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SBS '악귀'
/사진 = SBS '악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SBS 금토드라마 ‘악귀’(극본 김은희 연출 이정림)가 지난 29일 종영했다.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 1위에 오르며 흥행 가도를 달렸고, 무엇보다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에 오컬트와 미스터리까지 결합한 웰메이드 장르물로 연일 호평 세례를 얻었다. 오컬트 장르는 비대중적이란 우려를 딛고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이다. 이에 지난 6주간 ‘악귀’가 걸어온 성공의 발자취를 되짚어봤다. 김은희 작가 손잡은 SBS, 오컬트 장르로도 웰메이드, 지상파 저력 입증‘악귀’는 첫 방송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였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장르와 소재로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김은희 작가가 그 필력을 입증하며 강렬한 귀환을 알렸기 때문이다. 오컬트 장르의 외피를 입었지만, 다양한 단서를 촘촘하게 심어 치밀하게 서사를 쌓아올리는 김은희 작가의 주특기가 발휘됐다. 치열한 조사로 풀어낸 민속학적 소재는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했다.

또한, 아동 폭력인 염매란 과거 악습을 시작으로, 가정 폭력, 보이스피싱, 불법사채업 등 악귀 같은 사회악을 통해 청춘들의 삶을 조명했다. “조상에 제사를 지내기 어려우면 경건한 마음이라도 가지라”는 해상(오정세)의 대사처럼, ‘기억해야 할 사건과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꾸준한 메시지는 죽음을 추모하고 기리는 것에 대한 가치로 확장됐다.

이러한 대본은 SBS의 대표적인 라이징 연출자로 섬세함과 대담함을 모두 보유한 이정림 감독을 비롯해, 1%의 디테일도 놓치지 않은 최고의 스태프들의 노고를 거쳐 수작으로 완성됐다. ‘악귀’는 “오컬트 장르는 지상파용 드라마가 아니다”란 편견을 과감히 깨면서, 지상파 드라마의 건재한 저력을 입증했다. 김태리-오정세-홍경, 기존 이미지 깨고 파격 연기 변신 성공‘악귀’를 화제작 반열에 올려놓은 주역, 김태리-오정세-홍경은 기존의 이미지를 깨고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김태리는 회를 거듭할수록 더욱 강렬해지는 연기로 시청자들을 잠식했다. 목소리 톤부터 미세한 행동과 눈빛까지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산영과 악귀에 씐 산영을 오갔고, 한계 없는 연기 스펙트럼을 스스로 증명했다. 웃음기를 쏙 빼고 극의 중심을 잡은 오정세는 진지한 연기로도 굴곡진 감정의 변화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베테랑이었다. 김태리와 오정세 사이에서 제역할을 120% 해낸 홍경은 시청자들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다. 특히 문춘(김원해)의 죽음으로 각성한 후, 진지하게 사건에 접근하고 스마트한 수사력을 발휘, 보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또 6회부터 본격 등판한 나병희 역의 김해숙은 괴기스럽고도 살기 어린 탐욕을 폭발시켜 몰입도를 확 끌어올린 공신이었다. 진선규는 “특별 출연의 아주 좋은 예”였다. 악귀에게 죽임을 당하는 오프닝을 시작으로 작품 곳곳에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반전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존재감 넘치는 배우의 이름값을 제대로 해냈다. 이밖에도 박지영, 김원해, 이규회부터, 특별출연한 문숙, 이재원, 조현철, 최귀화, 김성규, 표예진, 박효주, 그리고 악귀 향이를 연기한 심달기까지, 미세한 구멍도 찾아볼 없는 연기의 향연은 극을 알차게 채웠다. 장르적 편견 깨고, “죽음을 기리고 생을 살아내자”는 인생 메시지 남겨산영에게 악귀는 없애야 하는 존재였지만, 또 한편으론 시력을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한 존재였다. 악귀의 유혹처럼, 산영은 어리고 돈 없다고 무시한 세상 속에서 원하는 걸 모두 누리며 살 수도 있었다. 김은희 작가는 산영에게 이런 딜레마를 심은 이유에 대해 “두 갈래 길에서 산영다운 선택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산영에게 어떤 삶이 중요한지 역설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 악귀라는 것.

산영은 최종회에서 산영다운 선택을 내렸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단한 일상을 견뎌왔던 산영의 잠재된 욕망과 약점을 악귀가 파고들었지만, 산영은 결국 어둠 속으로 내몬 것도 자신이요, 다시 일어나 원하는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것도 자신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산영의 몸을 가진 악귀가 그녀를 거울 속에 가두고 잠식해갔지만, 살아내겠다는 본인의 의지로 악귀를 없앴다.

그런 의미에서 산영의 시야가 블랙아웃 된 흑암시 엔딩은 의미 심장하다. 악귀가 사라졌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희귀병을 유전 받은 산영은 언제 실명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래 살아보자”라는 생의 의지를 다지는 산영의 목소리엔 그 어느 때보다 꿋꿋한 활기가 살아있었다. ‘악귀’는 장르적 편견을 깨며 죽음을 통해 생을 돌아보게 했고, 메시지를 남겼다.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 wisdomart@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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