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속의 알. 무엇이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여섯 살 때부터 엄한 꾸중 속에서 받아쓰기를 연마한 꼬마가 인근 보습학원장들이 하나같이 탐내는 똘똘한 중학생으로 자라났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게다가 모의고사 점수가 점점 떨어지기 시작한 고등학생이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방송국 PD가 되겠다고 해도 철썩 같이 믿어서는 더더욱 안 되는 것이었다. 결국 모범생이었던 박정민은 영화 을 거쳐 연극 과 영화 을 한꺼번에 소화하는 배우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부모님의 기대보다 빠른 속도로 무럭무럭 자라난 것은 영화를 향한 소년의 짝사랑이었던 것이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단 하나, 연기 제 마음만큼의 응답이 없었으니, 확실히 짝사랑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를 가겠다고 생각 했어요. 그런데, 당연히 붙을 줄 알았는데 당연하게 떨어지더라구요. 특별 전형, 일반전형 두 번 다 봤는데, 다 떨어졌어요.” 그러나 여인이 매몰찰수록 소년의 마음은 더욱 간절해지는 법. 수능 점수에 맞춰 입학한 학교에 적응하기를 거부한 박정민은 영상자료원을 자신만의 학교로 삼았다. “스무 살이었거든요. 어려운 영화를 봐야 할 것 같아서 일단 장 뤽 고다르, 코폴라 영화부터 봤어요. 다 자면서 봐놓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 너무 좋다고 입방정 떨었죠”라고 말하는 얼굴에는 장난스러움이 묻어나지만, 그 시절이야말로 박정민에게는 자양분이 된 시간들이었다. “진짜 제가 반했던 건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였어요. 를 봤는데, 와, ‘이게 뭐야!’ 했다니까요.” 그리고 그에게 영화란, 그리고 연기란 하고 싶은 것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간절한 희망은 운명이 된다. 끝내 박정민은 원하던 학교에 입학을 했다. 처음 자신에게 배우의 꿈을 심어준 극단 차이무의 단원이 되는 기회도 얻었다. 군복무를 마치고는 학교 안에서 전공을 바꿔 연출이 아닌 연기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돌고 돌아 드디어 만난 연인의 손을 붙들자, 이상하게도 고민은 더 커졌다. “이제 ‘연기하는 애’가 되고 나니까, 제대로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믿음직스러운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그 무렵에 만난 윤성현 감독은 그가 미처 묻지도 않았던 질문의 답을 알려 줬다. “감독님이 날것의 연기를 원하셨어요. 가장 고난이도의 연기를 어린 배우들에게 요구한 거죠. 한 달 반 동안 일주일에 감독님을 3번씩 만났어요. 대사 하는 거 찍고, 군대 얘기 하는 거 찍어서 보여주시는데 확실히 다르더라구요.” 그리고 크랭크인까지, 그는 오직 극 중의 인물 희준이 되기 위해 몰입했다. 시나리오 상의 악역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입장에서 일기를 쓰고, 그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덕분에 그는 윤성현 감독의 인정이라는 큰 선물을 얻었노라, 스스로 자부한다. 하지만 그가 진짜로 받은 선물은 그보다 크고 빛나는 무엇이었다. “전에는 연기를 좋아하면서도 ‘그냥 가서 하고 오면 되는 거 아니야?’그런 주의였거든요. 그런데 진짜 노력하니까 이만큼이나마 여러분이 좋게 봐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도 캐스팅 되고 나서 정말 열심히 연습 했어요.”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배우가 될 겁니다” 이제 막 노력하는 기쁨을 알게 된 어린 배우에게 그래서 연극무대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기록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하면서 달라져요. 어제 공연과 오늘 공연이 달라요. 그런데 형님들을 믿고 가니까 또 호흡이 맞아요.” 싱글싱글 웃으면서 대사를 재연해 보이는 박정민의 눈이 빛나고 입이 춤춘다. 어떤 배우들은 칼로 깎아 놓은 듯하지만, 손으로 빚은 듯 모서리가 없는 그의 얼굴에는 조각이 감당하기 어려운 율동이 있다. 여전히 “(파수꾼에 같이 출연한) 제훈이 형이나 준영이에 비하면 외모는 포기 수준”이라고 엄살을 떨지만, 박정민은 배우에게 꼭 필요한 덕목을 안다. “뻔뻔해져야죠. 연기하는 애가 너무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한다고 야단맞은 적도 있어요. 그래도 지금은 많이 바뀐 건데,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배우가 될 겁니다.” 품었던 알 속에 어떤 얼굴의 배우가 들어있는지, 박정민을 확신하기에는 아직 좀 이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뻔뻔하게 제 부리로 알 껍질을 깨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를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그의 껍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글. 윤희성 nin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단 하나, 연기 제 마음만큼의 응답이 없었으니, 확실히 짝사랑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를 가겠다고 생각 했어요. 그런데, 당연히 붙을 줄 알았는데 당연하게 떨어지더라구요. 특별 전형, 일반전형 두 번 다 봤는데, 다 떨어졌어요.” 그러나 여인이 매몰찰수록 소년의 마음은 더욱 간절해지는 법. 수능 점수에 맞춰 입학한 학교에 적응하기를 거부한 박정민은 영상자료원을 자신만의 학교로 삼았다. “스무 살이었거든요. 어려운 영화를 봐야 할 것 같아서 일단 장 뤽 고다르, 코폴라 영화부터 봤어요. 다 자면서 봐놓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 너무 좋다고 입방정 떨었죠”라고 말하는 얼굴에는 장난스러움이 묻어나지만, 그 시절이야말로 박정민에게는 자양분이 된 시간들이었다. “진짜 제가 반했던 건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였어요. 를 봤는데, 와, ‘이게 뭐야!’ 했다니까요.” 그리고 그에게 영화란, 그리고 연기란 하고 싶은 것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간절한 희망은 운명이 된다. 끝내 박정민은 원하던 학교에 입학을 했다. 처음 자신에게 배우의 꿈을 심어준 극단 차이무의 단원이 되는 기회도 얻었다. 군복무를 마치고는 학교 안에서 전공을 바꿔 연출이 아닌 연기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돌고 돌아 드디어 만난 연인의 손을 붙들자, 이상하게도 고민은 더 커졌다. “이제 ‘연기하는 애’가 되고 나니까, 제대로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믿음직스러운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그 무렵에 만난 윤성현 감독은 그가 미처 묻지도 않았던 질문의 답을 알려 줬다. “감독님이 날것의 연기를 원하셨어요. 가장 고난이도의 연기를 어린 배우들에게 요구한 거죠. 한 달 반 동안 일주일에 감독님을 3번씩 만났어요. 대사 하는 거 찍고, 군대 얘기 하는 거 찍어서 보여주시는데 확실히 다르더라구요.” 그리고 크랭크인까지, 그는 오직 극 중의 인물 희준이 되기 위해 몰입했다. 시나리오 상의 악역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입장에서 일기를 쓰고, 그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덕분에 그는 윤성현 감독의 인정이라는 큰 선물을 얻었노라, 스스로 자부한다. 하지만 그가 진짜로 받은 선물은 그보다 크고 빛나는 무엇이었다. “전에는 연기를 좋아하면서도 ‘그냥 가서 하고 오면 되는 거 아니야?’그런 주의였거든요. 그런데 진짜 노력하니까 이만큼이나마 여러분이 좋게 봐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도 캐스팅 되고 나서 정말 열심히 연습 했어요.”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배우가 될 겁니다” 이제 막 노력하는 기쁨을 알게 된 어린 배우에게 그래서 연극무대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기록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하면서 달라져요. 어제 공연과 오늘 공연이 달라요. 그런데 형님들을 믿고 가니까 또 호흡이 맞아요.” 싱글싱글 웃으면서 대사를 재연해 보이는 박정민의 눈이 빛나고 입이 춤춘다. 어떤 배우들은 칼로 깎아 놓은 듯하지만, 손으로 빚은 듯 모서리가 없는 그의 얼굴에는 조각이 감당하기 어려운 율동이 있다. 여전히 “(파수꾼에 같이 출연한) 제훈이 형이나 준영이에 비하면 외모는 포기 수준”이라고 엄살을 떨지만, 박정민은 배우에게 꼭 필요한 덕목을 안다. “뻔뻔해져야죠. 연기하는 애가 너무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한다고 야단맞은 적도 있어요. 그래도 지금은 많이 바뀐 건데,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배우가 될 겁니다.” 품었던 알 속에 어떤 얼굴의 배우가 들어있는지, 박정민을 확신하기에는 아직 좀 이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뻔뻔하게 제 부리로 알 껍질을 깨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를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그의 껍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글. 윤희성 nin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