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말한다. “여자한테 인맥은 시댁 식구밖에 없어. 친정 식구도 다 남이야, 남. 나 때 여자들이 몇 년 만에 친구한테 연락할 수 있었던 건, 남편한테 쫓겨났을 때밖에 없었어.” 7, 80년대라 해도 용납하기 어려운, 21세기라면 사회에서 매장당하기 딱 좋은 발언.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남성우월주의에 사람들이, 여자들이 웃는다. 인기도 인기지만 KBS ‘두분토론’ 속 박영진의 개그가 흥미로운 건 그 때문이다. “이번 코너 시작하면서부터는 게시판도 안 보려고 해요. 제가 하는 멘트들이 독하잖아요. 안 좋은 반응을 보면 저 스스로 검열할 거 같아요.” 스스로 걱정하듯, ‘두분토론’ 속 그의 멘트는 개그니까 이해해달라고 부탁하기 힘든 지점이 있다. 듣기 싫은 하이톤으로 여자를 비하하는 남하당 박영진 대표에게 호감을 느끼끼도 어렵다. 하지만 박영진을 그것을 스스로의 캐릭터로서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극복한다.
대학 동기인 박성광과 1년 이상 진행했던 ‘박 대 박’, 가상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풍자 개그 ‘뿌레땅뿌르국’ 같은 코너에서 박영진은 말도 안 되지만 설득력 있는 궤변과 우기기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시켰다. 집값이 너무 비싸다고 투덜대는 국민(김기열)에게 ‘대기업이 짓는데 광고 안 하냐? TV광고. TV광고에 아무나 나오나? 톱스타. 톱스타만 나오나? 어린이들. 톱스타랑 어린이들만 나오나? 트레이닝복 입은 여자가 조깅. 이 모든 게 국민을 위해서’라 말하는 뿌레땅뿌르국 대통령은 현실의 위정자를 풍자하는 존재였다. 이렇게 누적된 박영진의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두분토론’의 독한 멘트 역시 오히려 그런 남자들을 희화화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포맷은 바뀌지만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그런 그가 음악에 대해서 “취향이 자주 바뀐다”고 고백하는 건 재밌는 일이다. 유행은 빨리 변한다. 하지만 트렌디하건 꾸준하건, 결국 중요한 건 결국 개그는 웃기고 음악은 듣기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영진이 최근 ‘꽂힌’ 곡 위주로 자신의 플레이어에서 직접 찾아 소개해준 노래들처럼. 1. 백지영 ‘그여자’가 수록된
“이 최고 인기였잖아요. 백지영 씨 노래도 나오고, 그 다음에 현빈 씨 노래도 나오고. 저도 그 분위기 속에서 ‘그 여자’를 듣게 됐어요.” 이제 2달 여 지난 2011년 상반기, 가장 뜨거웠던 콘텐츠는 역시 일 것이다. 사람들은 배우 현빈의 입을 통해 나오는 김은숙 작가의 대사에 열광했고, 통속적이지만 애절한 백지영의 ‘그 여자’에 마음이 흔들렸다. ‘난 사랑받고 싶어, 그대여. 매일 속으로만 가슴 속으로만 소리를 지르며’라는 가사와 백지영의 목소리는, 사랑해도 함께 할 수 없다는 그 빤한 스토리에 진정성을 부여했다. OST와 드라마 동반 인기 상승의 가장 좋은 예. 2. 거미의
“거미 씨 노래도 굉장히 좋더라고요. 워낙 노래 잘 부르시는 분이고.” 박영진이 추천한 두 번째 곡은 거미의 ‘러브 레시피’다. 탁월한 리듬 앤 블루스 보컬리스트인 거미와 바비 킴의 듀엣이라는 것만으로도 귀가 호강하는 느낌이지만, 그렇다고 이 둘이 소위 ‘가창력을 과시’하는 노래를 들려주는 건 아니다. 거미는 특유의 파워풀한 보컬 대신 잔잔하면서도 리드미컬하게 도입부를 이끌면서 바비 킴과 화음을 맞추고, 바비 킴 역시 독특한 비성으로 곡의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이제 막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을 만난 연인들만이 느끼는 설렘과 뿌듯함이 과도하지 않게 표현되어, 역시 연애에 대한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는 영화 와 콜라보레이션을 이루기도 했다. 3. Nelly Furtado의 < Loose:Deluxe Edition >
“어디서건 우연히 귀에 꽂히는 노래를 듣게 되면 남에게 물어보거나 검색해서 곡을 찾아 들어보는 편이에요. 최근에는 천정명 씨 나오는 광고 음악을 듣고 베어네이키드 레이디스의 ‘Four Seconds’를 찾아 듣기도 했고요. 넬리 퍼타도의 ‘Maneater’는 라디오에서 듣고 홈페이지에서 곡목을 찾아 듣게 된 곡이에요.” 영화 에도 출연했던 배우 겸 가수 넬리 퍼타도의 ‘Maneater’는 말 그대로 남성 편력이 심한, 남자를 이용하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곡이다. 사실 이 곡을 ‘두분토론’의 박영진이 추천했다는 것이 정말 재밌는 우연이기도 한데, 그녀는 곡 속 Maneater에게 당하는 남자를 화자로 삼아 ‘make you buy cars (너에게 차를 사게 하고) make you cut cords (너에게 카드를 긁게 한다)’고 외친다. 남하당 박영진 대표가 들었다간 경을 칠 일이다. 4. GD&TOP의
“이 곡이 인기가 많다는 걸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거 같아요”라며 추천한 곡은 GD&TOP, 그리고 2NE1의 박봄이 함께 한 ‘Oh Yeah’다. GD&TOP 유닛의 1집 앨범이 얼마나 듣는 이를 들썩이게 하는 힘이 있는지 설명하는 건 이제 새삼스러운 일일 것이다. 지난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그들이 무대와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제대로 놀 줄 아는’ 두 청년의 에너지로 충만했었다. 그중에서도 ‘Oh Yeah’는 제목이기도 한 후렴구 ‘Oh Yeah’가 그대로 ‘떼창’을 유도할 수 있는, 그야말로 따라 부르며 즐기기 가장 좋은 곡이다. GD와 TOP의 랩은 말이 필요 없는 수준이지만, 박봄의 보컬 역시 가수에게 있어 타고난 목소리 톤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해준다. 5. R.ef의
“이건 조금 옛날 곡”이라는 박영진의 말대로 마지막 추천 곡인 R.ef의 ‘귀머거리 하늘’은 1998년 발매된 그들의 마지막 정규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최근에는 열심히 예능 활동을 하는 성대현이 코믹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1집에서 ‘이별공식’과 ‘상심’을 히트시키고, 솔리드, 신승훈, 김건모 등의 컴백 시기에 2집을 낼 때만 해도 R.ef의 인기란 굉장한 것이었다. 특히 팀 이름이 Rave Effect의 줄임말인 만큼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색깔을 상당히 강조했는데, 레이브라는 장르에 더 충실하기 때문에 ‘이별공식’ 대신 ‘고요 속의 외침’을 타이틀곡으로 삼은 건 잘 알려진 일이다. 비교적 서정적인 멜로디의 ‘귀머거리 하늘’이 ‘고요 속의 외침’이 그랬던 것처럼 50초가 넘는 테크노 전주로 시작되는 것 역시 그들의 고집일 것이다. “‘두분토론’을 통해 제 인생에 있어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부담이 돼요. 제가 그 벽을 넘을 수 있을지.” 아무리 개그맨들이 일주일 내내 고민해서 내놓는 개그라 해도 조금만 익숙해지면 ‘식상하다’는 평을 듣는 것이 이 바닥이다. 김병만의 ‘달인’ 같은 경우는 거의 기적이라고 할 때, 아무리 지금의 ‘두분토론’이 그리고 박영진이 재밌다고 해도 언젠가는 그 이후를 고민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이것은 개그맨의 숙명이다. 박영진이라는 개그맨에게 신뢰를 느끼는 건, 지금 가장 웃기는 개그맨이라서가 아니라 이토록 많은 숙명의 고비들을 착실하게 넘으며 박영진 식 개그를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웃기는 개그가 내일도 웃기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어제도 웃겼고, 오늘도 웃긴 개그맨에게서만 우리는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지금, 박영진이 그렇다.
글. 위근우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대학 동기인 박성광과 1년 이상 진행했던 ‘박 대 박’, 가상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풍자 개그 ‘뿌레땅뿌르국’ 같은 코너에서 박영진은 말도 안 되지만 설득력 있는 궤변과 우기기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시켰다. 집값이 너무 비싸다고 투덜대는 국민(김기열)에게 ‘대기업이 짓는데 광고 안 하냐? TV광고. TV광고에 아무나 나오나? 톱스타. 톱스타만 나오나? 어린이들. 톱스타랑 어린이들만 나오나? 트레이닝복 입은 여자가 조깅. 이 모든 게 국민을 위해서’라 말하는 뿌레땅뿌르국 대통령은 현실의 위정자를 풍자하는 존재였다. 이렇게 누적된 박영진의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두분토론’의 독한 멘트 역시 오히려 그런 남자들을 희화화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포맷은 바뀌지만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그런 그가 음악에 대해서 “취향이 자주 바뀐다”고 고백하는 건 재밌는 일이다. 유행은 빨리 변한다. 하지만 트렌디하건 꾸준하건, 결국 중요한 건 결국 개그는 웃기고 음악은 듣기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영진이 최근 ‘꽂힌’ 곡 위주로 자신의 플레이어에서 직접 찾아 소개해준 노래들처럼. 1. 백지영 ‘그여자’가 수록된
“이 최고 인기였잖아요. 백지영 씨 노래도 나오고, 그 다음에 현빈 씨 노래도 나오고. 저도 그 분위기 속에서 ‘그 여자’를 듣게 됐어요.” 이제 2달 여 지난 2011년 상반기, 가장 뜨거웠던 콘텐츠는 역시 일 것이다. 사람들은 배우 현빈의 입을 통해 나오는 김은숙 작가의 대사에 열광했고, 통속적이지만 애절한 백지영의 ‘그 여자’에 마음이 흔들렸다. ‘난 사랑받고 싶어, 그대여. 매일 속으로만 가슴 속으로만 소리를 지르며’라는 가사와 백지영의 목소리는, 사랑해도 함께 할 수 없다는 그 빤한 스토리에 진정성을 부여했다. OST와 드라마 동반 인기 상승의 가장 좋은 예. 2. 거미의
“거미 씨 노래도 굉장히 좋더라고요. 워낙 노래 잘 부르시는 분이고.” 박영진이 추천한 두 번째 곡은 거미의 ‘러브 레시피’다. 탁월한 리듬 앤 블루스 보컬리스트인 거미와 바비 킴의 듀엣이라는 것만으로도 귀가 호강하는 느낌이지만, 그렇다고 이 둘이 소위 ‘가창력을 과시’하는 노래를 들려주는 건 아니다. 거미는 특유의 파워풀한 보컬 대신 잔잔하면서도 리드미컬하게 도입부를 이끌면서 바비 킴과 화음을 맞추고, 바비 킴 역시 독특한 비성으로 곡의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이제 막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을 만난 연인들만이 느끼는 설렘과 뿌듯함이 과도하지 않게 표현되어, 역시 연애에 대한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는 영화 와 콜라보레이션을 이루기도 했다. 3. Nelly Furtado의 < Loose:Deluxe Edition >
“어디서건 우연히 귀에 꽂히는 노래를 듣게 되면 남에게 물어보거나 검색해서 곡을 찾아 들어보는 편이에요. 최근에는 천정명 씨 나오는 광고 음악을 듣고 베어네이키드 레이디스의 ‘Four Seconds’를 찾아 듣기도 했고요. 넬리 퍼타도의 ‘Maneater’는 라디오에서 듣고 홈페이지에서 곡목을 찾아 듣게 된 곡이에요.” 영화 에도 출연했던 배우 겸 가수 넬리 퍼타도의 ‘Maneater’는 말 그대로 남성 편력이 심한, 남자를 이용하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곡이다. 사실 이 곡을 ‘두분토론’의 박영진이 추천했다는 것이 정말 재밌는 우연이기도 한데, 그녀는 곡 속 Maneater에게 당하는 남자를 화자로 삼아 ‘make you buy cars (너에게 차를 사게 하고) make you cut cords (너에게 카드를 긁게 한다)’고 외친다. 남하당 박영진 대표가 들었다간 경을 칠 일이다. 4. GD&TOP의
“이 곡이 인기가 많다는 걸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거 같아요”라며 추천한 곡은 GD&TOP, 그리고 2NE1의 박봄이 함께 한 ‘Oh Yeah’다. GD&TOP 유닛의 1집 앨범이 얼마나 듣는 이를 들썩이게 하는 힘이 있는지 설명하는 건 이제 새삼스러운 일일 것이다. 지난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그들이 무대와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제대로 놀 줄 아는’ 두 청년의 에너지로 충만했었다. 그중에서도 ‘Oh Yeah’는 제목이기도 한 후렴구 ‘Oh Yeah’가 그대로 ‘떼창’을 유도할 수 있는, 그야말로 따라 부르며 즐기기 가장 좋은 곡이다. GD와 TOP의 랩은 말이 필요 없는 수준이지만, 박봄의 보컬 역시 가수에게 있어 타고난 목소리 톤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해준다. 5. R.ef의
“이건 조금 옛날 곡”이라는 박영진의 말대로 마지막 추천 곡인 R.ef의 ‘귀머거리 하늘’은 1998년 발매된 그들의 마지막 정규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최근에는 열심히 예능 활동을 하는 성대현이 코믹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1집에서 ‘이별공식’과 ‘상심’을 히트시키고, 솔리드, 신승훈, 김건모 등의 컴백 시기에 2집을 낼 때만 해도 R.ef의 인기란 굉장한 것이었다. 특히 팀 이름이 Rave Effect의 줄임말인 만큼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색깔을 상당히 강조했는데, 레이브라는 장르에 더 충실하기 때문에 ‘이별공식’ 대신 ‘고요 속의 외침’을 타이틀곡으로 삼은 건 잘 알려진 일이다. 비교적 서정적인 멜로디의 ‘귀머거리 하늘’이 ‘고요 속의 외침’이 그랬던 것처럼 50초가 넘는 테크노 전주로 시작되는 것 역시 그들의 고집일 것이다. “‘두분토론’을 통해 제 인생에 있어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부담이 돼요. 제가 그 벽을 넘을 수 있을지.” 아무리 개그맨들이 일주일 내내 고민해서 내놓는 개그라 해도 조금만 익숙해지면 ‘식상하다’는 평을 듣는 것이 이 바닥이다. 김병만의 ‘달인’ 같은 경우는 거의 기적이라고 할 때, 아무리 지금의 ‘두분토론’이 그리고 박영진이 재밌다고 해도 언젠가는 그 이후를 고민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이것은 개그맨의 숙명이다. 박영진이라는 개그맨에게 신뢰를 느끼는 건, 지금 가장 웃기는 개그맨이라서가 아니라 이토록 많은 숙명의 고비들을 착실하게 넘으며 박영진 식 개그를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웃기는 개그가 내일도 웃기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어제도 웃겼고, 오늘도 웃긴 개그맨에게서만 우리는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지금, 박영진이 그렇다.
글. 위근우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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