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는 ‘패밀리가 떴다’ 시즌1의 종료 이후 오랫동안 부진에 시달렸다. 새 멤버와 함께 야심차게 시작한 ‘패밀리가 떴다’ 시즌2는 웃음도 부족했고, 전만큼 화제도 되지 못했다. 결국 이어지는 시청률 부진은 를 쇄신하게 만들었다. 기존의 세부 프로그램이었던 ‘패밀리가 떴다’와 ‘골드미스가 간다’를 폐지하고, 새롭게 들고 나온 것은, ‘런닝맨’과 ‘영웅호걸’. 유재석을 다시 SBS로 복귀시켰고, 가장 핫한 여자 아이돌들을 대거 투입해 일단 물량공세면에서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일요일 예능의 오래된 강호 KBS 의 ‘1박 2일’, 한창 치고 올라오는 MBC 의 ‘뜨거운 형제들’과 경쟁할 수 있는 의 생존법을 김교석, 이승한 TV평론가가 알려준다. /편집자주
글. 이승한(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
SBS ‘런닝맨’은 유재석이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몇몇 프로그램들을 떠올리게 한다. 청춘 남녀들이 나오는 게임버라이어티라는 점에서는 SBS ‘엑스맨’을, 미션을 위해 쉼 없이 달려야 한다는 점에서는 MBC 의 추격극 시리즈를 참고한 듯한 ‘런닝맨’은 일요일 저녁 예능의 주도권을 되찾아 오겠다는 SBS의 승부수였다. 그러나 일요일 저녁 예능치고 ‘런닝맨’의 첫 인사는 부실했다. 자신들이 왜 뛰어야 하는지 멤버들도 포맷을 이해 못한 채 헤맸고, 중간에 넣어둔 게임들은 기상천외함에 신경 쓰느라 질주 버라이어티라는 콘셉트와 어울리지 못 하고 따로 놀았다. 스타게스트와 유재석이라는 빅 카드 외엔 보여준 게 없었다. 1회에서 게임을 가장 잘 이해하고 웃음 포인트를 제일 많이 생산한 게 고정 패널이 아니라 게스트 이효리였다는 점은 제작진의 준비 부족을 증명한다.
자막으로 시청자보다 먼저 웃는 프로그램 은 추격 과정과 이벤트를 솜씨 좋게 버무려서, 달리는 동안 자연스레 게임을 하게 되는 이벤트 간의 유기성을 강조했다. ‘엑스맨’은 미션 자체가 스파이를 찾으려면 게임을 계속 하면서 서로를 감시해야 하는 구조였다. 과 ‘엑스맨’은 미션을 수행하다 보니 중간에 이러이러한 이벤트가 생겼다고 논리적으로 스토리를 요약할 수 있는데, ‘런닝맨’은 레이스 중간에 삽입된 이벤트들이 서로 아무 연관이 없다. 왜 이들이 갑자기 다이빙대에서 뛰어야 하는지, 왜 뜬금없이 50명의 시민과 닭싸움을 해야 하는지 제작진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게임 선정에도 아무 의미가 없다.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 가서 다이빙 게임을 하는 게 그 곳에 다이빙대가 있더라는 것 외에 어떤 이유가 있는가?
‘걷지 말고 뛰’라는 슬로건을 걸어 둔 프로그램이, 게임을 위해서 레이스를 일시 중지하고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전체 쇼의 리듬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제한시간 없이 벌어지는 게임은 레이스의 긴장감을 갉아 먹는다. 하나의 레이스가 다음 레이스의 지령으로 이어진다거나, 레이스를 통해 자연스레 참가자들을 게임의 무대로 불러 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개별 레이스와 중간 게임 간에 아무런 화학 작용이 없다. 볼트와 너트를 한 곳에 모아 놓고는 알아서 맞물려 돌아가 주기를 바라는 꼴이다. 혹은 ‘재석신’께서 돌려주실 거야라고 바라거나. 보여 주고 싶은 것은 많은데 쑤셔 넣은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않으니, 제작진은 자막으로 시청자보다 먼저 웃고 먼저 감동하며 의도된 흐름을 따라와 줄 것을 강요하기 바쁘다.
화려한 게스트, 기상천외한 게임보다 절실한 것
물론 속단은 이르다. 리얼 버라이어티에 익숙하지 않은 멤버들 중심으로 포커스를 잡아준 덕분에 소심하고 엉뚱한 광수, 언제나 평화로운 개리, 혼자만 겉도는 것 같아 서러운 중년 지석진 같은 캐릭터들이 탄생했다. 캐릭터를 쌓아 올리는 과정은 자연스레 프로그램에 찰기를 더해 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화학작용은 쇼에 재미를 더할 것이다. 초반의 룰 운용 문제를 바로 수정한 것도 올바른 판단이었다. 2회에서는 컨닝이 가능한 비밀번호 대신 황금돼지 저금통을 수집해야 하는 것으로 탈출 수단을 바꿨고, 4회에서는 각 팀마다 다른 미션을 던져 주는가 하면 멤버들의 등 뒤에 힌트를 숨겨두어 서로 쫓고 쫓기는 구도를 강화했다. 이제 4회 방영한 프로그램치곤 진화의 속도가 나쁘진 않다.
유재석이 진행한 프로그램 치고 첫 술에 배불렀던 경우는 드물다. ‘런닝맨’도 초반 부진을 딛고 흥행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결국 관건은 프로그램 콘셉트를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잘 설득해 낼 수 있느냐다. 벌써 세부 룰 몇 개를 바꿨을 뿐인데 그림 자체가 역동적으로 변하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나. 프로그램만 좋으면 호화 게스트에 대한 홍보 자료를 뿌리지 않아도 입 소문은 알아서 난다. 화려한 게스트와 기상천외한 게임보다 스스로가 내세운 ‘걷지 말고 뛰어’라는 슬로건에 충실할 때 더 좋은 쇼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제작진은 눈치 챌 수 있을까.
글 이승한
SBS ‘영웅호걸’은 ‘여성’ 버라이어티에 대한 SBS의 집념 혹은 탐구다. 유쾌하지만 조금 모자란 남자 연기자들의 자리에 한 화면 속에서 보기 힘들었던 ‘예쁜’ 여자 연예인들이 출연해 망가지기도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재미요소. KBS 가 팬들이 상상 속에서나 펼쳐졌던 여자 아이돌 연합을 실제로 보여줬다면 ‘영웅호걸’은 ‘구’핑클의 이진부터 아이유까지 아우르며(노사연은 존재의 이유와 역할이 나머지 멤버와는 차원이 다르다) 다양한 분야와 나이대의 멤버를 더 많이 소집했다.글. 김교석(TV평론가)
예쁜 것과 망가지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인기검증 버라이어티라 소개하는 ‘영웅호걸’은 영화 과 같은 여성들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을 버라이어티에 담아내고자 하는 것 같다. 외국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잔재미 중 하나가 바로 여성 출연자 간의 갈등이니, 이는 동서를 막론한 흥밋거리다. ‘영웅호걸’은 그렇게 직설적이고 시니컬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오프닝에서 잘나가는 팀과 못나가는 팀으로 나눌 때 출연진들의 얼굴에는 미묘한 표정이 스쳐 지나간다. 또한 ‘굴러요 퀴즈’나 여타 게임을 할 때마다 라이벌 관계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킨다. 그 긴장과 거기서 나오는 독설, 웃음이 프로그램의 핵심이고, 나이 어린 선배 서인영과 나이 많은 후배 가희의 기싸움처럼 자기 영역을 가진 여자들이 모여서 어떤 관계를 만드는지가 볼거리다. 거기에 노사연과 톰과 제리의 형상을 하고 있는 홍수아, 제작진에게 사랑받는 유인나와 니콜, 아이유와 지연이 보여주는 상큼한 귀여움, 예능형 캐릭터인 정가은, 신봉선이 가세하고 이를 큰언니 노사연이 아우르니 첫 회에서 보여준 역할 분담은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보다 확실했고, 캐릭터 설정과 갈등 구조도 명확했다.
하지만 ‘영웅호걸’은 단 3회 만에 무기력해졌다. 여자럭비팀이나 해양경찰 등을 찾아가 함께 체험한 뒤 인기를 검증받는 기본 포맷이 거추장스럽다. 아직 12명의 멤버들의 관계도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자럭비팀이나 해양경찰들과 어울려야 하고 그들의 생활도 보여줘야 한다. 그러다가 야식을 걸고, 벌칙 혹은 상황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위해 게임을 한다. 70분이 넘는 프로그램을 진득하게 붙잡는 흐름은 없는데, 이것저것 파편화된 요소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다. 의 예에서 보듯 단지 여자아이돌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는 생각만큼 시청률이 보장되지 않는다. 예쁜 것과 망가지는 것만 가지고는 예능을 헤쳐 나갈 수 없다. 시청자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으려면 어쨌든 스토리와 웃음이다.
여성버라이어티의 한계? 게임 포맷 예능의 종말?
게다가 ‘영웅호걸’이 집중하는 게임은 아무래도 거듭될수록 재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SBS ‘엑스맨’처럼 게임만 하기에는 게스트와 같은 변수가 될 만한 요인도 적고, 러브라인도 없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야기가 한정적이다. KBS ‘1박 2일’처럼 하기에는 중립 MC가 있고 무엇보다 인원수가 너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안 그래도 모난 돌이 없는데 점점 친해진다면 갈등 상황을 앞으로 또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미묘한 갈등이 감지되지 않고 단지 순위매기기만 하는 것이라면 장기자랑 그 외의 것을 보여주기가 어려울 텐데 나름 비장의 무기라 할 수 있는 장기자랑을 2회에서 벌써 보여줬으니 앞으로 과연 할 수 있는 게 뭐가 남았는지 의문이 든다.
‘골드미스가 간다’의 후속으로 들어온 ‘영웅호걸’은 ‘연애’가 ‘인기’로 바뀌었을 뿐, 남자 MC와 여성 출연자들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큰 그림은 같다. 이것은 캐릭터를 다 잡아놓고도, 그것을 살리지 않기로 하겠다는 뜻이다. 12명이나 되는 출연자들을 하나의 게임 속에 몰아넣으니 수동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고, MC들의 언급에 따라 방송분량의 개인차가 현격하게 나타나고 있다. 왜 공중파 여성버라이어티의 주체가 여성이 될 수 없을까.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하는 것 같다. 여성 버라이어티의 태생적 한계인지, 아니면 게임 포맷 예능의 종말인지 아님 이 둘 다 원인인지 ‘영웅호걸’은 원치 않게 그 바로미터의 자리에 들어섰다.
글 김교석
글. 이승한(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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