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중, 박보영, 이민호, 박신혜, 정용화, 박은빈, 김수현, 설리, 최강창민, 백진희, 정소민, 한승연. 얼핏 무작위로 골라놓은 듯한 리스트지만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9월 방송될 MBC 의 남녀 주인공 후보로 지난 한 달 사이 물망에 올랐거나 기사에 언급된 이름들이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장난스런 키스 캐스팅’을 치면 무려 2500여 개의 기사가 쏟아진다. 8월 말 방송될 KBS 의 주인공으로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 출신의 믹키유천이 캐스팅되었다는 소식 역시 발표와 동시에 인터넷 게시판마다 수백여 개의 댓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일본 만화 와 로맨스 소설 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드라마들이 방영 전부터 이토록 뜨거운 이슈인 이유는 무엇일까. 에서는 두 작품을 중심으로 지난 몇 년 사이 급격히 늘어난 만화, 로맨스 소설 원작 드라마를 둘러싼 드라마 판의 이모저모를 들여다봤다. 아직 원작을 접하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친절한 가이드는 물론 다양한 버전의 캐스팅 표, 가상 캐스팅 올림픽도 함께 준비했다.올 상반기 방송되었던 한 드라마의 스태프는 작품이 끝난 요즘도 잠자리가 편치 못하다. 연기자는 물론 스태프 전원이 지급받아야 할 돈의 절반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돈이 없는데 어쩌란 거냐’며 버티는 제작사 측에 소송이라도 걸고 싶지만 부도가 나면 그야말로 답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요즘 제작사들이 뭘 믿고 제작하는지 모르겠다”는 한숨이 이어졌다.
드라마, 만화와 로맨스 소설에 빠지다 지난 몇 년 사이 ‘한류 열풍’을 타고 외적으로는 팽창했지만 내적으로는 과다 경쟁과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드라마 시장에서 제작사들이 기댈 구석은 사실 손에 꼽을 정도다. 시청률 보증수표라 불리는 몇몇 작가, 캐스팅만으로도 흥행이 가능한 몇몇 배우, 그리고 ‘될 성 부른 원작’이 그것이다. 2005년 로맨스 소설을 원작으로 한 MBC 과 2007년 만화를 원작으로 한 MBC 의 히트는 드라마 제작자들이 이들 소재의 신대륙에 발을 들이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MBC 을 비롯해 KBS , 등 만화와 로맨스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줄을 이었다. 인기 있는 작품에 여러 제작사가 러브콜을 보내며 경쟁은 뜨거워졌다. 의 제작사 송병준 대표는 “당시 이미 열여섯 군데의 제작사가 경쟁 중이었다. 매일 출판사에 찾아가고 일요일에는 대표 집 앞에 찾아가 설득했다”고 판권 계약 에피소드를 밝힌 바 있다. 역시 2007년 출간과 함께 10여 군데의 영화 및 드라마 제작사가 눈독을 들였다. 대형 드라마 제작사에서 3년여 간 기획 프로듀서로 일했던 K씨는 “원작 판권 구매는 협상의 연속이다. 원칙은 ‘더 싸게, 더 빨리, 더 좋은 원작을 구하는 것’이다. 컨택하는 작품이 열 몇 개라도 성사되는 건 하나 정도”라고 말했다.
경쟁과 함께 가격이 뛰어올랐다. 일부 작품은 5천만 원 이상을 부르기도, 불가능에 가까운 가격인 억대를 요구하는 출판사도 등장했다. 이후 몇몇 로맨스 소설 원작 드라마의 성공에 고무된 제작사들은 소재 선점 차원에서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원작들을 사들이기도 했다. 출판 관계자 S씨는 “원작 판권이 5백만 원 이하인 경우는 전체 제작비에서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므로 ‘하면 하고 말면 말고’ 식의 구매도 많았다. 그런데 이후 드라마가 방송되면 방송국 로고를 책에 박는 것만으로도 수백만 원의 사용료를 내야 하므로 출판사 입장에서는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신인 작가가 영화 시나리오 전체를 한 편 집필하고 받는 원고료가 3천만 원 선이므로 그보다 훨씬 못 미치는 가격의 만화 판권을 구매하는 풍토도 생겨났다. 판권 계약이 늘어나며 제작사와 출판사 간의 ‘밀당’과 부속 조항도 늘어났다. 의 출판사인 파란미디어 임수진 편집장은 “원작이 영상화될 경우 포스터나 스틸 사진을 책의 띠지에 넣거나 서점 홍보물에 사용하게 해 달라는 조항도 있다. 제작사 측에서 원작자에게 대본 참여나 전체 디렉팅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원작 구매가 드라마 제작으로 이어지기까지 그러나 프로듀서 K씨는 “제작사가 책 홍보에 배우의 사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결정할 힘이 없는 경우 등은 난항을 겪기도 한다. 판권 관련 명확한 표준 계약서는 아직 없지만 무기한에서 5~10년가량의 기한이 정해진 것과 띠지에 ‘드라마화 결정’ 등의 문구를 넣는 것도 출판사들의 협상 경험에 의해 생겨났다. 원작 하나에 관심을 보이면 출판사 측은 ‘다른 곳에서도 이걸 원한다. 얼마를 불렀다’며 경쟁을 붙이기도 한다. 모든 중심에는 ‘돈’이 있고 아니면 인맥”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나마 1대 1 계약이 가능한 국내 저작물은 조금 나은 편이다. 중간에 브로커가 끼기도 하는 해외 저작물은 여간해선 계약이 쉽지 않다. 의 경우 만화 원작자, 일본 출판사, 앞서 드라마를 제작했던 일본 방송사 등 교섭 대상이 더욱 복잡했던 케이스다. 그래서 2007년부터 추진된 판권 계약은 2009년 초에야 마무리 지어졌고, 의 성공 이후 일본 원작에 눈 독 들이기 시작한 제작사들 역시 가능하면 ‘아직 해외에서도 방송되지 않은, 인기 있지만 너무 유명하지는 않은’ 작품을 선호한다.
물론 이렇게 구매된 원작들이 모두 제작되는 것은 아니다. 한 드라마 프로듀서는 “영화 가 히트한 후 인터넷 소설 판권이 많이 팔렸지만 말장난, 캐릭터 중심에 드라마가 약한 작품들은 몇 년이 지난 지금 먹히지 않는다. 필요하면 거기에 다른 콘셉트를 씌워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소설 을 원작으로 한 MBC 은 기본 뼈대 이외에 주요 배경 및 주인공의 직업, 가정환경 등을 상당 부분 새롭게 만들어 입히기도 했다. 때로는 선후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로맨스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고 알려진 모 미니시리즈의 경우, 작가가 창작물을 집필하던 도중 스토리를 이끌어갈 힘이 부족한 나머지 비슷한 콘셉트의 원작을 사서 결합시킨 케이스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표절 논란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참고 서적의 판권을 구입해 작품에 활용하기도 한다.
원작 각색 드라마의 득과 실 유명 원작은 편성과 수출에도 유리한 잣대로 작용한다. 이미 일본과 대만에서 드라마로 방송되어 인기를 끈 를 한국 드라마로 제작한 그룹에이트의 배종병 프로듀서는 “인지도를 가지고 시작한다는 면에서 수출에 훨씬 더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해외 시청자들 역시 한국 드라마 가 아니라 ‘의 한국판’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식이다. 이런 작품들의 경우 한류 드라마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원작이 편성의 절대적 잣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역시 편성에 심한 난항을 겪었다. 또 유명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던 한 드라마 관계자는 “홍보에 유리하고 캐스팅 면에서도 관심을 많이 받는다. 제작 소식이 수면으로 떠오르며 언론이나 팬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배우 측에서 나이 대나 이미지가 전혀 다른데 무작정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원작의 엄청난 인기가 부담이 되는 면도 있다. 이미 완결까지 난 작품의 경우 쓰는 재미가 떨어지기도 하거니와 작가 입장에서 ‘잘 써야 본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명 원작이 어느 정도 인지도 있는 작가들을 거쳐 신인 작가에게 넘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와 처럼 90년대 만화로 히트해 2,30대 여성 다수에게 공감대를 형성한 작품들이나 출판사 추산 50여만 부가 팔린 처럼 원작 팬들의 수가 많을수록 기대와 부담, 비판받을 가능성은 정비례한다.
지난 몇 년 사이 영상화되는 로맨스 소설이 늘어나며 작품의 경향도 달라졌다. 임수진 편집장은 “로맨스 소설 시장에서는 보통 1만 부가 팔리면 베스트셀러로 불린다. 즉 장르를 뛰어넘어 멀티 콘텐츠로 만들어지길 원하는 작가들은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집필하기도 한다. 해외 로케이션이 많거나 외국인이 주인공이거나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공간은 피하는 분위기다. 대중적으로 흥할 소재인가, 드라마를 구성할 에피소드가 충분한가에 대한 고민도 많다”고 전했다. 로맨스 소설 시장에서 인기를 끈 과 의 경우 각각 가상의 나라 황룡국과 은나라 황실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 영상화가 쉽지 않은 면이 있다. 몇 해 전 한 방송사에서 판권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까지 제작되지 않고 있는 역시 가상의 왕국 단국이 배경이다. 그래서 의 경우 여주인공을 짝사랑하는 소꿉친구 캐릭터를 드라마에서 강화해 삼각구도를 형성할 예정이고 은 진중한 성품의 주인공 이선준의 캐릭터를 ‘까칠남’으로 변화시켜 드라마적 재미를 더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원작 붐, 어떻게 시장을 바꿔 놓을 것인가 드라마가 예술, 문화보다 산업에 가깝게 자리 잡으면서 원소스 멀티유즈를 통한 수익 증대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된 지금 시장의 한가운데 있는 이들은 이러한 원작 붐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만화 원작의 드라마를 집필했던 한 작가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이야기를 끌고 가다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이미 토대가 있는 경우 그 장단점을 파악해 개선할 수 있다. 감독과 구체적인 의사소통을 할 때 비교적 수월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를 바탕으로 을 집필했던 진수완 작가는 “내가 다루고 싶었던 1930년대는 좀 더 밝은 느낌이었지만 원작은 훨씬 더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였기 때문에 텍스트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과 등을 연출했고 를 준비 중인 황인뢰 감독은 “만화와 드라마는 장르의 서사가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작을 변화시켜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도 까다롭게 제한받는 면이 있다”는 고충을 밝혔다. 또 의 노희경 작가는 “한류 드라마의 베이스인 창작이 사라지는 것은 위험하다. 일본 만화는 재미있고 상상력도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때문에 작가들이 원작자로서의 위치를 놓치고 창작을 포기하는 것은 문제”라는 우려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임수진 편집장은 “은 일본, 베트남, 중국, 대만에도 소설 판권이 팔렸다. 시리즈나 시리즈도 결국 영국, 미국의 장르 소설로부터 나온 결과물이었다. 시장의 최전선에 있는 로맨스 소설을 비롯해 국내 장르 소설에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돈이 모일수록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올 가을, 와 은 우리 앞에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글. 최지은 fiv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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