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또다시 MBC ‘무릎 팍 도사’에 출연한다면 ‘건방진 도사’ 유세윤은 그의 프로필을 이렇게 읊을지 모른다. “2011년 9월 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할지도 모른다고 했다가 아니 안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가 다시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하면서 서울시민들과 온 국민을 들었다놨다하다가 마침내 닷새 뒤,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해온 박원순 변호사와 만나 딱 17분 만에 박원순으로 단일화! 아무 조건 없이 불출마! 아니, 그럴 거면 왜 우리를 희망 고문 했어? 5일 천하 안철수! 당신은, 변덕쟁이! 우후훗!”
안철수의 등장이 가져온 반전 드라마였다면 혹평을 받았을 것이다. 맥락 없이 튀어나온 사건치고는 너무 강렬했고, 앞서 등장한 출연자들을 모두 ‘쩌리’로 만들었을 만큼 원톱으로서의 존재감이 강한 주인공 캐릭터는 비현실적으로 모범적인 데다, 갑작스러웠던 결말은 지나치게 순조로운 해피엔딩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틱할수록 흥행에 성공한다. 10월 26일, 불과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안철수의 등장, 그리고 퇴장으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안철수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불거진 이후, 사람이 성공하고 나면 권력에 욕심을 낸다며 혀를 차던 이들이 무색해질 만큼, 그는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의 레이스로부터 미련 없이 벗어났고 자신이 지지하는 가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다른 후보에게 자신의 지분을 넘겼다. 그러나 불과 닷새 사이 여론조사에서 50%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보이며 모든 정당과 정치인을 ‘발라 버린’ 그는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과 함께 아이러니하게도 내년 치러질 대선의 가장 유력한 주자로 떠올랐다.
물론 거품일 수도 있다. 그의 시정 능력을 미리 검증하기에 닷새는 너무 짧았고, “서울시장은 정치보다 행정직에 가깝다고 본다”던 그의 해석이 현실정치를 너무 단순하거나 순진하게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정당과 동떨어진 개인이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은 맨땅에 헤딩보다 더 위험하고 무모한 짓이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전 대표가 그에게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비판하거나 안철수에게 뜨거운 러브콜을 보내던 한나라당이 “(정치를 하더라도) 한나라당은 아니다”는 그의 선언과 단일화 이후 ‘좌파야합쇼’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고, 민주당이 그와 박원순을 은근히 견제하는 상황은 험난한 정치적 현실을 보여준다.
상식적 가치가 새로운 판을 만드는 시작 그러나 지금의 ‘안철수 신드롬’은 단지 엘리트 출신 성공한 사업가로서 ‘무릎 팍 도사’에 출연해 얻은 인지도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한국 사회에서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 학벌과 부, 그리고 명예까지 평생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을 떠나 그 당시 아무도 뛰어들지 않았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시장에 도전했고 벤처 기업을 만들어 성공시켰다. 그는 사회적 안전망이 거의 갖춰지지 않은 사회에서 성공가도로 정해진 길을 가지 않더라도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윤 추구와 공익은 상반되지 않으며 정직하게 사업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지켜냈다. ‘기업가 정신’이 남의 것을 빼앗고 노동자를 쥐어짜는 것이 아님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자신이 세운 회사의 CEO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 직원들에게 60억 원 상당의 주식을 무상 증자한 리더가 이 사회에서는 심하게 낯선 존재다. 친일파나 독재자 조상의 재산을 물려받지도, 탈세나 투기 의혹에 연루되지도, 군복무를 기피하지도 않은 데다 군대 후임은 물론 회사 직원들에게조차 항상 존댓말을 사용했다는 그는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거나 아랫사람들을 훈계하느라 바쁜 속칭 ‘꼰대’가 아니면서도 권위를 지닌 어른이라는 점에서 희소가치를 띤다.
안철수 원장은 지난해 봄부터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과 함께 지방 대학교 학생들을 위한 순회강연을 다니고 있다. 그는 자신들의 활동을 담은 < MBC 스페셜 >에 출연해 부의 대물림이 점점 심화되고 기득권이 과보호되어 사회적으로 엄청난 갈등이 표출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면서 20대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공직자와 재벌 등의 ‘사회지도층’들이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기회의 측면에서 소외되고 ‘지잡대’라는 말로 폄하되는 청년들을 못 본 척 할 때 안철수는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그들에게 먼저 다가선 사람이다. < MBC 스페셜 >에서 그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의 대사를 인용했다. 스스로 원해서 힘을 가진 것은 아니더라도 그것을 갖게 된 이상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정작 그는 “천재적이고 영웅적인 개인보다 사회 시스템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안철수 신드롬’은 “백마 타고 온 초인”에 열광하는 대중의 허상을 넘어 상식적 가치가 새로운 판을 만드는 시작인지도 모른다. 안철수-박경철의 ‘청춘 콘서트’에 참석했던 한 학생은 그의 서울시장 출마설에 지지의 입장을 밝히며 “우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올바르신 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 경험, 행정 능력, 세력화 등 모든 것을 떠나 ‘우선’ 필요한 건 올바름이다. 말이 아니라, 돈이 아니라 삶이 인간을 증명하고 그 자체로 힘을 갖는 날이 온 것이다. 지독히도 매운 시대의 채찍에 갈겨.
글. 최지은 five@
편집. 이지혜 seven@
안철수의 등장이 가져온 반전 드라마였다면 혹평을 받았을 것이다. 맥락 없이 튀어나온 사건치고는 너무 강렬했고, 앞서 등장한 출연자들을 모두 ‘쩌리’로 만들었을 만큼 원톱으로서의 존재감이 강한 주인공 캐릭터는 비현실적으로 모범적인 데다, 갑작스러웠던 결말은 지나치게 순조로운 해피엔딩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틱할수록 흥행에 성공한다. 10월 26일, 불과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안철수의 등장, 그리고 퇴장으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안철수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불거진 이후, 사람이 성공하고 나면 권력에 욕심을 낸다며 혀를 차던 이들이 무색해질 만큼, 그는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의 레이스로부터 미련 없이 벗어났고 자신이 지지하는 가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다른 후보에게 자신의 지분을 넘겼다. 그러나 불과 닷새 사이 여론조사에서 50%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보이며 모든 정당과 정치인을 ‘발라 버린’ 그는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과 함께 아이러니하게도 내년 치러질 대선의 가장 유력한 주자로 떠올랐다.
물론 거품일 수도 있다. 그의 시정 능력을 미리 검증하기에 닷새는 너무 짧았고, “서울시장은 정치보다 행정직에 가깝다고 본다”던 그의 해석이 현실정치를 너무 단순하거나 순진하게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정당과 동떨어진 개인이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은 맨땅에 헤딩보다 더 위험하고 무모한 짓이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전 대표가 그에게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비판하거나 안철수에게 뜨거운 러브콜을 보내던 한나라당이 “(정치를 하더라도) 한나라당은 아니다”는 그의 선언과 단일화 이후 ‘좌파야합쇼’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고, 민주당이 그와 박원순을 은근히 견제하는 상황은 험난한 정치적 현실을 보여준다.
상식적 가치가 새로운 판을 만드는 시작 그러나 지금의 ‘안철수 신드롬’은 단지 엘리트 출신 성공한 사업가로서 ‘무릎 팍 도사’에 출연해 얻은 인지도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한국 사회에서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 학벌과 부, 그리고 명예까지 평생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을 떠나 그 당시 아무도 뛰어들지 않았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시장에 도전했고 벤처 기업을 만들어 성공시켰다. 그는 사회적 안전망이 거의 갖춰지지 않은 사회에서 성공가도로 정해진 길을 가지 않더라도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윤 추구와 공익은 상반되지 않으며 정직하게 사업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지켜냈다. ‘기업가 정신’이 남의 것을 빼앗고 노동자를 쥐어짜는 것이 아님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자신이 세운 회사의 CEO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 직원들에게 60억 원 상당의 주식을 무상 증자한 리더가 이 사회에서는 심하게 낯선 존재다. 친일파나 독재자 조상의 재산을 물려받지도, 탈세나 투기 의혹에 연루되지도, 군복무를 기피하지도 않은 데다 군대 후임은 물론 회사 직원들에게조차 항상 존댓말을 사용했다는 그는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거나 아랫사람들을 훈계하느라 바쁜 속칭 ‘꼰대’가 아니면서도 권위를 지닌 어른이라는 점에서 희소가치를 띤다.
안철수 원장은 지난해 봄부터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과 함께 지방 대학교 학생들을 위한 순회강연을 다니고 있다. 그는 자신들의 활동을 담은 < MBC 스페셜 >에 출연해 부의 대물림이 점점 심화되고 기득권이 과보호되어 사회적으로 엄청난 갈등이 표출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면서 20대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공직자와 재벌 등의 ‘사회지도층’들이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기회의 측면에서 소외되고 ‘지잡대’라는 말로 폄하되는 청년들을 못 본 척 할 때 안철수는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그들에게 먼저 다가선 사람이다. < MBC 스페셜 >에서 그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의 대사를 인용했다. 스스로 원해서 힘을 가진 것은 아니더라도 그것을 갖게 된 이상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정작 그는 “천재적이고 영웅적인 개인보다 사회 시스템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안철수 신드롬’은 “백마 타고 온 초인”에 열광하는 대중의 허상을 넘어 상식적 가치가 새로운 판을 만드는 시작인지도 모른다. 안철수-박경철의 ‘청춘 콘서트’에 참석했던 한 학생은 그의 서울시장 출마설에 지지의 입장을 밝히며 “우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올바르신 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 경험, 행정 능력, 세력화 등 모든 것을 떠나 ‘우선’ 필요한 건 올바름이다. 말이 아니라, 돈이 아니라 삶이 인간을 증명하고 그 자체로 힘을 갖는 날이 온 것이다. 지독히도 매운 시대의 채찍에 갈겨.
글. 최지은 fiv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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