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을 만난 곳은 영애 씨의 집이었다. 개 한 마리를 키우기도 했던 작은 정원과 영애 씨가 아침과 저녁과 야식과 다시 야식을 챙겨 먹는 널찍한 주방이 있는 그 집이다. tvN 는 이 집에서 일곱 시즌을 촬영했고, 그 사이 영애 씨에게는 올케와 제부, 조카가 생겼다. 그리고 김현숙은 촬영이 끝난 뒤에도 영애 씨의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로 있었다. 그는 그 옷을 입고 소파에 양반다리로 앉아 휴식을 취했고, ‘진짜 집주인’이 집에 오자 “오셨어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김현숙은 이영애가 아니다. 이영애는 직장에서 잘린 신세지만, 김현숙은 로 탄탄하게 배우의 입지를 다졌다. 이영애는 외모 콤플렉스로 어떤 남자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반면, 김현숙은 “영애가 자학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현숙은 이영애가 아닐지라도 이영애는 김현숙의 일부가 됐다. 그는 시즌마다 20회씩 이영애를 연기하고, 20회를 찍으면 2~3개월 쉬고 다시 새 시즌을 시작한다. 그렇게 만 3년, 7시즌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그를 본명대신 “영애 씨”라고 부른다. 그리고 김현숙은 얼마 전 병원에 입원했다. 이영애가 짝사랑하던 장동건(이해영)과 어긋나는 상황을 연기한 뒤 스트레스로 간수치가 급격하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막돼먹지 않은 영애 씨의 고민 시즌제 드라마가 배우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 이런 제목의 논문 한 편을 써도 좋을 만큼, 김현숙은 에 출연하며 독특한 성격의 배우가 됐다. 1년의 대부분을 이영애로 살면서, 김현숙은 점점 이영애와 닮아가고, 이영애의 영향을 받는다. 작품을 고를 때는 언제나 를 염두에 둔다. 이영애의 캐릭터 때문에라도 그가 다른 작품에서 날씬한 여자를 연기하기 어렵다. 한 배우가 자신마저도 “꼭 처럼 영애에게 벌어진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만큼 캐릭터와 닮아가는 건 기쁨이자 딜레마다. 를 하면서 김현숙은 배우로 자리 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어머니에게 집을 마련해드릴 수 있을 만큼 경제적인 여유도 얻었다. 하지만 공중파 드라마나 영화는 그에게 이영애와 비슷한 모습으로 “주인공 옆에서 세 마디만 하면 되는” 주인공 친구를 연기할 것을 제안하곤 한다. 그가 를 통해 마음껏 연기하는 만큼, 다른 작품에서는 그만큼의 만족감을 얻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영애는 그에게 안정을 줬지만, 동시에 그 안정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은 딜레마를 줬다.
그래서 의 시즌7에서 이영애의 모습은 김현숙의 현재와 오버랩 된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이영애는 조금씩 그 성격이 바뀌었다. 이영애는 더 이상 시시때때로 변태에 맞서 주먹다짐을 하거나, 직장 상사를 들이받지 않는다. 대신 그는 현실적인 고민 앞에서 힘겨워한다. 먹고 살려고 붙어있던 직장에서는 동료들이 왕따를 시키고, 주변에는 계속 희망고문 주는 남자들만 있다. 변태는 때려잡으면 된다. 하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현실의 고민은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나이 들수록 일을 계속하기는 어려워지고, 사랑은 찾아오지 않는다. 시즌1의 이영애는 세상이 그를 속일지라도 늘 씩씩했다. 하지만 시즌7의 이영애는 자신을 왕따 시키는 직원들 앞에서 풀죽은 표정을 짓는다. 이영애의 고민은 이제 한국 여성의 내적인 고민들을 건드린다. 그 지점에서 김현숙은 이영애와 만난다. 시즌7에서도 그는 친구이자 동료인 변지원(임서연)과 주사를 부리고, 변지원과 회사 사장실에서 몰래 추태를 벌인다. 하지만 이영애는 술에서 깬 뒤 퇴사 당하는 변지원에게 그 사실을 숨겨달라고 부탁하며 뻘쭘한 표정을 짓는다. 친구를 위로하기보다 당장 내 밥줄이 급하다. 그건 이영애가 아닌 어떤 여성이라도 할 수 있는 현실의 고민이다. 그리고 김현숙의 연기는 그런 순간의 미묘한 감정들을 살릴 때 빛난다. 고함은 줄어들었고, 디테일한 표정 연기는 더욱 늘어났다.
그녀 이전엔 본 적 없는 김현숙만의 것 3년 동안 한 배역을 연기하고, 그 사람의 내면을 점점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지금 김현숙만이 할 수 있는 어떤 영역이자 가능성이다. 누구도 김현숙처럼 평범한 한국 여성의 캐릭터를 오래 연기하지 않는다. 김현숙은 오랜 시간 이영애에 집중하면서, 한 캐릭터를 점점 더 살아있는 사람처럼 살을 붙여 나간다. 이영애가 평범해질수록, 이영애는 더 많은 여성들의 내면을 보여줄 수 있다. 어쩌면 김현숙은 앞으로도 오랜 기간을 이영애를 연기하며 살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영애를 넘어서는 배역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신 김현숙은 ‘가장 완벽한 이영애’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한 배우가 몇 년에 걸쳐 한 캐릭터를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이 배우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처음으로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즌 7에서 이영애는 살찐 엉덩이를 어떻게 뺄 거냐며 타박하는 어머니에게 “어떻게 하긴 짊어지고 가야지”라고 말한다. 살찐 엉덩이를 빼는 것도 좋지만, 이영애는 살찐 엉덩이를 짊어지고 가면서 누구도 쉽게 가질 수 없는 매력적인 성격도 얻었다. 어쩌면 김현숙도 이영애를 짊어지고 가는 것은 아닐까. 무겁기도 하고, 때론 내려놓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짊어지고 가다보면 누구도 가지 못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
글. 강명석 two@
편집. 이지혜 seven@
김현숙은 이영애가 아니다. 이영애는 직장에서 잘린 신세지만, 김현숙은 로 탄탄하게 배우의 입지를 다졌다. 이영애는 외모 콤플렉스로 어떤 남자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반면, 김현숙은 “영애가 자학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현숙은 이영애가 아닐지라도 이영애는 김현숙의 일부가 됐다. 그는 시즌마다 20회씩 이영애를 연기하고, 20회를 찍으면 2~3개월 쉬고 다시 새 시즌을 시작한다. 그렇게 만 3년, 7시즌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그를 본명대신 “영애 씨”라고 부른다. 그리고 김현숙은 얼마 전 병원에 입원했다. 이영애가 짝사랑하던 장동건(이해영)과 어긋나는 상황을 연기한 뒤 스트레스로 간수치가 급격하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막돼먹지 않은 영애 씨의 고민 시즌제 드라마가 배우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 이런 제목의 논문 한 편을 써도 좋을 만큼, 김현숙은 에 출연하며 독특한 성격의 배우가 됐다. 1년의 대부분을 이영애로 살면서, 김현숙은 점점 이영애와 닮아가고, 이영애의 영향을 받는다. 작품을 고를 때는 언제나 를 염두에 둔다. 이영애의 캐릭터 때문에라도 그가 다른 작품에서 날씬한 여자를 연기하기 어렵다. 한 배우가 자신마저도 “꼭 처럼 영애에게 벌어진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만큼 캐릭터와 닮아가는 건 기쁨이자 딜레마다. 를 하면서 김현숙은 배우로 자리 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어머니에게 집을 마련해드릴 수 있을 만큼 경제적인 여유도 얻었다. 하지만 공중파 드라마나 영화는 그에게 이영애와 비슷한 모습으로 “주인공 옆에서 세 마디만 하면 되는” 주인공 친구를 연기할 것을 제안하곤 한다. 그가 를 통해 마음껏 연기하는 만큼, 다른 작품에서는 그만큼의 만족감을 얻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영애는 그에게 안정을 줬지만, 동시에 그 안정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은 딜레마를 줬다.
그래서 의 시즌7에서 이영애의 모습은 김현숙의 현재와 오버랩 된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이영애는 조금씩 그 성격이 바뀌었다. 이영애는 더 이상 시시때때로 변태에 맞서 주먹다짐을 하거나, 직장 상사를 들이받지 않는다. 대신 그는 현실적인 고민 앞에서 힘겨워한다. 먹고 살려고 붙어있던 직장에서는 동료들이 왕따를 시키고, 주변에는 계속 희망고문 주는 남자들만 있다. 변태는 때려잡으면 된다. 하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현실의 고민은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나이 들수록 일을 계속하기는 어려워지고, 사랑은 찾아오지 않는다. 시즌1의 이영애는 세상이 그를 속일지라도 늘 씩씩했다. 하지만 시즌7의 이영애는 자신을 왕따 시키는 직원들 앞에서 풀죽은 표정을 짓는다. 이영애의 고민은 이제 한국 여성의 내적인 고민들을 건드린다. 그 지점에서 김현숙은 이영애와 만난다. 시즌7에서도 그는 친구이자 동료인 변지원(임서연)과 주사를 부리고, 변지원과 회사 사장실에서 몰래 추태를 벌인다. 하지만 이영애는 술에서 깬 뒤 퇴사 당하는 변지원에게 그 사실을 숨겨달라고 부탁하며 뻘쭘한 표정을 짓는다. 친구를 위로하기보다 당장 내 밥줄이 급하다. 그건 이영애가 아닌 어떤 여성이라도 할 수 있는 현실의 고민이다. 그리고 김현숙의 연기는 그런 순간의 미묘한 감정들을 살릴 때 빛난다. 고함은 줄어들었고, 디테일한 표정 연기는 더욱 늘어났다.
그녀 이전엔 본 적 없는 김현숙만의 것 3년 동안 한 배역을 연기하고, 그 사람의 내면을 점점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지금 김현숙만이 할 수 있는 어떤 영역이자 가능성이다. 누구도 김현숙처럼 평범한 한국 여성의 캐릭터를 오래 연기하지 않는다. 김현숙은 오랜 시간 이영애에 집중하면서, 한 캐릭터를 점점 더 살아있는 사람처럼 살을 붙여 나간다. 이영애가 평범해질수록, 이영애는 더 많은 여성들의 내면을 보여줄 수 있다. 어쩌면 김현숙은 앞으로도 오랜 기간을 이영애를 연기하며 살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영애를 넘어서는 배역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신 김현숙은 ‘가장 완벽한 이영애’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한 배우가 몇 년에 걸쳐 한 캐릭터를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이 배우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처음으로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즌 7에서 이영애는 살찐 엉덩이를 어떻게 뺄 거냐며 타박하는 어머니에게 “어떻게 하긴 짊어지고 가야지”라고 말한다. 살찐 엉덩이를 빼는 것도 좋지만, 이영애는 살찐 엉덩이를 짊어지고 가면서 누구도 쉽게 가질 수 없는 매력적인 성격도 얻었다. 어쩌면 김현숙도 이영애를 짊어지고 가는 것은 아닐까. 무겁기도 하고, 때론 내려놓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짊어지고 가다보면 누구도 가지 못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
글. 강명석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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