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리얼리티쇼, 제 2악장의 시작
[강명석의 100퍼센트] 리얼리티쇼, 제 2악장의 시작
SBS 의 ‘키스&크라이’는 초밥대회를 다룬 만화 을 연상시킨다. 초밥에서 김연아의 아이스 쇼에 참가할 사람을 뽑는 피겨스케이팅으로 바뀌었지만, 대회를 배경으로 다양한 사연의 캐릭터가 모이는 것은 같다. 이 쇼에는 어떤 기술이든 척척 해내는 소녀(크리스탈)가 있고, 소녀를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라이벌 선배(손담비)와 끝을 알 수 없는 저력의 기인(김병만)도 있다. ‘여왕’ 김연아가 참가자들의 공연에 담긴 의미를 짚어내는 모습은 에서 전설의 초밥 장인이 참가자의 초밥을 평가하는 모습과 오버랩 된다.

리얼리티 쇼에 만화적인 이야기의 틀이 결합하며 리얼리티 쇼는 새로운 모습으로 점프한다.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이규혁이 피겨스케이팅에 도전하는 설정은 리얼리티 쇼의 시작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가 자신보다 다소 성과를 거두지 못한 동생, 피겨스케이팅 선수 이규현과 그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건 흥행을 위한 충분조건이다. ‘키스&크라이’는 두 개의 조건을 형제가 빙판 위에서 영화 를 오마주하는 장면에서 결합한다. 형제는 주먹을 섞으며 그동안의 말 못할 갈등을 해소하고, 이규혁은 김연아를 비롯한 심사위원들의 호평이 이어지는 순간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그 어떤 리얼리티 쇼보다 진실한 스포츠 도전

Mnet 같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도 캐릭터의 사연과 무대를 결합시켰다. 허각의 ‘하늘을 달리다’는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선 그의 개인사와 결합해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의 출연자들은 쇼의 1위가 절실하다. 반면 50대 배우 박준금이 ‘키스&크라이’에서 1위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신 그는 ‘키스&크라이’를 “선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경쟁의 승리와 패배 여부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50대도 여전히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순간 완결된다.

그래서, ‘키스&크라이’는 캐릭터들이 탈락하는 순간 주인공이 된다. 그들은 탈락하면서 자신이 추구한 목표를 확실하게 마무리한다. 그들의 목표는 당연히 무대를 통해 명확하게 입증된다. 비슷비슷한 실력을 가진 아마추어들의 노래 경연은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반면 ‘키스&크라이’에서 박준금이 노력 끝에 놀라운 리프트를 선보이고, KBS 을 소재로 인상적인 표정 연기를 보여주는 것에는 그의 노력과 지난 인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마추어의 스포츠 도전이 다른 리얼리티 쇼보다 더욱 진실 되게 출연자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이유다.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리얼리티 쇼의 다음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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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f(x)의 크리스탈이 우승자가 된 것은 이 새로운 무엇의 탄생을 위해 준비된 기막힌 우연이다. 크리스탈은 딸에게 멋진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이아현처럼 피겨스케이팅에 절박하게 매달릴 이유가 없다. 그가 파트너인 피겨스케이팅 선수 이동훈의 훈련방식에 반발, 어려운 기술부터 배우겠다고 한 것이 작은 논란을 일으킨 이유다. 그는 그만큼 욕심을 부려야할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크리스탈은 엄청난 속도로 실력이 늘어난 경연을 통해 자신이 진지한 열정을 갖고 피겨스케이팅에 도전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규혁과 김병만 같은 실력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크리스탈의 이런 모습이 경연 중반 이후에야 확연히 부각된 이유다. 그 사이 ‘키스&크라이’는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완결시키면서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크리스탈의 우승을 통해 가장 긴 호흡을 가진 이야기가 완결된다.

다양한 개인사를 가진 캐릭터들의 경쟁이 씩식한 소년/소녀의 성장을 보여주는 해피엔딩으로 대화합을 이루는 것은 같은 만화의 전개와 같다. 우승자가 누가 될 것인지는 제작진이 정할 수 없다. 하지만 ‘키스&크라이’는 제작진이 캐릭터의 조합과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통해 리얼리티 쇼에서 만화나 영화와 같은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의 첫 회에는 미소년의 얼굴과 어두운 개인사를 함께 가진 의경, 의경과 친구가 될 것 같은 폭주족, 조용필의 노래에 ‘블루스’를 담아 부른 10살 소녀가 등장했다. 그리고, 첫 출연자는 왠지 코믹한 역할을 맡을 것 같은 첫 인상과 달리 멋진 노래로 합격한 거구의 씨름 선수였다. 도 이 쇼를 현실에서 벌어지는 같은 캐릭터의 대결 이야기로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 리얼리티 쇼는 그렇게 장르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만화, 드라마, 영화의 합집합 리얼리티쇼
[강명석의 100퍼센트] 리얼리티쇼, 제 2악장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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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적 진화는 리얼리티 쇼가 ‘리얼’ 안에서 완벽한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MBC ‘조정 특집’ 마지막회의 경기장면 연출은 스포츠 만화/애니메이션의 완벽한 재현이었다. 출연자들은 어떤 방송용 멘트도 하지 않았고, 현장음과 BGM이 그 자리를 채운다. 화면은 조정 경기장의 전체적인 풍경부터 선수 개개인의 표정, 그들의 배를 따라가는 정준하와 김지호 코치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준다. 배가 결승선에 다가올수록 모든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시합에 참여하지 못한 정준하는 눈시울을 붉힌다. 그리고, 결승선에 도착한 순간 화면에 나오는 것은 그들을 맞이하는 수많은 관중들이다. 선수들의 노력이 거대한 환호로 응답받는 순간. 그 컷은 아마추어의 꿈과 열정을 그리는 모든 스포츠 만화가 추구하는 엔딩이다. 그 이후에 등장한 리얼리티쇼는 처럼 출연자를 극한의 상황에 던져 넣었다.

‘키스&크라이’와 의 ‘조정특집’은 스포츠 리얼리티쇼를 통해 만화에서나 볼 수 있던 완결된 서사구조를 실제 상황 안에서 보여준다. 그건 스포츠 리얼리티쇼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예시이자, 리얼리티쇼가 새로운 미학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예언이다. 강호동이 KBS 의 ‘1박 2일’에서 “예능이냐 다큐냐”를 고민하던 것은 재미와 진실성 사이의 줄타기를 해야 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시대를 함축했다. 하지만 ‘조정 특집’은 정형돈이 경기를 끝낸 뒤 벅찬 목소리로 “내가 봤어! 우리 진짜 잘 탔어!”라고 외친 한마디로 재미와 리얼리티를 집약시킨다. 만화 같은 캐릭터가 있고, 드라마 같은 스토리가 있으며, 영화적인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리얼’로 벌어진다. 우리는 지금 시대의 진화를 예고하는 돌연변이들의 탄생을 보고 있다.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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