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cm의 권정열(보컬, 젬베)과 윤철종(기타)은 12년째 아는 사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밴드를 했고, 같이 군대를 다녀왔으며, 결국 함께 홍대로 와서 10cm를 결성했다. 홍대에서 길거리 공연으로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서 클럽 공연을 시작했고, 그 때 불렀던 노래 중 한 곡이었던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가 한 컴필레이션 앨범에 실렸다.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는 블로거들을 통해 조금씩 퍼져나갔고, 그들은 드디어 첫 EP 앨범을 내놓았다. 얼마 전에는 KBS 에서 ‘맨하탄 스타일’이라는 그들의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다. 마치 하루에 10cm씩 움직이는 작은 생명체처럼, 12년에 걸쳐 조금씩 그들의 음악을 알려가면서 음악과 인생을 함께 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듀오에다 한 명은 기타를, 한 명은 젬베를 연주한다. 흔치 않은 구성인데.
윤철종 : 제이슨 므라즈 때문이다. 예전에 EBS 에 출연한 걸 봤는데, 굉장히 인상 깊었다. 사운드가 빈 것 같으면서도 꽉 차 있더라. 그 때 젬베를 봐서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권정열 : 나는 원래 악기에 관심이 없었는데, 그거보고 처음 꽂혔다. 음악도 제이슨 므라즈의 포지션을 생각하고 만들기도 했고.
“음악도 좋을 때는 좋은 것만 나오고, 나쁠 때는 나쁜 것만 나온다” 하지만 음악은 제이슨 므라즈 느낌이 안 나던데. (웃음)
권정열 : 실패한 거다. 우린 영향 받은 티를 내려고 했는데 안 됐다. “제이슨 므라즈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어?” 이랬다. 하다보면 제이슨 므라즈 음악은 안 되고 이상한 게 나온다. ‘아메리카노’나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는 다 그러다 나왔다.
제이슨 므라즈보다 훨씬 밤이 생각나는 음악이다. (웃음)
권정열 : 원래 밝고 행복한 음악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되더라.
‘눈이 오네’ 같은 곡이 특히 그렇다. 밤에 혼자 방에 있을 때 들어야할 음악이더라.
권정열 : 그 노래는 옛날에 초찌질할 때 만들었다 (웃음) 지금도 찌질한데, 정말 찌질했었다.
얼마나 찌질했길래. (웃음)
권정열 : 형하고 신촌의 한 술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었다. 어떻게 보면 10cm 음악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인데, 그 때 정말 돈이 없었다.
윤철종 : 밥 사먹을 돈 없어서 맨날 라면 끓여먹고.
권정열 : 그 곳 주인이 우리가 가난하니까 돈 없으면 너희가 맥주 알아서 따라 마시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 때 ‘눈이 오네’를 썼다. 그래서 노래 부를 때도 “이건 무조건 찌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노래 가사만큼 찌질한 게 없으니까. 옛날에 헤어진 사람에 대한 추억을 꺼내서 낭만으로 덧칠하는 건데, 그것만큼 찌질한 게 없다.
노래를 들어보면 정말 안 좋은 상황에서 집에 혼자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웃음)
권정열 : 정말 안 좋았다. 그 때도 눈 왔고. (웃음)
윤철종 : 눈이 왔으니까 그런 노래를 만든 거다. (웃음)
곡이나 가사나 순간의 감정에 따라 쓰는 것 같다. 특히 가사는 구체적인 이야기보다 머리에 스쳐지나가는 단상을 쓰던데.
권정열 : 깊게 생각해서 쓰는 편이 아니다. (웃음) 자유연상 하듯 쭉 쓰는 걸 좋아하고.
하지만 가사는 굉장히 구체적이다. 남들은 예쁘게 포장할 법한 순간들을 그냥 편하게 쓴다.
권정열 : 그 정도면 포장한 건데. (웃음) 그래도 가사는 내 얘기를 그대로 옮긴 게 아니라 픽션이 대부분이긴 하다.
윤철종 : 요즘 노래를 보면 노래방에서 “이건 내 노래야”하고 부를 만큼 공감할 수 있는 곡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는 그런 공감을 할 수 있는 노래를 하고 싶은 것도 있다.
그래서 ‘죽겠네’를 불렀나. 여자친구 생기면서 만든 곡인데,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와는 완전히 사는 세계가 다른 것 같다. (웃음)
권정열 : 완전 다르다.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같은 그 따위 노래를 (웃음) 만들 때하고는 완전 다르다.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는 구미에서 처음 올라와서 만든 건데, 그 때는 정말 외로워서 죽을 뻔 했다. 우린 정말 좋을 때는 좋은 것 밖에 안 나오고, 나쁠 때는 나쁜 것만 나온다. 얼마 전에는 ‘안아줘요’라는 노래도 만들었다. (웃음)
“쓸 데 없는 자신감 때문에 듀오를 하게 됐다” 음악을 만드는 과정도 상황 따라 달라지나. 둘이 대화하면서 곡을 만들 것 같다.
권정열 : 맞다. 고등학교 때부터 둘이 같이 작업을 해서, 계속 얘기하면서 곡을 만든다. 곡을 정해놓고 만드는 게 아니라 각자 자유롭게 곡을 떠올렸다가 만나면 계속 얘기해본다. 한 쪽에서 이런 게 있다고 하면 그걸 얘기하면서 발전시키고. ‘아메리카노’는 ‘아메리카노’ 한구절만 나왔는데, 둘이 계속 놀면서 얘기하다 곡이 완성됐다.
둘이 정말 성격이 잘 맞나 보다. (웃음)
권정열 : 둘이 오래 한 게 굉장히 큰 장점 같고, 공통분모가 있으면서도 다른 부분이 많다. 난 한량 스타일이고, 형은 완전히 열심히 산다. (웃음)
윤철종 : 나는 집에서 완전히 나온 상태라 열심히 살아야 한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사교육계에 종사 한다. (웃음)
권정열 : 둘이 너무 다르니까 음악이 틀에 갇히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처음에 각자 따로 생각해서 온 거 보면 정말 말도 안 된다. 그런데 맞춰가면서 만들다 보면 결과물이 좋아진다.
고등학교시절 밴드에서 만나서 군대까지 같이 다녀온 걸로 알고 있다. 어떻게 그런 인연을 이었나.
권정열 : 쭉 같이 있던 건 아니다. 중간에 다른 밴드도 했었고, 그러면서도 서로 계속 친하게 지냈는데 군대를 같이 다녀오고 보니까 내가 있던 밴드가 해체 됐다. 그래서 같이 하기로 했다. 그리고 군대 시절에 음악을 같이 했다. 군대가 좋아진 게 기타도 가져갈 수 있어서 (웃음) 거기서 많이 작업했다. 보통 때는 기타 하나로 내무실에서 작업했는데, 더 제대로 하고 싶어서 교회에도 갔다. 신자는 아니었는데 신자인 척 하고 찬양 한 번 하고 앰프나 스피커 쓰고. (웃음) 그 때 우리 팀 이름이 세븐 힐즈였다. 부대 이름이 칠봉부대라. (웃음)
두 멤버의 성격이 음악에도 반영되나.
권정열 : 완전 그렇다. (웃음) 나는 굉장히 단순한 거에 집착한다. 가사도 반복적이고, 느슨한 걸 좋아한다. 그런데 형은 굉장히 치밀한 성격이라 편곡도 그렇다.
‘새벽 네 시’나 ‘Healing’이 특히 그랬다. 테마는 느슨하고 반복적인데 편곡과 연주는 꼼꼼하더라.
권정열 : 은근히 빈틈없고. (웃음) 밴드여서 여러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성격이 달랐으면 피곤할 수도 있었겠지만 듀오라 편하다.
처음에는 밴드를 구상했던 걸로 알고 있다. 왜 듀오를 하게 됐나.
권정열 : 쓸 데 없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웃음) 원래 밴드를 만들려면 멤버를 구하려고 돌아다녀야 하는데, 우리는 멤버가 알아서 올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자신감이 넘쳤던 거다. 자신감이 많아서 우리 음악을 ‘뉴욕 맨하탄 스타일’이라고도 했고. (웃음)
윤철종 : 멤버를 구하려면 구할 수는 있었을 거다. 문제는 우리 인생관이다. 인생관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밴드를 만들고 어떻게 가자고 했을 때 거기 동조하는 사람이 많이 없다.
결성 과정이 음악에도 영향을 미쳤나. 이번 EP는 포크를 중심으로 하지만 여러 스타일이 섞여 있다. 블루스적인 느낌이 강한 ‘Healing’은 밴드 편성으로 해도 좋을 것 같고.
권정열 : 우리가 부르는 곡들은 군대시절에 쓴 곡도 있고 대중없다. 듀오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굉장히 나중의 일이고.
윤철종 : 처음에는 밴드용 곡으로 만들었지만 듀오가 되면서 포크로 바뀐 것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어떤 일관성은 있다. 듣다보면 각각의 사운드보다 그 노래를 부르는 공간이 먼저 느껴진다.
권정열 : 그건 의도한 거다. 소리를 입체적으로 들리면서 공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윤철종 : 그런데 사람들은 다 싫어하던데. (웃음)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웃음) 녹음이 선명하게 된 건 아니지만 공간감이 잘 살아서. 어디서 녹음을 했는지 궁금하더라. 혹시 방에서 했나?
권정열 : 맞다. 집에서 했다. 돈도 시간도 안 드니까. 녹음과 믹싱 다 집에서 했다.
“둘이 나누는 아름다운 시스템을 바꾸고 싶지 않다”
정말 원룸 포크네. (웃음) 들으면서 방에서 듣는 음악이란 느낌이 들었다.
권정열 : ‘눈이 오네’는 눈 오는 날 방에서 눈이 올 때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 눈이 오면 눈 오는 소리는 안 들리지만 눈을 감으면 눈 오는 느낌은 드는데, 그걸 표현하고 싶었다. 녹음은 진눈깨비 오는 날 했지만. (웃음)
윤철종 : 녹음 자체가 잘 됐다고는 할 수 없어서 부끄럽긴 하다. 방에서 하니까 앨범을 들으면서 볼륨을 크게 올리면 밖으로 버스 지나가는 소리도 들린다.
권정열 : 믹싱도 친구하고 집에서 했는데, 우리 의도를 살리려다 시간도 없고 처음 해보는 거라 모르는 것도 많아서 “결국 듣기 좋으면 돼”하면서 했다. 그런 건 아쉽다.
윤철종 : ‘죽겠네’가 특히 그랬다. 정말 막 만들어서. 라디오에 나오면 부끄러워 죽겠다.
권정열 : 나왔나, 설마?
윤철종 : 많이 나왔다. (웃음) 카페에서 듣는데 정말 부끄럽더라.
뭘 그리 부끄러워하나. (웃음) 좋은 소리를 뽑는 거하고 좋은 녹음이 꼭 일치하는 건 아니지 않나.
권정열 : ‘죽겠네’ 앞에 “아깝다고 생각말기”라는 말이 들어가는데, 이게 한 방에 녹음을 하는 곡이라 제대로 녹음한 버전 앞에 연주도 틀리고 가사도 틀린 것들이 몇 개 있었다. 그걸 과감하게 지웠다. 그래서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자고 했다. 거기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기타를 같이 치면 내 목소리만 나왔다.
윤철종 : 그래서 얜 저 뒤에서 부르고 나는 앞에서 기타 치고. 내가 코러스 할 때는 마이크에서 고개 돌리고 불렀다. (웃음)
그런 부분들은 경제상황이 더 좋아질수록 나아질 텐데, 요즘 수입은 어떤가.
권정열 : 얼마나 벌겠나. (웃음) 제일 좋은 건 우리가 지금처럼 재밌게 음악 하는데 ‘아 왜 이렇게 돈이 굴러오지?’ 라고 할 수 있는 상탠데. (웃음) 그게 쉽진 않다. 그렇다고 어느 기획사와 계약을 하면 우리가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음악을 성공시키기 위한 기획들이 생기고, 결과에 따라 후폭풍도 생길 거다. 아직은 그런 부분에는 관심이 없다.
윤철종 : 음반 제작에 대한 제의도 생각보다는 많이 오긴 하는데, 아직 다듬어지지 않아서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지금도 우리가 할 수 있는데 굳이 1/n로 나누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웃음) 둘이 나누는 아름다운 시스템을 바꾸고 싶지 않다.
권정열 : 맞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는 밴드를 언젠간 하자는 얘기를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얘기가 사라졌다. 객원을 부르더라도 이 체제로 가고 싶다. (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권정열 : 일단 앨범 내야지. 이번 것보다 더 좋았으면 좋겠다. 곡을 계속 써서 앨범을 되게 많이 내서 그 중 하나를 얻어 걸리고 싶다. (웃음)
윤철종 : 100장 정도 내서 그 중 한 장은 사게 하는 거다. (웃음) 그리고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에 나가는데, 우리가 하는 공연 중 가장 큰 공연이라 잘 하고 싶다.
어쩌다 그 크고 거친 무대에. (웃음)
권정열 : 그래서 펜타포트에 맞게 해볼까도 생각했다가, 우리한테 원하는 게 그건 아닌 거 같아서 그냥 하던 대로 할 것 같다.
‘눈이 오네’를 불러보는 건 어떤가.
권정열 : 그 생각도 했다. 아주 찌질하게 불러볼까? (웃음)
그럼 정말 죽이겠다. 다들 시간이 멈춘 거 같겠다. (웃음)
권정열 : 시간도 멈추고 사람도 가겠지. (웃음)
글. 강명석 two@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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