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훈의 섬뜩한 얼굴과 광기 어린 표정
'악의 꽃', '발레리나', '이재, 곧'까지 연속적인 악인
이제는 변화를 줘야 하는 시기 아닐까
사진=티빙 '이재, 곧 죽습니다' 스틸컷.
사진=티빙 '이재, 곧 죽습니다' 스틸컷.
길게 늘어뜨린 장발, 무력한 듯 풀린 눈동자 사이로 은은하게 비치는 광기, 피비린내가 풍겨오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까지. 배우 김지훈은 tvN 드라마 '악의 꽃'(2020)의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 백희성 역으로 자신이 지닌 이미지의 틀을 깨는 도전을 시도했다. 백희성은 사고로 인해 15년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다가 깨어난 뒤, 자신의 잠들어있던 살인 본능이 깨어나며 동시에 '악의 꽃'의 미스터리한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아마도 대중들이 김지훈의 백희성에 놀란 이유는 창백한 얼굴 위로 보이는 형용할 수 없는 섬뜩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MBC '얼마나 좋길래'(2006), tvN '이웃집 꽃미남'(2013), SBS '결혼의 여신'(2013), MBC '왔다! 장보리'(2014) 등에 출연했던 김지훈은 그간 엄친아, 대기업 부사장과 같은 역할로 주말드라마에 얼굴을 비췄다. 그런 김지훈의 서글서글한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질적인 느낌의 한 사내가 나타난 것이다.

'악의 꽃'을 시작으로 넷플릭스 영화 '발레리나'(2023), TVING '이재, 곧 죽습니다'(2023)에 출연하며 김지훈은 자신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필시 배우에게 익숙했던 이미지를 탈피하고 완전히 방향을 꺾어 시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테지만, 김지훈은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진=tvN '악의 꽃' 방송 캡처본.
사진=tvN '악의 꽃' 방송 캡처본.
영화 '발레리나' 스틸컷. /사진제공=넷플릭스
영화 '발레리나' 스틸컷. /사진제공=넷플릭스
'이재, 곧 죽습니다' 속 김지훈은 인간의 목숨이나 가치를 하찮고 같잖은 것으로 치부하는 소시오패스 재벌 박태우 역을 맡아 최이재(서인국)이 지닌 감정의 방아쇠를 당겨지는 시발점이 되어줬다. 특히, 에피소드 4화에서는 최이재의 7번째 삶이자 죽음인 장건우(이도현)와 최이재의 오랜 여자친구였던 이지수(고윤정)을 향해 가차 없이 차량을 돌진하는 무자비함을 보여줬다. 이지수의 시신 앞에서 "죽은 모습이 꼭 마리오네트 같군"이라며 툭 내뱉는 대사는 인간적인 면모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공포감을 조성했다.

에피소드 6화에서는 김지훈과 최이재의 8번째 삶이자 죽음인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 화가 정규철(김재욱)은 서로에게 살의와 피의 욕망을 드러냈다. "넌 평생 날 이길 수 없어. 지고 이기는 건 죽었나 살았나로 결정하거든. 나한테 살려달라고 애원해 봐"라며 상대를 깔아보는 눈빛과 우월적인 태도는 박태우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묘사하기에 충분했다. 김지훈은 짧은 분량의 출연임에도 불구하고 '이재, 곧 죽습니다'의 신스틸러로 자리잡았다.
사진=티빙 '이재, 곧 죽습니다' 방송 캡처본.
사진=티빙 '이재, 곧 죽습니다' 방송 캡처본.
하지만 김지훈의 이런 도전들이 반가우면서도 약간의 우려가 생긴다. 김지훈은 인터뷰를 통해 "(캐릭터의 변화가 생긴) 표면적으로는 '악의 꽃'인데 이전에 '바벨'이 있었다. 임팩트 줘야 하는 역할이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보니 일단 도전을 한 것이다. 그때부터가 첫걸음이었다"라며 작품 활동의 전환점이 된 지점과 연기 활동하며 생긴 고민점을 털어놨다. '악의 꽃'의 백희성, '발레리나'의 최프로, '이재, 곧 죽습니다'의 박태우로 악인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줬지만, 연속적으로 싸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등을 맡으며 비슷한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소비된다는 느낌이다.

2023년 이충현 감독의 영화 '발레리나'에서는 디지털 성범죄자이자 옥주(전종서)의 복수 대상인 최프로 역을 맡으면서 '악의 축'이라는 호평받았으나, '악의 꽃'의 백희성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물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방향을 수정하고 수정한다고 해서 갑자기 나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은 아니니까"라는 김지훈의 말처럼 대중들에게 매번 새로운 도전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이젠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싸이코패스, 소시오패스가 아닌 다른 결의 악인으로 방향을 전환해 다른 얼굴의 김지훈을 기대하게 만들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어렵게 방황 전환을 한 만큼, 김지훈의 악역 연기가 고착화되지 않고 다양한 결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배우로서 꾸준히 걸어왔던 방향성을 이탈해 새로운 길목에 선 김지훈이 그저 선한 역, 악한 역이라는 이분법적인 경계에 선 인물이 아닌 다양한 인물들에게 도전하면 어떨까.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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