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ame is 오정세
나이를 숨기고 싶지는 않지만 굳이 알리고 싶지도 않다. 배역을 맡는 데 있어 명확한 틀이 생겨 버릴 것 같아서다. 하지만 사실 찾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알 수 있다. (웃음)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세 살부터는 성남에서 살았다. 부모님과 형 같은 누나 두 분이 있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에 누나들이 용돈을 모아 양말 같은 작은 선물 몇 개를 사서 동네에 있는 걸인들에게 나눠드리고 따뜻한 물을 따라드리며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좋은 경험이었다.
신인 시절 프로필 만들 땐 경력사항을 쓸 게 없어서 고민이 많았다. 단편영화의 작은 역이라도 다 쓰고, 심지어 정확한 작품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박하사탕> 2차 오디션 합격’ 같은 것도 썼다. 그래도 2차까지 갔던 사람이니까 서류는 통과시켜 달라는 어필이었다. (웃음)
오디션을 돈 내고도 본 적이 있다. “축 합격. 1차 오디션에 합격하셨습니다. 2차 오디션비 7만 원을 입금해 주세요”라는 연락이 왔다. 그 때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사기 당하더라도 일단 오디션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2차까지 보고 떨어졌는데 제작도 안 된 걸로 안다. (웃음)
연기 아카데미 ‘액터스 21’에서는 기술적인 면도 많이 배웠지만 정서적으로 많은 걸 얻었다. 나랑 같은 목표를 가진 또래의 좋은 사람들과 6개월간 같이 생활하면서 배운 게 많다. 오디션에 떨어지면 상처받을 수 있고, 떨어져도 다시 가야하고, 옆 사람이 아파하면 내가 토닥여줘야 한다는 것 등.
친한 동기들과 ‘다도리타’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액터스 21’ 오디션 때 받은 대본 제목 <닭도리탕>에서 따온 거다. 연말에 연말마다 각자 한 작품씩 출품해서 극장 하나 빌리고 우리끼리 섹션 나눠 모니터하고 투표해서 수상자에게 찰흙으로 트로피 만들어 주기도 하는 영화제를 몇 번 열었다. 남우주연상 받으면 회식비 10만원을 내야 하니까 서로 안 하려고 하고. (웃음)
초등학교 6학년 때 짝이었던 여자친구가 지금의 와이프다. 처음 만났을 때 좋아했던 이유는 반장이라서였던 것 같다. 그 나이 때는 공부 잘 하면 굉장히 예뻐 보이는데 그 친구는 반장인 데다 성적도 1등이었다.
와이프는 내 일에 대해 크게 응원해주기보다는 조용히 뒤에서 밀어주고, 나에게 기대려고 하지도 않는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사는 편이다. 와이프가 나보다 더 쿨한 성격이라 내가 “좋은 역할 맡았어. 축하해줘!” 하면 “너무 기뻐하지 마. 크랭크인 해야 크랭크인 하는 거야” 라고 한다. (웃음) 극장 데이트를 할 때도 내가 출연한 영화와 다른 더 재밌는 영화가 있으면 그걸 보러 갔던 커플이었다.
여섯 살, 한 살인 아이들이 커서 대단한 사람이 되거나 좋은 위치에 가길 바라지 않는다.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다른 사람들과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는 사람이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가장 좋은 건 무엇보다 우리 부부가 행복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눈이 오는 날에는 큰애를 썰매에 태워 10분 거리 유치원에 데려다 준다. 이어폰으로 캐롤송을 들려주면서 엄마나 아빠가 루돌프 사슴이 되어주는 거지.
<남자사용설명서>에서 이승재가 <썩션 TV 연예통신> 인터뷰하는 장면은 대본에 질문이 여러 개 있고, 내가 승재가 되어 대답을 만들어야 했다. 고민하던 찰나 최다니엘을 만났는데 “너라면 이 거만한 한류스타를 어떻게 할래?” 물었더니 자연스럽게 쭉쭉 얘기해주더라. 마침 그 신이 영화 전체의 첫 촬영이었는데 다니엘의 대답을 바탕으로 했더니 감독님이 “정세 씨 안에 이승재가 있네요” 라고 하셔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웃음)
<돼지의 왕>을 함께 했던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 <사이비>도 함께 하고 있다. 어느 마을에서 사건이 일어나는데, 누구나 개차반이라고 생각하는 주정뱅이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모두에게 존경받는 목사님이 거짓을 얘기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목사 역할, (양)익준이 형이 주정뱅이 역할이다.
<남자사용설명서>에서 보나(이시영)가 50만원으로 연애비법 비디오테이프를 사는 것처럼, 연기 잘 하게 해 주는 교재가 있다면 얼마라도 사고 싶다. 배우들끼리 어떤 작품을 보다 정말 잘 우는 배우가 있으면 “와, 어디서 배웠는지 한 2천만 원이라도 사고 싶다”고 농담을 하곤 하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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