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민 작가 “말하기보단 읽는 사람이 느낄 수 있게”" />
주호민 : 리얼라이즈 픽쳐스 대표님에게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영화화하겠다는 이야기 없이 작품 내용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시더라. 이런 캐릭터인 거죠? 이런 식으로. 그리고 혹시 현재 판권 계약한 곳이 있느냐고 물어보셔서 없다고 했더니 며칠 있다가 계약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일이 굉장히 빨리 이뤄졌다.
“준비를 많이 하고 들어가는 타입은 아니다”
다른 매체에서 관심을 가질 만큼 최근 스토리텔링 웹툰 중에서도 눈에 띄는 스토리와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할락궁이나 강림 도령 등, 각기 독립된 이야기에 가까운 한국의 신화들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집대성한 느낌이다.
주호민 : 기본적으로 저승신, 이승신 이런 식으로 분류 자체가 잘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다보니 여러 신화를 차용해야 했고, 그 중 재밌는 엑기스만 모아 조합을 했다. 할락궁의 이야기에서는 환생꽃이라는 장치가 너무 재밌어서 그걸 가져오고, ‘이승 편’에서는 실제로 문헌에 있는 홍역귀를 도입하고. 같은 이유로 기획할 때도, 이걸 ‘저승 편’, ‘이승 편’, ‘신화 편’ 3부작으로 만들되 이것들이 조금씩 연관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시리즈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필요했고, 그 중 가장 매력적으로 느꼈던 저승차사 삼인방을 모든 시리즈에 넣어 각 시리즈의 연결 고리를 만들었다. 각각 독립된 이야기지만 같은 캐릭터가 나오면서 조금씩 사건들이 이어져, 마치 되게 잘 짜인 구조처럼 보이려고. (웃음) 가령 강림이 예전에 염라대왕을 습격한 적이 있다는 걸 슬쩍 이야기해놓고, ‘신화 편’에서 완전히 보여줄 생각이다. 소위 떡밥이 회수되는 구조가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세 개 시리즈의 연재 순서도 금방 정했나.
주호민 : 우선 ‘신화 편’을 가장 마지막에 할 거라고 생각했다. ‘저승 편’, ‘이승 편’을 통해 신들의 요즘 모습을 보여준 뒤, ‘신화 편’을 통해 진짜 신화 이야기 보여주면 좋겠다고. 나머지 두 개 중 ‘저승 편’은 구성 자체가 저승의 여러 관문을 통과하는 거라 모험 만화처럼 흥미롭게 되어 있다. ‘이승 편’은 상대적으로 우울하고, 불편하고. 그걸로 시작했다가는 반응이 안 올 것 같아서 (웃음) 일단 재밌는 걸 먼저 보여주고 그 다음에 하고 싶던 이야기를 하자는 생각으로 ‘저승 편’ 먼저 연재했다.
이들 세 시리즈의 중심에 놓인 저승차사 삼인방이 강림 도령과 덕춘이, 혜원맥인데 이들을 창작 캐릭터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주호민 : 전부 제주 신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인데 요즘 독자 입맛에 바꾼 건 있다. 원래는 셋 모두 남자에 험악한 인상, 그것도 셋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인상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너무 칙칙할 거 같아서 덕춘이를 여자로 그렸다. 덕춘이는 월직차사라고 하는데 달은 음의 느낌도 있으니까. 그렇게 덕춘이는 마음 약한 여자 캐릭터가 됐고, 거기에 대응하는 냉정한 캐릭터가 혜원맥, 다혈질은 강림인 식으로 캐릭터를 부여했다.
캐릭터 외의 설정들도 미리 준비했나. ‘저승 편’에서 김자홍이라는 인물이 죽고 나서 육도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군더더기가 없다.
주호민 : 준비를 많이 하고 들어가는 타입은 아니다. 원전 자체의 저승관이 흥미롭고 그 때 그 때 거기에 살을 조금씩 만들어 붙였다. 캐릭터도 기본적인 요소만 설정했다. 김자홍의 경우 주인공이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데, 독자들이 자신을 이입할 수 있는 백지 같은 인물로 설정했다. 변호사 진기한을 무적의 캐릭터로 만든 건, 저승이라는 무서운 곳에서 그를 통해 위안을 얻게 하고 싶었던 거고. 진기한의 모델은 만화에도 나오는 지장보살인데, 옛날 사람들도 지옥의 모든 영혼을 구제하고자 하는 지장보살을 통해 위안을 얻지 않았을까.
준비를 많이 하지 않는 것에 비해 복선이나 이런 것들이 굉장히 치밀해 보이는데.
주호민 : 마치 전부터 생각한 것처럼 만드는 요령이 있어서 속이고 있다. (웃음) 가령 ‘이승 편’에서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동현이가 홍역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초등학교 입학 때 어떤 절차가 있나 찾아보다가 나온 대사인데, 나중에 마침 홍역귀의 존재를 알게 되어 등장시켰더니 마치 그게 계획한 것처럼 됐다.
“평소에 관심 있던 사안들이 주제가 된다” 주호민 작가 “말하기보단 읽는 사람이 느낄 수 있게”" /> 요령이라고 하지만 만화가로서의 연출 테크닉이 갈수록 발전하는 느낌이다. 최근 ‘이승 편’에서 철거민인 오락실 할아버지가 죽을 때 TV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프리미엄의 가치’라는 아파트 광고가 나온다.
주호민 : 의도한 건데, 사실 처음에는 ‘당신의 아파트’ 이런 식의 광고도 생각했다. 그러면 너무 노골적일 것 같아서 짐작할 수 있을 정도만 드러냈다. 어떤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의 작품이 불편하지 않은 건, 그 노골적인 요소가 없어서다. 작가의 목소리를 직접 내는 걸 굉장히 조심한다.
주호민 : 제일 신경을 많이 쓰는 게 그 부분이다. 캐릭터가 말을 하는데 이건 누가 봐도 작가 생각이다, 하는 장면은 손발이 오그라든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걸, 캐릭터 입을 통해 말하기보다는 어떤 상황을 보여주고 보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연출하는데 치중한다. ‘이승 편’의 경우 재개발에 대한 철거민의 입장을 긴 대사로 말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철거되는 과정과 사람들이 부딪히는 과정을 담담히 보여주고 읽는 사람이 느낄 수 있게 하고 싶다.
하지만 철거민 이야기라는 것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이미 어떤 메시지나 의도라는 게 생기게 된다.
주호민 : 평소에 관심 있던 사안들이 주제가 된다. 같은 경우에는 스물여덟, 주위가 다 취업준비생이라 관심이 그쪽에 쏠릴 때 그리게 된 거고, ‘이승 편’은 용산 참사를 다룬 이라는 르포 만화를 보고 자극을 받아 그리게 됐다. 이런 만화를 극화로 만들어 대형 포털에 연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이승의 신인 가택신 이야기를 하는데, 철거라는 게 가택이 없어지는 거 아닌가. 머릿속에서 가택신과 철거, 재개발 등의 이야기가 엉켰다. 그런 식으로 주제를 잡지만 메시지를 따로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재개발은 나쁜 겁니다, 이런 게 아니라 어느 곳이든 원래 살던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은 어디로 가는지 한 번 정도 생각은 해보자는 거다.
기획 자체도 한국 신화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시작한 걸로 아는데, 대형 포털에 연재하는 만화가로서 혹 책임감이 있나.
주호민 : 네이버 정식 웹툰이 되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본다. 수십만, 수백만이 보는 연재처에 자기 만화를 올리는 건 굉장히 큰 힘인데, 그런 공간을 유의미하게 쓰고 싶었다.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도구로 쓴다는 건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생각해보면 싶은 문제들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으로. 책임감보다는 공간을 활용하고 싶은 거겠지.
가전제품 재활용 정책이 고물을 주워 연명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힘든 일이 된다는 건 ‘이승 편’을 보고 알았다.
주호민 : 어떤 현상이 되게 좋아 보이는데, 한 꺼풀 벗기면 되게 이상한 부조리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시사 잡지 등을 통해 정보를 얻는 건데, 나도 그런 잡지를 보기 전에는 모르던 사실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보여준 거다.
“재밌는 만화를 그릴려면 인풋이 많아야 한다”
원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편인가.
주호민 : 그보다는 뭔가 알게 되는 걸 좋아한다. 우주나 공룡 관련한 다큐를 보며 내가 모르던 세계를 알게 되는 게 너무 흥미롭다. 그런 것 중 이런 걸 그리면 재밌겠다 싶은 것들도 생기고. 를 저승에 관련한 책을 보다 그리게 된 것처럼. 이런 게 없으면 자기 안에 있는 것만 그리게 되는데 자의식 과잉이 되면서 볼품없는 만화가 된다.
자의식 과잉이면 볼품이 없는 건가.
주호민 : 좋은 자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상관이 없는데, 안에 가진 게 없으면서 그걸 보여주려면 그게 뵌다. 얕은 게.
소위 중2병?
주호민 : 그렇지. (웃음) 정말 얕구나, 이 작품은 정말 비어있구나, 텅.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서 이렇게는 그리면 안 되겠다 싶을 때가 있다.
인풋이 많아야 하는 직업이겠다.
주호민 : 가끔 후배들이 어떻게 하면 재밌는 만화를 그릴 수 있느냐고 묻는데 항상 인풋이 많아야 한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만화만 보지 말라고. (웃음) 특히 만화학과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나는 창작자들을 한 공간에 몰아넣는 걸 굉장히 안 좋다고 본다. 비슷한 부류의 학생들을 한 곳에 몰아넣으면 그들끼리만 이야기하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서 취향이 비슷해지고 어떤 프레임 안에 갇힌다. 그래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책도 많이 읽고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만나볼 필요가 있다. 만화가들은 사람 만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웃음) 그러면 하다못해 휴먼 다큐라도 많이 보라고 한다. 나도 그러려고 한다. 책도 읽고, 신문도 계속 보고.
주제나 소재는 계속 다양하게 도입하는데 도 그렇고, 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착한 사람이 잘 되길 바라는 태도가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
주호민 : 딱히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를 생각하고 그린 건 아니다. 어쩌면 촌스러운 주제기도 해서 딱히 의도하진 않는데, 그리다보면 그렇게 되더라. 그냥 그렇게 된다, 나도 모르게. 작풍이란 건가, 하며 그리고 있다. 그리고 부정적인 느낌의 작품을 그리면 그리는 나도 고통스럽더라. 작업은 즐거워야 한다는 마인드인데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작업이 재미없고, 그러면 만화도 재미없어지고, 독자도 재미없어 하고, 나도 힘이 빠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따뜻하고 밝은 이야기를 하면 선순환이 되고.
사람의 선함, 결국 옳은 선택을 할 거라는 걸 믿는 편인가.
주호민 : 믿는 편이다. 사람들에게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지지고 볶고 이래도 아주 느리게, 아주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지만 좋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결국은 그런 생각으로 그리고 있다.
글. 위근우 기자 eight@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주호민이요. 아마 지금보다 나중에 더 좋은 만화를 그릴 거예요.” 언젠가 강풀 작가에게 주목하는 후배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주호민 작가를 꼽았다. 사실 군대 경험을 소재로 한 으로 성공적 데뷔를 할 때만 해도 이 젊은 작가가 자신의 경험 외의 영역에서도 좋은 스토리텔링을 보여줄 거라 기대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나 등의 후속작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는 더더욱. 하지만 88만원 세대의 궁핍한 현실을 희망적 터치로 풀어낸 , 그리고 한국의 신화를 바탕으로 탄탄한 세계관을 만들어낸 등을 통해 주호민 작가는 탁월한 이야기꾼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최근 연재 중인 ‘이승 편’, 신호등 교체에 대한 단편 등에서는 사회에 대한 얕지 않은 문제의식 역시 드러난다. 요컨대, 그의 작품들은 스토리도 주제에 대한 태도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탄탄하다. 그 풍성한 텍스트들의 뿌리를 이루는 주호민이라는 텍스트가 궁금한 건, 그 때문이다.‘저승 편’이 영화화 제의를 받았다.
주호민 : 리얼라이즈 픽쳐스 대표님에게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영화화하겠다는 이야기 없이 작품 내용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시더라. 이런 캐릭터인 거죠? 이런 식으로. 그리고 혹시 현재 판권 계약한 곳이 있느냐고 물어보셔서 없다고 했더니 며칠 있다가 계약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일이 굉장히 빨리 이뤄졌다.
“준비를 많이 하고 들어가는 타입은 아니다”
다른 매체에서 관심을 가질 만큼 최근 스토리텔링 웹툰 중에서도 눈에 띄는 스토리와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할락궁이나 강림 도령 등, 각기 독립된 이야기에 가까운 한국의 신화들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집대성한 느낌이다.
주호민 : 기본적으로 저승신, 이승신 이런 식으로 분류 자체가 잘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다보니 여러 신화를 차용해야 했고, 그 중 재밌는 엑기스만 모아 조합을 했다. 할락궁의 이야기에서는 환생꽃이라는 장치가 너무 재밌어서 그걸 가져오고, ‘이승 편’에서는 실제로 문헌에 있는 홍역귀를 도입하고. 같은 이유로 기획할 때도, 이걸 ‘저승 편’, ‘이승 편’, ‘신화 편’ 3부작으로 만들되 이것들이 조금씩 연관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시리즈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필요했고, 그 중 가장 매력적으로 느꼈던 저승차사 삼인방을 모든 시리즈에 넣어 각 시리즈의 연결 고리를 만들었다. 각각 독립된 이야기지만 같은 캐릭터가 나오면서 조금씩 사건들이 이어져, 마치 되게 잘 짜인 구조처럼 보이려고. (웃음) 가령 강림이 예전에 염라대왕을 습격한 적이 있다는 걸 슬쩍 이야기해놓고, ‘신화 편’에서 완전히 보여줄 생각이다. 소위 떡밥이 회수되는 구조가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세 개 시리즈의 연재 순서도 금방 정했나.
주호민 : 우선 ‘신화 편’을 가장 마지막에 할 거라고 생각했다. ‘저승 편’, ‘이승 편’을 통해 신들의 요즘 모습을 보여준 뒤, ‘신화 편’을 통해 진짜 신화 이야기 보여주면 좋겠다고. 나머지 두 개 중 ‘저승 편’은 구성 자체가 저승의 여러 관문을 통과하는 거라 모험 만화처럼 흥미롭게 되어 있다. ‘이승 편’은 상대적으로 우울하고, 불편하고. 그걸로 시작했다가는 반응이 안 올 것 같아서 (웃음) 일단 재밌는 걸 먼저 보여주고 그 다음에 하고 싶던 이야기를 하자는 생각으로 ‘저승 편’ 먼저 연재했다.
이들 세 시리즈의 중심에 놓인 저승차사 삼인방이 강림 도령과 덕춘이, 혜원맥인데 이들을 창작 캐릭터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주호민 : 전부 제주 신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인데 요즘 독자 입맛에 바꾼 건 있다. 원래는 셋 모두 남자에 험악한 인상, 그것도 셋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인상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너무 칙칙할 거 같아서 덕춘이를 여자로 그렸다. 덕춘이는 월직차사라고 하는데 달은 음의 느낌도 있으니까. 그렇게 덕춘이는 마음 약한 여자 캐릭터가 됐고, 거기에 대응하는 냉정한 캐릭터가 혜원맥, 다혈질은 강림인 식으로 캐릭터를 부여했다.
캐릭터 외의 설정들도 미리 준비했나. ‘저승 편’에서 김자홍이라는 인물이 죽고 나서 육도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군더더기가 없다.
주호민 : 준비를 많이 하고 들어가는 타입은 아니다. 원전 자체의 저승관이 흥미롭고 그 때 그 때 거기에 살을 조금씩 만들어 붙였다. 캐릭터도 기본적인 요소만 설정했다. 김자홍의 경우 주인공이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데, 독자들이 자신을 이입할 수 있는 백지 같은 인물로 설정했다. 변호사 진기한을 무적의 캐릭터로 만든 건, 저승이라는 무서운 곳에서 그를 통해 위안을 얻게 하고 싶었던 거고. 진기한의 모델은 만화에도 나오는 지장보살인데, 옛날 사람들도 지옥의 모든 영혼을 구제하고자 하는 지장보살을 통해 위안을 얻지 않았을까.
준비를 많이 하지 않는 것에 비해 복선이나 이런 것들이 굉장히 치밀해 보이는데.
주호민 : 마치 전부터 생각한 것처럼 만드는 요령이 있어서 속이고 있다. (웃음) 가령 ‘이승 편’에서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동현이가 홍역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초등학교 입학 때 어떤 절차가 있나 찾아보다가 나온 대사인데, 나중에 마침 홍역귀의 존재를 알게 되어 등장시켰더니 마치 그게 계획한 것처럼 됐다.
“평소에 관심 있던 사안들이 주제가 된다” 주호민 작가 “말하기보단 읽는 사람이 느낄 수 있게”" /> 요령이라고 하지만 만화가로서의 연출 테크닉이 갈수록 발전하는 느낌이다. 최근 ‘이승 편’에서 철거민인 오락실 할아버지가 죽을 때 TV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프리미엄의 가치’라는 아파트 광고가 나온다.
주호민 : 의도한 건데, 사실 처음에는 ‘당신의 아파트’ 이런 식의 광고도 생각했다. 그러면 너무 노골적일 것 같아서 짐작할 수 있을 정도만 드러냈다. 어떤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의 작품이 불편하지 않은 건, 그 노골적인 요소가 없어서다. 작가의 목소리를 직접 내는 걸 굉장히 조심한다.
주호민 : 제일 신경을 많이 쓰는 게 그 부분이다. 캐릭터가 말을 하는데 이건 누가 봐도 작가 생각이다, 하는 장면은 손발이 오그라든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걸, 캐릭터 입을 통해 말하기보다는 어떤 상황을 보여주고 보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연출하는데 치중한다. ‘이승 편’의 경우 재개발에 대한 철거민의 입장을 긴 대사로 말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철거되는 과정과 사람들이 부딪히는 과정을 담담히 보여주고 읽는 사람이 느낄 수 있게 하고 싶다.
하지만 철거민 이야기라는 것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이미 어떤 메시지나 의도라는 게 생기게 된다.
주호민 : 평소에 관심 있던 사안들이 주제가 된다. 같은 경우에는 스물여덟, 주위가 다 취업준비생이라 관심이 그쪽에 쏠릴 때 그리게 된 거고, ‘이승 편’은 용산 참사를 다룬 이라는 르포 만화를 보고 자극을 받아 그리게 됐다. 이런 만화를 극화로 만들어 대형 포털에 연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이승의 신인 가택신 이야기를 하는데, 철거라는 게 가택이 없어지는 거 아닌가. 머릿속에서 가택신과 철거, 재개발 등의 이야기가 엉켰다. 그런 식으로 주제를 잡지만 메시지를 따로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재개발은 나쁜 겁니다, 이런 게 아니라 어느 곳이든 원래 살던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은 어디로 가는지 한 번 정도 생각은 해보자는 거다.
기획 자체도 한국 신화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시작한 걸로 아는데, 대형 포털에 연재하는 만화가로서 혹 책임감이 있나.
주호민 : 네이버 정식 웹툰이 되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본다. 수십만, 수백만이 보는 연재처에 자기 만화를 올리는 건 굉장히 큰 힘인데, 그런 공간을 유의미하게 쓰고 싶었다.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도구로 쓴다는 건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생각해보면 싶은 문제들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으로. 책임감보다는 공간을 활용하고 싶은 거겠지.
가전제품 재활용 정책이 고물을 주워 연명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힘든 일이 된다는 건 ‘이승 편’을 보고 알았다.
주호민 : 어떤 현상이 되게 좋아 보이는데, 한 꺼풀 벗기면 되게 이상한 부조리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시사 잡지 등을 통해 정보를 얻는 건데, 나도 그런 잡지를 보기 전에는 모르던 사실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보여준 거다.
“재밌는 만화를 그릴려면 인풋이 많아야 한다”
원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편인가.
주호민 : 그보다는 뭔가 알게 되는 걸 좋아한다. 우주나 공룡 관련한 다큐를 보며 내가 모르던 세계를 알게 되는 게 너무 흥미롭다. 그런 것 중 이런 걸 그리면 재밌겠다 싶은 것들도 생기고. 를 저승에 관련한 책을 보다 그리게 된 것처럼. 이런 게 없으면 자기 안에 있는 것만 그리게 되는데 자의식 과잉이 되면서 볼품없는 만화가 된다.
자의식 과잉이면 볼품이 없는 건가.
주호민 : 좋은 자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상관이 없는데, 안에 가진 게 없으면서 그걸 보여주려면 그게 뵌다. 얕은 게.
소위 중2병?
주호민 : 그렇지. (웃음) 정말 얕구나, 이 작품은 정말 비어있구나, 텅.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서 이렇게는 그리면 안 되겠다 싶을 때가 있다.
인풋이 많아야 하는 직업이겠다.
주호민 : 가끔 후배들이 어떻게 하면 재밌는 만화를 그릴 수 있느냐고 묻는데 항상 인풋이 많아야 한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만화만 보지 말라고. (웃음) 특히 만화학과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나는 창작자들을 한 공간에 몰아넣는 걸 굉장히 안 좋다고 본다. 비슷한 부류의 학생들을 한 곳에 몰아넣으면 그들끼리만 이야기하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서 취향이 비슷해지고 어떤 프레임 안에 갇힌다. 그래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책도 많이 읽고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만나볼 필요가 있다. 만화가들은 사람 만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웃음) 그러면 하다못해 휴먼 다큐라도 많이 보라고 한다. 나도 그러려고 한다. 책도 읽고, 신문도 계속 보고.
주제나 소재는 계속 다양하게 도입하는데 도 그렇고, 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착한 사람이 잘 되길 바라는 태도가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
주호민 : 딱히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를 생각하고 그린 건 아니다. 어쩌면 촌스러운 주제기도 해서 딱히 의도하진 않는데, 그리다보면 그렇게 되더라. 그냥 그렇게 된다, 나도 모르게. 작풍이란 건가, 하며 그리고 있다. 그리고 부정적인 느낌의 작품을 그리면 그리는 나도 고통스럽더라. 작업은 즐거워야 한다는 마인드인데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작업이 재미없고, 그러면 만화도 재미없어지고, 독자도 재미없어 하고, 나도 힘이 빠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따뜻하고 밝은 이야기를 하면 선순환이 되고.
사람의 선함, 결국 옳은 선택을 할 거라는 걸 믿는 편인가.
주호민 : 믿는 편이다. 사람들에게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지지고 볶고 이래도 아주 느리게, 아주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지만 좋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결국은 그런 생각으로 그리고 있다.
글. 위근우 기자 eight@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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