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서막” 지난 16일 SBS 의 ‘런닝맨’ 예고편에 뜬 자막이다.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런닝맨’이 반전을 시도한 건 분명하다. 지난 주 ‘런닝맨’은 맨 뒤에 배치했던 추격전을 맨 앞에 두고, 출연자들을 쫓는 팀과 쫓기는 팀으로 나누는 대신 고정 출연자들을 세 팀으로 나눠 게스트를 쫓도록 했다. 제목 때문에라도 ‘런닝맨’의 대표 코너는 출연자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다. 초기에는 도시의 랜드마크에서 제작진이 감춰둔 아이템을 찾는 게임이 프로그램의 전부이기도 했다. 그러나 추격전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시간이 게스트와 출연진이 대립하는 ‘1대 9’나 노래하기, 딱지치기 등의 게임으로 채워졌다. ‘런닝맨’이면서도 점점 뛰지 않고 계속 포맷을 바꾸던 프로그램이 다시 추격전에 힘을 준 셈이다. “유재석이 나오고도 시청률 2등”하는 프로그램이 6개월간 방황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런닝맨’에서 추격전은 스토리고, 서스펜스이며, 리얼이다. 추격전은 실제 상황으로 설정 돼 있고, 추격전 사이에 출연자들 간의 서스펜스가 생기며,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반대로 게임은 캐릭터이자 코미디이며, 버라이어티다. 게임은 버라이어티 쇼의 요소고, 게임 사이에 다양한 해프닝이 벌어지며 출연자의 캐릭터와 코미디가 만들어진다. 게임에서 만들어진 ‘하로로’ 하하와 ‘월요커플’ 개리-송지효의 관계가 추격전으로 이어진 것이 그 예다. ‘리얼’과 ‘버라이어티’의 분리는 SBS < X맨 >에서 시작된 SBS 버라이어티의 특징이다. 한정된 세트에서 출연자들이 게임을 하며 다양한 상황과 캐릭터를 만든다. < X맨 >의 김종국과 윤은혜의 러브라인은 ‘런닝맨’의 ‘월요커플’까지 이어진다. 의 ‘패밀리가 떴다’ 이후 게임 장소는 스튜디오에서 야외로 확장됐지만, 시대의 유행이 무엇이든 인기 게스트를 초대해 출연자들끼리만 게임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SBS의 ‘버라이어티 정신’은 여전하다.
‘런닝맨’의 게임, 웃음으로 가는 지름길인가 이 ‘버라이어티 정신’에는 나름의 미덕이 있다. 유재석은 ‘런닝맨’의 게임 중 옛날 복학생 콘셉트의 ‘유혁’ 캐릭터로 대놓고 ‘깐족’거린다. 가벼운 게임들이 주는 여유 속에서 그는 메인 MC의 무게감을 벗고 마음대로 코미디를 하고, 다른 출연자의 캐릭터를 집어내는 장점을 더욱 살린다. 덕분에 ‘모함광수’나 ‘멍지효’의 캐릭터가 빨리 자리 잡았다. 기상청에서 김희철이 기상예보하는 게임을 하며 온갖 고생을 한 것처럼, 게스트들은 게임에서 자기 홍보와 웃음을 동시에 달성한다. 만화 박물관에서 추격전 도중 만화 캐릭터 탈을 쓴 송지효가 추격전의 ‘능력자’ 김종국에게 엎드려 비는 모습은 ‘런닝맨’만의 사랑스러운 장면 중 하나다. 마치 명랑만화처럼, 언제, 어딜 보든 편하고 즐겁게 웃을 수 있다.
대신 게임에는 프로그램 전체를 끌고 갈 동력이 부족하다. KBS 의 ‘1박 2일’에서 여행의 여정이 ‘다큐’ 쪽이라면, ‘복불복’은 ‘예능’이다. 그러나 출연자들이 기를 쓰고 ‘복불복’을 하는 건 음식을 먹거나, 괴로운 벌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게임 전후에 정말 힘든 그들의 여행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반면 ‘런닝맨’에서 게임의 승자는 ‘런닝볼’을 갖는다 해도 벌칙을 받는 가능성만 줄어든다. 유재석이 MBC 때문에 MBC 에서 엄청난 분장을 하고 참석한 상황에서 내복을 입고 거리에 나서는 벌칙이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다. ‘런닝맨’의 게임은 소소한 웃음은 많지만 시청자를 몰아붙일 힘이 부족하다. 의 ‘남자의 자격’의 ‘합창단’ 에피소드가 ‘런닝맨’보다 더 웃겼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합창단’은 한 번 보면 채널을 돌리기 어렵다. 그것은 ‘런닝맨’의 시청률이 어느 수준에서 멈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런닝맨’에 필요한 건 더 많은 웃음이 아니라 이 시대의 예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방향 설정이다.
‘리얼’과 ‘버라이어티’의 통합 가능성 그래서 16일 방영분은 “반전의 서막”일 수도 있다. 고정 출연자가 세 팀으로 나눠 게스트를 추격하자 그들은 예전처럼 흩어지지 않았고, 유재석과 지석진의 코미디는 추격전에서도 이어질 수 있었다. 게스트는 쫓기며 더 빠르게 자신의 캐릭터를 잡아나갔다. 16일의 게스트 정진영은 팔찌만 뺏기지 않으면 된다는 사실을 이용해 끝까지 살아남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추격을 피해 낙원상가의 악기상에 들어가 태연히 밥을 먹었다. ‘런닝맨’에서 보기 드물게 일반인과 접촉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든 셈이다. 이런 상황들이 추격전의 서스펜스와 캐릭터 코미디의 가능성을 키운 건 물론이다. 이번 주 ‘런닝맨’ 역시 가면을 쓴 사람들 사이에 역시 가면을 쓴 게스트를 숨겨 놓는다. 게스트는 찾기 어려워지고, 출연자들이 예상 못한 상황을 겪을 가능성도 커졌다. 여러 번의 포맷 변경을 지나, ‘런닝맨’은 ‘리얼’과 ‘버라이어티’를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다.
물론 이 포맷도 또 바뀔 수 있다. ‘광명역’ 편에서 몇 명의 출연자들은 게임을 하다 기차를 타지 못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내 그들을 모두 모인 게임 현장으로 복귀시켰다. 과거라면 통제 가능한 상황에서 게임으로 웃음의 확률을 높이는 게 옳다. 그러나 비슷한 에피소드에서 ‘1박 2일’의 나영석 PD는 김종민을 정말로 낙오시켰다. 그 때 김종민이 벌인 해프닝은 ‘1박 2일’을 ‘리얼’의 세계로 접어들게 만들었고, 프로그램은 상승세를 탔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면, ‘리얼’이 주는 장점들을 잡을 수 없다. ‘런닝맨’의 제작진, 더 나아가 SBS 예능국에 필요한 건 새로운 코너의 기획력이 아니라 통제되지 않는 그 상황들을 견디는 뚝심이다. 그래야 16일에 보여준 “반전의 서막”이 진짜 반전이 될 것이다.
사진제공.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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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석 two@
편집. 이지혜 seven@
‘런닝맨’에서 추격전은 스토리고, 서스펜스이며, 리얼이다. 추격전은 실제 상황으로 설정 돼 있고, 추격전 사이에 출연자들 간의 서스펜스가 생기며,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반대로 게임은 캐릭터이자 코미디이며, 버라이어티다. 게임은 버라이어티 쇼의 요소고, 게임 사이에 다양한 해프닝이 벌어지며 출연자의 캐릭터와 코미디가 만들어진다. 게임에서 만들어진 ‘하로로’ 하하와 ‘월요커플’ 개리-송지효의 관계가 추격전으로 이어진 것이 그 예다. ‘리얼’과 ‘버라이어티’의 분리는 SBS < X맨 >에서 시작된 SBS 버라이어티의 특징이다. 한정된 세트에서 출연자들이 게임을 하며 다양한 상황과 캐릭터를 만든다. < X맨 >의 김종국과 윤은혜의 러브라인은 ‘런닝맨’의 ‘월요커플’까지 이어진다. 의 ‘패밀리가 떴다’ 이후 게임 장소는 스튜디오에서 야외로 확장됐지만, 시대의 유행이 무엇이든 인기 게스트를 초대해 출연자들끼리만 게임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SBS의 ‘버라이어티 정신’은 여전하다.
‘런닝맨’의 게임, 웃음으로 가는 지름길인가 이 ‘버라이어티 정신’에는 나름의 미덕이 있다. 유재석은 ‘런닝맨’의 게임 중 옛날 복학생 콘셉트의 ‘유혁’ 캐릭터로 대놓고 ‘깐족’거린다. 가벼운 게임들이 주는 여유 속에서 그는 메인 MC의 무게감을 벗고 마음대로 코미디를 하고, 다른 출연자의 캐릭터를 집어내는 장점을 더욱 살린다. 덕분에 ‘모함광수’나 ‘멍지효’의 캐릭터가 빨리 자리 잡았다. 기상청에서 김희철이 기상예보하는 게임을 하며 온갖 고생을 한 것처럼, 게스트들은 게임에서 자기 홍보와 웃음을 동시에 달성한다. 만화 박물관에서 추격전 도중 만화 캐릭터 탈을 쓴 송지효가 추격전의 ‘능력자’ 김종국에게 엎드려 비는 모습은 ‘런닝맨’만의 사랑스러운 장면 중 하나다. 마치 명랑만화처럼, 언제, 어딜 보든 편하고 즐겁게 웃을 수 있다.
대신 게임에는 프로그램 전체를 끌고 갈 동력이 부족하다. KBS 의 ‘1박 2일’에서 여행의 여정이 ‘다큐’ 쪽이라면, ‘복불복’은 ‘예능’이다. 그러나 출연자들이 기를 쓰고 ‘복불복’을 하는 건 음식을 먹거나, 괴로운 벌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게임 전후에 정말 힘든 그들의 여행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반면 ‘런닝맨’에서 게임의 승자는 ‘런닝볼’을 갖는다 해도 벌칙을 받는 가능성만 줄어든다. 유재석이 MBC 때문에 MBC 에서 엄청난 분장을 하고 참석한 상황에서 내복을 입고 거리에 나서는 벌칙이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다. ‘런닝맨’의 게임은 소소한 웃음은 많지만 시청자를 몰아붙일 힘이 부족하다. 의 ‘남자의 자격’의 ‘합창단’ 에피소드가 ‘런닝맨’보다 더 웃겼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합창단’은 한 번 보면 채널을 돌리기 어렵다. 그것은 ‘런닝맨’의 시청률이 어느 수준에서 멈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런닝맨’에 필요한 건 더 많은 웃음이 아니라 이 시대의 예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방향 설정이다.
‘리얼’과 ‘버라이어티’의 통합 가능성 그래서 16일 방영분은 “반전의 서막”일 수도 있다. 고정 출연자가 세 팀으로 나눠 게스트를 추격하자 그들은 예전처럼 흩어지지 않았고, 유재석과 지석진의 코미디는 추격전에서도 이어질 수 있었다. 게스트는 쫓기며 더 빠르게 자신의 캐릭터를 잡아나갔다. 16일의 게스트 정진영은 팔찌만 뺏기지 않으면 된다는 사실을 이용해 끝까지 살아남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추격을 피해 낙원상가의 악기상에 들어가 태연히 밥을 먹었다. ‘런닝맨’에서 보기 드물게 일반인과 접촉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든 셈이다. 이런 상황들이 추격전의 서스펜스와 캐릭터 코미디의 가능성을 키운 건 물론이다. 이번 주 ‘런닝맨’ 역시 가면을 쓴 사람들 사이에 역시 가면을 쓴 게스트를 숨겨 놓는다. 게스트는 찾기 어려워지고, 출연자들이 예상 못한 상황을 겪을 가능성도 커졌다. 여러 번의 포맷 변경을 지나, ‘런닝맨’은 ‘리얼’과 ‘버라이어티’를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다.
물론 이 포맷도 또 바뀔 수 있다. ‘광명역’ 편에서 몇 명의 출연자들은 게임을 하다 기차를 타지 못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내 그들을 모두 모인 게임 현장으로 복귀시켰다. 과거라면 통제 가능한 상황에서 게임으로 웃음의 확률을 높이는 게 옳다. 그러나 비슷한 에피소드에서 ‘1박 2일’의 나영석 PD는 김종민을 정말로 낙오시켰다. 그 때 김종민이 벌인 해프닝은 ‘1박 2일’을 ‘리얼’의 세계로 접어들게 만들었고, 프로그램은 상승세를 탔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면, ‘리얼’이 주는 장점들을 잡을 수 없다. ‘런닝맨’의 제작진, 더 나아가 SBS 예능국에 필요한 건 새로운 코너의 기획력이 아니라 통제되지 않는 그 상황들을 견디는 뚝심이다. 그래야 16일에 보여준 “반전의 서막”이 진짜 반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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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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