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30일, MBC ‘라디오 스타’(이하 ‘라스’) 첫 방송에서 MC 신정환은 말했다. “이 코너가 두 달만 가면 좋겠어요.” 그리고 4년이 흘렀다. 신정환은 갔다. 하지만 ‘라스’는 살아남아 200회를 맞았다. 24일 밤 방송되는 200회 특집에는 요즘 예능계에서 가장 ‘핫’한 게스트인 정재형과 이적, MBC 예능 프로그램에 처음 출연하는 존 박이 나온다. ‘무릎 팍 도사’와 좋게 말하면 ‘밀당’, 슬프게 말하면 곁방살이하며 상황에 따라 시간을 딱 5분만 배정받기도, 아예 얼굴조차 못 비추기도 했던 ‘라스’는 이제 연예인들이 가장 기꺼이 출연하는 방송이 되었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네 MC들과 치고받다 보면 드러나는 의외의 매력과 캐릭터는 그들 인생의 새로운 도약대가 되기도 한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점점 창대해지고 있는 수요일 밤의 에너지원, ‘라스’ 200회를 맞아 가 준비했다. 입대를 앞둔 김희철의 뒤를 이을 만한 인재 다섯 명에 대한 추천장, ‘라스’의 깨알 같은 순간들을 기록한 시상식, ‘라스’의 시시콜콜한 정보들을 담은 고품격 십자말풀이까지 함께 즐겨주시길.

“수요일 밤의 절대강자 ‘무릎 팍 도사’ 보고 오셨어요? 어른들은 슬슬 주무실 준비 하고 계시죠? 애들이 ‘라스’ 본다니까 ‘내일 학교 안 가냐? 빨리 끄고 자라’ 잔소리하고 계시죠?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시간에 ‘라스’는 벌써 끝나니까요!” ‘라스’ MC들은 알고 있다. 의 간판은 여전히 ‘무릎 팍 도사’다. ‘어르신’들은 ‘라스’를 잘 모른다. 간신히 시작한다 싶으면 끝나 버린다. ‘라스’ 팬들은 서럽다.

스타급 섭외 대신 스타일을 구축한 토크쇼
‘라디오 스타’│다음 주에도 다시 만나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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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라스’에 출연한 백지영이 “저는 ‘라디오 스타’를 보려고 ‘무릎 팍 도사’를 봐요”라고 말한 것처럼, ‘라스’가 갖는 고유의 재미는 평일 자정 넘은 시각에도 어떤 사람들을 TV 앞에 지켜 앉게 만든다. ‘찰나 방송’, ‘더부살이 방송’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짧으면 2주, 길면 4주에 걸쳐 토막토막 방송되지만 사실 이 ‘약자 마케팅’은 ‘라스’의 최종병기다. 이제는 가장 메이저 예능으로 자리 잡았음에도 여전히 마이너 정서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라스’의 매력인 것처럼, ‘무릎 팍 도사’가 유명인의 일대기를 정리한 석세스 스토리라면 ‘라스’의 대부분을 채우는 것은 실패담이다. 친분이 있는 연예인 무리도 있지만 대개는 우연히 술집에서 합석한 직장인들처럼 데면데면한 사이의 게스트들이 좁은 스튜디오에 모여 앉아 화려했던 과거와 지나간 사랑과 잃어버린 꿈에 대해 털어놓는다. 그리고 MC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안주삼아 낄낄대며 농담을 던진다. 이혼도, 사업 실패도, 인기 하락도 ‘라스’에서는 별 일 아니다. 나이를 속였다거나 얼굴을 고쳤다거나 동료와 싸웠다거나 하는 민감한 주제도 실없는 웃음 속에 가볍게 흘러간다.

김구라는 첫 방송에서 “신정환, 윤종신, 내가 MC라고 해서 힘든 구성이라고 생각했어”라고 말했지만 사실 네 명 MC들의 역할분담과 조화는 곧 ‘라스’의 정체성이다. ‘라스’에 최적화된 MC라는 평을 받았던 신정환이 하차한 뒤 새로 영입된 김희철의 적응기는 만만치 않았지만 김구라, 윤종신 등 원년 멤버와 ‘라스’ 마이너 정서의 중심이 된 초기 멤버 김국진은 흔들리지 않는다. 쉴 새 없이 깐족대면서도 예능과 음악 사이 토크의 맥을 놓치지 않는 윤종신, 국민적 스타였다가 ‘일 없는 이혼남’으로 전락하며 자학 개그의 중심에 선 김국진, 성역이 없는 토크계의 테러리스트 김구라는 게스트들을 ‘예우’하는 대신 그들과 치고받으면서 캐릭터를 발굴한다. 고영욱의 여성 편력을 들추며 “하루 일과에 ‘집적대기’가 있냐”고 묻는 식의, MC들의 시도 때도 없는 말장난은 윤종신의 말대로 “시답잖은 농담과 얄궂은 얘기 속에 그냥 발견되는 손님들”을 살린다. 스타의 풀은 한정돼 있고 토크쇼와 예능 프로그램은 점점 늘어나면서 섭외는 점점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지만 스타에 의존하는 대신 스타일을 구축한 ‘라스’는 김태원의 기인적 면모를, 김연우의 ‘경거망동’ 이미지를 드러냈고 게스트에 따른 토크의 기복을 줄였다.

가벼움 속에 묻어 있는 삶과 추억
‘라디오 스타’│다음 주에도 다시 만나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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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십과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라스’의 스타일은 그래서 종종 다른 어떤 토크쇼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불러온다. 이승철은 80년대 인기의 척도인 나이트클럽 출연에 대해 김태원이 반대했던 일화를 이야기하고, 왕년의 아이돌 박남정은 백화점에서의 미니 콘서트 같은 요즘 활동에 대해 언급한다. 백두산의 유현상은 행사비의 중요성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전태관은 주식 장 마감 후 밴드 연습을 하는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라스’는 한 시대의 ‘레전드’였던 그들의 삶의 변화에 대해 깎아내리지도 눈물짓지도 않는다. 김종진이 故 김현식에게 곡을 주었다는 얘기를 꺼내자마자 ‘곡 값’을 묻는 것은 속물적이지만 ‘라스’에서 그것은 천박한 호기심이라기보다 연예인도 생활인임을, 우리와 똑같이 먹고 사는 데 치이는 사람임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순간들이다. 산다는 게 언제나 한결같을 수는 없음을, 잘 나가는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음을, 그럼에도 삶에는 여전히 웃을 일들이 생겨난다는 것을 ‘라스’는 이야기한다. 비록 그것이 쓴웃음일지라도.

이토록 불면 날아갈 것처럼 티끌 같은 농담들로 가득한 것 같지만 사실 ‘라스’는 부지런한 프로그램이다. 출연자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조사를 바탕으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사전준비, MC들의 순발력이 폭발하는 현장녹화, 하나의 장르가 되었을 만큼 공들인 CG를 비롯한 후반작업의 삼박자가 모여 ‘라스’를 만든다. ‘어록’ 대신 웃음의 순간이 쌓이고 8, 90년대에 전성기를 보냈던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그저 추억팔이가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추억이 그들 삶의 일부였음을, 대중이 알지 못했던 한 세계의 뒷면을 펼쳐놓는다. ‘故 김현식 트리뷰트 특집’에 출연했던 김종진이 “TV로 볼 때는 너무 가볍다고 생각했는데, 가벼움 속에 느낌이 묻어 있네요”라고 말한 것은 이 무례하고 산만한 것 같은 방송이 어느 순간 보여주는 묘한 진심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다. ‘라스’를 통해 예능인으로서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던 윤종신은 ‘라스’에 대해 “예능이란 신도시에 내가 묵게 된 작은 여관”이라고 말했고, 지금 ‘라스’는 일주일 중 가장 고단한 수요일 밤 우리들을 웃게 하는 작은 선술집이다. 그러니 부디, 다음 주에도 만나요, 제발~

글. 최지은 fiv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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