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리드>│호흡곤란, 상상불가, 엄지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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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보니 관 속이다. 사방이 깜깜하고, 몸을 옴싹달싹 하기도 힘들다. 거기다 드문드문 모래가 세어드는 것으로 보아 땅 밑이다. 산 채로 관에 넣어져 매장 당한 것이다. 주어진 것은 라이터와 휴대폰 뿐.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이라크의 전후 재건을 위해 진출한 미국 기업의 트럭 기사 폴(라이언 레이놀스)은 어느 날, 의문의 총격을 받는다. 정신을 잃은 뒤 눈을 뜬 곳이 바로 관 속이다. 90분밖에 버틸 수 없는 정도의 산소만 남아 있는 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0분간의 암전, 들리는 건 거친 숨소리 뿐. 영화 의 시작은 관 속에서 눈을 뜬 폴의 시각과 촉감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렇게 아무 것도 없어 오히려 강렬한 첫 느낌은 90분 내내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유지된다.
영화 <베리드>│호흡곤란, 상상불가, 엄지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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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속에서 모든 걸 다 한다
영화 <베리드>│호흡곤란, 상상불가, 엄지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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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8일 개봉) 역시 ‘참 재밌는데, 정말 재밌는데…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라는 탄식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축은 홍보 문구 그대로 6피트의 땅 속, 90분의 산소와 휴대폰뿐이다. 정말로 카메라는 땅 속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다. 그러나 한정적인 공간은 카메라 앵글을 최대한 활용해 액션이 가능한 무대로 확장되고, 휴대폰 너머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과의 갈등을 통해 긴장과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좁은 관 안에서 살 떨리게 아슬아슬한 순간을 만들어 내고, 몇 번의 전화 통화만으로 거대 기업이 노동자에게 가하는 비인간적인 행태를 폭로하고, 전쟁의 참상과 영화의 근간을 흔들만한 반전 또한 창출해낸다.

할리우드에서 약 1년 간 ‘블랙리스트 시나리오’(촬영하는 게 불가능한 좋은 시나리오)로 떠돌던 는 스페인의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을 만나 세상에 나왔다. 카메라가 절대 지상으로 올라가지 않을 것, 플래시 백을 만들지 않을 것, 리허설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제약을 형식으로 가져간 감독의 고집은 오히려 놀랄 만한 결과물로 귀결되었다. 연출, 편집, 음악까지 1인 3역을 해낸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의 이름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다.

글.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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