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개리는 어딜 가나 “갖고 싶다 강개리”라는 말과 마주친다. MBC 에 그가 출연해 춤을 출 때 등장한 한 줄의 자막은 리쌍의 새 앨범만큼이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연예인이 되고 싶은 마음에 가수가 되었고, 음악을 제대로 하고 싶어 이십대의 한 시기를 수도승처럼 보냈던 그는 삼십대를 훌쩍 넘겨서야 SBS ‘런닝맨’을 통해 예능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고 요즘 ‘대세’로 떠올랐다. 거리에서 마주치면 알아볼 수 없을 것처럼 평범해 보이는 이 남자, 강개리의 은근하면서도 깊이를 알 수 없는 매력은 무엇일까. 비록 그 매력의 10분의 1도 채 담아내지 못했지만, 개리와의 이 대화가 작은 힌트라도 될 수 있기를.

6집 앨범을 내고 나서 인터뷰했을 땐 “음악만 하고 살았더니 사는 게 별로 재미가 없다”고 말했었다.
개리 : 그 땐 무기력했다. 진짜. (웃음)

그 이후 이번 앨범이 나오기까지, 일상에서 변화가 컸을 것 같다. 무엇보다 ‘런닝맨’에 출연한 게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텐데.
개리 : 처음 예능 하자는 얘기가 들어왔을 때 (노)홍철이한테 상의를 했더니 나더러 예능 하면 에너지를 얼마나 받을 것 같냐는 거다. 그래서 “100%만 받아도 얼마나 좋겠냐” 했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200% 받을 거라고 말했는데 그 얘기가 정말 맞았다. 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빠지고 중독되고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만들어나갈까 고민하는지를 알 것 같다.

“무조건 남과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리쌍│개리 “너도나도 ‘갖고 싶다 강개리’ 해 주는 날이 언제 또 오겠나”
리쌍│개리 “너도나도 ‘갖고 싶다 강개리’ 해 주는 날이 언제 또 오겠나”
하지만 아예 안 해 본 영역에 뛰어들어 적응하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땠나.
개리 : 처음 두 달은 너무 힘들었다. MBC 에서는 편하게 말하면 (유)재석이 형이 끌어주고 (김)원희 누나가 웃어주고 패널들이 리액션 해주는데, ‘런닝맨’은 야외에서 일곱 명이 카메라 열 몇 대 앞에 서서 해야 하는 거니까 토크쇼처럼 조용히 말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말투가 딱딱해지고, 말하고 나면 오글거리고. (웃음) 10년 가까이 예능을 해온 하동훈(하하)이가 캐릭터 하나 잘 잡히면 재밌을 거라고 했지만 난 잘 모르니까 ‘그냥 재밌으면 됐지 유치하게 무슨 캐릭터냐’ 싶었다. 그런데 별로 할 게 없던 내가 다행히 ‘월요 커플’로 잘 풀리면서, 송지효라는 사람과 엮이고 호흡해가면서 할 수 있는 게 생겼다. 그게 캐릭터의 힘이란 걸 느꼈다. 그 전까지는 광수랑 끝과 끝에서 서로 눈치만 보면서, 누구 하나가 좀 웃기면 ‘아…난 여기서 뭐하는 건가!’하고 속으로 견제하고 그랬다. (웃음)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는 음악과 달리 예능은 잘 하고 싶어도 쉽게 되지 않으니 답답했을 수도 있겠다.
개리 : 한번은 재석이 형한테 “예전에 도 폐지될 뻔 했다면서요. 터닝 포인트가 뭐였어요?”라고 물어봤더니 뉴질랜드 다녀온 이후 싹 좋아졌다고 하더라. 그래서 어느 날 ‘런닝맨’ 녹화 가기 전날 그 회를 봤다. 자막, 리액션, 사람들의 관계 같은 것들을 보면서 예능은 평범하게 가서는 재미가 없으니까 무조건 남과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이번 앨범의 ‘회상’은 리쌍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학창 시절 문제를 일으켰던 얘기도 있고 방황했던 이십대에 대한 내용도 있는데 결국 음악이라는 길을 찾았고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간 과정이 궁금하다.
개리 : 사실 처음엔 음악을 너무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춤을 굉장히 좋아해서… (작게) 연예인이 되고 싶었다. (웃음) 나는 박남정, 현진영, 듀스 같은 춤꾼들을 보고 자란 세대라 고등학교 때 이태원 클럽에 거짓말하고 들어가면 진짜 이주노 씨 같은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황홀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춤을 추다가 그룹을 결성했는데 랩이 안 되니까, 그렇다고 춤을 엄청 잘 추는 것도 아니고 얼굴이 잘 생긴 것도 아니고 결국 엑스틴이 망하면서 삐딱해졌다가 허니 패밀리에 들어갔는데 잘 됐다. 그런데 그 땐 ‘나 이제 연예인 됐다’ 는 생각에 또 망가졌다. 그러다 허니 패밀리도 흩어지고 학교도 잘리고 돈 벌 수도 없는 방황의 시절이 왔는데, 문득 ‘내가 죽기 전에 음악을 안 하면 너무 후회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친구, 여자 다 끊고 집에만 처박혀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리쌍 1집 작업을 했다. 그 때가 진짜 ‘내 음악’을 찾게 된 시기다.

이번 앨범의 ‘강남사짜’나 ‘죽기 전까지 날아야 하는 새’도 그렇지만 4집에 수록된 ‘살아야 한다면’ 같은 곡의 가사를 보면 나 뿐 아니라 남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생각이 많은 것 같다.
개리 : 주변에 돈 있는 형들이 술 마시다가 나를 룸살롱으로 불러내 “야, 노래 하나 해” 그럴 때가 있었다. 나도 노는 건 좋아하지만 상대가 아무리 어려 보여도 말은 안 놓는데, 그날따라 그 분들이 밴드랑 웨이터들한테 함부로 대하시는 거다. 그러고 나서 밴드 중 한 분이 나한테 오셔서 사인을 해 달라고 하시는데, 마침 나랑 같은 체육관을 다니셔서 안면이 있는 분이었다. 그분한테 같이 음악 하는 사람인데 왜 저한테 사인을 받냐고, 결혼도 하셨고 아이도 있으시니 파이팅 하시라고 말씀드리면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살아야 한다면’은 그 날의 기억으로부터 나온 가사다. 물론 그 분들을 감싸드리려고 쓴 건 아니다. 그냥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인데, 우리가 살아야 한다면 뭔들 못하겠느냐 하는 마음이었다.

자신도 힘든 시기가 있었기 때문인지 트위터에 사람들이 고민 상담을 할 때도 최대한 답을 해 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개리 : 나는 리쌍 1집을 준비했던 그 시기를 열심히 살았던 나 스스로가 너무 장하다. (웃음) 통장에 아이돌 연습생에게 랩 레슨해서 받은 돈 2백만 원이 있었는데 그걸로 1년을 버티면서 살았다. 학교 친구들이 보드 타러 가자고 하면 맨날 “작업해야 돼” 그랬다. 돈 없다고 하면 쪽팔리니까. 일어나면 씻고 운동하고 음악 듣고 가사 쓰고, 아침에 밥 먹다 남은 거 저녁에 데워서 먹고, 밤에 너무 심심해서 미칠 것 같으면 몇천 원 들고 나가서 친구가 일하는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 몇 개 빌려보며 1년을 보냈다. 그게 20대 중후반이었는데, 내가 그러고 있을 때 주위에서 따뜻한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있어도 내가 다 차단한 상태였고, 대인기피도 심했다. 그래서인지 젊은 친구들에게 내 경험을 얘기해 주고, 그들이 열심히 사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물론 연예인한테 답장 받아 보려고 악용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하.

“모든 순간이고 모든 측면이 기대 이상으로 행복하다”
리쌍│개리 “너도나도 ‘갖고 싶다 강개리’ 해 주는 날이 언제 또 오겠나”
리쌍│개리 “너도나도 ‘갖고 싶다 강개리’ 해 주는 날이 언제 또 오겠나”
이번 앨범에서 인상적인 곡 중 하나가 ‘격산타우’다. 리쌍의 음악들을 관통하는 정서 중 하나가 이렇게 링 위에서 맞서 싸우는 것 같은 느낌인데, 실제로 권투를 배웠기 때문에 이런 ‘싸움’의 이미지를 텍스트로 잘 전달할 수 있는 건가.
개리 : 배우면서 들은 얘기가 있으니까 도움은 되는 것 같다. 나이 든 관장님들이 멋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신다. 정작 권투를 가르쳐주진 않고 골프 폼 연습 하시면서 “주먹을 지푸라기처럼 날려야 돼. 하지만 마지막에 힘을 줘. 네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 하는 식으로. 집에 들어가면서 생각해보면 와, 진짜 멋있다. (웃음) 하지만 권투 용어를 직접 쓰는 것보다는 그 느낌을 살려서 쓰려고 한다. 사실 난 아마추어 출신인데 기사에 선수라고 나올 때가 있어서, 요즘 장난으로 “이제 나는 합이 20단 짜리 종합무술인이 돼 있으니까 권투도 진짜 제대로 해야 되겠다” 그런다. (웃음)

실제로 링 위에 서는 느낌이란 어떤 건가.
개리 : 체육관에 처음 나간 건 딱 스무 살 땐데 중 3인가 고 1짜리한테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다. 체력도 안 되고 기술도 안 되고, 두들겨 맞으면서 배운 게 많다. 故 최요삼 형도 거기서 만났는데 그 형의 하루 일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새벽 다섯 시에 기상, 훈련, 아침 식사, 취침, 낮 운동, 저녁 식사, 비디오 분석, 취침 하는 식으로 10년 동안 살아온 거다. 리쌍을 하기 전이었는데, 그 형을 보며 느낀 게 많았다.

힘들고 방황하던 시절에는 그런 경험들이 지금 쓰는 가사의 밑거름이 될 거란 생각은 못했을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떤가.
개리 : 1집 작업하면서 가사를 처음 쓸 때 무슨 얘기를 쓸까 고민을 많이 했다. 당시 기획사들도 히트를 치려면 대중적인 걸 가져오라고 얘기했고. 예를 들면 드렁큰 타이거처럼 멋있고, CB Mass처럼 랩 잘하는 게 대중적인 거였는데 우린 그게 안 되니까. (웃음) 하지만 내 얘기를 쓰면 우리 또래의 사람들은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던 중 너무 힘들어서 음악을 찾아 듣다 보니 들국화 노래의 가사가 너무 예술인 거다.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나의 과거는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 수 만 있다면 행진 하는 거야” 와, 내가 지금 이런 음악으로 용기를 얻고 있으니 그걸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가사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Rush’의 “또다시 동이 트면 힘차게 하루를 시작하리”가 나왔다. 뭐, 지금은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만 언젠가 내가 방송에서 뭘 잘못하거나 한순간에 밉상이 됐을 때는 그걸 또 즐겨야지. 그리고 “방송을 괜히 시작했어. 역시 음악만이 내 길이었어”라는 가사를 쓸지도 모르겠다. (웃음)

혹시 가사 외의 글을 좀 더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
개리 : 2집 때쯤 어떤 분이 “야, 책 하나 내서 팔자. 돈 돼. 돈 돼” 하신 적은 있는데 그 땐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하림 형이랑 술 한 잔 하는데 “야, 시집 하나 내” 하시는 거다. 그래서 내가 “모든 게 어색했어 너와 처음 밥을 먹을 땐 밥풀이 입가에 묻을까 수저를 입에 넣을 땐 신경이 쓰이고” 이런 가사로 무슨 시집을 내냐고 했더니, 그걸 팔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소량만 찍어서 만나는 사람들한테 선물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내가 생각해도 그건 좋을 것 같다. 내가 소설처럼 스토리를 만드는 능력이 좋지는 않지만 여행 다니면서 느끼는 걸 기록하는 방식도 돈을 떠나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요새는 예능에 그런 에너지들을 쏟고 있다. (웃음)

이십 대에 꿈꿨던 삶과 비교하면 지금 사는 게 어떤가.
개리 : 모든 순간이고 모든 측면이 기대 이상으로 행복하다. 리쌍 1집을 준비할 때 1년 동안 1500만 원만 벌면 모든 걸 이룬 거라고 생각했는데 계약금을 그만큼 받고 시작했다. 그러니까 ‘어, 벌써부터 어떻게 이러지?’ 했는데, 그렇게 한참 잘 되다가 강남사짜 만나서 통장 잔고 0원 되고 (웃음) 막창집 하나 달랑 남은 채로 다시 시작했는데 다시 너무 잘 된 것 같다. 그래서 트위터에도 썼듯, 진짜 너무 고마운 일이지만 민망하다. 아마 이보다 더 잘 될 순 없을 것 같다. 우리 음악이 차트를 올킬 하고 너도나도 유행어처럼 “갖고 싶다 강개리” 해 주는 날이 언제 또 오겠나.

사진제공. 정글엔터테인먼트

글, 인터뷰. 최지은 five@
인터뷰. 이가온 thirte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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