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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사랑, 드디어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나고 무비트윗이 돌아왔습니다. 그 어느 해보다 바쁘게 흘러갔던 올해 영화제의 진짜 ‘휴식’은 전어회와 C1 그리고 해운대 바다에 취한 밤이 아니라, 하늘연극장에서 <레스트리스>(Restless)와 함께한 91분간 찾아왔어요. 10월 27일 개봉 하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신작 <레스트리스>는 죽음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던 소년이 죽음의 실체를 향해 점점 다가가는 소녀를 만나 사랑하고 또 헤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네 멋대로 해라>의 진 세버그를 닮은 짧은 머리의 미아 와시코브스카와 에단 호크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한 금발 소년 헨리 호퍼. 이 귀여운 연인은 자신들 앞에 놓인 사랑과 삶의 유통기한을 걱정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가장 싱싱하게 서로를 안습니다. 비틀즈의 ‘TWO OF US’가 흐르던 시간, 무덤 앞에서 첫 데이트를 신청하던 순간, 길에서 첫 키스를 나누던 찰나, 장면 장면 스크랩해서 앨범에 넣어두고 싶을 만큼 쉼 없이 사랑스러운 영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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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가장 인간적인 관계는 노트북과 방을 차지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싸우는 종석과 수정 남매가 아닐까요. 11월 3일 개봉하는 영화 <워리어>는 집 안에서의 귀여운 발길질과 “스튜피드!” 같은 악담에 그치지 않고 아예 형제를 링 위 올려놓고 피 터지게 싸우게 만듭니다. 각자 어머니와 아버지 곁에 찢겨져 살아가던 형제가 14년 만에 만난 곳은 바로 ‘종합격투기의 슈퍼볼`이라 불리는 ‘스파르타`의 파이널 라운드 입니다. 어깨뼈가 부서지고 피투성이가 된 채 서로를 바라보는 형제, 어떤 화해는 말이 아니라 이토록 처절한 몸의 부딪힘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전성기 말론 브란도와 실베스터 스탤론을 적정 비율로 섞어 놓은 듯한 톰 하디는 <인셉션>에서 보여주었던 두툼한 섹시미에 외로운 짐승 같은 포효를 더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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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짜리 레드카펫을 위한 분별없는 영화 시상식은 매해 열리지만 변변한 시네마테크도, 독립영화전용관 하나도 없는 것이 대한민국 영화 산업의 씁쓸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목마른 자들이 우물을 팠습니다. 오는 12월 1일 신촌 아트레온극장의 1개관이 영화인들의 자발적인 힘에 의해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로 재탄생합니다. 총 200석의 작은 극장인 인디스페이스는 현재 극장 임대 보증금과 1년 동안의 상영관 운영비를 위해 좌석 당 200만원을 기부하면 좌석 뒤에 기부자의 이름이 새겨지는 ‘나눔자리 후원’과 매달 일정 금액을 CMS 자동이체를 통해 기부하는 ‘주춧돌 후원’을 통해 설립 기금을 모금하고 있는데요. 아무리 영화를 사랑한다고 해도 200만원이라니 너무 무리라고요? 이미 몇몇 분들은 트위터 등을 통해 몇 십 명이 나누어서 한 좌석 뒤에 이름을 함께 새겨 넣자며 자체 모집을 하고 있더라고요. 어떤 사랑과 우정은 설악산 바위나 남산 타워 자물쇠가 아니라 이렇게 의미 있게 새겨지고 묶여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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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비우티풀>이 개봉한 건 아시죠? <아모레스 페로스> 시절의 펄떡이는 카메라와 죽음의 무게를 묻던 <21그램>의 고민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비우티풀>은 실로 ‘비우티풀’한 피조물,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러닝 타임이 아깝지 않습니다. 다음 주 26일(목) 7시,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가집니다. <비우티풀>을 보고 저와 함께 갈기 날리는 숫사자의 얼굴을 닮은 이 남자의 야생적 아름다움에 대해 밤새도록 찬양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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