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계영│음악만으로도 숨 막히게 멋질 것 같은 영화들
천계영│음악만으로도 숨 막히게 멋질 것 같은 영화들
“난 슬플 땐 힙합을 춰.” 드라마나 영화의 명대사가 아니다. 그러나 90년대 중후반 소녀 시절을 보낸 이들은 기억한다. 만화 의 순수소년 강현겸이 동네 여고생 채지율에게 손 내밀던 그 겨울의 놀이터를. 엽서, 노트, 편지지, 쇼핑백 등의 캐릭터 상품도 어지간한 아이돌 그룹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는 새로운 순정만화의 시대를 여는 하나의 신호와도 같았다. 독특한 그림체와 춤을 추는 듯 경쾌한 움직임, 예쁘고 멋진 동시에 황당할 만큼 웃긴 캐릭터로 독자들에게 반가운 충격을 안긴 천계영 작가의 등장이었다.

Mnet 가 오디션 열풍을 불러일으키기 10년도 더 전, 대형 음반회사 주최의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 네 천재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은 순정만화 시장을 강타한 후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될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천계영 작가의 최근작 역시 높은 관심 속에 드라마 화 진행 중이다. 급변하는 시장 안에서 이렇듯 트렌드를 훨씬 앞서가거나 동시대의 대중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빠르게 포착하는 감각에 대해 천계영 작가는 말한다. “대중을 이해하려면 나를 이해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대중을 대상화하고 그들을 관찰하는 데서 트렌드를 찾으려고 하면 표피적인 것 밖에 나오지 않아요. 젊은이를 이해하고 싶다면 내가 젊었을 때 무얼 원했는지 생각해보면 되죠. 어느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상사가 신입사원과 친해지려면 셔플댄스 스텝을 가르쳐달라고 하기보다는 퇴근시간에 재빨리 나가주는 게 훨씬 좋을 걸요. 일단, 신입사원들도 셔플댄스 스텝 몰라요. 우리도 토끼춤 스텝 몰랐으니까요. (웃음)”

만화 외에도 춤과 음악, 영화, 패션 등 다양한 대중문화 영역을 자신의 작품과 접목시켜 한층 더 흥미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그는 지난 10일에 막을 내린 제 5회 KT&G 상상마당시네마 음악영화제의 객원 프로그래머로 참여했다. “영화는 나 스스로 생산할 수 없는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해 줘요. 초등학교 때 TV에서 을 보고 많이 울었는데, 어린 나이에 그렇게 고통스런 감정을 처음 느껴보고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요. 그런 새로움을 경험할 때, 충격과 함께 인간을 조금씩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 같아요. 그리고 음악은 제가 제일 신기하게 생각하는 분야예요.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등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는 많지만 음악은 절대 다른 무엇으로 대체할 수가 없어요. 없으면 그냥 미칠 것 같아요”라는 말로 각 분야에 대한 애정을 토로한 천계영 작가가 ‘극장에서 본다면 음악만으로도 숨 막히게 멋질 것 같은 영화’들을 추천하며 덧붙였다. “를 제외하고는 전부 집에서 DVD로 본 작품들인데도 음악이 정말 멋졌어요. 극장에서 빵빵한 사운드로 다시 보고 싶어요.”
천계영│음악만으로도 숨 막히게 멋질 것 같은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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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aikiki Brothers)
2001년 | 임순례
“그냥 포스터만 봐도 가슴이 아팠어요. 특히 류승범이 혼자 뒤돌아보며 웃고 있는 모습이 담긴 포스터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막 건너려는 모습처럼 보였어요. 꿈을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단지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이렇게 고단한 삶을 견딜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만큼 리얼리티가 있고, 그래서 보는 내내 ‘감독님, 아무리 리얼리티가 좋대도 이건 너무 잔인해요’라고 울부짖고 싶었어요. 그래서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찾은 아주 작은 행복이 그토록 큰 위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고요.”

퀸 같은 세계적인 밴드가 되자던 고등학교 친구들은 모두 생활에 찌든 어른이 되었고, 유일하게 꿈에 근접한 주인공 성우(이얼)의 직업은 기껏해야 유흥업소에서 연주하는 ‘오부리’다. 어찌 보면 지금 우리가 겪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주인공들의 삶이 잔인하게 느껴지는 건, 언젠가 세상을 가질 거라 믿었던 어린 시절의 모습과 대비되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에게도, 꿈은 허락되는 것일까. 현실적이면서도 희망적이었던 마지막 장면에서도 이 질문의 답은 썩 긍정적이지 않다. 다만 그래도 살아보라고, 혹시라도 출구가 있다면 버둥거리는 그 하루하루에 있을 것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마냥 낙관적이지 않아서 더 신뢰가 가는 목소리로.
천계영│음악만으로도 숨 막히게 멋질 것 같은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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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Berlin Calling)
2008년 | 하네스 스퇴르
“친구인 DJ Maxqueen이 추천해줘서 보게 된 영화예요. 최근 몇 년 동안은 저도 전자음악의 매력에 푹 빠져 있어서, 이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만 들어도 좋아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어요. 독일의 유명 DJ가 영화에서도 주인공 DJ 역할을 맡았는데, 배우들이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뮤지션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건 정말 어렵잖아요. 그래서 더 좋았어요.”

영화 속에서 언급되는 커트 코베인의 경우도 그렇지만, 뛰어난 창작자와 자기 파괴적인 충동은 때로 떨어질 수 없는 듯하다. 주인공인 DJ 이카루스 역시 중요한 앨범 제작을 앞두고 마약에 손을 대고, 이후 도저히 손을 댈 수 없는 단계까지 추락한다. 마치 이카루스라는 자신의 예명처럼. 하지만 완전히 무너지고 싶을 수도 있는 순간 그를 구원하는 것은 그의 전부였던 테크노 음악이고, 치료 과정 속에서 작업한 음반은 성공적으로 완성된다. 자칫 빤한 성공 스토리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성공이란 결과가 아니라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열정의 대상이다. 그것이 음악이든 사랑이든.
천계영│음악만으로도 숨 막히게 멋질 것 같은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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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e Filth And The Fury)
2000년 | 줄리엔 템플
“영국 펑크록의 전설인 섹스 피스톨즈의 기록 영화예요. 저는 이 팀의 팬인데 특히 보컬리스트였던 조니 로튼은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세 명 중 한 사람이랍니다. 저의 진정한 아이돌이죠. 그런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영화예요. 도 섹스 피스톨즈를 모델로 했다지만 실제 그들의 이야기와는 차이가 많이 나서 팬으로서 안타까움이 컸어요. 진짜 그들의 모습과 음악을 생생하게 느끼려면 이 영화를 보시기를 꼭 추천해요.”

섹스 피스톨즈는 밴드라기보다는 하나의 현상, 그리고 어쩌면 그 시대에 필연적으로 터져 나왔어야 할 현상이었다. 록이 탐욕스러운 연예 산업에 완전히 편입됐던 70년대 중반, 음악 관계자인 맥라렌의 가게를 털다가 그에게 발탁된 세 명의 반항아는 섹스 피스톨즈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냈고, 그들의 무대는 기성 문화에 엿을 먹이기에 충분했다. 은 바로 이러한 그들의 성과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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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Almost Famous)
2000년 | 카메론 크로우
“‘음악영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힘찬 음악영화예요. 주인공의 시선과 함께 록밴드의 삶을 엿볼 수 있죠. 영화를 보고 한참동안 여기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마음 한편에 오래도록 아련함이 남아있었어요. 특히 케이트 허드슨이 연기한 그루피, 페니 레인이라는 캐릭터가 오래 기억에 남아요.”

음악잡지인 컨트리뷰터 에디터로 일하기도 했던 감독 카메론 크로우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1970년대 록음악에 심취해 음악에 대한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주인공 윌리암은 유명세를 타기 직전의(Almost Famous) 밴드 스틸워터의 투어에 동행하며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주도권 다툼과 여자 문제 등을 관찰한다. 그것은 그가 음반을 들으며 상상하던 멋진 신세계는 아니지만 그 경험을 통해 윌리암은 좀 더 성장한다. 쉽게 환상을 허락하지 않지만, 또한 무책임하게 현실을 욕하지 않는 영화의 시선은 그래서 따뜻하다.
천계영│음악만으로도 숨 막히게 멋질 것 같은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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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Metallica: Some Kind Of Monster)
2004년 | 조 벨링거, 브루스 시노프스키
“메탈리카의 다큐 영화는 두 편을 봤는데 하나는 < A Year and a Half in the Life of Metallica >라는 1992년 영화였어요. 메탈리카 최고의 전성기였죠. 그런데 제가 소개할 는 2004년, 그러니까 음악시장에 변화도 많이 생기고 그들이 최고의 자리에서 한창 아래로 내려오는 시기였어요. 이 영화가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그들이 내려가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거예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고군분투하지만 어쩌면 남들이 보기에는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모습도 포장하지 않고 전부 다 당당하고 진솔하게 보여준다는 게 제겐 컬쳐 쇼크였어요.”

얼터너티브 록 사운드를 도입해서 기존 팬들에게 비난받았던 앨범 < Load >와 쓰래시보단 정통 헤비메탈에 회귀한 앨범 < ReLoad >가 모두 외면당한 뒤 와신상담하며 준비한 앨범 < St.Anger > 제작 당시에 찍은 다큐멘터리다. 뉴 메탈의 득세와 예전 같지 않은 창작력 사이에서 그래도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그들의 모습은 오히려 현재진행형이기에 긍정적으로 느껴진다. 특히 리더인 라스 울리히가 심리 치료를 위해 과거의 동료이자 라이벌 메가데스의 수장인 데이브 머스테인과 화해하는 모습은 8, 90년대 메탈 팬이라면 박수를 치며 그들의 현재를 응원하고픈 명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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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만화 시장의 마지막 황금기에 등장해 다양한 플랫폼의 변화에도 꾸준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천계영 작가는 현재 한 포털 사이트에 웹툰 를 연재 중이다. “앞으로는 연출자와 주인공이 정해져있는 서사 구조는 점차 사라질 것 같아요.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가 픽션을 즐기는 방법은 캐릭터를 통한 가상 체험으로 빠르게 변하지 않을까요. 저는 체험자가 인물을 선택해서 그의 시점으로 그물망처럼 짜인 사건들을 경험하는 포맷의 만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땐 이미 만화라는 한정된 이름을 붙일 수는 없겠지만요.” 매번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았고 여전히 ‘다음’을 상상하고 있는 그에게 창작이란 무엇일까. “창작이란 머릿속에 있는 것을 실체화하는 작업이잖아요? 그런데 상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걸 남들도 볼 수 있게 꺼내는 데에 더 큰 재능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상상력과 창의력은 아주 달라요. 상상은 최대한 허무맹랑하게, 작업은 최대한 현실적으로. 그게 창작하는 저의 기본자세예요.”

글. 최지은 f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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