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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희경은 뚱뚱한 자신을 감춘다거나 몸매 콤플렉스가 있는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예쁘다는 말보다 웃기는 몸을 갖고 있다는 말이 더 듣기 좋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했다. 그래서 지금의 이희경에게 중요한 건 32kg 감량 자체가 아니라, 그 때문에 달라진 마음가짐이다. “예전에도 저를 사랑했고 지금도 저를 사랑하지만, 정말 습자지 한 장 정도의 변화가 생겼어요. 제가 남자랑 단둘이 있으면 굉장히 어색해하는 성격인데, 예전에는 그 어색한 분위기를 제가 깨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예쁜 모습으로 어필한다면 저는 성격으로 어필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상대방이 절 이해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스로 조금의 자유를 준 거죠. 살을 빼고 나서 변한 건 상대방이 아니라 제 마음이에요.” 그 자유를 얻기 위해 4개월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운동했고 아직도 라면과 야식을 시도해보지 못했다는 이희경. 그가 대학교 시절부터 ‘헬스걸’이 끝난 최근까지 자신에게 힘이 되어준 노래들을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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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경의 첫 번째 추천 곡은 지금의 개그맨 이희경을 있게 한 노래라 할 수 있는 ‘잊지 말아요’다. “ ‘슈퍼스타 KBS’의 권사님으로 데뷔했는데 그때 처음 부른 노래가 백지영의 ‘잊지 말아요’였어요. 어떤 가요를 부를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신)보라가 ‘잊지 말아요’를 추천해줬어요. 즉석에서 불러봤는데 정말 재밌는 거예요. 가장 처음에 입에 밴 곡이었고, 다른 노래도 불러봤는데 그만한 노래가 없었어요. 첫 단추를 잘 끼우게 됐죠. 그래서 백지영 씨는 저를 모르는데 전 백지영 씨를 TV에서 볼 때마다 애착이 가요. (웃음) 정말 애절한 노래인데 들을 때마다 권사님 톤이 반사적으로 나와요. ‘우리 서~로 사랑했는데~ 같은 하늘 다른 곳에서, 아버지, 나를 잊지 말아요’ 이러면서.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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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에요. 대학교 때 집안 사정이 안 좋아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거든요. 밤에 녹초가 된 상태로 집에 가는 버스를 타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춘천 가는 기차’를 들으면 피로가 확 풀어지는 느낌이었어요. 상념에 잠기기도 정말 좋은 곡이죠. 그때는 이 버스가 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어디론가 떠나는 것 같았어요. 녹초가 된 몸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 같은 거 있잖아요. 최근에 ‘헬스걸’ 할 때도 힘들고 피곤한 적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이 곡을 무조건 첫 곡으로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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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감상에 젖게 하는 두 분이 계신 데, 김현식 씨와 김광석 씨에요. 그중에서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은 비 오는 날씨, 약간 우울한 날에 잘 어울리는 곡이죠. 대학교 때 비가 오면 막걸리에 파전을 먹던 단골집이 있었어요. 거기서 이 음악이 흘러나오면 그렇게 운치가 있었어요. 그런 날엔 막걸리가 나를 마시는지, 내가 막걸리는 마시는지 그냥 그 분위기에 취하게 되더라고요. 정말 비 오는 날 막걸리에 파전 드시면서 이 노래를 들으시면 ‘분위기에 취한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실 거예요. 심지어 전 파전을 베개 삼아 잠을 자기도 했어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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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셨던 노래예요. 살아계셨을 때 노래방 가시면 항상 부르셨거든요. 약간 박자를 놓치긴 하셨지만 언제나 아버지의 애창곡이었어요. ‘헬스걸’ 끝나고 나서 예쁜 옷 입고 엄마, 언니와 함께 아버지 산소에 갔어요. 아버지한테 저 알아보겠느냐고, 만날 뚱뚱한 모습만 보여 드렸는데 알아보겠느냐면서 한바탕 울고 내려왔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아버지가 부르시던 그 선율이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얼마 전에 MBC ‘나는 가수다’에서 조관우 씨가 ‘하얀 나비’를 불러주셔서 정말 좋았어요. 오랜만에 누군가가 그 노래를 불러주니까 좋더라고요. 그 때 기억이 새록새록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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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언제 들어도 크리스마스 같아요. 내 옆엔 크리스마스트리가 있고, 종소리가 울리고, 현란한 네온사인 옆을 거닐고 있고, 사랑하는 남자가 있을 것 같고, 그 미지의 남자가 제 손을 잡고 있을 것 같고. (웃음) 이런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곡이에요. 12월의 주제가죠. 크리스마스에는 친구들을 저희 집에 초대해서 가족과 함께 파티를 열고 싶었어요. 풍선도 불고 케이크랑 달콤한 와인도 사고 영덕 대게도 좀 삶아서. 아니면 대하라도. (웃음) 어느 순간부터 철이 들었는지 엄마가 혼자 계시는 걸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픈 거예요. 안 되겠다,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겠다 싶어서 친구들을 집에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게 참뜻 깊고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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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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