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 등 오디션 리얼리티 쇼가 화제를 모으면서 1980-90년대, 이른바 ‘8090’ 음악들이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나가수’ 방송 다음날인 지난 5월 30일 국내 주요 음원 사이트 중 하나인 멜론에 따르면 실시간 음원차트 1위는 옥주현이 지난 5월 29일 ‘나가수’에서 부른 이승환의 ‘천일동안’(1995), 4위는 지난 5월 22일 ‘나가수’에서 김연우가 부른 김장훈의 ‘나와 같다면’(1998), 9위는 같은 날 김범수가 부른 조관우의 ‘늪’(1994)이다. 8090 음악들이 ‘나가수’를 통해 2NE1, 비스트, 씨스타19 등 신곡을 발표한 아이돌 가수와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m.net 에서 장재인이 부른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등이 인기를 얻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붐과 함께 8090 음악들이 차트에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8090 음악의 인기는 단지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 됐기 때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천일동안’, ‘늪’, ‘나와 같다면’ 등은 이미 십 수 년의 시간을 거쳐 명곡으로 인정받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끼는 노래들이다. 원래 좋은 곡들이 ‘나가수’ 등을 통해 새로운 목소리와 편곡으로 만들어지면서 대중이 다시금 이 노래를 듣게 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8090 노래를 잘 모를 수 있는 지금의 10대들은 요즘의 신곡보다 오히려 더 뛰어난 완성도의 명곡들을 일주일에 몇 곡씩 듣게 되는 셈이다. 지난 2007년 KBS ‘불후의 명곡’이 명곡을 소개하고, 다시 부르는 정도에 그쳤다면 음악 자체를 새롭게 꾸미면서 전 세대에 다가갈 수 있는 리얼리티 쇼는 8090 음악 듣기를 하나의 트렌드나 취향으로 만들 수 있다. 탄탄한 멜로디를 가진 곡들이 21세기에 완성도 높은 편곡으로 재탄생하면서 요즘 노래보다 더 와 닿는 음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은 셈이다.
‘나가수’의 진짜 승자는 8090 노래들
‘나가수’의 진짜 승자는 8090 노래들
특히 예능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8090 음악의 유행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틈새를 파고든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국은 라디오에서조차 젊은 층이 10-20년 전 음악을 듣기 쉽지 않다. 기댈 곳은 심야 음악 전문 프로그램 정도가 전부다. MBC , SBS , MBC 에브리원 등 밴드 라이브를 기반으로 한 음악 프로그램도 대부분 사라지면서 라이브 사운드를 들을 기회도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나가수’ 등 오디션 리얼리티 쇼가 8090 음악을 들고 나오면서 대중에게 노래들이 새롭게 소개된다. 유행에 따라 거의 과거와의 단절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전 세대의 음악들이 후대에 이어지지 않는 한국에서 미약하나마 음악적 연결고리가 생길 가능성이 만들어진 셈이다.
‘나가수’의 진짜 승자는 8090 노래들
‘나가수’의 진짜 승자는 8090 노래들
8090 음악과 21세기의 연결은 장기적으로 음악 시장의 변화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29일 ‘나가수’에서 윤도현은 1980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차지한 마그마의 ‘해야’를 선곡하며 “이 노래가 YB가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했다. 박정현 역시 故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를 부르며 이 노래가 음악의 중요성을 상기시켜준다고 했다. 뮤지션들은 과거의 노래에서 영향을 받아 현재의 음악을 만든다. 대중 역시 8090, 더 나아가서는 그 이전 시대의 음악을 들으며 음악을 듣는 취향과 감성을 보다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서구권에서 시대와 별개로 1950-60년대 음악의 영향을 받은 뮤지션들이 나오는 이유도 음악의 연속성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나가수 ’ 등을 통한 8090 음악의 소비는 과거에 이 음악들을 들었던 대중의 수요는 물론, 밴드 위주의 음악에 대한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했고, 동시에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편곡으로 세대 간의 감성을 잇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작된 붐이지만, ‘고전 다시 듣기’라 해도 좋을 8090 음악 듣기가 가요계를 보다 다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까.

글. 한여울 기자 sixte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