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식 평론가가 추천하는 이 작품]
수많은 관객에게 사랑 받는 대작부터 소수의 관객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숨은 명작까지 영화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텐아시아가 '영화탐구'를 통해 영화평론가의 날카롭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우리 삶을 관통하는 다채로운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박태식 평론가가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디어 마이 지니어스'입니다.
'디어 마이 지니어스'는 영재 육성이라는 교육 화두에 대해 구윤주 감독이 직접 자기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영재가 되고 싶은 동생과 과거 영재였던 자신, 그리고 영재 육성 전문가 '엄마'의 모습을 통해 한국 교육 시스템에 유쾌하지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 '디어 마이 지니어스' 포스터 / 사진제공=필름다빈
영화 '디어 마이 지니어스' 포스터 / 사진제공=필름다빈
우리나라 교육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몇 년 전에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칭찬한 해외뉴스에서 접하고 이것이 단지 우리 스스로만 내리는 평가가 아니라는 생각에 잠시 어깨가 으쓱했었다. 하지만 내 머리에서 오바마는 금세 사라지고 말았는데 아들이 성인이 되고도 10년이나 지난 때라서 우리나라의 초·중등 교육이 어땠는지 기억이 가물거렸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디어 마이 지니어스'(감독 구윤주)를 보았고 멀찌감치 보내버렸던 그 시절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감독 구윤주는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에 담기로 작정했다. 주제는 한국의 영재 교육이고 주인공은 현재 영재교육을 열심히 받고 있는 동생 윤영과 윤영에게 찰거머리처럼 밀착해 지도편달(?) 하는 엄마 선숙이다. 사실 윤주도 한 때 영재 교육을 받은 바 있지만 지금은 영재와 완전히 거리가 먼, 앞날이 전혀 보장되지 않은 초보 영화감독으로 사는 중이다. 그러니 윤주가 윤영의 모습에서 자신의 과거를 발견하는 게 당연한 노릇이다.
영화 '디어 마이 지니어스' 스틸 / 사진제공=필름다빈
영화 '디어 마이 지니어스' 스틸 / 사진제공=필름다빈
영화에 재미있는 문구들이 등장한다. 하나는 식탁 옆 벽에 붙어있는 가훈이고 다른 하나는 영재학교 입구를 지키는 육중한 비석에 각인된 교훈이다. "네가 큰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아픔을 겪어본 사람이 웃음을 얻을 수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러니까 소위 영재로 일컬어지는 11살 소녀 윤영이 지금의 험난한 고통을 각고의 노력으로 이겨내면 승리의 호탕한 웃음과 함께 마침내 큰일을 내고야 말 미래가 보장된다는 뜻 아닌가. 아침저녁으로 이렇게 '세계를 구하라'는 거창한 문구에 노출된 채 살아야 하는 윤영은 자주 울고 어떤 때는 엄마에게 두통을 호소한다. 자신이 짊어진 채 살아야 하는 부담을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들어설 무렵 짧은 애니메이션이 나온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아기자기한 과정을 거쳐 상품을 찍어내는 모습이고 완제품에는 '퍼스트 클래스(First Class)'라는 상표가 찍혀있다. 앨런 파거 감독이 만든 뮤지컬 영화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1982)에서 따온 아이디어일지 모른다는 추측을 해보았다. 다만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에서는 한쪽으로 행진하는 아이들을 잡아 삼킨 틀에서 다진 고기가 배출되는 게 다른 점이다. 아니, '디어 마이 지니어스'에서는 '엄마'들이 교육 최전선에 투입된다는 사실도 다른 점에 보탤 수 있겠다. 과연 어디서부터 우리 교육을 바로 잡아야 할까.

'디어 마이 지니어스'에서 악마의 모습을 한 속과는 다르게 온화한 얼굴을 한 우리나라의 교육 현장을 보았다. 하지만 주체적인 판단력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어린 소녀에게 '네가 지난번에 영어공부가 좋다고 했지 않나'며 자기 말에 책임을 지라는 식의 강요나 '장차 서울대에 들어가 어깨 펴고 살려면 이 수밖엔 없다'는 식의 설득은 분명 잔인했다. 그리고 자신의 교육 방법이 혹 잘못된 게 아닐까 고민하는 선숙의 자기 괴롭힘도 보기 안타깝다. 영화를 찍는 큰 딸 윤주와 마주한 선숙이 딸과 함께 우는 모습을 보면 교육부 장관은 기뻐할까.
영화 '디어 마이 지니어스' 스틸 / 사진제공=필름다빈
영화 '디어 마이 지니어스' 스틸 / 사진제공=필름다빈
요즘 우리나라 대학들은 학생의 '핵심역량'을 키우려 노력 중이다. 바람직한 인재상으로 나아가는 핵심적인 역량을 고도화(高度化)시켜 학생이 자신의 교육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게 돕는다는 취지다. 그리고 거기에 반드시 필요한 게 학생들의 의견(교수평가)을 받아 교육에 수렴하는 '환류(還流)' 과정이다. 말하자면 소비자 중심의 교육을 지향하는 셈이다. 그런데 초등·중등 12년 동안 한 번도 주도적으로 살아보지 못한 학생들에게 갑자기 교육의 주도권을 넘겨준다는 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주변에서 학생 눈치를 보느라 쩔쩔 매는 교수들의 모습에서 절로 한숨이 나온다.

'마이 디어 지니어스'를 꽤 흥미 있게 보았다. 한국 교육의 현실을 고발한 영화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지만 과장이 섞여있어 늘 뒤끝이 찜찜하던 차에 비교적 점잖고 객관적인 작품을 만났다. 그리고 3년 동안의 영상기록을 통해 내놓은 결과도 수긍할 만했다. 가족의 삶에 무엇인가 변화를 주려 시작한 작업이지만 결국 날카롭게 대립하던 선숙과 윤영의 맘을 약간 누그러뜨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한국의 교육현실은 개인의 작은 노력으로 절대 바뀌지 않으리라는 메시지가 들어있는 것이다. 그 점에서 감독을 칭찬할 만했다.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성과 위주의 교육에 휩쓸려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친구들에게 윤영이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는 선숙의 하소연을 들어야 하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귀여운 윤영의 입에서 '이제는 금요일도 못 놀아'라는 푸념을 들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언제까지 일 년 내내 역사시간에 로마의 제도와 풍습만 배우는 프랑스 식 중등교육을 부러워만 할 것인가. 모든 게 아득한 꿈일 뿐이다.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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