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대화에 낄 수 있는 공식은 없어?
스포츠 대화에 낄 수 있는 공식은 없어?
너 해외 축구 보는 거 좋아하지?
프리미어리그 말하는 거야? 당연히 좋아하지.

그럼 이번 주 루나의 델리비전도 봤어?
봤지.

그럼 도대체 ‘아스널의 문제는 늘 그거지’라는 대답이 뭘 뜻하는 거야? 왜 그걸 외우면 축구 대화에 낄 수 있다는 거야?
으하하하하. < IT 크라우드 >에 나온 에피소드 얘기구나. 정확하게 얘기하면 축구를 좋아하는 영국 ‘보통’ 남자들 무리에 끼고 싶은 주인공이 어떤 사이트를 통해 그날의 축구 대화에 어울리는 숙어를 배우는데 마침 그날의 숙어가 ‘아스널의 문제는 노력만큼 얻는 게 없다’였어. 전날 경기에서 벌어진 웽거 감독의 작전 미스에 대해 맞장구를 치는 숙어인 셈이지.

지금 한국말로 설명해주는 거 맞지?
너처럼 프리미어리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들을 때는 외국어 같을지도 모르지. 방금 말한 < IT 크라우드 >의 주인공도 너랑 마찬가지야. 그래도 대화에 끼고 싶으니까 뜻은 몰라도 그 자리에 어울릴 수 있는 숙어를 외우는 거지.
스포츠 대화에 낄 수 있는 공식은 없어?
스포츠 대화에 낄 수 있는 공식은 없어?
그런 게 가능해?
시트콤에 나온 것처럼 전날의 축구나 야구 경기를 분석해서 그날에 어울리는 몇 개 숙어를 만드는 건 가능하겠지. 가령 지난 주말 프로야구 개막전에 대한 대화에 끼고 싶다면 이거 하나면 충분해. ‘김현수 미친 거 아니야?’

왜 미쳐? 뭘 잘못했어? 그리고 김현수가 대체 누구야?
두산 4번 타자고, 그만큼 잘했다는 뜻인데 정말 프로야구에 정을 붙이고 차근차근 배워나갈 거 아니면 그냥 외워서 쓰면 돼.

그럼 야구 대화에 낄 수 있다고?
응, 적어도 이번 주 초까지는. 어차피 상대편은 맞장구치는 거 외엔 다른 반응을 보이기 어려우니까.

그래? 그런 거 더 없어? 아니, 기왕이면 좀 더 오래 써먹을 수 있는 거 없을까? 매일매일 새로운 숙어를 외우긴 귀찮잖아.
음… 아주 불가능하진 않겠다. 우선 그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이려면 좋아하는 팀이 있어야 돼. 넌 없지? 그럼 우선 기아 타이거즈로 설정하자.

난 기아 타이거즈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데?
그러니까 그냥 외우라고. 오늘 ‘10관왕’은 그냥 암기야. 처럼. 우선 초급 코스 기아 팬으로서 네가 외울 1순위 숙어는 ‘CK포’고 그 외 숙어는 ‘석민이만 작년 같았어도’야. 안 어렵지? 야구 시합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물어. ‘어제 기아 어떻게 됐어요?’ 그럼 이겼다, 졌다, 혹은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올 거 아냐. 이겼다고 하면 ‘CK포는요?’ 졌다고 해도 ‘CK포는요?’, 잘 모르겠다고 하면 ‘CK포가 터져야 되는데’라고 하면 넌 이미 기아 팬이야. 여기에 ‘석민이만 작년 같았어도’라는 숙어를 가끔 이어 붙이면 돼.

그 다음부터 내가 모르는 내용들을 얘기하면 어떡해.
쫄지 마. 그래서 팀 이름을 걸고 대화에 끼어드는 거야. 기아 경기가 어떻게 됐느냐고 말하는 순간, 너는 네가 기아 팬인 걸 알리는 거고, 그때부터 대화의 프레임은 야구 전반적인 내용에서 좋아하는 팀에 대한 이야기로 좁혀지거든. 그때부턴 상대방이 하는 말을 잘 경청하다가 넌 기아에 대한 애정을 몇 개 레퍼토리로 표현하면 돼. 자 예문 들어간다. ‘아, 홍성흔이 작년 포스로만 때려주고 이대호가 30홈런 채워주면 올해도 롯데 가을 야구는 무난할 텐데.’ 생판 모르는 얘기지? 거기에 네가 맞춰줄 필요는 없어. 홈런 어쩌고 하는 거 보면 어쨌든 타자 얘기잖아. 이럴 땐 기아 팬으로서 ‘우리도 CK포 있어’라고 대답해. 만약 상대가 투수 자랑을 하는 거 같다면 ‘CK포 조심해’로 응수하면 되고. 이건 다른 스포츠에서도 거의 마찬가지야.
스포츠 대화에 낄 수 있는 공식은 없어?
스포츠 대화에 낄 수 있는 공식은 없어?
다른 스포츠? 축구에서도?
물론이지. 가령 프리미어리그에 대한 얘기에 끼어든다고 치자. 이때도 중요한 건 좋아하는 팀을 설정하는 거야. 임의로 리버풀을 설정해보자. 여기서는 세 개 숙어를 기억하면 돼. 1순위 숙어는 ‘제토 라인’, 나머지는 ‘알론소만 있었어도’, ‘베니테즈가 문제야’야. 축구 얘기를 하는 무리가 있으면 ‘지난 번 리버풀 경기 어땠어요?’라고 물어. 이겼으면 ‘역시 제토 라인’, 졌으면 ‘제토 라인이 살아야하는데’, ‘알론소만 있었어도’, 혹은 ‘베니테즈가 문제야’로 대답하면 충분해. 만약 상대방이 맨유 팬이고 루니의 위대함에 대해서 실컷 떠들어도 ‘우린 제토 라인이 있어’라고 하면 땡이야. 여기에 ‘알론소가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 혹은 ‘그래도 베니테즈는 문제야’라는 응용 문장을 덧붙이면 더욱 답변이 풍성해지겠지.

프리미어리그 말고 월드컵에서도 그런 게 가능할까?
물론이지. 월드컵 시작하기 전에 외울 1순위 숙어는 ‘메시를 어떻게 막지?’야. 박지성 포지션이 어떻고 이동국을 빼니 마니, 전진 수비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어? 없지? 하지만 ‘메시를 어떻게 막지?’ 하나면 바로 대화에 끼어들 수 있어. 거기에 대해서 상대방이 네가 알아듣지 못할 %$%&$라는 말로 떠들어도 ‘과연 메시를 막을 수 있을까?’, 혹은 ‘정말 메시를 어떻게 막지?’ 정도로 대응이 가능하지. 만약 더 모를 말로 파고드는 거 같으면 화제 전환용 숙어인 ‘이번에는 스페인이 우승할 수 있을까?’ 정도를 쓰면 돼.

월드컵이 시작하면?
사실 여기서부터는 인간적으로 우리나라 경기 정도는 볼 거잖아. 어차피 대화도 우리나라 경기 위주로 흘러갈 거고. 하지만 그 외의 경기에 대해서도 끼어들고 싶다면 각 나라별 숙어를 외워야 돼. 우선 어제 경기가 어떻게 됐느냐고 물어본 다음에 잉글랜드가 이겼다고 하면 ‘뻥축구의 부활인가’, 네덜란드가 이겼다면 ‘토탈풋볼의 부활인가’, 이탈리아가 이겼으면 ‘걔네 짜증나’라고 반응하면 돼.

그렇구나. 그럼 이 숙어들만 외우면 나도 스포츠 좋아하는 남자랑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거야? 앞으로 잘 활용할게.
굳이 그럴 필요 없이 나는 잘 가르쳐주잖아.

누가 너래?
어? 어… 어… 어버버… (누가 이런 상황에 필요한 숙어를 좀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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