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 감독 연출. 이 한마디만으로도 MBC 는 설명될 수 있다. 미천하지만 재능이 있고, 언젠가 궁궐의 요직에 자리하게 될 주인공과 그의 라이벌, 그리고 그의 조력자. 이 삼각구도는 , , 같은 이병훈 감독의 전작에서 꾸준히 이어져오는 기본 얼개이고, 주인공이 하나씩 미션을 클리어하는 소위 ‘롤플레잉 사극’ 형식 역시 ‘메이드 인 이병훈’의 그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에는 과거 그의 사극에서 보기 어려웠던 동시대적인 발랄함이 뚜렷하게 배어있다. 과연, 그 변화는 우연일까, 의도된 것일까. 6일, 용인 드라미아에서 공개된 현장에서 직접 이병훈 감독에게 들어보았다.

과거의 사극, 더 정확히 말해 이병훈 표 사극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특히 장희빈에 대한 재해석이 돋보인다.
이병훈 : 내가 1971년에 조연출을 맡았던 작품이 이었고, 1988년에 을 맡았을 때도 희빈 장씨 이야기를 연출했다. 그런데 희빈 장씨는 역관(당시의 통역관) 집안 출신의 총명했던 여성이었다. 과거 드라마에서 그려진 것처럼 인현왕후를 쫓아내고자 푸닥거리 같은 걸 하진 않았을 거 같았다. 오히려 상궁이나 나인이 하려고 하면 오히려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라고 했을 거다. 자신이 인현왕후보다 모든 것이 뛰어난데 왜 그녀에게 그런 짓을 하겠나. 내가 생각하는 희빈 장씨는 질투라는 게 없는 인물이다. 미모나 두뇌 모든 것이 제일 뛰어나니까. 과거의 희빈 장씨와는 다른, 숙종이 국사를 의논할 정도로 뛰어난 인물로 그릴 생각이다.

“동이는 캔디 같은 모습으로 그릴 생각”
이병훈 “지진희는 완전히 코미디언 기질이 있다”
이병훈 “지진희는 완전히 코미디언 기질이 있다”
그런데 왜 실제 역사에서 그토록 뛰어난 여성이 왕비까지 올랐다가 사약을 받았을까.
이병훈 : 그토록 뛰어나고 남인 세력의 비호까지 업었음에도 아들 문제에서 밀렸을 거라고 본다. 세자 경종을 낳았지만 동이의 아들인 영인군(훗날 영조)이 더 똑똑한 것에 대해 위협을 느끼지 않았을까. 실제로 숙종은 재상을 독대한 적이 있는데 왕과의 독대라는 유례없는 일이다. 그 때 말하자면 세자를 경종에서 영인군으로 바꾸려 한 것이다. 그런 일들을 볼 때, 세자가 바뀌는 걸 인정할 수 없는 희빈 장씨가 무언가 일을 꾸미려 했고, 그래서 숙종이 그녀를 죽였다고 봤다. 숙종은 조선시대 제일가는 절대군주였는데 사랑하는 여자를 결코 그녀의 질투심 때문에 죽이진 않았을 거다. 과거 을 연출할 때도, 그 현명한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죽인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사도세자의 쿠데타 시도를 상상한 것처럼.

결국 역사적 사실 안에서 새로운 해석을 하는 건데, 절대군주 숙종도 같은 맥락인 건가.
이병훈 : 앞서 말한 과거 사극 속 숙종은 여자들 속에 파묻힌 캐릭터였다. 그런데 임금 정도 되는 인물이 질투로 사람을 죽였을까 싶어서 실록이나 역사 서적을 봤는데 숙종이야말로 우리나라 임금 중 최고의 절대군주로서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14살에 왕이 됐음에도 수렴청정(왕이 성인이 될 때까지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국정을 대리로 진행하는 것)을 거부한 유일한 왕이다. 그 나이에 중신회의에 직접 나가 매우 똑똑하게 정치를 한 거다. 심지어 선왕들도 어쩌지 못한 유림의 거두 송시열 같은 이까지 귀양 보내고 사약을 내릴 정도였다. 이처럼 엄청난 정치 변동을 이끌어내면 반정이 일어나기 십상인데 숙종 때는 그런 것도 없었다. 연산군 같은 이들이 반정으로 물러나 역사적으로 안 좋게 평가받는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런 대단한 인물을 소위 ‘깨방정’ 캐릭터로 그리는 건 어떤 의도인 건가.
이병훈 : 우선 조선시대에 27명의 임금이 있는데 어떻게 천편일률적으로 근엄했겠나 싶었다. 그 중 제 멋대로 자유분방한 임금도 있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카리스마가 약하면 그럴 수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숙종은 자기 마음대로 40년을 통치한 왕이니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았을까. 의 헨리 8세가 그런 것처럼.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굳이 임금의 체통을 지키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봤고, 그래서 자유분방하고 로맨틱한 그런 임금으로 그리려 했다. 물론 궁녀에게 손을 흔드는 그런 모습을 드라마에서 시도한 적이 없으니 욕도 먹을 수도 있는데, 적어도 그 긴 역사 안에서 그런 임금 하나 정돈 있겠단 생각으로 찍었다.

명색이 사극 주인공 동이가 까불대는 것도 화제가 되고 있다.
이병훈 : 동이는 워낙에 어릴 때 많이 울어서 성인이 된 이후에는 밝고 명랑하게 가려고 했다. 그리고 동이가 감찰부에서 일을 하는데 그런 전문적인 여성의 모습이 그려지기 위해서는 캐릭터가 적극적이어야 한다. 주인공이 다운 된 모습을 보이면 드라마 역시 다운되기 쉽다. 사실 같은 경우에도 좀 더 발랄한 여주인공을 바랐는데 기본적으로 이영애 씨 성격이 좀 가라앉은 타입이라 그게 잘 안 되더라. 이미 그 때 30대 중반이었고. 그런데 이번에 성공한 게 한효주라는 배우를 통해서다. 밝고 명랑하고 유머도 있어서 내가 원하는 캐릭터를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또 인터넷에서 주인공이 너무 까불댄다고 하는데 노비 출신이 품위가 얼마나 있겠나. 품위 있는 모습은 나중에 정말 많이 보여줄 테니 지금 당장은 캔디 같은 모습으로 그릴 생각이다.

“지진희가 이렇게 유머 넘치는 배우인지 몰랐다”
이병훈 “지진희는 완전히 코미디언 기질이 있다”
이병훈 “지진희는 완전히 코미디언 기질이 있다”
그럼 현재 동이의 모습이 처음부터 이 작품에서 의도한 것이었나.
이병훈 : 나는 이렇게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우선 작가가 그렇게 써줘야 하고, 배우가 잘 소화해야 하고, 상대 배우가 잘 맞춰줘야 한다. 그런데 한효주가 코믹한 내면의 발랄함이 있고, 지진희가 잘 받쳐준다. 나는 지진희가 이렇게 유머 넘치는 배우인지 몰랐다. 완전히 코미디언 기질이 있다. 둘이 담 넘어가는 장면을 찍을 때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밝고 명랑하게, 백 퍼센트 이상을 보여줘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두는 편이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건데 부담은 없나.
이병훈 : 드라마를 새로 시작할 때 어떻게 달라야 하나 고민했다. 지금도 다들 2편이라고 그러고, 배우들과 스토리는 이랑 비슷하다고 그런다. 그런 고민이 있어서 캐릭터를 다르게 해보려 했던 거다. 팔랑팔랑한 숙종과 헬렐레한 동이처럼. 특히 희빈 장씨에 대한 이야기는 드라마에서 7번 정도 나왔던 걸로 아는데 그 이야기가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장악원을 통해 궁중 음악을 다뤄보겠다 생각한 것도 같은 욕심인데 이것도 굉장한 부담이다.

사진제공. MBC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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