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있다. 어려서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어린 동생과 자신을 버렸다. 마음 좋은 고모 손에 키워졌지만,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폐가 되기 싫어 일치감치 제 앞가림을 하며 살아왔다. 신춘문예에 두 번이나 당선되고도 ‘제 글’을 쓰지 못한 채 ‘삯글’을 쓰며, 녹록치 않은 삶 속에서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살아온 서른 살 여자. 그녀가 치매란다. 한 남자가 있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죽도록 맞았고, 유일하게 의지했던 하늘같은 형은 자기 대신 죽었다. 친구에게 억울한 누명을 썼고, 엄마는 그런 자신을 외면했다. 16년이나 감방 생활을 하고 서른다섯 아저씨가 되었다. 이제 겨우 사제 음식 마음껏 먹고 사제 햇볕 마음껏 쬐나 했더니, 간암이란다.

SBS 의 김수현 작가와 JTBC (이하 )의 노희경 작가는 서연(수애)과 강칠(정우성)을 불치 혹은 난치병을 통해 죽음 앞에 세웠다. 하지만 이들 작가에게 주인공의 병은 손쉽게 눈물샘을 자극하는, 멜로드라마의 흔해빠진 클리셰가 아니다. 두 작가는 너무 일찍 어른이 되거나 미처 어른이 되지 못한, 줄곧 제대로 ‘제 삶’을 살지 못한 인물들이 ‘사랑과 죽음’의 순간과 맞닥뜨리는 이야기를 그린다. 인간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삶의 불가항력’이라는 점에서 닮은 사랑과 죽음은 김수현 작가와 노희경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 온 주제이자, 우리가 이들의 드라마를 보며 가슴이 서늘해지거나 먹먹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산다는 것 참 어렵지 않아?
[김희주의 10 Voice] 살아간다면 이들처럼, 김수현과 노희경이 말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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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두 작가가 이를 그리는 방식은 다르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깔끔하다”고 평가받는 서연과 “양아치”, “깡패”라 불리는 강칠이 다른 것처럼, 지극히 김수현답고 더없이 노희경다운 방식으로 묻는다. 김수현 작가는 알츠하이머라는, 흔히 육체가 가장 노쇠할 때 찾아오는 병을 서른 살 젊은 여인에게 안겼다. 자존감이 목숨만큼 소중한 서연이 존재를 퇴행시키는 잔인한 병을 만나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날카로운 칼로 생을 후벼 파고 그 벌거벗은 상처를 보란 듯이 눈앞에 들이밀며 삶은 이렇게 가혹한 것이라 말한다. 노희경 작가는 앞으로 가장 찬란한 시기가 펼쳐질 고등학생에게 살인누명을 씌워 16년간 세상과 격리시켰다. 그리고 몸만 큰 채 서른다섯이 된, 어깨 위에 불행이 돌무덤처럼 겹겹이 쌓인,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남자에게 간암을 선고하며 삶은 이렇게 고된 것이라 말한다. 동시에, 비록 ‘기적’이라는 이름의 판타지일지라도 강칠에게 희망의 문을 열어준다.

과 의 목소리는 다르다. 하지만 건네는 질문은 닮았다. “멍청이가 될 때마다 모자란 사람처럼 그냥 웃는다. 웃으면서 죽고 싶다. 나를 죽이고 싶다”며 오열하는 서연과 “인생은요, 원래 이런 거예요. 지지리 복 없는 놈은 지지리 복 없게 흘러가는 게 인생이라구요. 그렇게 엿 같이 흘러가는 게”라고 악에 받쳐 소리 지를 수밖에 없는 강칠을 우리 앞에 들이밀며 묻는다. “산다는 것, 이것 참 어렵지 않아?”라고. 김수현 작가와 노희경 작가는 잔인할 만큼 가혹하고 고된 삶을 그린다. 그 속엔 인간의 비겁하고 비열한 모습부터 경이로운 모습까지 모두 있다. 그래서 두 작가 모두 섣불리 현실을 낙관하지 않지만, 동시에 결코 인간의 의지와 선의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다. “형의 의지가 형을 살린 거야”라고 말하는 국수(김범)와 선의 위에 놓인 사랑으로 서연에게 헌신하는 지형(김래원)을 통해 그 끝이 어떤 모습이라 하더라도 살아있는 동안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모든 노력을 필사적으로 다해”야 하는 것이 삶이라고 말한다.

‘삶의 불가항력’을 버텨낼 수 있는 길
[김희주의 10 Voice] 살아간다면 이들처럼, 김수현과 노희경이 말하는 삶
[김희주의 10 Voice] 살아간다면 이들처럼, 김수현과 노희경이 말하는 삶
그렇다. 산다는 것은, 참 쉽지 않다. 낡디 낡아 끝이 버스럭거리는, 진부한 명제라 해도 어쩔 수 없다. 퇴근길의 혼잡한 지하철 안에서 눈앞에 선 사람의 축 처진 어깨만 보아도,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앉아 마주한 자신의 얼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서연과 강칠 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우리도 태어남과 동시에 각자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를 등에 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살면서 크고 작은 불가항력의 순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이는 홀로 감당하기에 버겁다. 그 때, 필요한 것은 서로의 등에 놓인 짐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그 무게에 무릎이 꺾여 무너진 이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는 것이다. 이 때 그 손에 깃든 것은 우리가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졌다는 믿음이다.

김수현 작가는 지형의 입을 빌어 “우리는 보이지도, 보여줄 수도 없는 두 마음인 채, 눈 맞추고 웃으며 서로 알아주고 느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는 비단 지형과 서연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가 각자의 등에 짊어진, 보이지도 보여줄 수도 없는 삶의 무게를 서로 짐작하고, 안타까워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우리가 인간인 한, 함께 살아가는 한, 우리의 욕망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갈등하고 상처 입힐 수밖에 없다. 결국 서로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 것, 서로에게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라 말해주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삶의 불가항력’을 버텨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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