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는 엄청난 제작비가 투여되고, 교통체증에도 불구 청계천과 광화문 일대에서 촬영을 강행할 수 있었던 대작이었다. 그러나 높은 시청률과는 별개로 허점이 많은 완성도는 방영 내내 비판받았다. 그리고 의 스핀오프 격인 SBS (이하, )은 “가장 중요한 건 대본”이라며 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엉성한 만듦새를 보이고 있다. 제대로 된 이야기는 부재한 상황에서 주인공들의 전사는 뮤직비디오로 처리되고, 전형적인 캐릭터들은 생명력을 얻지 못한다. 그것은 정태원 대표의 “미국처럼 수십 명의 전문 작가 팀이 운영되는 게 아니니까” 정도의 변명으로 무마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물론 의 액션 신들은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드라마가 작품으로 남기 위해서는 몇몇 눈에 띄는 장면만으로는 부족하다. 를 하나의 거대한 ‘정부 PPL’ 드라마로, 그럴싸한 척 하지만 알맹이는 없는 서사 구조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위근우 기자와 김선영 TV평론가가 말한다. /편집자주
글. 김선영(TV평론가)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SBS 의 현재 시점은 KBS 의 시점으로부터 약 3년 뒤다. 극중에서 이 3년의 시간은 대한민국의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에서 국가안전국(NSS)의 활약에 의해 핵 테러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한국은 남북정상회담도 무사히 치르고 비밀리에 추진하던 핵개발 프로젝트도 계속 진행시킨다. 그리고 에 오면, 국가 안보에 자신감을 얻은 정부는 획기적인 신형 원자로 개발 프로젝트로 경제적 업적을 이루고자 한다. 제 3차 세계대전의 위험을 불러올 수도 있었던 한반도는 이제 세계 각국이 주목하는 첨단기술개발의 중심지로 부상한다. 요컨대 와 의 이야기를 추동하는 가장 중요한 동력은 바로 강한 국가 판타지다.
G20 시대의 국가 홍보용 판타지 블록버스터 vs <아테나>│<아테나>를 보지 않는 두 가지 이유" />그러나 이 강한 국가 판타지의 실체에는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다. 이는 먼저 에 이어 까지 약 3년 동안 집권 중인 대통령 조명호(이정길)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에서 이제 막 대통령에 취임했던 그는 표면적으로는 자주적 통일과 북한과의 평화 협력을 주장하던 개혁 성향의 인물로 그려졌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가 추진하는 일들이 NSS 창설과 핵개발 프로젝트의 기원이었던 박정희 정권의 계승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비중과 역할이 더욱 커진 에 이르면 이 캐릭터 위에는 현 정권의 모습까지 덧입혀진다. 조 대통령이 신형 원자로 개발이 완성되면 직접 “원전 수출”에 나서겠다고 하는 장면이나, 북한의 도발에 “결코 좌시하지 않고 백배, 천배 갚아줄 것”이라며 강경 입장을 표명하는 장면 등에서 연상되는 것은 명백하다. 즉 와 를 관통하는 조명호식 강한 국가 판타지에는 70년대 이데올로기와 맞닿아 있는 현 대한민국 정부의 보수적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강한 국가 판타지는 두 작품의 비주얼적 측면으로 충실히 구현된다. 가령 서울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의 광화문과 청계천, 그리고 문화관광부의 투자를 받은 의 한강 플로팅 아일랜드 등 서울의 도심은 세계 첩보전의 중심이 되는 첨단 공간으로 세련되고 아름답게 전시 홍보되고 있다. 첨단 기기와 세트, 컴퓨터 그래픽, 스펙터클한 액션신 등 많은 제작비를 투입해 서구 유사 장르물의 외형을 기술적으로 그럴 듯하게 모방한 스타일도 판타지 구축에 일조한다. 특히 에서 이런 비주얼적 과시는 더 두드러진다. 가 CCTV 중심의 첩보전에 머물렀다면, 는 위성을 사용하는 초국적 스케일로 강한 첨단 국가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힘쓴다. 그리하여 권국장(유동근)의 공로패가 상징하듯 와 는 비유하자면, 각각 APEC 시대와 G20 시대의 국가 홍보용 판타지 블록버스터처럼 보인다.
판타지의 부속품으로 소비되는 캐릭터
이처럼 가 심하게는 하나의 거대한 ‘정부 PPL’ 드라마처럼 기능하는 가운데 이야기는 점점 허술해지고 캐릭터들은 판타지 부속품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특히 주인공 정우(정우성) 캐릭터의 소비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그의 욕망과 내면을 가장 잘 대변하는 유일한 신이 2회 이탈리아 무도회 꿈 장면이라는 데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제임스 본드와 같이 근사한 첩보원 이미지와 미녀와의 키스, 오직 두 가지 판타지로만 채워진 꿈 장면처럼 정우는 깊이 있는 내면 하나 부여받지 못한 채 철저히 액션과 멜로의 클리셰 안에서만 소비되고 있다. 혜인(수애)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옛 연인 재희(이지아), 대통령의 딸 수영(이보영), 가수 보아에 이르기까지 정우가 여러 여성 캐릭터들과 얽히는 장면에서는 여지없이 멜로의 관습적 요소들이 시각적으로 동원되며 뮤직비디오식 화면이 연출된다. 캐릭터가 구축되기도 전에 이미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소비된 주인공 캐릭터는 좀처럼 이야기에 구심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결국 의 대중적 흡입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똑같이 강한 국가 판타지이면서도 엔 존재했던 강한 영웅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 어쩌면 이 역시 대통령을 유일한 영웅으로 남기고자 하는 정부 홍보 프로젝트의 일환일지도 모르겠다.
글 김선영
SBS 가 신화 속 여신의 이름에서 제목을 따왔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 드라마를 지탱하고 있는 건 과학기술에 대한 신화다. 첫 회부터 지금까지 국가대테러정보원 (NTS)와 테러조직 아테나, 그리고 미 국가정보국(DIS)를 비롯한 수많은 세계 정보기관들이 갈등을 일으킨 건 오직 김명국 박사와 그가 만들어낼 신형 원자로 기술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국가 혹은 개인의 영달이라는 각기 다른 목표를 위해 움직이지만 “신형 원자로가 국민들을 먹여 살리게 될 핵심기술이라 확신”하는 대통령(이정길)도, “신형 원자로에 대한 정보라면 뭐든지 닥치는 대로 수집”하라고 지시하는 손혁(차승원)도 모두 획기적인 과학기술 하나면 나라 혹은 세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한다. 이것이 신화인 건, 터무니없는 허구라서가 아니라 믿음에 대한 권위를 그 믿음으로부터 끌어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신형 원자로가 중요한 건, 과학기술이 국운을 뒤바꿀 수 있어서고, 과학기술이 국운을 뒤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증명하는 건 모두들 신형 원자로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이다. 아테나와 제우스에 대한 믿음이 그러하듯, 신화는 자신의 권위를 자기 안에서 증명한다.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와 사진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비전 없이 욕망만이 전시되는 의 세계 vs <아테나>│<아테나>를 보지 않는 두 가지 이유" />문제는 를 지탱하는 신화가 서사로서의 매혹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대의 신화는 이야기 자체의 매력으로서 대중의 믿음을 얻었고, 자본주의나 과학기술에 대한 현대의 신화 역시 그것들이 가져올 장밋빛 미래를 하나의 거대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서 제시했다. 하지만 드라마 안에서 세계 에너지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신형 원자로를 가지고 대통령이 구상하는 것은 기껏해야 해외 원전 수주다. 조직 아이리스는 그나마 남북 냉전의 고착을 통해 무기 산업으로 이익을 얻는다는 어느 정도 납득 가능한 목표를 제시했지만 아테나는 신기술에 대한 욕망만을 드러낼 뿐 그것을 통한 어떤 비전도 제시하지 않는다. 아무리 등장인물들이 중요하다고 강조해도 김명국과 원자로는 명목상 갈등의 원인은 될 수 있을지언정 갈등의 동력은 되지 못한다. KBS 보다 진일보한, 어쩌면 할리우드에 가장 근접한 의 액션신이 그 만듦새에도 불구하고 공허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명분과 신념을 이해할 수 없는 싸움은 보기 피곤할 뿐이다. 때문에 드라마는 김명국보다는 김명국을 둘러싸고 부차적으로 생기는 사건들, 즉 대통령의 딸(이보영)이 납치되고 보아가 위기에 처하는 개별적인 에피소드에 힘을 준다. 하지만 작전이 진행 중인 이탈리아 비첸차에서 대통령의 딸이 유학 중이라는 걸 NTS 국장(유동근)도 청와대의 전화를 받고서야 알고, 혜인(수애)을 심문할 때 거짓말 탐지기도 사용하지 않는 어설픈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사건을 만들 힘조차 없는 것이 현재의 다.
그럴싸한 척 하지만 알맹이는 없는 서사 구조
오히려 에서 재밌는 순간은 빈약한 신화를 가리기 위해 시각적 스펙터클이 동원될 때가 아니라 그 신화가 현실의 어떤 부분을 환기할 때다. 앞서 현대의 신화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한다고 했지만 동시에 결코 장밋빛이 아닌 현재에 대한 알리바이로서도 작용한다. 드라마에서처럼 미래를 향한 청사진이 빈약하고 얄팍할수록 더욱 그렇다. 즉 신형 원자로 개발에 국운이 걸려있다는 신화는, 현재 경제가 어려운 건 아직 원자로가 개발되지 않아서라는 변명의 다른 말이다. 북한과의 외교 갈등을 원자로 개발의 이익을 나누는 것으로 해결하고 민족적 협력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 역시 그렇다. 이러한 논리는 현실 속에서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현 정부의 꾸준한 기업 규제 완화가 완전자유시장이라는 신화에 기대 현재의 경제난을 덮는 것이라면, 연평도 사건 이후 첨단 무기를 서해 5도에 배치하는 것은 신무기로 국방력이 획기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는 케케묵은 신화다. 다시 말해 그럴싸한 척 하지만 알맹이는 없는 의 서사 구조, 그리고 그것을 보며 느끼는 공허함은 ‘신화는 없다’면서 온갖 검증되지 않은 믿음으로 운영되는 현실의 대한민국을 상당 부분 재현해내고 있다. 물론 이런 흥미로운 우연이 너저분한 스토리의 드라마를 볼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이미 비슷한 것들을 채널을 돌릴 수도 없이 직접 보고 있어야 하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글 위근우
글. 김선영(TV평론가)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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