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 개봉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기다린 데는 일본 내 주요 영화제를 휩쓴 화려한 수상 경력뿐 아니라 주연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의 인기, 메가폰을 잡은 이상일 감독에의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중요한 이름이 있다. 영화의 원작자이자 각색자인 요시다 슈이치. 소설 은 2000년대 이후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가장 사랑 받는 작가 중 한 명인 요시다 슈이치가 “감히 저의 대표작이라고 말하겠습니다”라고 밝힌 작품이다. 실제로 은 그간의 작품들을 집대성한 동시에 더 깊고 강렬해진 세계를 기대하게 만든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이에 영화 의 개봉을 반기며, 주로 일본의 젊은 도시인을 일상을 그린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이 한국의 독자들을 매료시킨 이유를 살펴보고, 이 문제적 소설 을 통해 그의 주요 작품을 정리해 보았다.요시다 슈이치는 현재 한국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일본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97년 로 문학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뒤, 2002년 로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일본 문학을 이끌 차세대 작가로 주목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와 가 출간되며 일본 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 사이에서 이름이 회자되기 시작했고, 탁월한 신예 작가의 등장은 금세 대중들에게 알려지며 붐을 일으켰다.
요시다 슈이치, 동시대의 감수성을 포착하다 문학의 영상화가 빈번한 일본에서도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들은 특히 영화나 드라마의 러브콜을 많이 받았다. 이번에 개봉한 뿐 아니라 , (국내에서는 로 출간)이 드라마로, , , 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사건을 다층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플롯과 눈앞에 장면을 펼쳐 보여주는 듯한 섬세한 묘사가 특징인 그의 소설은 영상화에 더없이 적합하다. 무엇보다도 요시다 슈이치가 천착해 온 현대 도시인의 삶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관찰이 동시대의 감수성을 포착했고, 내 마음을 그대로 읽어주는 듯한 그의 문장들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요시다 슈이치가 그리는 평범하지만 위태로운 일본인들의 일상은, 마찬가지로 고도로 산업화된 도시 속에서 평범한 얼굴을 가장하고 있지만 그 가면 뒤에서 바닥을 알 수 없는 고독과 싸우며 발버둥치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도 동일한 울림을 주었다.
‘젊은 여자가 젊은 남자에게 살해당했다’라는 한 줄의 뉴스 뒤에 가려진 인간의 가혹한 운명과 모순을 이야기하는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은 일본 큐슈 지방의 후쿠오카와 사가를 연결하는 한적한 국도의 미츠세 고개에서 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며 시작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범인을 쫓는 추리 소설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폭력도 연애도 뭔가가 일어나기 일보 직전까지 묘사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한 번쯤 박차고 나가 브레이크를 풀고 쓰고 싶었다”고 작가 스스로 밝혔듯이 은 살인 사건이 벌어진 뒤, 그 사건이 일으키는 깊고 거대한 파문을 그린다. 이 소설은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들 주위 사람들이 사건을 겪으며 동요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모른 채 혹은 알고도 외면해 온 우리 안의 ‘연약함’과 이것이 잉태한 ‘악의’에 대해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진짜 악인은 누구인지 묻는 의 핵심 사건은 토목공 시미즈 유이치가 휴대폰 만남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보험설계사 이시바시 요시노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이다. 소설의 전반부는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던 과묵하고 평범한 젊은 남자와 다소 허황된 욕망을 갖고 있고 이기적이지만 역시 평범한 젊은 여자가 어쩌다 가해자와 피해자로 얽히게 되는지를 묘사한다. 유이치가 사건 후 역시 만남 사이트로 알게 된 또 다른 여자, 마고메 미츠요와 함께 도피하며 겪는 심리 변화가 작품의 후반부를 차지한다. 표면적으로 이 사건의 피해자는 요시노이고, 가해자는 유이치이다. 세간의 시선에서 보면 미츠요 역시 또 다른 피해자다. 하지만 은 이 사건의 진짜 가해자는 유이치가 아니라 ‘너무 늦게 구원받은 외로움’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고독를 안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잠재적인 유이치(가해자)이자 요시노(피해자)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유이치는 지방의 소도시에서 소외된 채 자라면서 제대로 소통하고 관계 맺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고, 그 탓에 내면의 ‘약한 사람’이 우발적인 폭력으로 표출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졌다. 은 명백한 제목과 달리 ‘진짜 악인은 누구인가’를 묻는다.
차세대 유망주에서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요시다 슈이치 이전과 이후에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일본 작가들은 많았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는 물론, 한 때 서점 일본 문학 코너를 점령했던 3대 여류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카오리, 야마다 에이미도 있다. 하지만 일본 현지에서의 열풍과 다소 시간차를 두고 찾아 온 두 무라카미나 한국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사소설적 특성 때문에 ‘가볍다’고 쉽게 호도되었던 일군의 여성 작가들, 그리고 장르 소설적인 면모가 먼저 부각되는 히가시노 케이고, 미야베 미유키 등과 요시다 슈이치는 조금 다른 위치에 서 있다.
요시다 슈이치에 대한 가장 흔한 수식어 중 하나가 ‘일본 팝 문학의 정점’이다. 순수문학과 대중소설 양쪽에서 권위 있는 상을 수상했다는 표피적인 이유에 더해, 술술 읽히면서도 생생한 동시대성을 놓치지 않는 작품들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80, 90년대 팝 문학의 기수였던 두 무라카미들이 각각 ‘환상성’에의 천착과 과격한 ‘하드보일드’로 인해 놓칠 수밖에 없었던 ‘보편적인 대중성’을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리고, 날카로운 사회의식을 특유의 디테일한 문체로 드러낸 역작 을 기점으로 요시다 슈이치에 대한 평가는 유망한 차세대 기수에서 현재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바뀌었다.
그는 을 통해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숨겨두었던, 그래서 때로는 의식하지 못한 채 내버려 두었던 심연의 방을 벌컥 열어젖히며 묻는다. “누구나 피해자가 되고 싶어 하는 세상에서 가해자는 누구의 몫인가. 우리는 언제까지 ‘악인’이 되지 않고 안전한 방관자나 죄 없는 피해자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라고. 요시다 슈이치는 태생적인 고독과 함께 살아가는 현대 도시인을 위로하는 동시에 시스템이나 환경에 의해 언제든지 소외되고 외면당할 수 있는 우리의 삶에 경고의 메시지를 주는 작가다. 국적도 언어도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이 비열한 현대의 거리를 헤매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래서, 그가 던지는 질문은 앞으로도 여전히 우리의 가슴에 날카롭게 날아와 꽂힐 것이다.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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