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의 명연기 vs 브라우니의 명연기
상추의 명연기 vs 브라우니의 명연기
SBS 상추의 명연기
일찍이 연기할 줄 아는 개들은 많았다. 그러나 에 출연 중인 몸무게 15kg의 사모예드 종 상추처럼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는 개는 처음이다. 상추의 특기는 눈빛 연기로, 심란한 강태준(민호)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 바닥에 가만히 엎드려 눈을 가늘게 뜨고 있다가 그를 지그시 바라보거나, 학교를 떠나는 구재희(설리)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내면부터 차오르는 슬픔을 완벽하게 표현해낸다. 높이뛰기를 그만두겠다는 태준에게 불호령을 내리는 것처럼 단호하게 “왕!”하고 짖거나, 감기 때문에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환자의 괴로움을 재현하는 것 역시 상추이기에 가능한 연기다. 이러한 테크닉과 더불어 흠 잡을 곳 없이 프로다운 애티튜드는 그를 진짜 명연기자로 칭송하게끔 한다. 비록 민호의 말에 의하면 실제로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수컷이지만,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한달음에 태준에게 달려가 축축한 키스를 마구 퍼붓는 상추를 보고 그 누가 단순한 개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 제작진은 이제라도 등장인물 소개에 상추의 이름을 당당히 기재해야 마땅하다.

KBS ‘정여사’ 브라우니의 명연기
진정한 연기자란 대사 한 마디 없이도 감정을 실어나르는 법이다. 그 점에서 늘 꼿꼿하게 앉은 채 똑같은 표정으로 온갖 연기를 해내는 ‘정여사’의 시베리안 허스키 브라우니야말로 명배우라 할 수 있다. 정 여사(정태호)가 “물어!” 혹은 “짖어!”라고 소리쳐도 요지부동에 묵묵부답인 것은 그가 인형이기 때문이 아니라, 순하거나 고집 있는 애완견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주인에게 쉽사리 뽀뽀를 하지 않는 것은 사춘기 강아지의 습성, 떡갈비를 입에도 대지 않는 것은 채식주의견의 취향을 정확하게 반영한 연기다. 또한 “핸드! 스탠드 업!”이라는 명령을 듣고도 꼼짝하지 않는 것은 비단 그의 고향이 러시아의 시베리아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 토종개의 입장이 직접 되어보고자 함이다. 기껏해야 태어난 지 3, 4개월밖에 되지 않은 강아지이지만 가히 메소드 연기의 달인이라 할 만한 것이다. 다만 벌써부터 PD의 편집권을 침범하고, 사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페이스북에는 ‘………’이라는 글만 남기는 등 ‘연예인병’에 걸렸다는 증거들이 포착되고 있어 미래가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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