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10│⑦ 10cm “우리 음악은 뉴욕 맨하탄 스타일”
인디10│⑦ 10cm “우리 음악은 뉴욕 맨하탄 스타일”
10cm의 권정열(보컬, 젬베)과 윤철종(기타)은 12년째 아는 사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밴드를 했고, 같이 군대를 다녀왔으며, 결국 함께 홍대로 와서 10cm를 결성했다. 홍대에서 길거리 공연으로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서 클럽 공연을 시작했고, 그 때 불렀던 노래 중 한 곡이었던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가 한 컴필레이션 앨범에 실렸다.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는 블로거들을 통해 조금씩 퍼져나갔고, 그들은 드디어 첫 EP 앨범을 내놓았다. 얼마 전에는 KBS 에서 ‘맨하탄 스타일’이라는 그들의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다. 마치 하루에 10cm씩 움직이는 작은 생명체처럼, 12년에 걸쳐 조금씩 그들의 음악을 알려가면서 음악과 인생을 함께 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듀오에다 한 명은 기타를, 한 명은 젬베를 연주한다. 흔치 않은 구성인데.
윤철종 : 제이슨 므라즈 때문이다. 예전에 EBS 에 출연한 걸 봤는데, 굉장히 인상 깊었다. 사운드가 빈 것 같으면서도 꽉 차 있더라. 그 때 젬베를 봐서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권정열 : 나는 원래 악기에 관심이 없었는데, 그거보고 처음 꽂혔다. 음악도 제이슨 므라즈의 포지션을 생각하고 만들기도 했고.

“음악도 좋을 때는 좋은 것만 나오고, 나쁠 때는 나쁜 것만 나온다”
인디10│⑦ 10cm “우리 음악은 뉴욕 맨하탄 스타일”
인디10│⑦ 10cm “우리 음악은 뉴욕 맨하탄 스타일”
하지만 음악은 제이슨 므라즈 느낌이 안 나던데. (웃음)
권정열 : 실패한 거다. 우린 영향 받은 티를 내려고 했는데 안 됐다. “제이슨 므라즈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어?” 이랬다. 하다보면 제이슨 므라즈 음악은 안 되고 이상한 게 나온다. ‘아메리카노’나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는 다 그러다 나왔다.

제이슨 므라즈보다 훨씬 밤이 생각나는 음악이다. (웃음)
권정열 : 원래 밝고 행복한 음악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되더라.

‘눈이 오네’ 같은 곡이 특히 그렇다. 밤에 혼자 방에 있을 때 들어야할 음악이더라.
권정열 : 그 노래는 옛날에 초찌질할 때 만들었다 (웃음) 지금도 찌질한데, 정말 찌질했었다.

얼마나 찌질했길래. (웃음)
권정열 : 형하고 신촌의 한 술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었다. 어떻게 보면 10cm 음악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인데, 그 때 정말 돈이 없었다.
윤철종 : 밥 사먹을 돈 없어서 맨날 라면 끓여먹고.
권정열 : 그 곳 주인이 우리가 가난하니까 돈 없으면 너희가 맥주 알아서 따라 마시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 때 ‘눈이 오네’를 썼다. 그래서 노래 부를 때도 “이건 무조건 찌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노래 가사만큼 찌질한 게 없으니까. 옛날에 헤어진 사람에 대한 추억을 꺼내서 낭만으로 덧칠하는 건데, 그것만큼 찌질한 게 없다.

노래를 들어보면 정말 안 좋은 상황에서 집에 혼자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웃음)
권정열 : 정말 안 좋았다. 그 때도 눈 왔고. (웃음)
윤철종 : 눈이 왔으니까 그런 노래를 만든 거다. (웃음)

곡이나 가사나 순간의 감정에 따라 쓰는 것 같다. 특히 가사는 구체적인 이야기보다 머리에 스쳐지나가는 단상을 쓰던데.
권정열 : 깊게 생각해서 쓰는 편이 아니다. (웃음) 자유연상 하듯 쭉 쓰는 걸 좋아하고.

하지만 가사는 굉장히 구체적이다. 남들은 예쁘게 포장할 법한 순간들을 그냥 편하게 쓴다.
권정열 : 그 정도면 포장한 건데. (웃음) 그래도 가사는 내 얘기를 그대로 옮긴 게 아니라 픽션이 대부분이긴 하다.
윤철종 : 요즘 노래를 보면 노래방에서 “이건 내 노래야”하고 부를 만큼 공감할 수 있는 곡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는 그런 공감을 할 수 있는 노래를 하고 싶은 것도 있다.

그래서 ‘죽겠네’를 불렀나. 여자친구 생기면서 만든 곡인데,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와는 완전히 사는 세계가 다른 것 같다. (웃음)
권정열 : 완전 다르다.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같은 그 따위 노래를 (웃음) 만들 때하고는 완전 다르다.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는 구미에서 처음 올라와서 만든 건데, 그 때는 정말 외로워서 죽을 뻔 했다. 우린 정말 좋을 때는 좋은 것 밖에 안 나오고, 나쁠 때는 나쁜 것만 나온다. 얼마 전에는 ‘안아줘요’라는 노래도 만들었다. (웃음)

“쓸 데 없는 자신감 때문에 듀오를 하게 됐다”
인디10│⑦ 10cm “우리 음악은 뉴욕 맨하탄 스타일”
인디10│⑦ 10cm “우리 음악은 뉴욕 맨하탄 스타일”
음악을 만드는 과정도 상황 따라 달라지나. 둘이 대화하면서 곡을 만들 것 같다.
권정열 : 맞다. 고등학교 때부터 둘이 같이 작업을 해서, 계속 얘기하면서 곡을 만든다. 곡을 정해놓고 만드는 게 아니라 각자 자유롭게 곡을 떠올렸다가 만나면 계속 얘기해본다. 한 쪽에서 이런 게 있다고 하면 그걸 얘기하면서 발전시키고. ‘아메리카노’는 ‘아메리카노’ 한구절만 나왔는데, 둘이 계속 놀면서 얘기하다 곡이 완성됐다.

둘이 정말 성격이 잘 맞나 보다. (웃음)
권정열 : 둘이 오래 한 게 굉장히 큰 장점 같고, 공통분모가 있으면서도 다른 부분이 많다. 난 한량 스타일이고, 형은 완전히 열심히 산다. (웃음)
윤철종 : 나는 집에서 완전히 나온 상태라 열심히 살아야 한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사교육계에 종사 한다. (웃음)
권정열 : 둘이 너무 다르니까 음악이 틀에 갇히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처음에 각자 따로 생각해서 온 거 보면 정말 말도 안 된다. 그런데 맞춰가면서 만들다 보면 결과물이 좋아진다.

고등학교시절 밴드에서 만나서 군대까지 같이 다녀온 걸로 알고 있다. 어떻게 그런 인연을 이었나.
권정열 : 쭉 같이 있던 건 아니다. 중간에 다른 밴드도 했었고, 그러면서도 서로 계속 친하게 지냈는데 군대를 같이 다녀오고 보니까 내가 있던 밴드가 해체 됐다. 그래서 같이 하기로 했다. 그리고 군대 시절에 음악을 같이 했다. 군대가 좋아진 게 기타도 가져갈 수 있어서 (웃음) 거기서 많이 작업했다. 보통 때는 기타 하나로 내무실에서 작업했는데, 더 제대로 하고 싶어서 교회에도 갔다. 신자는 아니었는데 신자인 척 하고 찬양 한 번 하고 앰프나 스피커 쓰고. (웃음) 그 때 우리 팀 이름이 세븐 힐즈였다. 부대 이름이 칠봉부대라. (웃음)

두 멤버의 성격이 음악에도 반영되나.
권정열 : 완전 그렇다. (웃음) 나는 굉장히 단순한 거에 집착한다. 가사도 반복적이고, 느슨한 걸 좋아한다. 그런데 형은 굉장히 치밀한 성격이라 편곡도 그렇다.

‘새벽 네 시’나 ‘Healing’이 특히 그랬다. 테마는 느슨하고 반복적인데 편곡과 연주는 꼼꼼하더라.
권정열 : 은근히 빈틈없고. (웃음) 밴드여서 여러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성격이 달랐으면 피곤할 수도 있었겠지만 듀오라 편하다.

처음에는 밴드를 구상했던 걸로 알고 있다. 왜 듀오를 하게 됐나.
권정열 : 쓸 데 없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웃음) 원래 밴드를 만들려면 멤버를 구하려고 돌아다녀야 하는데, 우리는 멤버가 알아서 올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자신감이 넘쳤던 거다. 자신감이 많아서 우리 음악을 ‘뉴욕 맨하탄 스타일’이라고도 했고. (웃음)
윤철종 : 멤버를 구하려면 구할 수는 있었을 거다. 문제는 우리 인생관이다. 인생관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밴드를 만들고 어떻게 가자고 했을 때 거기 동조하는 사람이 많이 없다.

결성 과정이 음악에도 영향을 미쳤나. 이번 EP는 포크를 중심으로 하지만 여러 스타일이 섞여 있다. 블루스적인 느낌이 강한 ‘Healing’은 밴드 편성으로 해도 좋을 것 같고.
권정열 : 우리가 부르는 곡들은 군대시절에 쓴 곡도 있고 대중없다. 듀오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굉장히 나중의 일이고.
윤철종 : 처음에는 밴드용 곡으로 만들었지만 듀오가 되면서 포크로 바뀐 것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어떤 일관성은 있다. 듣다보면 각각의 사운드보다 그 노래를 부르는 공간이 먼저 느껴진다.
권정열 : 그건 의도한 거다. 소리를 입체적으로 들리면서 공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윤철종 : 그런데 사람들은 다 싫어하던데. (웃음)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웃음) 녹음이 선명하게 된 건 아니지만 공간감이 잘 살아서. 어디서 녹음을 했는지 궁금하더라. 혹시 방에서 했나?
권정열 : 맞다. 집에서 했다. 돈도 시간도 안 드니까. 녹음과 믹싱 다 집에서 했다.

“둘이 나누는 아름다운 시스템을 바꾸고 싶지 않다”
인디10│⑦ 10cm “우리 음악은 뉴욕 맨하탄 스타일”
인디10│⑦ 10cm “우리 음악은 뉴욕 맨하탄 스타일”
정말 원룸 포크네. (웃음) 들으면서 방에서 듣는 음악이란 느낌이 들었다.
권정열 : ‘눈이 오네’는 눈 오는 날 방에서 눈이 올 때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 눈이 오면 눈 오는 소리는 안 들리지만 눈을 감으면 눈 오는 느낌은 드는데, 그걸 표현하고 싶었다. 녹음은 진눈깨비 오는 날 했지만. (웃음)
윤철종 : 녹음 자체가 잘 됐다고는 할 수 없어서 부끄럽긴 하다. 방에서 하니까 앨범을 들으면서 볼륨을 크게 올리면 밖으로 버스 지나가는 소리도 들린다.
권정열 : 믹싱도 친구하고 집에서 했는데, 우리 의도를 살리려다 시간도 없고 처음 해보는 거라 모르는 것도 많아서 “결국 듣기 좋으면 돼”하면서 했다. 그런 건 아쉽다.
윤철종 : ‘죽겠네’가 특히 그랬다. 정말 막 만들어서. 라디오에 나오면 부끄러워 죽겠다.
권정열 : 나왔나, 설마?
윤철종 : 많이 나왔다. (웃음) 카페에서 듣는데 정말 부끄럽더라.

뭘 그리 부끄러워하나. (웃음) 좋은 소리를 뽑는 거하고 좋은 녹음이 꼭 일치하는 건 아니지 않나.
권정열 : ‘죽겠네’ 앞에 “아깝다고 생각말기”라는 말이 들어가는데, 이게 한 방에 녹음을 하는 곡이라 제대로 녹음한 버전 앞에 연주도 틀리고 가사도 틀린 것들이 몇 개 있었다. 그걸 과감하게 지웠다. 그래서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자고 했다. 거기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기타를 같이 치면 내 목소리만 나왔다.
윤철종 : 그래서 얜 저 뒤에서 부르고 나는 앞에서 기타 치고. 내가 코러스 할 때는 마이크에서 고개 돌리고 불렀다. (웃음)

그런 부분들은 경제상황이 더 좋아질수록 나아질 텐데, 요즘 수입은 어떤가.
권정열 : 얼마나 벌겠나. (웃음) 제일 좋은 건 우리가 지금처럼 재밌게 음악 하는데 ‘아 왜 이렇게 돈이 굴러오지?’ 라고 할 수 있는 상탠데. (웃음) 그게 쉽진 않다. 그렇다고 어느 기획사와 계약을 하면 우리가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음악을 성공시키기 위한 기획들이 생기고, 결과에 따라 후폭풍도 생길 거다. 아직은 그런 부분에는 관심이 없다.
윤철종 : 음반 제작에 대한 제의도 생각보다는 많이 오긴 하는데, 아직 다듬어지지 않아서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지금도 우리가 할 수 있는데 굳이 1/n로 나누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웃음) 둘이 나누는 아름다운 시스템을 바꾸고 싶지 않다.
권정열 : 맞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는 밴드를 언젠간 하자는 얘기를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얘기가 사라졌다. 객원을 부르더라도 이 체제로 가고 싶다. (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권정열 : 일단 앨범 내야지. 이번 것보다 더 좋았으면 좋겠다. 곡을 계속 써서 앨범을 되게 많이 내서 그 중 하나를 얻어 걸리고 싶다. (웃음)
윤철종 : 100장 정도 내서 그 중 한 장은 사게 하는 거다. (웃음) 그리고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에 나가는데, 우리가 하는 공연 중 가장 큰 공연이라 잘 하고 싶다.

어쩌다 그 크고 거친 무대에. (웃음)
권정열 : 그래서 펜타포트에 맞게 해볼까도 생각했다가, 우리한테 원하는 게 그건 아닌 거 같아서 그냥 하던 대로 할 것 같다.

‘눈이 오네’를 불러보는 건 어떤가.
권정열 : 그 생각도 했다. 아주 찌질하게 불러볼까? (웃음)

그럼 정말 죽이겠다. 다들 시간이 멈춘 거 같겠다. (웃음)
권정열 : 시간도 멈추고 사람도 가겠지. (웃음)

글. 강명석 two@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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