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대표들이 입장하고, 국기가 게양되었다. 그동안 잠실종합운동장에는 ‘뮤직네이션 SM 타운’의 국가가 울려 퍼졌다. 8월 18일 열린 < SM 타운 라이브 월드투어 >의 서울 공연은 SM 타운이 드디어 마을이 아니라 음악적 공동체로서 국가 단위의 결속력을 갖게 되었음을 공표하는 행사로 시작되었다. 물론 이것은 공연의 서막을 알리는 작은 이벤트이자, 팬들의 소속감을 고양시키기 위한 귀여운 장치다. 그러나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는 전 세계에서 개최되는 SM의 공연과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스탬프를 모을 수 있는 패스포트를 발행했다. 아이디어는 현실이 되고, 이것은 곧 사업의 주요한 기반이 된다.

한국에서 열리는 SM 타운의 콘서트에 해외 팬들이 대거 참석한 것은 그래서 여전히 중요한 대목이다. K-POP 사업이 붐을 이루면서 한류 아이돌 공연은 상시적인 행사가 되었고, < SM 타운 라이브 월드 투어 >만 하더라도 올해 벌써 LA와 타이베이, 도쿄에서 이미 공연이 치러진 상태다. 그러나 어떤 팬들은 이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여전히 한국을 찾는다. 일부의 팬, 소수의 마니아층이라는 외부의 시선은 여전히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 일부의 규모는 꾸준히 커지고 있으며, 마니아층의 충성도가 높아지고 있다면 이것은 분명 간과할 수 없는 산업의 흐름이다. 소속 가수들이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공연장 외부에는 대형 면세점의 홍보 부스가 설치되었고 공연은 개최되는 장소가 서울일 뿐 관객을 자국민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는 태도를 강하게 드러냈다. 언제, 어디에서 열리든 SM의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불특정 다수의 SM 팬덤이며, 이제 회사는 그들을 나라나 연령으로 구분하는 대신 ‘뮤직네이션 SM’의 국민으로 명명하는 것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 SM의 고집



장장 4시간에 달하는 본 공연의 내용에서도 SM의 특화된 고집은 강렬하게 드러났다. 추가열과 김민종까지 아우르는 출연자의 스펙트럼은 관객들과 회사가 공유하는 연대 의식을 공고하게 해 주었고, 레퍼토리의 상당수는 SMP를 기반으로 한 강렬한 사운드의 노래들이었다. 특히 태연이 선보인 ‘Devil`s Cry’나 메탈 사운드로 편곡된 샤이니의 ‘링딩동’은 H.O.T 시절부터 꾸준히 드러나고 있는 SM 특유의 록 친화적인 분위기를 고조시켰으며, 종현과 태민은 심지어 서태지의 ‘인터넷 전쟁’에 SM의 몽환적이고 과감한 퍼포먼스를 대입시키기도 했다. 공연장의 크기 때문에 군무를 제대로 관람하기는 어려웠으나 3개의 현장 스크린은 적절하게 무대의 핵심 포인트를 전달하며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공연장을 활용하는 방식 또한 인상적이었다. 최대한 넓은 범위를 아우를 수 있게 설치된 Y자형의 무대에서 출연자들은 춤을 추는 대신 달리면서 노래를 했고, 이동식 간이 무대와 객석 쪽으로 마련된 서브 무대를 오가는 동선은 더 많은 팬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가수들을 볼 수 있도록 준비된 배려였다. 심지어 국가 대표들이 입장하는 오프닝 행사에서는 이특과 은혁, 신동이 객석에 마련된 중계석에서 공연을 시작하는 깜짝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완성된 무대를 눈앞에서 재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특별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겠다는 목적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대목이자, 팬덤의 특성을 파악한 영리한 판단이 짐작되는 지점인 것이다.

‘네이션’에 걸맞는 브랜드를 정착시키는 법



그러나 무수한 팬서비스는 결국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연 자체가 보장하는 퀄리티로서의 브랜드 정체성이지만 이번 공연은 사운드와 구성이라는 핵심적인 요소를 놓침으로써 정작 확보해야 할 조건을 성취하지 못했다. 소리를 집약적으로 모을 수 없는 장소 특성상 안정적인 사운드 구현이 어렵다면 한계와 타협한 레퍼토리를 구성하는 편이 나았을 정도로 녹음된 기타 사운드는 듣고 있기 어려운 수준이었고, 열악한 환경에서 안정적인 라이브를 선보인 소속 가수들의 실력은 오히려 안타까울 정도였다. 또한 51곡에 달하는 세트리스트를 소화하는 방식은 연말 시상식과 유사한 나열식 구성으로 엮어져 전체적인 긴장감을 구축하지 못했다. 물론 중반 이후 좀 더 강렬한 사운드의 노래들을 배치하고, 후반부에 소녀시대의 초기 히트곡으로 분위기를 정돈한 후 마지막 순서로 H.O.T의 ‘빛’을 부르며 희망차게 마무리하는 대강의 흐름은 존재했다. 그러나 구성은 국가 선포식이라는 비장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공연답지 않게 입국은 커녕 공항을 벗어나지도 못한 듯 구체적인 서사가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너무 남발되어 오히려 클라이막스를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 폭죽과 분수의 운용 방식, 촌스럽고 노골적인 영상물은 진부함과 안이함을 의심케 했다.

물론, 이 공연은 단순한 사은행사 이상의 규모와 레퍼토리를 보여주었다. 슈퍼스타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준 보아와 동방신기, 팬덤을 뛰어넘는 메가 히트곡의 저력을 과시한 소녀시대, 이제는 회사의 중추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슈퍼주니어의 위치와 각자의 스타일을 완성해 가는 샤이니와 f(x)의 내공은 물론 급성장한 EXO 팬덤의 크기까지 대부분의 가수들이 SM 안에서 각자의 역할과 성장을 입증했다. 그러나 한계를 극복했을 때 공연의 브랜드는 공고해지며 이것이야말로 장기적으로 SM이 추구해야 할 기업 가치다.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SM 국가의 건국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음악을 가장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공연 환경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보장할 수 있는 가장 빛나는 가치가 자부심이라면, SM네이션 역시 마찬가지다.

사진제공. SM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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