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포스의 돌처럼 재생되는 과거의 트라우마
검도라는 스포츠에 대한 통찰력
'우영우' 주종혁의 새로운 눈빛
검도라는 스포츠에 대한 통찰력
'우영우' 주종혁의 새로운 눈빛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컷. /사진제공=(주)더쿱디스트리뷰션](https://img.hankyung.com/photo/202311/BF.34962976.1.jpg)
'만분의 일초'는 한국 검도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을 준비하는 재우(주종혁)에게 자꾸만 '가벼워지라'고 외치는 영화다. 쉬이 가벼워질 수 없는, 시시포스의 돌처럼 리플레이되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재우를 짓누른다. 실체 없는 재우의 분노는 어느샌가 자신마저도 집어삼킬 거대한 형체가 되어있다. 그에게 있어 내면의 분노를 모두 게워내고 가벼워지는 일은 상대를 정확하게 응시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어린 시절, 재우의 형은 태수(문진승)와 싸움에 휘말려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가족에게 내려앉은 슬픔은 이전처럼 복구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재우의 가족은 풍비박산났고, 한국 검도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을 위해 들어간 합숙에서 재우는 그토록 원망했던, 가족에게 불행을 안겨준 대상인 태수를 마주한다. 정작 태수는 과거의 일은 까맣게 잊은 듯 보인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컷. /사진제공=(주)더쿱디스트리뷰션](https://img.hankyung.com/photo/202311/BF.34962998.1.jpg)
하지만 검도는 상대의 틈을 파고들면서 나의 영역도 지키는 스포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균형이 깨지는 순간을 포착해야만 한다. 검도의 유효 타격 부위는 정면, 좌면, 우면 머리와 목 찌름, 손목, 오른 허리와 왼 허리다. 어쩌면 펜싱과 비슷한 종목이라고 뭉뚱그려볼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 펜싱이 정해진 자리에서 앞으로 뻗어나가는 공격적인 형태라면, 검도는 상대에게 타격을 가하고 막기를 반복하면서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운동인 것이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컷. /사진제공=(주)더쿱디스트리뷰션](https://img.hankyung.com/photo/202311/BF.34962985.1.jpg)
불안하지만 정해진 구획은 넘지 않았던 재우의 감정에 기폭장치가 되는 것은 태수가 머리에 두르고 있던 붉은색 두건에 적힌 재우 아버지의 이름.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에게 검도를 가르쳐주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목격했던 어린 날의 재우는 그날 이후로 아버지와 절연을 선택했다. 지금 재우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발목 잡혀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갇혔다. 분명 국가대표 선발전 5인 안에 들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지만, 지금 재우의 공적 영역은 사적 영역에 침범당한 상태다. 어쩌면 재우는 형의 죽음 이전에 단란하던 가족의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태수와의 대련으로 복원하려는지도 모른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컷. /사진제공=(주)더쿱디스트리뷰션](https://img.hankyung.com/photo/202311/BF.34962993.1.jpg)
김성환 감독은 첫 장편 영화임에도 빈틈없는 짜임새와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인물들 간의 감정선을 통해 아름답지만 애처로운 몸짓을 만들어냈다. 다만, 대사가 아닌 이미지나 사운드로 사건을 설명하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과 재우가 자신이 지닌 무게를 내려놓지 못하고 발악하는 과정들이 길게 느껴질 수는 있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컷. /사진제공=(주)더쿱디스트리뷰션](https://img.hankyung.com/photo/202311/BF.34962996.1.jpg)
영화 '만분의 일초' 11월 15일 개봉. 러닝타임 100분. 12세 관람가.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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