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워니 작가가 만들었던 ‘엄친아’라는 말이 잘난 남자를 뜻하는 보통 명사가 된 것처럼 때로 인기 만화가가 만든 신조어는 다양한 용례를 거치며 일상 속에 안착한다. ‘엄친아’처럼 이제는 관용어가 되어버린 ‘차도남’을 만든 조석 작가의 경우 그 예가 훨씬 다양한데 그것은 단순히 만화의 인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신조어들이 대상의 핵심을 정확하게 꿰뚫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소개하는 다음 5개의 용어는 조석이 만들고 우리가 사용했던 대표적인 표현들이다. 그 발생부터 그 안에 숨은 함의까지, 우리의 일상을 바꿨던 조석의 유행어들을 살펴본다.소화 잘 되는 고기
1. 고기는 맛있어
2. 으헉! 베지터보다 무서운 베지테리언이다!
43회 ‘서울 어드벤처’ 편에서 처음 나왔던 말. 업무 차 서울에 올라와 같은 웹투니스트인 워니 작가와 김선권 작가를 만난 조석은 간단히 저녁을 하자는 말에 “간단하게 고기 좋네요”라는 말과 함께 ‘소화 잘 되는 고기’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이후에도 사람들에게 정립된 자신의 이미지 중 하나로 ‘소화 잘 되는 고기’를 미친 듯 갈구하는 모습을 꼽았고, 수능 준비생을 위한 특집에선 수면제와 각성제를 먹지 말라며, 대신 고기를 공기처럼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이며 고기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이는 단순한 한 개인의 식습관이 아니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저서 에서 영장류 중 큰 사냥감을 쫓기 위해 집단 사냥을 하는 건 원시인뿐이었으며, 육식은 그 사회가 진화해 온 특수한 환경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문화적 사후 효과와 함께 기본적인 음식 욕구라 남았다고 밝힌 바 있다. 즉 고기에 대한 집착은 인간 본연의 욕구에 대한 솔직한 표현이며, 독자를 웃길 수 있는 소재를 가장 보편적인 인류의 진화적 형질에서 찾고자 하는 기획이다. 차도남
1. 차가운 도시 남자
2.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만 그런 건 없엉
조석이 스스로를 ‘워커홀릭에 빠진 차가운 도시 남자’라 정확히 호명한 건, ‘도시 남자’ 편에서다. 이후 ‘차도남’은 종종 ‘유로피언 레스토랑에 앉아 고등어조림을 시켜먹는’ 허세의 이미지로 소비되지만 그보다 조금 전인 ‘하이테크놀로지’ 편에서 이미 조석은 차갑고 이지적인 워커홀릭 이미지를 차용한 바 있다. 친구가 없어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놀던 그는 하이테크에의 경험을 뉴요커가 된 기분에 비유하며 ‘나는 과묵하고 차갑지만 하이테크놀로지와 공감하는 시크한 도시 남자. 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라는 대사로 현재 쓰이고 있는 ‘차도남’의 원형을 보여주었다. 요컨대, 그가 처음에 정의했던 차가움이란 직접 만나고 대화하는 전통적 인간관계를 인터넷을 비롯한 테크놀로지가 대체해가는 시대 분위기에 대한 묘사였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논문 에서 테크놀로지의 진보와 역사의 진보를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을 비판했는데 ‘차도남’은 그런 면에서 도시적이고 시크하고 멋있다고 여겨지는 세련된 이미지의 이면을 들춰내는 예리한 관점을 제공한다. ㅋㅋ 날 로그인 하게 만들다니
1. 상대의 유머를 칭찬하고 나를 높이는 최상급 표현
2. 1빠는 중요하지 않아
조석의 병문안을 온 친구들을 그린 ‘초대받은 손님’ 편에서 서로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다 나온 표현이다. 를 비롯한 개그 만화에 칭찬의 의미로 다는 댓글로 쓰임새에 있어선 ‘엉엉, 날 가져요’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엉엉, 날 가져요’가 자아를 포기하고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순종적 태도라면, ‘ㅋㅋ 날 로그인 하게 만들다니’는 상대방의 개그를 받고 그로부터 자신의 개그 센스를 이끌어내는 좀 더 적극적인 태도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가르침을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닌, 상대방 내면으로부터 답을 이끌어내는 산파의 과정에 비유한 바 있는데, ‘ㅋㅋ 날 로그인 하게 만들다니’에 대한 조석의 긍정 역시, 개그 만화를 통해 독자의 센스를 이끌어내는 일종의 산파술로 볼 수 있다. 젊은이들의 멘토를 자청하는 많은 성공한 어른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성공의 비법만이 답인양 알려줄 때, 진정한 멘토는 멘티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점에서 조석은 웃음의 전도사를 넘어 웃음의 멘토에 이르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계
1. 여기까진 크리링이 최강
2. 지하 지옥이 시끄러운 건 층간 소음 때문
조석의 또 다른 연재물 1화부터 쓰고 있는 표현. 스페인 프로 축구리그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신계에 속한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을 일컫는 말로 축구에서 이것이 왜 진리인지는 의 챔피언스리그 특집기사에서 이미 다룬 바 있다. 이 표현이 중요한 건, 우리가 똑같은 리그라 생각하는 울타리 안에서도 엄연히 넘어설 수 없는 일종의 카스트가 있다는 걸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단순한 계급적 차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숭산 큰스님은 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육도(천상,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 인간) 윤회가 실은 인간들의 마음에 따라 오가는 것임을 말한 바 있다. 즉 우리 모두 인간계에 속한 것 같지만 누군가는 아귀와 축생의 마음을, 누군가는 천상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 인간계가 중요한 건, 천상의 즐거움과 지옥의 고통 속에서는 깨달음을 얻을 노력을 안 하게 되지만 인간의 마음일 때 비로소 수행에 대한 욕구를 느끼기 때문이다. 바르샤와 레알을 따로 놓고 자신들끼리 인간계 1위를 위해 치열히 싸우는 나머지 프리메라리가 팀들의 노력은 이러한 향상심의 한 단면이다. 또한 인간계와 축구를 연결해 같은 인간이라도 강등권에 속한 이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암시하는 것 역시 이 표현의 중요한 부분이다. 끝판왕
1.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2. 그런데 너님 짐 ㅋㅋ
역시 에 나오는 표현으로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스페인을 이르는 말이다. 조석은 월드컵 전부터 토레스, 비야, 샤비, 이니에스타, 실바, 알론소, 푸욜, 카시아스 등이 포진한 스페인 대표팀의 완벽한 스쿼드에 대해 ‘합성이네’라는 말로 놀라움을 대신한 바 있는데, 실제로 ‘끝판왕’ 스페인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며 무관의 제왕으로부터 벗어났다. 최강의 존재를 게임에서 쓰는 ‘끝판왕’이라는 말로 치환한 건 < WOW >를 비롯한 게임에 대한 조석의 애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끝판왕’은 단순히 먹이사슬의 정점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저가 게임에 도전할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욕망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우리의 욕망은 대타자 A의 시선을 의식한다고 공식화한 바 있는데 그 말을 빌리면 우리는 를 아무 사심 없이 즐기는 순간에도 무의식적으로는 ‘끝판왕’ 바이슨의 존재를 의식하는 셈이다. ‘끝판왕’ 혹은 최강의 악당이 필요한 건 그 때문이다. 축구에서든 만화에서든. 그리고 어쩌면 개그 만화에서의 ‘끝판왕’은 이토록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유머를 창조해온 조석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글. 위근우 기자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