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마지막은 미소였다. 잘못된 방법이었지만 가질 수 없는 남자를 사랑했던 MBC <해를 품은 달>의 윤보경은 결국 목숨을 던지는 걸로 지독한 사랑을 끊었다. 자신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무서움, 허연우(한가인)에 대한 미안함을 혼자 감내했기에 행복보다 질투나 원망을 담아낸 윤보경의 눈동자는 드라마 속 어느 인물보다 외로워보였다. 그렁그렁한 눈물이 떨어지기도 전에 슬픔을 전달하는 마스크를 가진 배우 김민서의 속마음이 궁금한 것은 그래서였다. 과연, 감당할 수 없는 운명의 무게를 배우로서는 어떻게 느꼈을까, 그리고 작품을 끝낸 지금 보경을 어떻게 놓아줬을까.

하지만 깊은 슬픔에 빠져 있는 여린 여자일거라 생각한 조심스러운 추측은 해맑게 미소를 지으면서도 “보경은 아빠조차 내 남자를 건들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그런 멋진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라며 김민서가 파워에 방점을 찍는 순간부터 빗나가기 시작했다. “악역도 못된 짓을 하는 이유가 다 있기 마련이잖아요. 보경이는 그게 사랑이지만 극 중 갈등이 고조되면 강하게 그려지길 바랐는데 보경이는 너무 심약해서 괴로워했어요. 그게 시청자도 저의 마음도 슬프게 한 것 같아요.” KBS <동안미녀>의 악독한 디자이너 강윤서로도 미운 정이 들게 하고 SBS <나쁜 남자>에서 홍태성(김재욱)을 끝까지 지키는 최선영과 KBS <성균관 스캔들>의 초선으로 보여줬던 청순함과는 분명 다른 얼굴이었다.

“보경이가 좀 더 치열해졌을 것 같아서 이훤(김수현)을 보다 열렬히 사랑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김민서는 오히려 망가지는 것에 스스럼이 없고 시끌벅적하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왈가닥 소녀에 가깝다. <나쁜 남자>로 소개팅이 많이 들어왔지만 친구들이 알아서 “보이는 걸 믿으시면 안 됩니다”라며 중간에서 거절하는 것조차 김민서에게는 재밌는 일이고 “보경이를 안쓰러워하기보다 제 외모 지적을 하는 어머니의 말씀” 쯤이야 웃고 넘길 수 있는 에피소드다. 그리고, 좋아하는 만화와 소설은 한 구절구절을 모두 기억하는 모습에서 김민서는 늘 꿈을 꾸는 소녀로 완성된다. “사람의 감정선을 깊이 파고들어 묘사해주는 여성스러움”을 좋아한다며 환하게 웃는 감성은 그 자체로 사랑스럽다. 다음은 풍부한 소녀 감수성을 가진 김민서가 전하는 연애의 시작과 끝을 이야기하는 음악들이다.




1. 윤하의 <1집 고백하기 좋은 날>
“추천곡들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연애의 시작부터 중간, 끝까지의 심정을 모두 담은 종합선물세트가 될 것 같아요”라는 말과 함께 김민서가 추천한 첫 곡은 윤하의 ‘고백하기 좋은 날’이다. “요즘 같은 봄 날씨에 듣기 좋은 노래예요. 가사를 들으면 마음이 막 설레거든요. 특히 ‘아침햇살이 날 비추는 유난히 기분 좋은 날 / 물들은 내 얼굴도 오늘따라 더 예쁜 날’ 같은 부분이요.” 윤하의 정규 1집에는 ‘비밀번호 486’과 ‘연애조건’ 등 풋풋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곡이 다수 수록돼 있지만, 그 중에서도 ‘고백하기 좋은 날’은 수줍은 소녀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곡이다. 잔잔하게 깔리는 피아노 반주와 청아한 윤하의 목소리가 잘 어우러진 전반부는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촉촉하게 만든다.



2. Corinne Bailey Rae의 <1집 Corinne Bailey Rae>
“혹시 코린 베일리 래를 아시나요? 목소리가 굉장히 예뻐서 굉장히 좋아하는 가수예요. ‘Like A Star’는 노랫말까지 반짝반짝하는 느낌이라, 특히 더 아끼는 곡이에요. 한창 사랑에 빠져 있는 연인들이 들으면 좋을 것 같네요.” 김민서가 두 번째로 추천한 곡은 코린 베일리 래의 ‘Like A Star’다. 국내에서는 아이유가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해 라이브를 들려주면서 더욱 더 유명해진 노래. 코린 베일리 래의 보컬은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조용하게 읊조리는 듯하고, 이는 기교 없이 담백해서 더 달콤하다. 이 곡이 수록된 1집 앨범은 총 4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2000년 발표된 전 세계 앨범 판매량 집계 순위 49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3. Jack Johnson의 <3집 In Between Dreams>
김민서가 세 번째로 추천한 음악은 잭 존슨의 ‘Better Together’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설렘을 따뜻한 기타 선율로 담은 이 곡은 잭 존슨의 대표곡 중 하나다. 귀엽게 튀어 오르는 기타 전주 부분은 들을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멜로디 위에 조심스럽게 얹는 잭 존슨의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 온기를 느끼게 한다. 기쁜 일이 있어도, 시련이 닥쳐도 언제나 함께여서 좋다는, 함께인 것이 행복하다는 메시지는 기타 선율과 어울리며 사랑스런 음악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It`s not always easy and sometimes life can be deceiving. / I`ll tell you one thing. It`s always better when we`re together’ 등의 가사는 힘든 세상을 함께 버틸 수 있게 하는 최고의 로맨틱한 고백이다. 보고만 있어도 즐거운 연인들에게 제격인 곡이다.



4. 린(LYn)의 <해를 품은 달 OST>
“요즘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는 역시 제가 출연했던 MBC <해를 품은 달>의 OST에 수록된 ‘시간을 거슬러’예요. 촬영장에 갈 때마다 항상 차 안에서 무한반복으로 듣곤 했어요. 물론 보경이의 테마곡은 아니겠지만, 가사가 담고 있는 내용이 보경이의 이야기 같다고 느껴졌거든요. 특히 ‘갈수록 짙어져간 그리움에 잠겨 시간을 거슬러 갈순 없나요 / 그 때처럼만 그대 날 안아주면 괜찮을 텐데 이젠’이라는 부분이요. <해를 품은 달>에서도 만약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다면 보경이가 이훤을 연우보다 먼저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워낙 슬픈 노래이기도 하잖아요. 이 곡 덕분에 보경이의 상황에 몰입이 좀 더 잘 됐던 것 같아요.”



5. 박선주의 < Dreamer >
김민서가 추천한 마지막 곡은 박선주의 ‘사랑을 사랑한다’이다. “이 노래도 되게 좋아해요. 박선주 씨가 그냥 덤덤한 음색으로 읊조리듯이 노래를 부르거든요. 그런데 가사를 자세히 들어보면, 정말 가슴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아픈 이별의 이야기예요. 그러면서도 가사 자체는 ‘저녁 메뉴는 뭐였을까 마주 앉았던 건 누굴까 그 이를 뭐라고 부를까 몇 번쯤 날 떠올렸을까’ 하는 식으로 좀 현실적이라고 해야 하나? 마음에 확 와 닿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너무 우울해서 오히려 더 우울해지고 싶을 때 듣는 곡이에요.” 이별 후에도 일상은 평소와 다름없이 평범하게 흘러가고, 누군가는 그 속에서 점점 옅어져 가는 사랑의 기억을 부여잡으려 애쓴다. 최대한 절제된 박선주의 보컬이 빛을 발하는 곡이다.




“예전에는 영화 보고 책을 읽으면 미니 홈피에 좋아하는 대사를 적어두곤 했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일부러 안 하고 있어요. 감정을 글로 표현하면서 머리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게 연기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요.” 사뿐히 구름 위를 걷는 동화 속 소녀처럼 김민서는 배우로서의 행복한 내일을 꿈꾼다. “일 년 전 영화 <블랙 스완>을 봤어요. 원래 나탈리 포트만을 좋아하는데 몰입하는 모습이 배우로서 보기 좋았어요. 저도 그런 역할을 꼭 해보고 싶어요.” 언제나 감정에 솔직하고 그런 자신을 사랑하는 배우 김민서. 잠시의 휴식을 끝내고 그녀가 새로 보여줄 연기는, 그래서 김민서의 상큼함이 묻어나올 것만 같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