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뉴웨이브, 팝, 보사노바 등을 접목한 시부야케이는 당시 전형적인 일본 음악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하나의 장르인 동시에 딱히 어떤 장르라 정의내릴 수 없는 시부야케이는 마치 말랑말랑한 떡처럼, 그것을 매만지는 뮤지션에 따라 매번 새로운 장르로 탈바꿈했다. 이탈리아에서 테크노의 길을 걷다가 시부야케이로 전향한 DJ 캡틴 펑크는 복고풍을 강조하면서도 여느 시부야케이와는 다른 색깔의 음악을 선보인 뮤지션이다. 이렇다 할 시부야케이 롤 모델도 없이 펑크적 요소가 강한 곡들을 만드는 캡틴 펑크가 지난 5일 첫번째 내한공연을 가졌다. 한국 팬들의 취향에 맞춰 지난 달 발매된 < Korea Platinum Edition >에는 반복적인 후렴구 덕분에 몇 번만 들어도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대중적인 곡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음악은 듣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그의 신념이 깃든 앨범이기도 하다. 한국 공연을 하루 앞둔 6월 4일, 캡틴 펑크를 만났다.한국에 대한 첫 인상이 어떤가.
캡틴 펑크: 촘촘하게 세워진 빌딩도 그렇고, 서울은 도쿄에 비해 굉장히 정돈된 도시 같다. (웃음) 일본에서는 한국 음식이 굉장히 비싼데,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한국 김치를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단지 2박 3일이라는 짧은 일정이 아쉽긴 하다.
“원래 캡틴 펑크는 친구들과 기획했던 파티의 이름” 내한공연과 라이선스 음반 발매 제의를 받았을 때, 소감이 어땠나.
캡틴 펑크: 너무 기뻤다. 일본에서는 90년대 캡틴 펑크의 음악들이 인기가 많은데, 한국 팬들은 2007년 이후 캡틴 펑크 음악들, 특히 ‘Weekend’나 ‘Hey Boy, Hey Girl’을 좋아하는 걸 보고 많이 놀랐다. 이번 앨범은 한국 팬들의 취향을 고려해 듣기 편한 14곡을 선곡했다. 이미 한국에 알려진 작곡가 겸 DJ FPM으로부터 한국의 홍대 클럽신이 좋다고 들었기 때문에 이번 내한공연에 대한 기대도 크다.
‘Weekend’나 ‘Hey Boy, Hey Girl’은 이번 < Korea Platinum Edition >에도 수록돼 있는데, 다른 곡들에 비해 대중적인 느낌이다.
캡틴 펑크: 맞다. 특히, ‘Weekend’는 상당히 대중적인 곡인 동시에 복고적인 느낌도 강해서 가장 캡틴 펑크다운 곡으로 내세우고 있다. 반복구가 많아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이런 게 펑크의 특징이다. 사실 애초 캡틴 펑크의 지향점은 이런 스타일이 아니었다. 90년대 캡틴 펑크 음악이 히트를 치지 못하면서, 나도 모르게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는 시부야케이 뮤지션들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2000년대 이후 발매한 앨범에는 ‘Weekend’나 ‘Hey Boy, Hey Girl’ 같은 대중적인 곡을 수록하게 됐고, 점점 캡틴 펑크 스타일이 그렇게 변한 것 같다.
그런데 첫 데뷔는 캡틴 펑크가 아니었다. 1997년 이탈리아에서 본명(타츠야 오에)으로 테크노 뮤지션으로 활동하다가 1998년 캡틴 펑크란 이름으로 다시 무대에 선다. 갑자기 길을 바꾼 이유가 있었나.
캡틴 펑크: 원래 캡틴 펑크는 친구들과 기획했던 파티의 이름이었다. 캡틴 펑크라는 이름은 미국의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에서 영감을 얻었다. 일렉트로닉, 힙합, 뉴웨이브 등 다양한 장르가 섞인 음악 파티를 열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됐다. 결국 파티에서 영감을 얻어 캡틴 펑크라는 이름으로 다시 활동을 시작했고, 음악적 성향도 시부야케이로 바뀌게 된 거다.
캡틴 펑크의 시부야케이는 어떤 색깔의 음악인가.
캡틴 펑크: 사실 시부야케이 음악은 어느 하나의 장르로 정의내릴 수 있는 음악이 아니다. 기타팝, 스웨디시팝, 보사노바 등을 엮어서 만들기도 하고, 예전 록 음악에서 파생된 시부야케이도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캡틴 펑크 파티를 통해 뉴웨이브, 펑키, 테크노, 디스코 등을 접목시켜 새로운 시부야케이 음악을 만든 거다. 다른 뮤지션들이 시도하지 않은 펑크적 요소를 내세워서 시부야케이의 복고 정신을 강조하고 싶었다. 특히 디스코에 초점을 맞춘 게 내 음악의 특징이라고 보면 된다.
원래 디스코 음악을 즐겨 들었던 편인가.
캡틴 펑크: 1984~86년 사이에 나보다 10살이나 많은 형들과 다니면서 ‘YMCA’나 ‘Saterday Night Fever’ 등 1970년대 디스코 음악을 접하게 됐다. 당시 음악적인 지식이 없었는데도 충분히 디스코 음악을 듣고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오면서 음악적 지식을 쌓게 되었고, 그런 상태로 음악을 접하다 보니 사실 듣는 재미는 반감되더라. 내가 80년대에 아무런 지식 없이 음악을 즐겼던 것처럼, 지금 대중들도 내 음악을 그렇게 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순간적으로 들어도 쉽게 와 닿을 수 있는 ‘Weekend’ 같은 곡을 계속 만들고 싶다.
“FPM처럼 많은 사랑을 받고 싶다” 대중적인 곡들을 만들다보면 자신의 스타일이 상대적으로 희미해질 수도 있는데, 그런 우려는 없는가.
캡틴 펑크: 내 스타일도 지키면서 대중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어렵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게 음악인으로서의 사명감이고, 캡틴 펑크의 음악세계다. 사실 ‘Weekend’ 같은 대중적인 곡을 만드는 데 시간이 진짜 많이 걸린다. 댄스뮤직 같은 경우는 2~3일이면 만들 수 있지만, 퀄리티 있으면서도 대중적인 음악은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곡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은 그걸 듣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 아닌가.
곡 작업은 어떻게 하고 있나. 작사, 작곡도 직접 하는 편인가.
캡틴 펑크: 내가 모든 곡의 가사를 붙이지는 않는다. ‘Weekend’ 같은 경우는 내가 작곡을 하고, 피처링을 해준 Adnan Kurtov가 작사했다. 내가 ‘나나나나나~’식으로 허밍을 만들어 보내면 그가 가사를 붙여서 다시 나한테 곡을 준다. 물론 직접 만나지는 않고 온라인 미팅을 거쳐서 곡을 완성해가는 편이다. ‘Weekend’ 가사는 연인들의 사랑공식을 주제로 했는데, 10대들도 듣고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Get Over You’ 같은 경우 굉장히 짧은 가사인데, 내가 100% 작사했다. 딱히 의미 있는 가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재밌게 들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어느 미국인이 재밌게 들었다고 하더라.
자신의 음악에 영향을 준 시부야케이 뮤지션이 있나.
캡틴 펑크: 사실 시부야케이 뮤지션 중에서는 없다. 하지만 일본의 국민가수라 불리는 야마시타 타츠로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20년을 앞서간 뮤지션이다, 그 분은.
내일 홍대 클럽에서 한국 팬들과 처음 대면한다. 특별히 준비한 부분이 있는지.
캡틴 펑크: 원래 있던 DJ Set(공연 내내 음악을 믹싱해서 트는 작업)을 한국 팬들이 좋아할만한 스타일로 다 바꾸었다. 듣기 쉬운 곡들 위주로 편성했다. 이번 앨범에 수록되지 않은 곡 중 비슷한 분위기의 곡들도 함께 넣었고. 클럽 공연을 위해 편곡을 하면 앨범에 수록된 곡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니,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거다. 한국 사람들이 FPM을 많이 좋아해주는데, 내 음악도 그렇게 사랑받았으면 한다.
통역. 김장훈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장경진 three@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