, 이 남자 조만간 한 건 할 것 같다.Q. 아나운서로서 ‘시트콩 로얄빌라’에 출연하기가 쉽지는 않았겠다. 장르의 문제를 떠나서 개그를 선보여야 하는 부담감도 있었을 테고.
장성규: 김석윤 CP가 “시청자들이 ‘아나운서가 왜 저기에서 저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도 미안해지고 너도 자괴감에 빠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개그에 대한 고민보다도 오버 연기를 하지 않으면서 나만의 색깔을 드러낼 방법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Q. ‘시트콩 로얄빌라’ 속 코너 ‘신세계’에서 베테랑 개그맨들과 함께 있는 데도 위화감이 없더라. 감이 굉장히 좋다고 느꼈다.
장성규: 어릴 적에 교회에서 콩트로 무대에 선 적이 있다. 내가 의도한 포인트에서 사람들이 웃어줄 때의 그 짜릿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나운서로 데뷔했지만, 그때와 같은 기분을 방송을 통해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갖고 있었다. ‘신세계’에서도 내가 의도한 부분에서 웃음이 터지는 게 기뻤고 무척 보람을 느꼈다.
Q. 프로그램 덕을 본 것 같기도 하다(웃음). ‘시트콩 로얄빌라’가 사회풍자나 시사성이 녹아있는 프로그램이라 당신의 멘트 전달력이 돋보였다.
장성규: 김석윤 CP가 “네가 다른 개그맨처럼 망가지면 시청자 입장에서는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했다. 아나운서로서 능력과 개그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게 숙제였다. 회를 거듭하면서 어느 정도 나만의 캐릭터를 잡는 데 성공한 것 같아서 기쁘다. 다만 ‘시트콩 로얄빌라’의 페이소스나 사회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시청자들에게 큰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Q. 주변 반응은 어땠나.
장성규: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 정말 ‘시트콩 로얄빌라’ 팀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이 항상 뉴스만 하기를 바라는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반응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웃음).
Q. 사실 아나운서에게 이미지는 상당히 중요하지 않나.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을 수는 있겠지만, 가벼운 이미지가 굳어질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
장성규: 얼마 전에 JTBC 손석희 사장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너는 지금 네가 원하는 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을 거다. 다만 10년 뒤에 정통 언론인 길을 걷고자 할지라도 지금의 활동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하라.” 나는 방송 나이로 따지면 걸음마도 못 뗀 아이와 같다. 입사할 때 다짐한 것은 ‘앞으로 5년간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하자’는 거였다(웃음). 지금 나에게는 어떤 활동이든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거다. 가벼운 사람으로 비치는 건 속상한 일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진정한 내 모습이 드러날 거라고 믿는다.
Q. 일반적인 아나운서와는 조금 다른 면면은 JTBC ‘미각스캔들’, ‘김국진의 현장박치기’(이하 ‘현장박치기’) 등의 프로그램에서부터 발군이었다.
장성규: ‘현장박치기’는 내게 의미가 깊은 프로그램이다. 원래 처음에 투입될 때만 해도 중간에 멘트만 잠깐 하는 정도로 분량이 적었다. 그때는 예능 욕심이 컸던 터라 욕심을 부리다가 큰코다쳤다(웃음). 의욕이 앞서서 첫 방송 때 오버 연기를 하게 됐고, 그 결과 재녹화까지 하게 됐다. 이후 ‘표정은 점잖게 아나운서처럼 가자’는 마음으로 리액션, 받아치는 멘트 등에서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는데, 어느 날 윗선에서 ‘재미있다. 분량 좀 늘려보자’ 해서 마지막 회까지 함께하게 된 거다. 방송 분량이 늘어난 것도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방향대로 무언가를 개척해냈다는 성취감을 느꼈다. 그 일련의 과정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찍고 난 뒤의 느낌과 같았달까(웃음).
Q. ‘현장박치기’ 마지막 회에서 눈물을 글썽거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훤하다.
장성규: 마지막 회까지 와서야 ‘현장박치기’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가슴 깊이 와 닿더라. 방송 분량이 늘어나면서 약간의 매너리즘과 슬럼프가 왔는데 마지막 순간이 되니 처음 마음처럼 뜨겁게 촬영에 임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처음 촬영할 때만 해도 카메라 한 대 대동해서 부산에 홀로 내려가 40시간 이상씩 촬영하면서도 즐거웠었기 때문이다. ‘현장박치기’는 나에게 초심의 중요성을 깨우쳐 준 소중한 프로그램이다.
Q. ‘현장박치기’에서 ‘시트콩 로얄빌라’까지 당신이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해나갈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장성규: 너무 멀리 보지 않는 것?(웃음) 5년 뒤, 10년 뒤를 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정말 나는 오늘을 제대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 다만 간절함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너무 간절한 마음으로 방송에 임하면 나도 모르게 오버 연기가 나온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간절함을 대본 읽고 준비하는 시간에 쏟았더니 대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서 자연스레 애드리브도 나오고 그러더라. 내 안에 잠재된 능력을 깨우는 새로운 방법을 배운 것 같다.
Q. 최근에는 롤 모델로 전현무를 꼽았고, 또 예전에는 김성주, 유재석을 롤 모델로 꼽기도 했다. 그들을 롤 모델로 꼽는 이유가 있나.
장성규: 롤 모델은 일부러 매번 다른 분들을 이야기하고 있다(웃음). 사실 예전에 별생각 없이 TV를 볼 때는 방송 활동하는 분들이 웃고 놀면서 쉽게 돈 버는 것 같아서 부러운 마음뿐이었다. 근데 방송을 시작하면서 직업적인 관점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모니터하다 보니 모든 분에게 배울 점이 있더라.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처럼 아나운서를 준비할 때는 김성주만 눈에 들어왔고, 진행을 맡을 때는 유재석,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면서부터는 전현무의 재치 있는 진행을 유심히 보게 됐다.
Q. 다방면에 뛰어난 것도 중요하지만, 점점 독특한 색깔이 없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이 세상을 헤쳐나갈 당신만의 무기는 무엇인가.
장성규: 뉴스, 교양 프로그램, 예능 프로그램, 연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해봤는데 진행할 때가 가장 행복하더라(웃음). 어릴 적 TV를 보며 동경했던 스타들과 한 화면에서 호흡할 수 있다는 게 아직도 꿈만 같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내가 나왔을 때 보시는 분들이 자연스레 미소를 짓게 되는 MC가 되고 싶다. 꾸밈없는 모습으로 나와도 ‘저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 진행자를 꿈꾸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방송을 보니 자신의 무기를 알고 제대로 휘두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아직 어떤 것이 나의 무기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진중함 속에 나오는 숨길 수 없는 위트, 이 의외성이 나의 무기라고 생각한다(웃음).
Q. 그 의외성이 당신의 장밋빛 미래를 보장할 무기가 되리라 확신하는가(웃음).
장성규: 내 자랑 같아서 부끄럽지만, 김석윤 CP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다른 연기자가 말하는 것과 네가 말하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기본기가 갖춰져서 그런지 멘트 하나에도 묵직한 울림이 있다.” 전형적인 아나운서의 이미지인데도 의외성이 있으니 개그맨이 하면 피식하고 말만 한 멘트도 내가 하면 크게 웃게 된다. 내가 확인해본 결과, 나와 같은 캐릭터는 아직 없는 것 같다(웃음). 나 같은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 한 꽤 오랜 시간 이 의외성의 내게는 큰 무기가 될 거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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