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성의 10 Voice] <코미디 빅리그>, 코미디의 판을 뒤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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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중순, tvN 5회 녹화를 마친 김석현 PD는 자신의 SNS에 “금주부터 우리 코너11개와 개콘 코너 12~14개 코너 냉정하게 순위 매겨보고 싶음”이라는 글을 남겼다. 계속해서 1위를 기록하던 옹달샘이 4위로 추락한 날이자, 아메리카노가 ‘내겐 너무 벅찬 그녀’를 처음 선보인 날이며, 동시에 꽃등심이 ‘불만고발’로 처음 상위권에 진입한 날이었다. 그의 예상대로 이 방송 이후 새로 선보인 코너들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으며, 비록 시청률은 여전히 KBS 의 1/10에 불과하지만 지난 한 달간 의 인지도와 파급력은 가파르게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케이블 채널의 특성상, 재방송으로 프로그램을 접하는 시청자까지 포함한다면 이제 명실공히 는 코미디의 정규 리그 안으로 진입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짜 빅리그를 시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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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의 상벌구조가 절묘하게 힘을 발휘한다. 11개의 팀은 개별 경쟁을 통해 순위를 정하는데, 이때 최종 우승자가 상금을 받는다는 것은 방송의 전체적인 흐름 안에서 오히려 상징적인 부상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매회 하위 4팀이 재방송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김석현 PD가 시절부터 공공연히 해 왔던 ‘통편집’을 공식적인 벌칙으로 활용하는 셈인데, 경제적인 동시에 경쟁력 있는 선택이다. 이를 통해 본방송에서는 순위 발표 자체를 예능적 재미로 활용하고, 재방송은 검증된 코너만을 송출함으로서 잠재 시청층에 확실하게 소구할 수 있는 진용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술은 결국 가 프로그램 안에서의 경쟁에 그치지 않고 개별 코너들을 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려 전체적인 리그를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진짜 빅리그가 바야흐로 막을 올린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김석현 PD의 코칭만으로 이루어 진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옹달샘과 아메리카노의 구성 인원 중 무려 네 명이 KBS 공채 개그맨 19기이며, 기복 없이 꾸준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개통령의 핵심 멤버들 역시 같은 방송사 출신이라는 점은 결국 의 인프라를 이식한 것이며 PD와의 호흡이 비교적 좋은 덕분이라는 지적을 낳을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안영미와 팀을 꾸린 김미려는 언제나 가능성으로만 평가 받던 발군의 연기력과 코미디의 접점을 예리하게 잡아냈으며, 본방송에서조차 편집 당하던 이국주와 전환규는 지난주 1위를 달성하는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몸 담았던 SBS 에서조차 핵심코너를 만들어 내지 못했던 이상준과 예제형이 ‘관객모욕’으로 재평가된 것 역시 간과 할 수 없는 성취다. 특히 현장의 돌발 상황이 변수로 작용하는 ‘관객모욕’은 편집에 따라 현장과 방송의 차이가 커질 수밖에 없는 코너로서 실제 순위와 외부 반응이 거의 일치한다는 점은 곧 연출의 섬세함에 대한 방증이다.

코미디의 부흥, 코미디언만의 몫이 아니다
[윤희성의 10 Voice] <코미디 빅리그>, 코미디의 판을 뒤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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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시 주목할 것은 지난 8월, 김석현 PD가 SNS를 통해 “방송3사 개그맨들과 동시에 일해보니… KBS 나와 상의하려 한다 SBS 나를 설득하려 한다 MBC 나의 지시를 기다린다”라고 밝힌 소감이다. 출신 방송사마다 개그를 만드는 스타일이 다름에 대한 토로였지만, 문제는 그의 관찰에서 드러난 특징과 한계가 여전히 각 방송사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 그대로 노출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SBS 는 결국 부정적인 의미의 ‘웃찾사 풍’이라는 인식을 남긴 채 몰락했고, 이는 곧 프로그램의 성격이 편향되는 것의 위험을 뜻한다. 연출자를 설득하지 못하는 코너는 무대에 오를 수 없고, 연출자의 상상력 바깥의 매력은 평가 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주 첫 방송된 SBS 은 불행히도 이러한 위험요소를 그대로 계승한다. 전체적으로 연기력에 대한 조율이 부족한 것은 차치하고, 코너 사이에 삽입된 시사 만담이 표방하는 시의성에 대한 강박은 대부분의 코너에 어색하게 덧씌워져 있다. 폐쇄적 개그를 지향하는 MBC 는 아예 개그맨들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방송시간의 2/3를 장악하는 ‘나도 가수다’는 개그맨들이 매주 노래 한곡씩을 소화해야 하는 강행군을 요구하면서 정작 방송은 스스로 내러티브를 갖추지 못한 채 원본을 얼마나 똑같이 따라했는가를 과시하기에 급급하다. 유사한 발상에서 출발한 KBS 의 ‘승승 북치고 장구’가 적어도 ‘시치미 떼기’라는 기본적인 개그의 법칙에 충실한 것과 대조적이다. 비공개 녹화의 구조 안에서도 현장감을 살릴 수 있는 ‘최국 TV’역시 인터넷 방송 창을 영민하게 설계하지 못해 오히려 재미를 반감시키는 기묘한 연출로 역효과를 발생시키는 형국이다. 앞서 폐지된 ’전설의 김PD‘나 ’영웅은 살아있다‘ 역시 제작진의 자기만족적인 연출로 실패를 맛 본 케이스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가 마냥 낙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신인들과 새로운 캐릭터의 배양샬레 역할을 하던 ‘봉숭아 학당’의 역할을 이어받은 ‘슈퍼스타 KBS’가 개인기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변모 했고, 인기 코너들 역시 소수의 아이디어와 대사에 의존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다만 개그의 스타일이 변했다고 치부하기에는 점검이 필요한 부분이다. ‘집으로’가 바보 캐릭터를 바꿔 가면서 장수 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현재 는 리그 안의 리그가 부재한 실정이다. 요컨대, 코미디의 불황을 코미디언들만의 몫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며, 장르의 부활을 이들에게만 기대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필드에서 홈런을 날리고 관중에게 손을 흔드는 것은 선수의 몫이지만 누구를 언제 어디에 출전시키느냐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감독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코미디의 리그를 뒤흔들기 시작한 는 유세윤의 인기에 기대지 않고, 그것을 붕괴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음으로서 재미있는 방송이다. 그리고 유세윤과 안영미조차 없이 전혀 다른 카드로 게임을 시작할 다음 시즌이야말로 김석현 PD의 진짜 게임의 법칙을 확인할 수 있는 본격 리그가 될 것이다. 난세가 영웅을 만들듯, 외인구단이 명장을 만드는 법이니까 말이다.

글. 윤희성 nin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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