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혁│뻔하지 않은 그 녀석
이수혁│뻔하지 않은 그 녀석
본다. 웃는다. 말한다. 이수혁이라는 인간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이 3단계를 차례로 겪어볼 필요가 있다. 184cm의 키에 불필요한 지방이라곤 1g도 붙어있지 않을 것처럼 깡마른 체구, 창백할 만큼 흰 피부와 긴 콧날, 가는 눈매를 뒤덮듯 펼쳐진 속눈썹과 뾰족한 턱의 조합은 이계에서 온 생명체처럼 낯설다. 이 지독하게 불균형하면서도 묘한 균형을 이루는 외모와 분위기는 2006년, 열일곱의 낯가림 심하던 소년을 런웨이 위로 자연스레 밀어 올렸고 그는 곧 정욱준, 송지오 등 많은 디자이너들의 사랑을 받으며 톱 모델의 자리에 올라섰다.

“운도 좋고 타이밍도 좋았어요. 활동을 시작했을 때 마침 마른 체형의 모델들이 트렌드였고 저를 좋게 봐 주신 디자이너 분들이 해외 진출을 하시면서 시장이 커진 것도 있었죠. 사실 그 때 저는 지금보다 더 까탈스러웠고, 어린 게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아이디어도 많이 내놓았는데 그런 걸 불편하게 여기지 않고 수용해주신 어른들께 감사해요.” 학교를 조퇴하고 매니저도 없이 한 달에 스무 건씩 잡지 촬영을 하러 다니던 시절이지만 이수혁은 그 흔한 고생 에피소드 하나 털어놓지 않고 지퍼를 단단히 채우듯 정리해 버린다. “옷을 워낙 좋아하고 패션에 관심이 많았는데 스타일리스트였던 지인의 소개로 일을 시작했어요. 회사 없이 혼자 일한 데 대해 의미를 많이 두시던데 사실 그것도 별 건 없어요.”

차가운 외모를 배반하는 다정한 소년으로
이수혁│뻔하지 않은 그 녀석
이수혁│뻔하지 않은 그 녀석
‘별 게’ 없어도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난리인 이 바닥에서 조용한 눈빛으로 ‘별 거 없다’고 말하는 이수혁은 그래서 더 흥미를 끄는 존재다. 11월 4일 개봉하는 영화 을 연기 데뷔작으로 선택한 이유 역시 복잡하지 않다. “시나리오의 느낌이 좋았어요. 사랑이라는 경험과 경험 사이에서 사람이 성장하고, 그 전의 경험을 감사히 여기고 추억하는 내용이거든요. 아, 서핑이나 해파리도 마음에 들었구요. (웃음)” 첫사랑의 상처를 안고 있는 소년(이수혁)과 소녀(김민지)가 바닷가 휴양지에서 만나 두 번째 사랑을 시작하며 함께 하는 시간을 담은 은 여름과 겨울, 꿈과 현실, 애니메이션과 실사가 교차되며 이어지는 이야기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스토리 대신 소년의 손끝에 맺힌 물방울, 단단한 살갗 아래 도드라진 근육과 날개 뼈의 움직임 등 찰나의 감각들로 오히려 더 집중을 불러일으키는 이 작품은 이수혁이 가지고 있는 상반된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며 한여름 낮의 꿈을 완성한다. 모델 시절의 날카롭고 금속성에 가깝던 이미지와 달리 따뜻하고 두터운 목소리를 지닌 이수혁은 맨몸에 반바지 한 장을 달랑 걸친 채 파도를 타고,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우산 대신 서핑보드를 소녀의 머리 위로 씌워 주는 다정한 소년을 연기했다. 촬영 기간 3개월 내내 남해와 부산을 오가느라 그을린 피부로 태양 아래서 싱긋 미소 짓는 소년의 얼굴이 낯선 만큼 이 매력 있는 신인배우의 등장은 반갑다.

“또래의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찍어보고 싶어요”
이수혁│뻔하지 않은 그 녀석
이수혁│뻔하지 않은 그 녀석
이수혁│뻔하지 않은 그 녀석
이수혁│뻔하지 않은 그 녀석
하지만 무엇이건 좀처럼 구체적으로 단정 짓지 않는 성격은 “하기 싫은 걸 잘 못해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면 좋겠어요” 라는 간결한 인생관에 “배우는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꿈이었지만 아직 시작하는 단계니까 벌써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하기는 좀 어려워요”라는 신중한 고백을 덧붙이게 만든다. 한결 같이 차분한 태도를 보이던 그가 ‘드림카’에 대한 가벼운 질문에 “솔직히 말하면 자동차를 정말 좋아하는데 인터뷰에서 말해 버리면 너무 유치해 보이고 너무 뻔한 남자애가 되는 것 같아서…”라며 쑥스러운 속내를 고스란히 털어놓고 마는 것 역시 이수혁이 ‘뻔한 남자애’가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이 가장 당연하고 편안해 보이는 이 새로운 세대의 배우는 가장 자신다운 꿈을 꾼다. “문화나 유행은 돌고 돌지만 그 시대를 나타내는 어떤 요소들이 있잖아요. 최근의 한국 어린애들, 이를테면 저나 제 친구들 또래의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찍어보고 싶어요.” 묘한 스물 셋, 성숙한 청춘의 대답이다.

글.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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